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경영

내가 대출이자를 갚으면 누군가는 파산한다_ EBS 자본주의

정정진 2017. 2. 3. 14:23


이자는 어디에서 오는가


우리는 앞에서 로저 랭그릭의 논문에서 나오는 사례를 통해 왜 중앙은행이 돈을 계속 찍어낼 수밖에 없는지 살펴봤다. 그것은 바로 자본주의 시스템 안에 '이자'라는 것이 계산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은행에서 대출을 받으면 이자를 내는데, 실제 현실의 시스템에는 그러한 부분이 전혀 고려되어 있지 않다니 어떻게 보면 참으로 이상한 시스템이 아닐 수 없다. 엘렌 브라운 미국 공공은행연구소 대표의 이야기다.


"은행은 대출을 통해 돈을 만듭니다. 이자를 위해 돈을 만들지 않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은행에서 돈을 빌리면 이자를 내야 합니다. 은행은 대출해 준 금액보다 항상 더 많이 돌려받죠. 우리는 스스로의 신용에 이자를 내고 있습니다. 그 어느 것도 근거하고 있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현실은 도대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앞에서 봤던 로저 랭그릭의 섬 이야기로 다시 돌아가 보자. 시민 B는 중앙은행으로부터 빌린 돈 1만 500원을 갚기 위해 열심히 일을 했고, 실제 섬에 있는 1만 500원을 모두 벌어서 빚과 이자를 다 갚았다고 해보자. 그렇다면 500원을 빌린 시민 D는 어떻게 될까. 당연히 돈을 갚을 수 없게 되고 결국에는 파산한다.


이는 곧 '내가 이자를 갚으면 누군가의 대출금을 가져와야 한다'는  뜻이 된다. 따라서 현대의 금융 시스템에서 빚을 갚는 것은 개인에게는 좋은 일일지 모르지만 또 다른 문제를 일으킨다. 돈이 적게 돌기 시작하면 누군가는 결국 이자를 갚을 수 없는 상황이 다가오는 것이다. 돈이 부족해지는 디플레이션이 언젠가는 오게 되어 있기 때문에, 결국 자본주의 체제에서 '이자가 없다'는 말은 '누군가는 파산한다'는 말과 같은 뜻이라고 할 수 있다. 모든 돈이 빚에서 시작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누가 파산하게 될까. 당연히 수입이 적고 빚은 많은 사람들, 경제 사정에 어두운 사람들, 사회의 가장 약자들이 파산을 하게 된다.


그러므로 자본주의 사회에서 '경쟁'이라는 것은 필연적일 수밖에 없다. 시스템에는 없는 '이자'가 실제로는 존재하는 한, 우리는 다른 이의 돈을 뺏기 위해 끊임없이 경쟁해야만 한다. 저마다 살아남기 위해 필사적으로 싸운다. 바로 이것이 우리가 매일 '돈, 돈, 돈' 하며 살아가는 이유이기도 하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돈이 전부라는 말이 여기에서 나온다. 화폐경제 역사 연구가 앤드류 가우스는 이것을 '의자 앉기 놀이'에 비유한다.


"현 은행 시스템은 아이들의 의자 앉기 놀이와 다를 바가 없습니다. 노래하고 춤추는 동안은 낙오자가 없기 때문이죠. 하지만 음악이 멈추면 언제나 탈락자가 생깁니다. 의자는 언제나 사람보다 모자라기 때문이죠."


은행 시스템의 이자와 의자 앉기 놀이는 아주 절묘하게도 일치한다. 다음이 바로 그 게임의 규칙이다.


의자 앉기 놀이

1. 의자는 한정되어 있다.

2. 의자에 앉아야 할 사람은 의자의 숫자보다 더 많다.

3. 누군가가 '의자에 앉으라'고 말하고, 의자를 차지하되, 못한 사람은 게임에서 탈락된다.

4. 따라서 명령이 떨어지면 미친 듯이 의자에 앉기 위해 몸싸움을 해야 한다.


은행 시스템에서의 이자

1. 돈은 한정되어 있다.

2. '이자+실제의 돈'은 '실제의 돈'보다 더 많다.

3. 누군가가 '이자를 내야 한다'고 말하고, 이자를 내지 못하면 신용불량자가 되어 파산한다.

4. 따라서 돈을 빌렸다면 이자를 내기 위해 남의 돈을 가져와야 한다.


생존하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하나


내가 대출이자를 갚으면 누군가는 파산한다는 말은, 곧 누군가 대출이자를 갚으면 내가 파산할 수도 있다는 의미다. 늘 우리는 의자 앉기 놀이의 승리자가 되길 꿈꾸지만, 그것은 그저 바람일 뿐 내가 탈락자가 될 가능성도 얼마든지 있다.


그리고 대출이자를 갚지 못하는 사람이 한 사람에서 끝나지 않고, 점점 늘어나면 문제는 더욱 심각해진다. 이런 일이 연속으로 벌어지면 시중에 돈의 양이 줄어든다. 돈이 부족하니 돈을 못 갚는 사람들은 더 급격하게 늘어난다. 부도 사태가 속출하고 파산이 늘어난다. 동시에 통화량도 계속해서 줄어든다. 통화팽창이 멈추는 순간 우리는 순식간에 추락할 수밖에 없다. 디플레이션이 시작된 것이다. 경기침체로 돈이 돌지 않아 여기저기서 거품이 터지기 시작한다. 일단 돈이 없으니 기업 활동이 위축된다. 생산과 투자를 줄이고 직원을 새로 뽑기는커녕 일하던 사람들도 내보낸다. 일자리가 부족해지고 돈을 벌기가 더욱 힘들어진다.


그렇다면 우리는 지금 어떤 상황에 있는 것일까? 엘렌 브라운 미국 공공은행연구소 대표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우리는 인플레이션이 아니라 디플레이션을 겪고 있습니다. 일본과 마찬가지입니다. 많은 양적완화를 시도했음에도 통화량을 올리지 못했습니다."


미국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2013년 8월 중앙일보는 '1% 부자도 중산층도 소비 빙하기'라는 기사를 내보냈다. 한국의 가처분소득 대비 가계부채 비율이 164%라며 일본의 132%, 미국의 120%보다 높다고 지적한 것이다. 기사에서 오정근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는 "현 상황은 수요위축에 따라 물가가 떨어지는 전형적인 디플레이션 상황이다. 방치하면 일본의 '잃어버린 20년'으로 갈 수 있다는 심각성을 깨달아야 한다."고 말했다.


안타깝지만 이것이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사회의 시스템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제프리 마이론 미국 하버드대 경제학과 교수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젊은 세대들이 일자리를 찾기는 앞으로도 어려울 것입니다. 세계 경제가 빠르게 성장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죠. 무슨 일이든 하는 게 일이 없는 것보다 낫다는 걸 깨닫기 바랍니다. 경험, 제시간에 나가는 것, 낮은 자리에서 시작해서 승진하는 능력, 이런 것들이 노동을 아예 안 하는 것보다 나을 것입니다."


우리는 '생존'해야 한다. 살아남기 위해서는 작은 것이라도, 낮은 위치에서라도 미래를 위해 끊임없이 뭔가를 하면서 새로운 희망을 만들어가야 한다. 비록 지금은 그것이 마음에 차지 않더라도 계속해서 도전하며 생존을 꿈꾸어야 한다. 자본주의 세상에서는 추운 겨울을 지내고 나면 따뜻한 봄이 오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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