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엄마들은 첫아이를 낳는 순간, 착각에 빠진다. 마치 내가 다시 태어난 것 같은 느낌. 내 인생이 '리셋'되고 게임을 다시 시작한 것 같다. 생각해보면 평생 나를 다루기가 얼마나 힘들었던가. 머리도 그저 그렇고, 끈기도 없고, 성격도 소심한데, 좀처럼 바꾸기가 힘들다. 그건 살면서 어려운 일을 겪었기 때문이리라. 권위적인 부모님을 만나서일 수도 있고, 고등학교 때 아버지 사업이 어려워져서 공부에 집중할 수 없었기 때문일 수도 있다. 부모님이 혹은 주변에서 좀 더 나를 지원해줬다면 지금보다는 나았을 텐데 싶은 생각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는다. 그럴 때 나보다 서른 살 어린 아이가 '짠'하고 나타난다. 나는 내가 어떻게 할 수 없었지만, 아이는 지금 '초기화' 상태니까 뭐든 가능할 것 같다.
'내가 괜찮은 양분만 잘 주면 우리 딸은 뭐든지 충분히 해낼 거야.'
나 역시 첫애 때 이런 착각을 한 적이 있다. 내가 못했던 것도 잘 가르치면 아이가 다 해낼 줄 알았다. 나는 머리가 좋지 않아서 공부를 잘하진 못했지만 애는 나보다 더 좋은 환경에서 좋은 교육을 받게 하면 분명 공부도 잘하겠지, 건강한 음식을 주고 운동도 시키니까 키도 무럭무럭 크겠지, 나는 못했지만 내 아이는 다를 거야라고 믿었다. 나중에 알게 된 것이지만 이런 착각은 아이의 탄생, 아이라는 존재가 대체 어디서 왔는지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에 벌어진다. 자녀 교육을 얘기하기 전에 우리는 반드시 이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봐야 한다.
'내 아이는 도대체 어디서 왔을까?'
'이 놀라운 생명은 과연 누가 준 것일까?'
부모의 육신을 통해 세상에 나왔으니 내가 아이에게 육체를 준 건 맞다. 아이들이 커갈수록 그 사실은 더욱 분명해진다. 얼굴도 닮고 자는 모습도 비슷하고 심지어 나이 들면 목소리도 엄마랑 비슷해지니까.
그러나 영혼은 어떨까? 내 육신으로 낳았으니 영혼도 내가 준 것일까? 여기서 많은 엄마들이 헷갈리기 시작한다. 겉모습이나 행동패턴이 비슷하니 영혼도 내가 준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손가락도 발가락도 닮았고, 잠자는 모습도 비슷하다. 내가 준 것이 아니라면 도대체 누가 준 것이란 말인가. 하지만 인간의 영혼은 감히 인간이 줄 수 있는 게 아니다. 우리 자신도 이처럼 나약하고 불안한데 어떻게 굳세고 안정적인 영혼을 만들 수 있을까?
나는 사랑받을 자격이 있어
삶을 이끌어가는 방식과 에너지, 성격과 기질, 재능 같은 영적인 것들은 부모가 주는 것이 아니다. 아이가 탄생할 때부터 운명적으로 갖고 태어나는 게 분명하다. 말하자면 육체는 부모를 통한 '간접 거래'이지만, 영혼은 하늘과의 '직거래'인 셈이다. 사람이 몸이 아플 때는 부모를 찾지만 영혼이 아플 때 본능적으로 하늘을 올려다보며 탄식하는 것도 그 때문일 게다.
이처럼 아이는 '내 몸을 통과했지만 하늘에서 내려온 너무나 고유하고 귀중한 영혼'이다. 그렇게 관점을 바꾸면 나보다 서른 살 어린 아이일지라도 함부로 대할 수 없는 법이다. 아이가 하는 행동, 아이가 가진 생각과 재능을 존중하게 된다. 초등학교 6학년 아이나 내 영혼이나 하늘에서 내려온 건 마찬가지로 동급이니까. 어쩌면 40년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한 탓에 어른들의 상태가 더 안 좋아졌을 수 있다. 순수하게 태어난 아이들의 마음속에는 누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기본적으로 자신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다.
'나는 괜찮은 사람이야. 사랑받을 자격이 있어. 나는 잘될 거야.'
탄생을 이해하면 나와 아이 모두 세상의 유일무이한 독립 생명체라는 사실도 깨닫게 된다. 세상에는 자신의 탄생 자체에 아픔이 있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얼마 전 군부대 강연에서 알게 된 한 청년도 그랬다.
"저는 아버지가 싫어요. 허구한 날 술 먹고 엄마를 때리고..... 가족에 대한 책임감이 조금도 없어요. 결국 아버지한테서 도망쳐서 군대에 왔는데, 저도 모르게 아버지를 닮을까 봐, 그게 너무 걱정돼요"
그때 나는 그 청년에게 이런 얘기를 들려줬다.
"그렇구나. 넌 아버지를 닮긴 했을 거야. 목소리, 얼굴, 자는 모습까지도. 그런데 넌 아버지와 다른 생각을 하잖아. 그게 무슨 뜻인지 아니? 네 영혼은 아버지와 별개야. 인간이 태어날 때 육신이 필요해서 잠시 아버지 몸을 빌렸지만 영혼은 하늘에서 온단다. 아버지가 영혼까지 주진 못하는 거야. 그러니까 넌 네 영혼에서 자부심을 가져도 돼. 절대 아버지를 닮지 않아. 걱정하지 말고, 너만의 꿈을 키워가렴."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탄생에 자부심을 느끼지 못한다. 그리고 자신의 부모를 닮을까 봐 걱정한다. 하지만 사람의 영혼은 결코 복제되지 않는다. 이미 고유한 영혼과 운명을 가지고 태어나기 때문이다. 그 얘기는 곧 이미 세상에 올 때 자신만의 특성을 갖고 온다는 것이다. 인간은 태어날 때 초기화 상태인 것처럼 보이지만, 이미 그 몸 안에 자신만의 고유한 성품과 색깔이 있다. 인간 하나하나가 본래 가진 고유의 빛깔은 누군가가 아무리 누르려 하고 바꾸려 한다고 해서 사라지거나 변형되는 게 아니다. 좋아하는 것, 싫어하는 것, 타고난 성격 등 삶을 꾸려나가는 자신만의 방식은 결국 커갈수록 더욱더 분명하게 드러난다.
한배에서 나온 형제라도 사는 모습이 천차만별인 이유도 그 때문이다. 우리 집 다섯 남매 역시 모두 같은 부모, 같은 여건, 같은 사랑을 받고 자랐지만 50대가 된 지금은 각자의 특별한 '나'다움으로 살아가고 있다. 큰언니는 네일아트 사업가로, 둘째인 나는 강사로, 첫째 여동생은 전업주부로, 둘째 여동생은 장사를 하며, 막내 남동생은 심리학 교수로 살아가고 있다. 부모의 성품, 성격, 재능을 똑같이 복제해 인생을 사는 사람은 한 명도 없다. 각자의 고유한 영혼을 바탕으로 매일 다른 선택을 하며 다른 인생을 만들어가고 있다. 유전자나 환경은 비슷해도 성격이나 취향, 재능 등 타고난 영혼에 따라서 저마다 '나답게' 살아가는 것이다.
생명의 '탄생'을 이해하고, 내 아이라는 '존재'를 이해하자 아이들을 대하는 내 모습도 자연스럽게 바뀌기 시작했다. 무엇이 진짜 교육인가를 다시 생각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내 나름대로 정의를 내렸다. 양육이란 없는 것을 채워서 새로운 것을 만드는 것이 아니다. 이미 아이 안에 있는 그것을 행복하게 꺼내 쓸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 그것이 바로 진정한 '엄마 노릇'이라고.
엄마의 자존감 공부_ 김미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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