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가 음력 삼월 초하루. 흔히 '꽃 피는 춘삼월'이라고 말할 때의 그 삼월이 바로 지금 이때다. 여기저기 피어나는 봄꽃들로 세상이 온통 화사하고 산야에 번지는 연초록 새순들이 싱그럽다. 봄 햇살이 눈부실 때마다 즐겨 인용하는 선시가 있다.
봄에는 꽃이 피고, 가을에는 달이 밝고
여름에는 시원한 바람이 있고,
겨울에는 눈이 있어서 좋다.
쓸데없는 일로 마음만 번거롭지 않다면
1년 365일, 호시절이 따로 없다.
송대의 인물 무문 선사의 이 글귀가 좋아서 붓글씨로 써서 화단에 세워 두었다. 사시사철 아름다운 풍경이 있으니까 세상사는 일이 즐거운 소풍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마음에 근심과 걱정이 있다면 꽃이 피고, 달이 밝더라도 아무런 위로가 되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매사에 부질없는 욕심으로 마음 졸이는 일만 없다면 인간 호시절이 따로 없다고 읊조린 것이다.
욕심과 분별만 사라진다면 이 세상의 춘하추동은 있는 그대로 아름답고 완벽하다는 뜻이다. 그야말로 조화와 질서를 이루는 화엄 세계가 완성되는 것.
그렇다면 매사에 근심을 줄이는 방법은 무엇일까? 출가 이후 동서고금 성현들의 말씀을 종합해 본 결과 근심을 줄이는 지름길은 딱 한 가지였다. 그것은 다름 아니라 작은 일에 만족하는 것이다. 모든 근심의 원인은 만족하지 못하는 데서 비롯되기 때문이다.
우리가 행복하지 못한 이유는 바라는 것이 너무 많아서이다. 아주 오래전에 열반하신 석주 노스님께서 지족상락(知足常樂)이라는 묵서를 주셨는데 지금도 방에 걸어 두고 좌우명으로 삼고 있다. '만족할 줄 알아야 근심이 없다'는 뜻으로 해석하고 싶다. 음미할수록 와 닿는 법문이 아닐 수 없다. 만족하지 못하는 이의 삶은 언제나 빈곤하고 괴롭다.
아주 짧은 시가 있다. 그 시의 제목은 <불행의 시작>이라는 것인데, 시의 내용은 '비교'이다. 즉, 불행의 시작은 비교에서 비롯된다는 결론이다. 나와 남의 능력을 비교하고, 외모를 비교하고, 학벌을 비교하고, 연봉을 비교하고, 남편과 부인을 비교하고, 집의 크기를 비교하고, 자동차를 비교하고, 심지어는 핸드백이 명품인지 아닌지를 비교한다. 이러한 비교를 통해 우월감과 열등감을 동시에 느낀다는 것이다. 그런데 비교하다 보면 열등감을 지니게 되는데 이것이 불행의 시작이다. 다시 말해 불만족이 형성되는 것이나 다름없다. 불만족의 상태가 되면 현재의 조건에 대해 감사하는 마음이 사라지고 만다.
어제 초하루 법회 때 결혼을 앞둔 신랑 신부가 참석하였길래 법문 말미에 예비 부부를 위해서 몇 가지 조언을 해 주었다. 이 조언은 내가 주례할 때마다 강조하는 부탁이기도 하다.
첫째, 부부는 비교하지 말라고 했다. 남의 남편과 나의 남편을 비교하고, 남의 아내와 나의 아내를 비교하면 서로에 대해 불만이 생기게 마련. 그래서 부부 사이는 외모는 물론이고 집안 조건 또한 비교하는 것은 절대 금물이다. 왜냐하면 불만이 생기면 감사를 잊어버리기 때문이다.
둘째, 부부는 후회하는 마음을 가지지 말라고 했다. 서로 살아가면서 상대방이 마음에 들지 않거나 실망을 줄 때마다 '괜히 저 사람을 만났다, 결혼을 잘못 한 것 같다' 이런 마음을 먹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 순간 서로에 대한 믿음이 깨지기 때문이다.
셋째, 부부는 계산하지 말라는 부탁을 했다. 부부는 서로 일방적으로 도움을 받으려고 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무작정 처갓집 덕을 보려 하거나, 시댁 신세를 지려고 한다면 서운할 경우가 생기기 때문이다. 그래서 부부는 이해타산에 매몰되지 않아야 지속될 수 있는 관계인 것이다.
어떤 인디언 부족은 청년 남녀가 결혼할 때 추장에게서 활과 화살을 선물받는다고 한다. 활은 화살이 있을 때 제 기능을 발휘할 수 있고, 화살 또한 백 개가 있다고 하더라도 활이 없으면 무용지물. 이렇듯이 부부 사이는 활과 화살처럼 서로 떨어져 있으면 남이 되지만 서로 도와주는 관계가 되면 두 사람에게 꼭 필요한 존재가 된다는 가르침이다.
이런 덕담으로 초하루 법회에 즈음해서 예비 부부들에게 주례사 아닌 축사를 해 주었다. 이런 봄날, 모든 꽃이 각기 아름답듯이 비교하지 않으면 더 행복할 수 있다.
좋은 봄날에 울지 마라_ 현진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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