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계발

사회성이 부족해도 괜찮아_ 김미경

정정진 2018. 9. 14. 14:44


몇 년 전, 일본에 있는 아들에게서 전화가 왔다. 햄버거 가게에서 알바를 시작했는데 팀장 한 명이 유독 자기를 미워하고 약을 올린단다. 알바한 지 일주일 되던 날, 아들이 햄버거를 제대로 못 만들었는지 팀장이 거의 한 시간 내내 야단을 치는데 아무리 죄송하다고 해도 도무지 듣지를 않았다. 참다 참다 너무 화가 난 아들이 결국 옷을 집어 던지고 나와버렸는데, 밤새 후회도 되고 어떻게 수습해야 하나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엄마, 나 오늘 중딩 같은 실수를 했어. 왜 이렇게 인간관계가 힘들지? 차라리 전에 했던 박스 드는 알바가 낫겠어. 그냥 육체노동이 낫지, 나 싫어하는 사람과 일하는 거 정말 괴로워."


"엄마도 그게 뭔지 알아. 나도 그런 경험 많이 해봤거든. 얼마나 괴롭니? 근데 있잖아, 물건도 가벼운 게 있고 무거운 게 있듯이 사람도 가벼운 사람이 있고 무거운 사람이 있어. 너에게 호감을 가지고 대하는 사람은 무거울 게 없지. 그냥 잘 지내면 되니까. 근데 널 싫어하는 사람은 늘 긴장되고 힘을 쓰게 돼. 무게가 상당할 거야."


"맞아. 이 사람은 너무 무거워."

"그런데 무거운 거 자꾸 들면 근육이 생기는 거 알지? 사람도 똑같아. 인간 웨이트 트레이닝!"

"맞아. 완전 웨이트 트레이닝이야. 그것도 엄청 무거운! 난 아직 체급이 딸려."


"그래도 결국 연습하면 들게 돼. 체급 상승이 되는 거지. 엄마도 네 나이 땐 무거워 죽을 뻔했는데, 결국 들게 되더라. 내일 출근해서 미안하다고 사과해. 눈 딱 감고 운동하는 마음으로 웨이트 트레이닝해봐. 언제 어디서건 그런 사람은 다시 꼭 만나게 되니까. 이번에 힘들어도 연습 한번 제대로 해봐!"


둘째 녀석은 어렸을 때부터 약간 내성적이고 감수성이 예민했다. 친구도 한두 명 정도 정말 친한 단짝들하고만 어울렸지, 떠들썩하게 몰려다니는 걸 싫어했다. 당연히 회장 같은 건 단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다. 게다가 사춘기 때부터 욱하는 기질이 생겨서 한번 화가 나면 물불을 못 가려서 선배들과 시비가 붙기도 했다. 흔히 말하는 '리더십'이나 '사회성' 같은 거라곤 눈 씻고 찾아볼 수 없는 아이였다.그런 애가 처음으로 말도 잘 안 통하는 외국에서 돈 벌면서 수모를 겪었으니 체급이 딸리는 건 너무 당연한 일이었다.


그런데 커가는 애들은 정말 어제가 다르고 오늘이 다르다. 못 버틸 줄 알았던 아이가 그래도 세 달을 더 버텼다. 그리고 그때 느낀 게 많았는지 학교에 가서는 윗사람들과 잘 지내려고 엄청 노력했단다. 덕분에 선배들이나 교수들이 칭찬도 많이 해주고 같이 연주를 해보자며 좋은 기회도 적지 않게 줬다. 지금 아이는 든든한 지원군들과 함께 너무나 즐거운 학교생활을 보내고 있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상상도 못 했던 일이었다.


많은 부모들이 아이에게 바라는 양대 축이 있다. 공부 그리고 사회성. 공부도 잘하면서 친구들한테 인기도 좋고, 회장을 도맡아 하면서 선생님한테도 인정받는 엄친아. 그것이 바로 모든 엄마들이 바라는 완벽한 이상형이다.


반면에 어렸을 때 아이가 좀 내성적이거나, 친구들을 잘 못 사귀거나, 외골수 기질이 있으면 엄청 고민하기 시작한다. 혹시 우리 아이가 학교에서 왕따 당하지 않을까 미리 걱정하면서 사회성을 키워준다는 학원에 보내는 경우도 많다.


그러나 아이의 사회성이라고 하는 것도 마음이 자라면서 같이 크는 것이다. 어떨 때는 있는 것 같다가 어떨 땐 없는 것 같다가. 환하고 밝고 리더십 있어 보이다가 우울할 때도 있다가 좌충우돌하면서 커가는 게 정상이다.


마음이 자라면 사회성도 큰다


우리 큰애도 초등학교 때는 반에서 거의 있는지도 몰랐던 조용한 아이였는데, 중학생이 되면서부터 애들을 떼로 몰고 왔다. 그러다 고등학생이 되자 친구들 사이에서 자타공인 최고의 카운슬러가 됐다. 학년이 올라갈수록 새로운 성품이 튀어나오고 섞이곤 했던 것이다. 그런 큰애와 둘째를 보면서 집에서 뚱하다고 밖에서도 그럴까봐 걱정할 일이 아니라는 것, 회장 못 한다고 걱정할 일이 아니라는 것, 언젠가 자기한테 맞는 사회를 만나면 충분히 나름의 리더십을 발휘하면서 살아간다는 것을 알게 됐다.


게다가 둘째처럼 살다가 인간관계 복병을 만나면 그때 연습하면 된다. 부딪치고 실패에서 배우면서 아이들은 자기만의 사회성을 만들어간다. 때문에 지금 어린아이에게 어른 같은 사회성, 일관된 리더십을 기대하는 것은 오히려 부담이 될 수 있다.


물론 어떤 아이들은 태어날 때부터 사회성이 유난히 약할 수 있다. 그런데 어느 하나가 약하다는 건 어느 하나가 굉장히 강하다는 얘기다. 실제로 특별한 재능과 엄청난 집중력을 가진 아이들은 친화력이 상대적으로 약한 경우가 많다. 자기 자신과 노느라 또래와 노는 게 전혀 재미가 없는 것이다. 이런 아이들은 사회성은 약하지만 결국 자신이 가진 최고의 강점으로 인생을 풀어간다. 예를 들면 스티브 잡스는 인간관계는 미숙했지만 자신이 가진 최고의 창의력으로 결국 원하는 걸 다 이뤘다. 그런 아이에게 왜 친구를 집에 안 데리고 오느냐, 왜 너는 회장 한번 안 하느냐는 얘기는 아이한테 없는 걸 달라는 얘기와도 같다.


만약 내 아이가 그렇다면 친구가 없고 사회성이 부족한 걸 문제삼기보다 단 한 명의 친구라도 괜찮다는 걸, 그 친구를 어떻게 소중히 대해야 하는지를 알려주는 게 백번 낫다. 살면서 친구가 많아야 한다는 건 우리들의 고정관념일 뿐이다. 정말 내 마음을 알아주는 친구 한 명, 혹은 마음 통하는 배우자 한 명만 있어도 인생은 전혀 외롭지 않다. 나 역시 내 약점까지 보듬어줄 수 있는 진짜 친구라고 마음속으로 생각하는 이는 두세 명뿐이다. 그 친구들도 다 바빠서 1년에 한두 번 보는 게 전부다. 그래도 나는 전혀 외롭거나 불편하지 않다. 혼자서도 재미있게 놀 수 있는 게 너무 많고, 나랑 할 일이 많아서 늘 바쁘니까. 친구가 많았다면 그들을 만나고 수다 떠느라 정작 나를 만날 시간이 없었을 것이다.


사회성도 결국은 성품을 기반으로 하기 때문에 일정 부분 타고난다. 어렸을 때 부모가 좌지우지한다고 해서 억지로 만들어지는 게 아니다. 아이의 성품을 관찰하면서 자신만의 사회성을 만들어가도록 옆에서 지지해주고 격려해주자. 그것이 어떤 모습이든.


엄마의 자존감 공부_ 김미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