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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과연 행복한가_ 스티브 김

정정진 2016. 10. 22. 12:00


예나 지금이나 '성공'은 우리 사회의 핵심 키워드이다. 내가 젊었던 1970년대 우리 사회는 '꼭 성공하고야 말겠다'는 의지가 넘쳐흘렀다. 가난에서 벗어나 부유해지겠다는 열망이 온 나라에 가득했고, 나 역시 예외가 아니었다. 특히 힘들게 자라난 나는 성공하겠다는 의지가 남달리 강했다. 미국에 가서도 마찬가지였다. 미국은 '노력하면 누구나 성공할 수 있다'는 점을 이념으로 내세우는 나라였다. 나는 남들보다 더 잘 살고 싶었고 그래서 더 열심히 일했다.


하지만 막상 성공을 이뤄놓고 보니 과연 '무엇을 위한 성공'이었나 하는 고민이 들기 시작했다. 성공, 성공 하면서 달려왔지만 과연 내가 이룬 것이 진정한 의미의 성공이었는지 회의감도 들었다.


기업인에서 투자자로


자일랜을 그만두자 사람들은 나의 다음 행보를 궁금해했다. 스티브 김이 무슨 일을 할까는 한동안 관련 업계의 관심거리가 됐다.


"다음에는 무슨 사업을 할 거죠?"

"글쎄, 뭐가 좋을지 나도 생각 중이에요."

"무슨 사업을 할지 결정되면 내게도 꼭 연락해줘요. 나도 투자할게요."


그 무렵 내가 관심을 가진 것은 창업투자회사 설립이었다. 나는 창업투자회사를 하면 잘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이미 내가 가지고 있는 인맥과 네트워크가 있으니 펀딩을 하는 것도 어렵지 않아 보였다. 또 그간의 경험을 통해 성공 가능성이 높은 사업을 알아보는 눈도 있었다. 이 두 가지 능력을 활용해 할 수 있는 사업이 벤처 투자였다.


나는 더 이상 경영에는 직접 참여하고 싶지 않았다. 하루하루 긴장하고 노심초사하며 살아온 세월이 15년이었다. 설령 제3의 창업을 해서 자일랜 이상의 성공을 이룰 수 있다 하더라도 전과는 다른 새로운 사업을 하고 싶었다. 이제는 좀 편하게, 덜 힘들게 일하고 싶었다.


1억 달러 정도의 자본을 모아 회사를 차리면 될 거라 계산하고 활동을 시작했다. 마침 프랑스 파리에서 알카텔 회장과 점심을 할 기회가 생겼다.


"스티브, 앞으로의 계획이 무엇이죠?"

"창업투자회사를 한번 운영해보려고 해요."

"아 그래요? 우리도 미국 벤처회사 쪽 투자를 구상하고 있어요. 우리가 반을 투자하면 어떨까요?"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회사가 알카텔 벤처스다. 나는 다시 비즈니스 일선에 뛰어들었다. 당시는 벤처 열기가 최고조에 이르렀을 때였다. 자금 규모도 1990년대 초와는 비교할 수 없이 커져 있었다. 너도 나도 벤처를 하겠다고 나섰다. 창업투자회사나 소액 투자자들의 수도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았다.


그런데 막상 체험해보니 벤처 투자에는 여러 가지 문제가 많았다. 벤처 열풍은 불었지만 투자자의 입장에서 벤처를 들여다보면 사정이 달랐다. 일단 벤처가 너무 많았다. 대학생들도 컴퓨터 한 대만 놓고 벤처를 시작하던 때였다. 그 수많은 창업아이디어 중 옥석을 가리는 데는 마치 모래 속에서 진주를 찾는 만큼의 노력이 소모되었다. 그런 환경에서 다른 많은 투자자들과 경쟁을 하려니 자연히 리스크가 높을 수밖에 없었다.


남의 돈을 모아 투자하는 것인데 그렇게 리스크가 큰 투자를 하려니 부담만 늘어갔다. 한마디로 벤처 투자는 내가 처음 기대했던 것과는 많이 달랐다.


빈 몸으로 시작해 치열한 경영 일선에서 15년을 보낸 내 입장에서 보자면 다들 기업 경영을 너무 쉽게 생각하는 것처럼 보였다. 또 어느 분야건 경쟁이 심해져 성공 확률도 낮아지고 투자자금이 회수되는 사이클도 갈수록 길어지고 있었다.


알카텔 벤처스는 돈을 벌기 위해 시작한 것이 아니라 잘할 수 있는 일을 즐기면서 할 수 있을 것 같아 시작했는데 막상 뛰어들고 보니 예상과 전혀 달랐다. 정직 하나를 모토로 기업을 이끌어온 내 원칙과는 맞지 않는 신규 창업자들도 많았다. 투자를 받으러 온 기업들은 정직한 이야기를 하지 않았고 모두 자기 회사의 가치를 턱없이 높게 잡고 있었다. 우리가 투자를 결정한 후 자신들이 제시한 목표를 한 분기도 못 맞추는 회사가 태반이었다. 그들에게서 진실을 캐내는 과정이 내게는 너무나 고통스러웠다. 내가 확신할 수 없는 일에 더 이상 투자자들의 돈을 갖다 부을 순 없었다. 그러던 중 IT 버블이 터졌다. 나는 차라리 다행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했다. 결국 나는 투자자들에게 돈을 돌려준 뒤 새로운 투자를 중단하고 이미 투자한 회사들의 관리에만 힘썼다.


그 후 나는 미국 내 한국인 커뮤니티에서 지역 은행의 이사로 활동했다. 이를 통해 한국 기업문화를 간접적으로나마 체험해보고 금융업계에 대한 안목을 쌓을 수 있었다. 작은 금융회사를 만들어 운영하기도 했고, 내가 골프를 좋아하니 골프장도 경영해보았다. 하지만 그다지 재미를 느끼지 못했다. 회사를 경영할 때는 너무 힘이 들어 막판에는 정말 그만두고 싶었는데, 다른 일들을 해보니 회사 경영을 할 때만큼의 열정이 생기지 않았다.


행복의 새로운 정의


캘리포니아의 우리 집은 미국 내에서도 손꼽히는 저택이었다. 좋은 집에서 좋은 음식이며 좋은 친구들, 훌륭한 예술을 다 누리고 살며 주말에는 친구들을 초대해 정원 한쪽에 있는 테니스코트에서 테니스를 즐기고 파티도 열었다. 세계적인 음악가들이 파티에 참가해 살롱 콘서트를 열었고, 미국 주류사회의 내로라하는 사람들과도 교분을 쌓았다. 스트레스를 덜 받으니 경영 일선에 있을 때보다 살도 빠지면서 건강을 되찾게 되었다.


사회 환원을 위해 여러 차례 꽤 많은 기부금을 냈던 덕분에 사회적으로도 존경 받는 입장이었다. 이런 나를 남들은 모두 부러워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부와 성공의 정점에서 오히려 많은 것을 생각하게 되었다. 행복한 일상을 누리고 있었지만 마음은 오히려 행복하지 않았다. 전에는 늘 바쁜 스케줄 속에서 항상 새로운 도전을 하며 살았는데 시간적인 여유가 생기고 나니 오히려 마음은 더 허전했다.


그러면서 나는 인생에서 정말로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깊이 생각해보게 되었다. 남들은 행복의 조건이라고 하면 돈, 명예, 권력을 꼽곤 했는데 과연 그것이 행복의 조건일까 생각하게 됐다.


나는 스스로가 언제 가장 행복했는지 생각해보았다. 큰돈을 벌었을 때보다는 목표를 향해 성취하는 과정을 즐기고, 주변에서 인정해주었을 때 더 행복했던 기억이 났다. 아무리 돈이 많다 해도 다른 사람들로부터 사랑받고 인정받지 못한다면 무슨 소용이 있을까 싶었다.


돌이켜보면 자일랜이 상장되던 날 느꼈던 그 감동과 보람도 경제적 보상에서 비롯된 것이라기보다는 나를 증명하기 위한 노력이 성공했기 때문에, 나를 믿어준 사람들을 실망시키지 않고 그들에게 큰 기쁨을 안길 수 있었기에 그토록 기뻤던 것이다. 반면 일을 하면서 가장 괴로웠던 순간은 사람들 사이에서 오해를 받았을 때였다. 성공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 젊은이들이라면 부디 그 성공의 목적이 무엇인지 한번쯤은 생각해보길 바란다.


성공하는 삶보다는 행복한 삶이 더욱 가치 있다. 돈, 명예, 권력을 가진 사람이 행복한 사람이 아니라 행복한 사람이 성공한 사람인 것이다. 성공은 행복이라는 목표를 이루기 위한 하나의 수단일 수는 있어도 목표 그 자체는 아닌 것이다. 인생은 단거리 레이스가 아니다. 레이스는 결승점에 들어서는 순간 끝나지만 인생은 그 결승점 이후에도 계속 되는 영원한 장거리 레이스인 것이다.


나는 평범하지만 소중한 진리를 뒤늦게서야 깊이 깨닫게 되었다. 행복은 돈이나 권력이 아닌, 사람과 사람 사이의 사랑과 신뢰로부터 온다는 것을. 이때부터 나는 이제까지와는 다른 새로운 성공을 꿈꾸기 시작했다. 행복이란 인생의 성공을. 나눔이란 삶의 성공을.


꿈, 희망, 미래_ 스티브 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