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계발

독일, 최고의 실용 인재를 길러내는 교육_ 양돈선

정정진 2017. 12. 30. 16:56


사고력과 창의력을 키우는 데 주력한다


학교에서 이렇게 공부를 별로 시키지 않으니 독일 학생들의 실력이 그럼 낮은 것은 아닐까? 결코 아니다. 김나지움 초기에는 느슨하다가 학년이 올라갈수록 수업과 시험의 난이도가 급격히 높아진다. 따라서 김나지움 학생들은 공부를 무척 많이 해야 한다. 다만 공부방법이 한국과 다를 뿐이다.


독일 학생들은 주입식이 아닌 창의력을 기르는 연습을 반복한다. 발표, 토론과 에세이 및 리포트 제출이 많다.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을 발표와 토론을 통해서 나타내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니 교과서를 밤새워 달달 외울 필요가 없고 외워서 될 일도 아니다.


발표, 토론은 학생들끼리 자율적으로 논리 제기, 친구들의 반론등을 통해 이루어진다. 이 때 토론을 주관하는 선생님은 토론 과정에 거의 관여하지 않고 학생들이 결론을 내도록 유도한다. 이러한 과정에서 사실에 대한 정확한 이해와 창의력 및 사고력을 키운다.


그러니 부모나 다른 사람이 도와줄 수도 없고, 학생 스스로 철저히 준비를 해야 한다. 자료를 그냥 읽기만 하거나 남의 것을 도용하면 다른 학생들의 날카로운 질문에 제대로 답변을 할 수가 없다. 이러한 사항들은 모두 점수에 반영된다. 수업 방식 자체가 스스로 고생해서 준비하지 않으면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없도록 되어 있다. 때문에 김나지움 학생들은 토론에 대비해 독서를 많이 해 지식을 풍부하게 쌓는다.


필기시험은 객관식은 없고 자기의 생각과 주장을 논리적으로 전개하는 100% 주관식이다. 답안 채점은 정답보다 문제 풀이 과정을 더 중시한다. 사고력이 없으면 풀 수가 없다. 10점 짜리 문제에서 과정은 맞았는데 정답이 틀리면 2점 정도 감점되지만, 정답은 맞았으나 과정이 틀렸다면 8점을 잃는다.


따라서 초등학교 3~4학년부터 배우는 논리적 사고와 김나지움에서 배우는 리포트 작성 경험이 풍부하지 않으면 좋은 성적을 기대할 수 없다. 암기 위주의 주입식 교육으로는 당해내지 못한다. 이렇게 하여 교사 지도에 따라 학교 공부를 제대로 따라갔을 경우 졸업할 때면 엄청난 실력을 갖추게 된다.


독일은 통일 전인 1976년 정치가, 학자들이 향후 통일에 대비하여 교육지침을 만들었다. 이른바 '보이텔스바흐 협약'이다. 이 협약 내용은 교사가 자신의 이념과 생각을 강제로 주입해서는 안 되며, 논란이 되는 사실과 문제는 항상 토론을 하도록 하고, 정치 상황에 대하여 학생 스스로 판단할 수 있는 해결능력을 배양시킬 것 등이다.


이 교육 원칙은 시민 교육으로 확대되어 극좌 또는 극우와 같은 정치적 갈등을 시민의 힘으로 억제하고 사회 갈등을 토론과 타협으로 해결하는 성숙한 시민 문화를 만드는 데 크게 기여하였다. 이러한 사회적 대타협은 지금도 그대로 지켜지고 있다.


입시 지옥, 사교육은 다른 나라 이야기


"대입 수능이 치러지는 목요일에는 초, 중, 고등학교 등교 시간, 중권시장이나 외환시장 등 금융시장과 공공기관의 출근 시간이 한 시간씩 늦게 조정된다. 비행기의 이착륙 스케쥴도 수능 영어 듣기 시험 시간을 피해 조정된다. 이 시험의 성공 여부는 수백만 젊은 학생들의 경력과 결혼 전망에까지 절대적인 영향을 미친다.."


위 내용은 영국의 유명 일간지 <파이낸셜 타임스>가 "대학 입시가 한국을 멈춰 세웠다"며 우리나라 대학수능 시험 당일의 풍경을 소개한 것이다. 우리들로서는 매년 겪는 익숙한 풍경이지만, 외국인들에게는 신기한 모습으로 비친 듯하다. 그만큼 대학 입학이 거국적 행사가 될 만큼 한국 사회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개별 학생 입장에서는 초, 중, 고교 12년간의 학업 성취를 평가하는 시험이다. 한 사람의 인생을 결정하는 중요한 시험인 셈이다.


그렇다면 독일의 대학 입학은 어떨까? 한 마디로 운전면허 시험보다 쉽다. 운전면허 시험은 뒤에서 자세히 설명하겠다. 김나지움을 재학생이 김나지움을 졸업하기 위해서는 졸업시험이자 대입 수능시험인 아비투어에 응시해야 한다. 아비투어에 합격하면 누구나 대학 입학이 가능하다. 그게 전부다. 전국적으로 실시하는 수능 시험이나 따로 대학별로 치러지는 입학시험이 없다. 학교 서열이 없고 대학이 평준화되어 있는 독일에서는 속칭 일류 고등학교나 '스카이'대학교가 없다.


그러니 너도 나도 좋은 대학에 들어가기 위해 사설학원이나 과외 등의 사교육을 받을 필요가 없다. 다만, 학업이 부진한 학생들에 대해 학교 차원에서 선생님을 붙여주어 보충하도록 하는 제도는 있지만, 대학 입시를 위해 필사적으로 매달리는 사교육과는 성격이 다르다. 그런데도 독일 고등학생들의 대학 진학률은 40%를 밑돈다. 독일 학생들에게 대학은 좋은 직장을 가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순수하게 공부를 더 하고 싶은 학생이 가는 곳이다.


아비투어 과목도 현실적이고 합리적이다. 각 주마다 시험방식과 과목이 다소 차이가 있는 데, 여기서는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주의 예를 제시한다. 아비투어 시험은 내신 성적과 필기시험 성적을 합산한다. 내신 과목은 독일어, 수학, 체육, 외국어 중에 1, 사회과학 중에 1, 자연과학 중에 1, 선택1(종교, 철학, 문학), 선택2(음악, 미술) 등 8개 과목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중 독일어와 수학을 제외한 다른 과목은 선택의 여지가 있지만, 체육은 12학년까지 필수다. 그만큼 체육 수업이 강조되고 있다.


필기시험은 4과목이다. 자연과학 중 1, 사회과학 중 1, 외국어 중1, 자유선택 1과목으로 큰 테두리만 정해두고 세부적으로는 학생들이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다. 배점은 내신 성적은 점수x1, 필기시험은 점수x4로 환산한다. 또 필기시험 4 과목 중 한 과목은 구두시험을 치러야 한다.


한국 학생들이 엄청난 돈을 들여 학원에서 쓸 데 없는 사교육을 받고 있을 때, 독일 학생들은 여유를 가지고 다른 학생들과 같이 토론을 하면서 상생과 협력을 배우고 사고력과 창의력을 기른다. 돈도 적게 들이고 고생도 덜 하면서도 훨씬 큰 효율을 올리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나아가 국가 경쟁력 강화의 주요 요인이 되고 있다.


대학 교육도 무상


독일인들은 권력, 부의 축적과 같은 외적 가치보다는 내적인 자아실현을 지향한다. 이에 따라 교육을 중시하는 풍토가 생겼고 이는 대학의 발전으로 이어졌다. 1386년 최초로 하이델베르크 대학이 설립되면서 600년이라는 대학의 역사를 기록하게 되었고, 중세 때부터 지속적으로 발전하여 19세기 중반부터 20세기 초반까지 세계적 학문의 중심지로 명성을 날렸다. 1700년대에 독일 전역에 이미 대학이 50여 개나 있었다.


이 대학들이 독일의 지식풍토를 바꾸어 놓았다. 교육을 받고 교양과 지식을 갖춘 중간 계층이 사회의 주축이 됐고, 문학, 철학, 신학, 과학 등 모든 분야에서 큰 발전을 보여 왔다. 특히 생화학, 의학등 자연과학 분야에서 눈부신 발전을 이룩하였다. 괴팅겐 대학의 자연과학 분야에서만 40여 명의 노벨상 수상자가 나올 정도로 전성기를 이루었다. 연구 중심 대학 제도도 독일에서 처음 시도되었다. 지금도 그 전통은 이어져 오고 있다. 2015년 기준 독일 대학 수는 총 400여 개에 이르고 있다.


독일은 자원이 없는 나라다. 믿을 곳은 인적 자원밖에 없다. 따라서 인적 자원의 양성 즉, 교육이 중요하다. 누구나 교육을 받을 수 있는 여건이 되어야 하고, 이 여건을 만들어주는 것이 국가의 임무다. 그래서 독일은 교육 기회의 평등, 교육 조건의 평등을 강조해왔다. 돈이 없어서 교육을 받을 기회를 잃어서는 안 되며, 사전적으로 '기회의 사다리'는 보장해야 한다는 교육 이념을 실천하고 있다. "개천에서 용 난다"라는 말 자체가 나올 수 없는 사회다.


이러한 교육 이념을 실현하기 위한 대표적인 조건이 대학 무상교육이다. 독일 대부분의 대학에서는 등록금을 받지 않고 있다. 이러한 무상교육 때문에 그동안 학교 발전을 위한 과감한 투자가 이루어지지 않아 대학의 질이 떨어지고 경쟁력 약화 요인이 되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그래서 2005년부터 일부 대학에서 등록금을 받고 있으나, 그 금액도 학기당 500~600유로(75만 원~90만 원) 정도로 한국에 비해 훨씬 부담이 적다. 그런데 이 정도의 적은 금액에도 많은 대학생들이 아우성을 치고 시위까지 하고 있고, 등록금을 안 받는 대학으로 옮긴다고 하니 부러운 일이다.   


독일에서는 항상 기회의 사다리가 주어져 있다. 누구나 돈이 없어 대학 교육을 못 받는 일은 극히 드물다. 교육 격차를 해소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마련되어 있기 때문에 이로 인한 빈곤의 악순환은 발생하지 않는다. 게다가 사회적으로 많은 혜택을 받고 있다. 부모의 소득과 재산을 기준으로 연방교육지원법에 의거 생활비를 지원받는다. 부모와 떨어져 다른 지역에서 학교를 다니거나, 부모가 생활비를 대주지 않을 경우 최고 670유로(약 90만 원)까지 받을 수 있다. 이렇게 지원받은 돈은 그 절반만 이자 없이 20년 내에 갚으면 된다. 또 모든 기차, 버스, 지하철 등 교통 시설의 저렴한 이용 등 각종 혜택이 많아 가히 학생 천국이다. 따라서 금수저 흙수저 논란이 있을 수가 없다. 오히려 요즘에는 대학생 특혜를 줄여야 한다는 주장까지 제기되고 있다.


독일은 대학생들에 대하여 위와 같이 무등록금 등 혜택은 많이 주되 공부도 무척 많이 시키고 있다. 입학은 비교적 쉽지만 무척 엄격하고 까다롭게 학사 관리를 해 졸업은 쉽지 않다. 끔찍한 것은 과목별로 두 번 낙제를 받으면 그 과목을 그 대학에서는 더 이상 이수할 수가 없고, 졸업시험에 두 번 실패하면 그 대학에서는 더 이상 공부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그 대학을 떠나야 한다. 필자의 딸도 아헨공대에서 정보학을 공부했는데 살인적인 커리큘럼과 쉴새 없는 세미나, 리포트 및 쪽지 시험, 중간시험, 기말시험 등으로 무척 힘들어했다.


대학 진학률은 30% 내외로 낮은데, 그 낮은 입학생 중에서 23%만 학, 석사과정에 해당하는 디플롬이나 마기스터를 취득한다. 이러다 보니, 실제로 대학에서 학년당 박사학위 취득자의 비중은 2.3%에 불과하다. 박사학위를 받을 때까지 상당히 험난한 과정을 거쳐야 한다.


서열 없는 대학 평준화


독일 대학들은 학문의 전당이자 실용 인재 교육기관이다. 교수 개인의 외형적 명성이나 대학 순위를 높이고 평가를 잘 받기 위한 논문이나 전시용 비실용적 논문에 중점을 두지 않는다. 대신에 실용인재 배출과 경쟁력 강화에 주력한다. 그래서 산학 협력 또는 산학연 협력이 활성화되어 있다. 이러한 점은 한국 학계에서도 인정되고 있는 사실이다.


독일도 한국의 BK21과 같은 '우수대학 육성'프로그램이 있다. 연방정부와 주정부로부터 2012~2017년까지 약 27억 유로(약3조 원)의 지원을 받는다. 그러나 이러한 지원 프로그램들은 개인의 논문 작성이나 대학 순위를 높이는 작업에 지원되지 않는다. 석, 박사급 신진 연구 인력을 양성하고, 전략 분야와 인프라 등 우수 클러스터를 육성하고, 대학의 미래 발전 전략 수립, 나아가 국가 경쟁력을 높이는 데 쓰인다.


독일 대학들은 1위, 2위라는 서열 개념이 없이 평준화가 실현되어 있다. 물론 학문 분야별로는 다소의 차별화가 이루어져 있다. 예컨대, 뮌헨 대학과 아헨 대학은 공학이 뛰어나고, 본 대학은 법학, 괴팅겐 대학은 자연과학이 강세다. 일각에서는 이러한 대학 평준화가 경쟁을 위한 동기 부여를 하지 못해 대학의 질을 떨어뜨렸다는 비판도 있다. 그러나 독일은 여전히 막강한 교육 경쟁력을 보유하고 있다. 또한 독일은 대졸 출신이 다른 선진국에 비해 적지만, 이 적은 대졸 출신을 매우 효율적으로 활용하여 큰 성과를 내고 있다. 구체적으로 살펴 보자.


1. 학력 과잉이 적다


OECD 회원국의 25~34세 연령층의 대학(전문대 포함) 졸업률을 보면 독일은 30%에 불과해 34개 회원국 중 30위다. 그만큼 대학 졸업자가 상대적으로 적다. 대학 경쟁력 최강인 미국은 46%다. 한국은 69%로 부동의 1위를 차지하고 있다. 독일은 젊은이들의 70%가 고졸 출신인데, 한국은 70%가 대졸 출신이라는 얘기다.


이는 독일 직장인들의 학력이 직업의 난이도에 비해 불필요하게 높지 않다는 것을 나타낸다. 미국에서는 대학 졸업생의 약 20%가 고등학교 졸업 수준의 직업에 종사하고 있다. 그러나 독일에서는 고졸자가 할 수 있는 일에 대학 출신이 가세하는 일이 적다. 이는 대졸 출신이 그만큼 적기 때문이기도 하다.


한편, OECD 자료에 의하면, 2015년 기준, 세계 45개국 청년들 중에서 일도 하지 않고, 교육과 훈련도 받지 않은 청년층, 이른바 니트족 비중을 보면, 독일은 8.8%(6위)로 매우 낮다. 일이 없어 놀고 있는 청년들이 그만큼 적은 것이다. 이에 비해 한국은 18%(32위)로 꽤 높은 수준이다. 한국에서는 사교육비와 비싼 등록금을 들여 대학을 졸업해도 취업이 어렵다. 그래서 울며 겨자먹기로 남보다 취업에 유리한 고지에 서기 위해 과도한 스펙을 쌓고, 공시족들이 몇 년씩 공무원 시험에 매달리고 있다.


2. 대학 졸업자들의 전공과 직업이 일치한다


독일에서 김나지움을 졸업한 학생이 대학에 입학할 때 전공 선택의 기준은 적성, 소질, 선호 즉 자신이 좋아하는 분야이다. 우수한 학생들이 적성과 상관없이 무조건 법과 대학이나 의대로 몰리는 쏠림 현상이 없다. 이 기준은 대학 졸업 후 직장을 선택할 때에도 그대로 이어진다. 즉, 전공과 직업이 일치한다는 얘기다. 그림에서 보는 것처럼, OECD 회원국의 전공과 직업 간 불일치 비율을 보면, 24개 회원국 중 한국과 영국이 50%로 가장 높다. 일본, 미국도 45%를 넘는다. 반면에 핀란드가 23%로 가장 낮고 그 다음 독일이 26%의 낮은 비율을 보이고 있다.


자동차 회사를 예로 들어보자. 벤츠의 디터 체체 회장은 칼스루에 대학 전기공학 박사 출신이고, BMW의 노버트 라이트호퍼 회장은 뮌헨대에서 기술을 전공했다. 최근 배기가스 조작사건으로 물러난 폴크스바겐의 빈터 콘전 회장도 스튜트가르트 대학 금속 물리학과 출신이다. 모두 다 하부 조직에서부터 전공에 맞게 이력을 쌓으면서 산전수전을 겪어 올라온 인물들이다.


필자는 2004년 하반기 외자유치 협의를 위해 에센에 있는 '티센크루프' 철강회사를 방문한 일이 있다. 이 회사 회장은 물론 임원진들 모두가 철강과 관련이 깊은 이공계 학사 또는 석, 박사 출신들이었다. 전공과 무관한 엉뚱한 인사가 낙하산으로 내려와 조직을 휘젓는 일은 상상할 수가 없다. 그만큼 대학 전공과 직업이 일치되어 교육의 낭비와 비효율 요인이 적은 것이다.


이렇게 독일에서는 모든 직장인들이 자신의 전공과 적성에 맞는 일을 한다. 내가 하고 싶은 일, 내가 잘 할 수 있는 일을 하기 때문에 능률이 오르고 생활이 즐겁고 보람되고 안정되어 있다. 사회 전체적으로도 낭비 요인과 사회적 비용이 적다.


요즘에는 고숙련 고임금 일자리가 부족하여 구인난에 시달릴 정도로 제2의 번영을 구가하고 있다. 독일의 이러한 실용화 교육의 결과가 바로 국가 경쟁력 강화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세계 대학 순위는 독일인에게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기본에 충실한 나라, 독일에서 배운다_ 양돈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