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은행의 역할
지급준비율이 낮을수록 은행에는 더 적은 돈만 남겨진다. 지급준비율이 낮을수록 은행은 더 많은 돈을 불릴 수 있다는 이야기다. 우리나라는 중앙은행인 한국은행이 지급준비율을 결정하며, 현재 지급준비율은 평균 3.5% 내외이다.
그럼 지급준비율을 3.5%라고 가정하고 돈이 얼마나 불어나는지 한번 상상해 보자. 한국은행이 애플은행에 5천억 원을 대출해 줬다고 해보자. 애플은행은 이 5천억 원을 대기업 사장 남자1호에게 대출해 준다. 남자1호는 그 돈을 A에게 재료값으로 준다. A는 그중 5% 정도인 250억 원을 화사 금고에 현찰로 넣어두고 쓰기로 하고, 나머지 4천750억 원을 오렌지은행에 입금한다고 가정해 보겠다. A의 오렌지은행 계좌에 입금된 돈 중에서 3.5%인 166억 3천만 원을 지급준비금으로 떼어놓고 오렌지은행은 나머지 금액 4천583억 8천만 원을 남자2호에게 대출해 준다. 남자2호는 역시 B에게 대금을 지불하고 B는 다시 5% 정도인 229억 2천만 원만 금고에 남겨두고 나머지 4천354억 6천만 원을 바나나은행에 예치한다. 이런 식으로 대출할 수 있을 때까지 대출한다면 5천억 원은 6조 60억 원이 된다.
이렇게 시중은행이 대출을 해서 돈을 불릴 때 그 원금은 중앙은행에서 나온다. 그런데 이 중앙은행도 돈을 불린다. 왜 그럴까? 미국 뉴욕대 리처드 실라 교수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중앙은행은 재정적으로 경제를 안정시키고 불황을 줄이기 위한 금융기관입니다. 현대 경제에서 중앙은행은 통화량을 관리합니다. 경제에 돈이 더 필요하면 중앙은행이 돈을 공급할 수 있습니다. 인플레이션 때문에 통화량을 줄이고 싶으면 중앙은행은 돈을 가져갑니다. 이게 경제를 안정시키는 방법입니다. 작동하는 방법은 아주 간단합니다."
중앙은행의 역할은 한마디로, 시중의 통화량, 즉 돈의 양을 조절하는 것이다. 돈이 지나치게 부족해지거나 너무 많아지면 본격적으로 개입해 이 상태를 바로잡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중앙은행은 두 가지의 중요한 수단을 활용할 수 있다. 첫째는 이자율(기준금리)를 통제하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중앙은행인 한국은행은 1999년부터 이자율을 높이거나 내리는 방법을 사용해 시중에 있는 돈의 양을 조절해 왔다. 이자율을 낮추면 시중의 통화량이 증가하고, 반대로 이자율을 높이면 통화량은 줄어들게 된다.
은행도 돈이 부족할 때는 한국은행에서 돈을 빌려야 한다. 그런데 이자율이 낮으면 은행은 돈을 더 많이 빌려도 된다고 생각한다. 은행이 돈을 많이 빌려 많이 보유하고 있으면 자연스럽게 사람들에게 대출해 줄 수 있는 돈도 많아진다. 사람들 역시 이자율이 낮으니까 부담을 덜 느끼고 돈을 더 많이 빌린다. 이렇게 되면 시중에는 돈이 늘어난다. 즉, 이자율이 낮으면 시중에 돈의 양이 늘어난다는 이야기다.
반대로 이자율이 높으면 은행은 선뜻 한국은행에서 많은 돈을 빌리기가 망설여진다. 따라서 은행에도 돈이 부족해지고, 사람들에게 대출해 줄 수 있는 돈도 부족하다. 또 내야 할 이자가 많기 때문에 사람들도 섣불리 많은 돈을 빌릴 수가 없다. 따라서 시중에는 돈의 양이 줄어드는 것이다.
통화량을 늘려야 하는 이유
그런데 이런 간접적인 방법 외에도 중앙은행은 통화량을 조절하는 또 하나의 방법을 가지고 있다. 그것은 바로 직접 새로운 화폐를 찍어내는 일이다. 미국 금융위기 이후 우리가 뉴스에서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이 바로 '양적완화'였을 것이다. '미국 FRB 양적완화 단행', '올 하반기 양적완화 축소' 등의 뉴스 말이다. 양적완화를 단행했다는 것은 심각한 위기상황에서 통화량을 늘리기 위해 미국 중앙은행이 달러를 더 많이 찍어냈다는 의미다. 앞서 말했던 이자율을 낮춰서 경기를 부양하는 것이 한계에 부딪혔을 때 중앙은행은 직접 화폐를 찍어내서 국채를 매입하는 방법으로 통화량을 늘린다.
왜 이런 상황이 발생하는 것일까? 보다 쉽게 이해하기 위해 예를 하나 들어 보겠다.
엄마는 아이에게 한 달에 3만 원의 용돈을 준다. 그러면 아이가 하루 동안 쓸 수 있는 돈은 1천 원이다. 그런데 아이는 어느 날에는 1천200원, 또 어느 날에는 1천500원을 쓰곤 했다. 이대로 가다가는 한 달에 3만 원의 용돈이 얼마 가지 않아 바닥이 날 지경이다. 그래서 엄마는 아이에게 말했다. "이제부터는 꼭 하루에 1천 원만 써야 해. 그 이상은 안 된단다"라고 말했다. 바로 '중앙은행'인 엄마가 '하루 1천 원'이라는 금리 제한을 두어 통화량을 억제하려고 한 것이다.
그런데 아이가 이 말을 듣지 않거나 또는 불가피한 이유 때문에 엄마의 말을 들을 수 없는 상황에 처하게 되었고, 아이는 동네 슈퍼에서 외상을 하고 말았다. 그 비용을 따져보니 한 달에 쓴 돈이 총 3만 5천 원. 결국 엄마는 자신의 지갑에서 5천 원을 더 꺼내 아이에게 줄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이렇게 중앙은행인 엄마는 '하루 1천 원'이라는 금리를 통한 통화량 조절에 실패하자 3만 원 이외에 또 다른 돈 5천 원을 가져오는 '양적완화' 정책을 쓸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고 만 것이다.
중앙은행이 이렇게 통화량을 조절하기 위해 돈을 찍어낸다고 말했지만, 사실 중앙은행이 계속 찍어낼 수밖에 없는 이유는 따로 있다. 그것은 바로 '이자' 때문이다.
은행 시스템에는 이자가 없다
로저 랭그릭의 '새로운 천년을 위한 통화시스템'이라는 논문에서 이 문제가 쉽게 설명돼 있다.
여기에 외부와 전혀 소통을 하지 않는 단일한 통화체제를 가지고 있는 한 섬이 있다고 가정해 보자. 중앙은행 A는 딱 1만 원을 발행했고, 시민 B는 그 돈을 빌린 후 1년 후에 이자까지 합쳐서 1만 500원의 돈을 갚아야 한다고 해보자. 시민 B는 또 다른 시민 C에게 배를 구입한 뒤 그 배로 열심히 물고기를 잡아서 돈을 벌었다고 해보자.
그렇다면 과연 시민 B는 1년 뒤에 1만 500원을 중앙은행에 갚을 수 있을까? 정답은 '절대로 갚을 수 없다'이다. 왜냐하면 섬에 있는 돈은 딱 1만 원일 뿐, 이자로 내야 하는 돈 500원은 그 어느 곳에도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자본주의 체제의 금융 시스템에는 애초에 이자라는 것이 없다는 얘기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이자를 갚을 수 있는 방법은 딱 하나밖에 없다. 바로 중앙은행이 또다시 500원을 찍어내고 그 돈을 다시 시민 D가 대출하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섬에 있는 돈은 모두 1만 500원이 되고 시민 B가 아주 열심히 일을 해서 섬에 있는 돈을 모두 벌게 되면 그제서야 중앙은행에 1만 500원을 갚을 수 있게 된다. 하지만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시민 D는 또다시 중앙은행에 500원에 대한 이자를 지불해야 한다. 하지만 마찬가지로 섬에는 1만 500원 이상의 돈은 없다. 역시 이때에도 방법은 단 한 가지다. 중앙은행은 또다시 돈을 찍어내야 하고, 누군가는 그것을 빌려가야 한다는 이야기다. 결론적으로 은행 시스템에는 '이자'라는 것이 없기 때문에 중앙은행은 이 이자를 만들기 위해서 끊임없이 돈을 찍어낼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다. 미국 공공은행연구소 엘렌 브라운 대표는 이렇게 요약한다.
"이자와 과거의 대출을 갚는 유일한 방법은 더 많은 대출을 주는 것입니다. 이것이 통화량을 팽창시키고 통화의 가치를 떨어뜨립니다."
결국 중앙은행인 '시중의 통화량을 조절한다'는 임무를 가지고 있지만, 통화량이 늘어나는 속도를 늦출 수 있을지는 몰라도 자본주의 시스템 때문에 스스로도 화폐를 계속 찍어내면서 통화량을 늘릴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이렇듯 은행도 중앙은행도 자본주의 시스템 안에서 지속적으로 돈의 양을 늘리면서 인플레이션에 기여를 하고 있는 셈이다.
EBS 다큐프레임 자본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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