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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는 돌처럼 살고 싶다_ 현진스님

정정진 2017. 10. 29. 12:25


사월 초파일을 앞두고 며칠 동안 일품을 사서 앞뜰을 자연석으로 바꾸는 일을 했다. 정원을 정리하고 나니 묵은 숙제를 마친 것처럼 홀가분해서 좋다. 꽃과 나무들도 내 기운이 통했는지 더욱 생기 넘치고 청초하다. 이번에 이 일을 하면서 쓰고 남은 돌을 그냥 두기가 아까워서 산신각 뒤에 야트막하게 축대를 쌓았다. 덕분에 어지럽던 뒤쪽이 깔끔하게 정리가 되었는데, 이 일은 석공의 힘을 빌리지 않고 어깨 너머 배웠던 솜씨를 발휘했다.


들쑥날쑥 울퉁불퉁한 돌을 앞줄 아귀를 맞추어서 놓으니까 반듯한 모양새가 되었다. 못생긴 돌이라서 석공 손에서 천대받던 돌이 비로소 쓰임새 있게 된 것이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담장을 쌓는 데는 크고 작은 돌과 모나고 둥근 돌이 다 필요하다는 것을 새삼 배웠다. 모두가 그 쓰임새가 따로 있는 것이다. 여기에 조화와 균형의 비밀이 있다.


예전에 원로 스님들의 모임이었던 여석회(餘石會)가 있었다. 이 여석회에는 성철, 구산, 자운, 관웅, 석암, 탄허 스님등 당대의 선지식들이 참여했다고 한다. 정확한 명칭은 축성여석회(築城餘石會)다. 성을 쌓고 남은 돌이라면, 아무도 거들떠보거나 관심 가지지 않는 돌이다. 성을 쌓는 돌에도 끼지 못했으므로 이른바 쓸모없는 돌이다. 그런데 이렇게 쓰고 남은 돌처럼 살자는 의미에서 이 모임을 결성했다는 후문. 성공이나 경쟁의 틀에서 벗어나서 초연한 삶을 살겠다는 서원이라서 그 의미가 예사롭지는 않다. 어떤 특권을 지닌 세력이 아니라 이 사회를 구성하는 소시민이 되겠다는 뜻. 이를테면 대들보보다는 서까래의 기능을 강조한 셈이다. 세상 사는 일에는 큰 인물도 필요하지만 작은 일꾼도 필요한 법이다. 너나 할 것 없이 잘난 사람이 되려고 한다면 세상은 어긋나고 말 것이다.


누구나 출세하고 싶고 명예를 높이고 싶은 이 세상에서 입신에 뜻을 두지 않고 평범한 일에 그 가치를 두기란 쉽지 않다. 그래서 세상에 이름을 드러내지 않고 사는 일은 더 힘든지도 모른다. 이런 점에서 '여석'의 의미는 세월이 지나도 여전히 유효한 가르침이 아닐 수 없다.


근래에는 나 역시 삶의 방향을 고독과 은둔으로 정하고 그저 내 자리를 지키며 소박한 삶을 살고 싶은 생각이 더 많다. 이제는 종단 소임이나 사회 활동도 사양하고 산거를 즐기며 꽃과 나무를 가꾸는 데 시간을 더 많이 쓰고 싶다. 이런 탓인지 번거로운 일은 가급적 멀리하면서 흙을 가까이하는 일로 소일 삼고 있다.


입적하신 법정 스님이 40대 나이에 서울 생활을 마감하고 불일암에서 지낼 때 지인들이 은거가 아니냐며 질문을 했던가 보다. 여기에 대해 스님은 "대중 앞에서 구호를 외치고 선봉에 나서는 것만이 중생구제가 아니다. 나는 산중에서 내 방식대로 사는 것도 또 다른 구원이라고 생각한다. 여기를 다녀가는 사람들이 삶의 위안을 받았다는 소식을 들으면 지금의 이 생활이 꼭 틀린 것은 아니라고 본다"고 답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즈음이 사회 곳곳에서 독재 종식을 위한 거리 투쟁이 일어나던 시대라서 이런 대답을 하신 모양이다.


잘 산다는 것은 무엇인가? 자기 자리에서 자신의 향기를 조화롭게 드러내는 일이다. 저기 저만치 핀 들꽃이 자신의 향기를 다투지 않듯 그 자리를 지키는 일이 아름다운 삶이다. 그래서 임금은 임금대로, 신하는 신하대로, 백성은 백성의 위치를 지킬 때 이 사회는 보다 밝아지고 인정이 넘치게 될 것이라 믿는다. 물론 여기에는 남을 배려하지 않는 아집이나 독선의 방식은 배격되어야 한다. 다시 말해 자신의 방식이 누군가에게 위안을 주고 모범을 보일 수 있다면 그 어떤 인생이든 아름답다고 할 수 있다.


이번에 돌을 만지면서 각자의 개성은 조화를 이룰 때 비로소 질서가 된다는 것을 거듭 생각하는 계기로 삼았다. 돌처럼 서로의 특징이나 재주가 제 역할을 해 주어야 어긋나지 않는 미의 율동이 살아난다. 여기에서 우리들이 경계해야 될 것은 획일적인 조화다. 기계에서 찍어 내는 물건은 획일적인 것이지만 자연에서 만들어지는 것은 차별적 조화다. 이 땅에 마음껏 물감을 풀어 내는 수목들처럼 서로의 개성이 어우러져야 차별이 있는 아름다운 조화라고 말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획일적인 것은 그다지 재미없다.


불교에서 말하는 중도의 원리 또한 획일적 평등이라기보다는 차별적 평등을 말하는 것이다. 즉 구분은 있으되 모방과 집착이 없는 태도를 의미한다. 이를테면 삼라만상의 모든 현상이 차이 같지만 서로 조화를 이루고 있는 화엄 세계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차별적 조화를 모르고 획일적으로 닮아 가려는 세태를 일러 장자는 "학의 다리가 길다고 자르지 말라"는 훈수를 두었다.


모든 것이 닮아 가는 시대라서 잔소리처럼 길어졌다. 성형 미인들이 워낙 많아서 강남 거리에는 비슷한 외모의 여성들이 많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남들이 추구하는 삶의 목표보다는 내 삶의 목표가 더 중요하다는 것을 덧붙인다.


좋은 봄날에 울지 마라_ 현진스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