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일리노이 대학의 아서 크레이머 박사는 10여년간 고령자의 걷기 운동이 뇌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했다. 그는 고령자를 두 개의 그룹으로 나누어 각각 걷기와 스트레칭을 매일 1시간씩 하도록 했다. 반년 후 두 그룹의 뇌를 살펴보니 걷기를 했던 고령자들은 전두엽의 활동이 크게 개선되었으나, 스트레칭을 했던 그룹에서는 크게 개선되지 않음이 확인되었다. 즉, 걷는 활동이 인간의 뇌, 특히 전두엽을 더 많이 활성화시키고 기능을 향상시킨다는 사실이 입증된 셈이다.
전두엽은 뇌가 어떤 계획을 세우고 행동을 하는 데에 중요한 기능을 담당한다. 크레이머 박사는 단순히 걷기만 해도 인간의 행동전환에 대처하는 뇌의 판단 시간이 짧아진다는 것을 발견했다.
뉴욕 알버트 아인슈타인 대학의 로 홀처 교수 역시 이와 비슷한 연구를 진행했다. 그는 뇌의 활동 능력과 보행의 관계를 조사했는데, 보행 속도가 빠른 고령자일수록 기억력과 계산 능력을 포함한 인지력 테스트에서 높은 점수를 얻었다고 발표했다. 이러한 연구 결과를 토대로 홀처 교수 연구팀은 다음과 같은 결론을 이끌어냈다.
천천히 산책하는 것보다 좀 더 빨리 의식적으로 걷는 것이 상대적으로 더 많은 정보를 인식하게 해주고, 그에 따라 뇌의 처리작용을 촉진시킨다. 따라서 빠른 걸음은 뇌를 더욱 활성화시키는 방편이며, 더불어 심신의 노화도 늦춰준다.
이러한 연구 결과의 일환으로 미국 알츠하이머협회에서는 뇌를 지키는 열 가지 방법 중 하나로 '하루 30분 이상 걷기'를 권장하고 있다. 걷기가 뇌 기능에 도움을 준다는 것은 이제 반박할 여지가 없는 상식이다.
그렇다면 왜 걷기가 이토록 뇌에 효과적일까? 다리를 뻗어 걷기 위해 뇌는 하반신 근육에 수많은 운동 지령을 내린다. 하반신에는 우리 몸 전체 근육의 60퍼센트 이상이 집중되어 있으므로, 뇌는 그만큼 많은 양의 근육에게 명령을 해야 하고 그로 인해 뇌로 향하는 혈류량이 자연스럽게 증가할 수밖에 없다. 혈류량이 증가하면 혈액과 산소, 그리고 뇌의 에너지원인 포도당이 활발히 뇌로 운반된다. 그 결과 뇌 속의 신경 세포가 활성화되고, 자연히 학습 능력도 향상된다.
뇌는 산소가 부족하면 제대로 기능할 수 없도록 만들어졌다. 그래서 공부에도 제대로 된 호흡법이 중요하며, 적절한 운동도 필수적이다. 운동을 하면 뇌에 공급되는 산소량은 저절로 증가한다.
그러므로 제대로 된 공부를 하겠다고 마음먹었다면 절대 수동적으로 책상 앞에만 앉아 있어서는 안 된다. 추천하는 운동은 달리기나 걷기, 그리고 가벼운 체조다. 이와 같은 운동은 뇌과학적인 측면에서 봤을 때 학습 효과를 크게 향상시키고, 우리 몸의 생리학적 시스템으로 봤을 때도 이롭다.
운동을 할 때 뇌는 '신경 세포 영양 인자'라는 물질을 대량으로 분비한다. 이때 뇌에서는 기억력을 관장하는 해마의 '치상회'라는 신경 세포가 분화되는데, 세포의 수가 많아지면서 뇌 기능이 급격히 좋아진다. 사실 대부분의 유산소 운동이 이러한 효과가 있다고 입증되었다. 즉, 운동량이 늘어날수록 뇌 기능이 향상된다는 것이다.
그중에서도 달리기는 특별하다. 다시 크레이머 박사의 연구를 살펴보자. 그의 연구팀은 꾸준히 운동하는 학생들의 뇌와 운동을 전혀 하지 않는 학생들의 뇌를 비교해 촬영한 결과, 주기적으로 운동을 한 학생들의 뇌 인지 능력이 훨씬 더 뛰어나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건강한 체력을 유지하는 학생들이 성적도 좋다는 것을 과학적으로 입증한 셈이다.
미국 일리노이주에 위치한 네이퍼빌 고등학교는 운동이 성적에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실제로 증명해낸 사례로 손꼽힌다. 평범했던 이 학교가 주목을 받게 된 건 2005년부터 시작된 '0교시 체육 수업'의 성과 때문이었다. 운동을 잘 하지 않는 아이들을 돕기 위해 고민하던 체육 교사 한 명이 0교시에 아이들이 자신의 능력에 맞는 운동을 할 수 있도록 다양한 방법을 고안했고, 지속적으로 달리기와 같은 유산소 운동을 시켰다.
처음에는 비만 학생을 줄이고 건강을 개선시키고자 시작되었던 이 수업의 효과는 예상치 못한 곳에서 나타났다. 바로 아이들의 성적이 눈에 띄게 좋아진 것이었다. 실제로 이 학교 학생들의 성적은 공립학교 평균 수준이었는데, 0교시 운동을 시작한 뒤부터는 전 세계 학생들과 함께 치르는 팀스 시험에서 싱가포르를 제치고 1위를 차지했으며, 주 학력 평가에서도 사립학교들에 비해 월등한 성적을 거두었다. 이러한 효과가 나오자 미국의 뇌과학자 및 교육학자들은 앞다투어 이 학교의 프로그램을 다른 학교에 도입했는데, 그 결과는 모두 똑같았다.
걷기 역시 공부를 돕는 훌륭한 조력자 역할을 한다. 공부 효과를 증진하기 위해서는 뇌의 메인 스위치를 끄고 켜는 일이 원활해야 한다. 언제든 뇌가 눈을 뜨고 감을 수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이를 관장하는 기관이 '뇌간망양체'인데, 신체 근육의 긴장을 담당하고 호흡이나 혈압을 조절하기도 하며, 결정적으로는 의식이나 집중력을 유지하는 중요한 기능을 하는 부위다. 이 뇌간망양체를 깨우는 데 가장 효과적인 운동법이 바로 걷기다.
그리스의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이러한 걷기의 이점을 가장 잘 알고 있던 사람이었다. 그를 중심으로 모인 철학 사조를 '소요학파'라고 하는데, 여기서 소요의 뜻은 '자유롭게 이리저리 거닐며 돌아다니다'라는 뜻이다. 그는 주로 거리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제자들을 가르쳤다고 전해진다.
현대 과학 역시 걷기와 창의성의 관계를 규명해냈다. 스탠퍼드 대학 연구진은 걷기가 창의성을 60퍼센트 증진시킨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실리콘밸리는 걸어가면서 회의하는 '워킹 미팅'의 발상지이며, 스티브 잡스나 마크 저커버그는 워킹 미팅 예찬론자다.
이것 말고도 걷기가 뇌에 좋은 영향을 미친다는 실제 사례는 무궁무진하다. 걷다가 중요한 수학 공식을 생각해낸 철학자도 있고, 우리 역시도 걷다가 좋은 아이디어를 떠올리기도 한다. 대개 사람들은 우연히 그런 생각이 떠올랐다고 치부해버리지만, 사실 뇌과학적으로 이는 절대 우연이 아니다. 뇌를 자극했기 때문에 좋은 생각이 떠오른 것이다.
공부에 미친 사람들_ 김병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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