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멀리서 손님이 다녀갔다. 몇 십 년도 더 되었을 오래된 인연인데 소식이 두절되었다가 연락이 닿아서 여기를 찾아왔다. 문경 근처의 시골에서 과일 농사를 지으며 지낸다는 근황을 전하면서 다른 어느 시절보다 마음이 편안하다고 했다. 그의 곁에는 중년 이후에 만난 부인이 있었는데 무척 다정해 보였다. 인생을 살면서 용기와 희망을 주는 사람과 동행하는 것도 행복의 과정이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들 부부는 큰 욕심 없이 하루하루 기쁘게 살아가길 염원하며 기도 올렸다고 했다.
그들과 나누었던 대화를 떠올리며 오늘 아침에는 행복의 문제를 점검해 보는 계기가 되었다. 결코 행복은 미래에 있는 것이 아닐 것이다. 지금 여기에서 발견하고 누려야 할 대상이다. 내일 한꺼번에 숨 쉴 것이라며 호흡을 참는 자는 어리석다. 그러므로 오늘 필요한 숨을 쉬어야 하루의 기쁨일 것이다.
여기 사과를 두 개 가진 사람과 한 개 가진 사람이 있다고 가정해 보자. 과연 누가 더 행복할까? 모범 답안은 '두 개를 지닌 사람이 더 행복하다'일 것이다. 그러나 보다 명확한 답은 한 개와 두 개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사과 맛을 느끼는 사람이 더 행복하다는 사실이다. 사과를 지니고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사과를 활용하는 사람이 행복을 만들어 가는 인생이라고 봐야 한다. 그 사람이 비로소 행복을 향유할 줄 아는 사람인 것이다.
이즈음에서 행복은 어떤 조건이 아니라 향유의 문제라는 것을 알게 된다. 행복의 조건이 갖추어져 있어도 그것을 누리지 못한다면 오히려 불행에 가깝다. 소유하고 있다고만 해서 행복이 되는 건 아니라는 결론이 될 수 있다. 이런 입장에서 행복의 문제를 다시 들여다볼 필요가 있겠다. '연봉이 얼마냐?, '집이 몇 평이냐?'가 중요한 게 아니고 소박한 기쁨을 즐기는 인생이 더 좋을지도 모른다.
우리가 넘어지는 것은 큰 산에 걸려서가 아니다. 작은 돌부리가 그 원인이 되기도 한다. 이와 같이 작은 일에 마음 상하고 사소한 사건에 기분이 상하게 마련이다. 이것을 바꾸어 보면, 사소한 것에 기쁨을 느낄 줄 알아야 행복 지수가 상승한다는 뜻도 된다. 그러니까 보잘것없는 조건을 지녔다고 해서 반드시 불행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말하고 싶은 것이다.
<어린 왕자>를 읽어 보면, 어른들은 친구를 데리고 오면 "너희 집은 몇 층이니? 크기가 얼마니?" 하고 물어본다. 그러나 아이들은 "너희 집에 장미꽃이 피었니? 담쟁이가 자랐니?" 하고 물어보는 장면이 있다. 이렇게 어른들은 매사를 물질적으로 평가하지만 아이들은 가치적으로 평가하는 것이다. 모든 상황을 물질로만 기준 삼는 인생은 너무 인정 없어 보인다. 돈이나 명예 이외에도 우리를 행복하게 해 주는 조건들은 다양하다는 것을 인정할 때 행복추구의 방식이 달라질 수 있다.
불교학자 고 김동화 박사는 평소에"유구(有求)면 유고(有苦)이고, 무구(無求)면 무고(無苦)이다"라는 말씀을 자주 했다. 이 뜻은 "구하는 것이 있으면 괴로움이 있고, 구하는 것이 없으면 괴로움도 없다"는 명언이다. 여기에 행복의 비밀이 있다. 소유하는 것에 비례하여 괴로움의 부피도 늘어나는 것이다. 그러므로 욕심 많으면 행복이 줄어들고 욕심 적어지면 행복이 늘어나는 이치다. 지금, 행복하지 못하다면 그것은 만족하는 것보다 구하는 것이 더 많기 때문일 가능성이 높다.
브라질올림픽이 개최되었을 때 세계인들의 축제를 구경할 수 있었다. 그런데 메달 수여식을 자세히 관찰해 보면 흥미 있는 현상이 있다. 시상대에 오른 선수들은 대체로 기뻐하지만 은메달 선수는 크게 웃지 않는다. 그것은 금메달 도전에 대한 아쉬움 때문에 그렇다는 보고서가 있다. 조금만 더 잘했으면 금메달을 목에 걸 수 있었다는 자책 심리가 은메달에 대한 기쁨을 반감시킨다는 것이다. 은메달 선수의 입장에서 충분히 이해가 가는 일이다. 이와 달리 동메달 선수가 가장 행복한 표정이다. 그것은 동메달의 주인공이 되었다는 성취감 때문에 그렇다. 만약에 순위권에서 멀어졌다면 그 동메달은 다른 선수에게 넘어갈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심리적으로는 금메달의 행복과 동일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여기에서 은메달 선수는 목표를 위로 구했기 때문에 덜 행복했지만, 동메달 선수는 목표를 아래로 구했기 때문에 더 행복했다. 따라서 크게 바라면 크게 괴롭지만 조금 바라면 조금 괴로운 것이다. 이 논리를 정리한 것이 '무구 행복론'이다. 결국 큰 욕심없는 마음이 행복의 길이다. 달리 다른 비결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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