교육&계발

왜 공부하는가_ 이재호

정정진 2019. 1. 14. 16:11


우리는 일을 통해서만 기여를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여러분은 조선시대 구도장원공 九度壯元公(아홉 번 장원급제를 한 사람) 율곡 이이를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율곡은 조선왕조 500년을 통틀어 최다 장원급제를 한 선비였다. 경기도 어느 지역에서는 율곡이 과거를 보러 한양으로 가던 길을 기리기 위해 '구도장원길 걷기' 행사를 열기도 하고, 학부모들은 수능시험을 치는 자식들의 주머니에 율곡의 기를 받으라는 의미로 오천 원권을 부적처럼 넣어주기도 한다. 이런 것만 봐도 1500년대를 살았던 인물이 아직까지 우리에게 끼치는 영향이 얼마나 대단한지 짐작할 수 있다.


율곡 이이는 공부만 잘한 것이 아니다. 성리학을 집대성하고, 현실적인 정치 참여로 조선을 올바른 방향으로 개혁하고자 노력했다. 이런 그가 스스로 만든 자신만의 아홉 가지 공부법이 있는데, 그 내용은 대략 다음과 같다.


첫째, 입지立地 : 흔들리지 않는 분명한 뜻을 세운다.

둘째, 교기질矯氣質 : 공부하는 체질로 바꾼다.

셋째, 혁구습革舊習 : 잘못된 옛 습관을 타파한다.

넷째, 구용구사九容九思 : 옛 습관의 자리를 수신으로 채운다.

다섯째, 금성옥진金聲玉振 : 배수의 진을 친다는 절박한 심정으로 임한다.

여섯째, 일목십행一目十行 : 독서는 결코 배신하지 않는다.

일곱째, 택우문답擇友問答 : 벗과 함께 논쟁하면서 일취월장한다.

여덟째, 경계초월境界超越: 경계를 초월하는 자가 마지막에 웃는다.

아홉째, 지어지선至於至善 : 깊은 공부는 선한 마음으로 한다.


이 가운데 눈에 띄는 것이 하나 있는데, 율곡 이이는 자신의 공부법을 정리하면서 마지막으로 '지어지선'을 강조했다. 여기서 말하는 선한 마음이 바로 '남을 위하는 마음'이다. 결국 '공부는 누구를 위해서 하는가?'라는 물음에 대해 나 자신의 안위가 아닌 남에게 도움이 되기 위함이라고 이야기하고 있다.


이는 내가 항상 강조하는 말과 정확히 맥락을 같이 한다. 삶이란 세상에 꼭 필요한 존재가 되기 위한 과정이고, 인생의 보람과 행복은 자신의 능력이 값지게 쓰이는 데 있으며, 개인의 이익을 우선하지 않을 때 바른 삶을 살 수 있다고 확신한다.


알리바바 그룹의 회장 마윈이 항저우 사범대학 신입생환영 강의 때 했던 말을 보자. "나는 무엇이 성공인지를 생각합니다. 성공의 성成은 자기를 이루는 것이고 공功은 공덕을 쌓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스스로 성취하고 다른 사람을 도와야 비로소 진정한 성공의 의미를 느낄 수 있습니다. 사람들이 자기를 생각할 때 여러분은 미래를 생각해야 합니다. 또 자기가 다른 사람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고민하고 실천해야 합니다."


역사적으로 위대한 업적을 이룩한 사람이나 기업은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다른 사람을 위해 무언가를 하는 것'의 엄청난 힘을 알고 실천해오고 있었다. 이 점을 깨우치는 데서 모든 것이 시작된다.


율곡 이이는 네 살에 사서삼경을 읽고 열세 살에 처음 장원급제를 할 정도로 조선 역사상 가장 위대한 천재였으니, 그가 추천하는 공부법을 따라 한다고 해서 그와 같이 될 수는 없을 것이다. 다만 적어도 우리가 공부를 '왜' 하는지 그 이유만이라도 율곡의 가르침에서 배울 수 있다면 고통스러운 공부가 조금은 즐거워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오늘 내가 무엇인가를 배우고 지식을 쌓는다는 것은 당연히 내일의 누군가를 돕기 위함이고, 타인에게 기여하는 능력을 기르기 위함이다.


모두가 자신의 이익이나 출세를 위해, 많은 돈을 벌기 위해 살아가며 인생의 모든 포인트를 거기에 두고 있다. 하지만 요즘 사회에서는 상대에게 기여가 되지 않고서는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없다. 조금만 눈을 돌려봐도 알 수 있는 자명한 사실인데, '남을 위해 살라'고 가르치는 부모는 거의 없다.


자녀들이 어릴 때부터 상대에게 도움을 주기 위해 지식을 쌓고 공부를 하는 것이라고 알려줄 수 있다면,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남에게 고통을 주는 일 따위는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졸업한 뒤 돈을 벌기 위해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남에게 피해를 끼치며 내 이익만 챙기고자 하는 생각은, 모든 경쟁에서 이겨야만 잘살 수 있다고 가르친 데 따른 폐해라고 본다. 피라미드 구조의 사회에서는 꼭대기에 오르려면 내 옆의 경쟁자를 넘어뜨리고 짓밟아야 경쟁에서 이긴다고 가르친다. 그러므로 조금이라도 남에게 도움이 되려고 하는 사람을 볼 때면 어리석다고 생각한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 우리는 지금까지 생각해볼 기회가 없었다. 기여를 목적으로 열심히 일을 해나간다면 기여할 수 있는 능력이 생겨나고, 또 기여하는 정도에 따라 우리의 능력치가 얼마만큼 성장할 수 있는지를 말이다. 성공함으로써 돈과 명예를 갖는다는 것은 내 노력으로 키워온 기여 능력에 따른 결과다. 즉, 기여와 돈과 명예는 하나의 유기체다.


도움을 준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오히려 그런 마음가짐으로 자기가 하는 공부와 일을 바라보는 관점을 바꾸는 것이 어려운 일이다. 부모들도 자녀들이 다른 사람에게 존경을 받고 좋은 직업을 갖기를 원한다면 도움을 주는 능력을 키우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 자녀들에게 타인을 도울 수 있는 능력이 얼마나 있는지 그 능력치를 확인하는 것부터 시작하자. 남한테 도움을 줄 수 있는 능력이 많은 사람만이 사회에서 활용되고, 그로 인해 행복을 느낄 수 있다. 도움을 줄 수 있을 때만 인생을 사는 의미가 있는 것이다.


얼마 전 눈 수술을 받은 적이 있다. 하루 종일 눈도 못 뜨고 병실에 가만히 누워 있다가, 갑자기 의사라는 직업이 너무 부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퇴원을 하자마자 수술을 담당했던 의사에게 편지를 써서 직접 전했다.


안녕하세요.

저는 4월24일 열한 번째로 교수님께 수술을 받은 이재호라는 환자입니다. 25일 아침에 안대를 풀고 세상이 환하게 밝아진 것을 느끼고는 너무 기뻐서 교수님 직업이 부럽다고 말한 환자입니다.

제가 열한 번째였으니 그날 수술받은 환자는 15명 정도 되지 않을까 싶네요. 하루에 15명, 일주일 근무 중에 사흘 정도 수술을 하신다면 45명이 될 겁니다. 그러니까 45명/7일 = 6.5명, 하루에 대략 6.5명을 깜깜한 세상에서 벗어나 밝은 곳으로 나오도록 도와주신다는 생각이 듭니다. 1년이면 6.5명x365일=2372.5명이나 됩니다. 이 분들이 수술하신 후로 약 20년을 밝게 사신다고 본다면 2372.5명x20년=4만 7450명을 매일 돕고 있다는 계산이 나오네요.

단순 수치로만 판단한 것이니 제 계산이 맞지 않을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그런 일을 하면 얼마나 보람이 크고 많은 행복을 느낄까 싶은 마음에 교수님의 직업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어 부럽다는 말을 했답니다.

저는 여성들이 거울을 보고 미소를 지으면서 행복을 느끼게 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예쁜 금목걸이를 하루에 1000개 이상 만들어 팔고 있는데, 이분들이 구입해간 목걸이를 처음거는 순간부터 버릴 때까지 최소 100번은 보지 않을까 싶네요. 이를테면 저도 하루에 10만 명에게 행복을 준다고 느끼고 있고, 저 스스로도 행복한 미소를 지으면서 살고 있습니다.

물론 교수님이 주시는 행복의 강도에는 비할 바가 아니지만, 많은 분들이 자기가 하는 일이 상대에게 얼마나 기여가 되는지를 잊고 사는 것 같아 이렇게 편지를 적어봤습니다.

교수님이 지도하시는 많은 제자들도 저 같은 환자들에게 밝은 세상을 선물해주려고 준비를 하고 있을 테지요. 미래의 교수님이 될 그 제자들이 힘들어할 때 '내가 가진 능력을 환자들의 행복을 위해 소중히 쓰고자 지금의 수업을 받는 것'이라고 알려준다면, 기술적인 능력은 차치하더라도 수업을 받는 이유에 대해 깨우침을 받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밝은 세상을 선물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신체의 기능을 개선하고 사람의 목숨을 살리는 수술을 준비하는 사람들이니 교과과정이 얼마나 힘들겠는가 싶었다. 나는 이들이 순간순간 힘든 과정을 이겨나가는 힘이 무엇인지 궁금했고, 나와 같은 신념을 가지고 자신의 일을 행복하게 여길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에 편지를 써서 보낸 것이다.


환자를 위해 치료하는 의사는 돈만 벌기 위해 일하는 의사와 달리 자신의 능력으로 기여하는 데 따른 행복감을 알기 때문에 의술도 더 향상되기 마련이다. 의술이 향상되면 명성이 높아지고, 명성이 높아지면 자연스레 수입도 많아질 수밖에 없다. 여러분이라면 어떤 의시가 되고 싶은가.


회사의 직원도 마찬가지다. 지그 지글러는 <정상에서 만납시다>라는 책에서 철도회사의 동기 두 사람이 세월이 흘러 어떻게 다른 삶을 살고 있는지 보여준다. 짐 머피와 데이브 앤더슨은 같은 날 철도회사에서 근무를 시작했으나, 23년 후 짐은 철도회사 사장이 되었고 데이브는 철도 선로에서 작업을 하는 처지였다. 누군가 그 이유를 묻자 데이브는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23년 전 나는 시급 1.75달러를 받으려고 일을 했다네. 그렇지만 짐은 철도회사를 위해 일을 한 거지."


자신의 이익만을 위해 일하거나 돈이 최종 목표인 사람들은 결코 성공하지 못한다. 정말 이게 맞는 말인지 먼 곳에서 망원경을 들고 바라보듯 의심만 할 것이 아니라, 현미경을 보듯 자세히 관찰하고 배우려고 노력하길 권한다. 그러다 보면 진정한 성공이 무엇인지, 성공적인 삶을 살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깨닫게 될 것이다.


필연적 부자_ 이재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