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경영

인플레이션의 거품이 꺼지면 금융위기가 온다_ EBS 자본주의

정정진 2017. 2. 2. 15:51


무한정 돈을 찍어낼 수는 없다


은행은 대출을 통해 돈의 양을 늘리고 중앙은행은 또 이런저런 이유로 돈을 찍어낸다. 그래도 정말 아무 일 없이 세상은 잘 돌아갈까? 시중에 돈이 많이 도니까 돈을 많이 쓸 수 있어 좋은 건 아닐까?


미국 하버드대 경제학과 제프리 마이론 교수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정부가 지폐의 수를 늘리고 돈의 양이 늘어나면 각각의 지폐는 가치가 낮아집니다. 각 지폐 한 장이 덜 희소해지기 때문이죠. 같은 돈으로 살 수 있는 것이 적어지고 인플레이션이 오게 됩니다. 1달러당 살 수 있는 상품과 서비스가 줄어드는 것이죠. 그래서 정부가 돈을 풀면, 인플레이션이 옵니다."


돈의 양이 늘어나면 물가 상승의 원인이 되고, 인플레이션이 따라온다. 자본주의 체제 하에서 '은행'이 있고 '중앙은행'이 있는 한, 인플레이션이란 결코 피해갈 수 없는 치명적인 현상인 셈이다.


이러한 인플레이션의 위험성은 한 나라의 국가 경제를 최악의 상태로 몰고 갈 수도 있다. 2008년 아프리카 짐바브웨에서는 물가 상승이 국가의 통제력을 벗어나 '하이퍼인플레이션'이 발생했다. 한 해에 최고 2억 3천100만%라는 상상을 초월하는 물가상승률을 기록한 것이다. 40여 년을 통치한 무가베 대통령의 무지한 정책이 그 원인이었다. 극심한 실업률을 극복하고 외채를 상환하기 위해서 너무나 많은 화폐를 찍어낸 나머지 이러한 하이퍼인플레이션 상태가 온 것이다. 0이 모두 14개가 붙은 100조 짐바브웨 달러 지폐는 당시의 인플레이션이 얼마나 기록적이었는지 잘 보여준다. 심지어 밥을 먹을 당시와 밥을 먹은 후의 밥값이 달라질 정도였다고 한다.


이러한 하이퍼인플레이션은 1920년대의 독일에서도 발생한 적이 있었다. 1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연합국과 패전국인 독일 사이에 '베르샤유 조약'이 맺어진다. 이때 연합국은 독일에게 엄청난 금액의 배상금을 요구한다. 다음은 그 조약의 내용 중 일부이다.


"독일은 배상금으로 매년 20억 마르크씩 합계 1천320억 마르크를 연합국 측에 배상하고, 독일의 연간 수출액 중 26%를 지불한다. 독일이 약정 기한 안에 이를 지불하지 못하면 연합국 측은 제재조치로 독일의 대표적 공업지대인 루르 지방을 군사적으로 점령할 수 있다."


하지만 전쟁에 많은 돈을 쏟아붓고도 결국 질 수밖에 없었던 패전국 독일에 이 정도의 엄청난 돈이 있을 리가 없었다. 결국 독일은 할 수 없이 중앙은행을 통해 발행하는 화폐의 양을 크게 늘렸고 국채를 발행해 외국에 헐값에 팔기 시작했다. 그 결과 정말로 상상할 수 없는 일이 발생했다. 1923년 7월 독일 내 물가는 1년 전에 비해 7천 500배를 넘어섰고 2개월 뒤에는 24만 배, 3개월 후에는 75억 배로 뛰었다. 우리나라로 치면 5천 원 하던 김치찌개의 가격이 3조 7천5백억이 되었다는 이야기다. 환율로는 1달러당 4조 2천억 마르크가 되기도 했다. 독일인들은 4조 2천억 마르크를 들고 갔을 때 겨우 1달러를 손에 쥘 수 있었다. 그들은 급여를 받는 즉시 물건을 사두어야 했고, 저축은 엄두도 낼 수 없었을 것이다.


물론 독일의 경우에는 패전이라는 특별한 상황에서 발생한 하이퍼인플레이션이었지만, 국가가 통화량을 무한정 늘릴 때 어떤 결과가 일어나는지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라고 할 수 있다.


호황의 끝에는 불황이 있다


이러한 극단적인 경우가 아니어도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지속적으로 인플레이션과 디플레이션이 반복된다. 러시아의 경제학자인 니콜라이 콘드라티예프는 1925년 자본주의 경제 환경에서 위기가 만들어지는 장기순환주기가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그리고 그 주기는 48~60년마다 반복된다고 결론을 내렸다. 또한 금세기의 가장 대표적인 경제학자 중의 한 명인 슘페터 역시 자본주의 경제는 물결처럼 상승과 하강을 반복한다고 주장하면서 이를 '콘드라티예프 파동'이라고 이름 붙였다.


이렇게 주기적으로 인플레이션-디플레이션이 반복되는 이유는 앞서 말한 대로 통화량이 계속 늘어나기 때문이다. 은행은 대출을 통해 돈의 양을 늘리는 과정에서 처음에는 신용이 좋은 사람에게 우선적으로 대출을 해주지만, 점점 대출받을 사람이 줄어들면 나중에는 돈을 갚을 능력이 없는 사람들에게도 돈을 빌려주게 된다. 그렇게 시중의 통화량은 끊임없이 늘어나고 사람들이 쓸 수 있는 돈이 많아진다. 또 사람들은 그러한 상황이 계속될 것이라고 믿는다. 그래서 사람들은 생산적인 활동에 돈을 쓰기보다는 점점 소비에 많이 쓰기 시작한다. 돈이 많으니 비싼 옷을 사고, 좋은 집을 사고, 차를 바꾼다. 결국엔 더 이상 돈을 갚을 능력이 없는 상태에까지 이르게 된다. 제프리 마이론 교수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미국 소비자들과 다른 나라의 많은 소비자들이 지나치게 낙관적이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더 많이 소비하고, 돈을 더 많이 빌리고 저축을 적게 하기 시작했죠. 위험이 존재한다고 믿지 않았고 스스로를 위험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한 적절한 조치를 하지 않았어요. 그러다 지속하기 불가능한 상태에 이르렀고 그제서야 너무 낙관적이었음을 깨달았죠. 그리고 갑자기 무너졌어요."


그리스와 유럽 국가들 역시 지나치게 너무 많은 돈을 지출하면서 결국에는 금융위기를 맞았다고 할 수 있다. 제프리 마이론 교수의 말을 계속해서 들어보자.


"유럽과 미국의 경제는 전반적으로 주요 부분에 있어서 매우 흡사합니다. 유럽에는 은퇴연금과 의료비용을 관대하게 지급하겠다고 약속하는 프로그램이 있습니다. 계산을 해보면 그 약속은 지켜질 수 없습니다. 경제 성장률이 매우 좋다고 해도요. 경제가 매년 3%씩 계속 성장한다는 매우 낙관적인 가정을 해도 지출은 계속 늘어나서 지불할 수 있는 능력을 훨씬 넘어섭니다. 그리스의 결정적인 문제는 매우 낮은 이율로 자금을 빌릴 수 있었고 그렇기 때문에 그 빌린 자금을 생산적인 투자가 아닌 곳에 썼다는 것입니다. 학교나 기관의 연구 개발 등 경제가 빠르게 성장할 수 있는 곳에 쓰지 않고 소비에 사용했다는 것이죠. 미래의 수익을 전혀 만들어내지 못하는 곳에요. 그러니 계속 너무 많이 빌려서 영원히 갚을 수 없는 지점에 이르게 된 것이죠."


통화량이 급격히 늘어나 물가가 오르는 인플레이션 뒤에는 모든 것이 급격하게 축소되는 '디플레이션'이 온다. 계속해서 커져가던 풍선이 결국에는 터져 다시 쪼그라드는 것과 비슷하다. 상황의 심각성을 인식한 정부는 통화량 증가에 제동을 걸고, 사람들은 불안과 혼동속에서 소비를 줄이게 된다. 이렇게 소비(수요)가 줄어들면 공급도 줄어들면서 기업 활동이 위축된다. 한마디로 그간 폭주하며 내달리던 경제에 갑자기 브레이크가 걸리면서 모든 것이 붕괴 직전의 상황으로 돌변하게 되는 것이다.


문제는 이러한 디플레이션이 시작되면서 돈이 돌지 않는다는 점이다. 기업은 생산과 투자, 일자리를 동시에 줄이기 시작하고, 서민들은 벼랑 끝으로 내몰린다. 그러면 2008년 미국 금융위기 후 지금은 어떨까? 미국 공공은행연구소 엘렌 브라운 대표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세계의 신용은 무너졌어요. 여전히 디플레이션에 있습니다. 돈이 충분하지 않습니다. 유럽연합을 보면 알 수 있어요. 여러 국가가 빚에 허덕이고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빚과 이자를 갚을 돈이 충분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인플레이션 후에 디플레이션이 오는 것은 숙명과도 같은 일이다. 왜냐하면 이제껏 누렸던 호황이라는 것이 진정한 돈이 아닌 빚으로 쌓아올린 것이기 때문이다. 돈이 계속해서 늘어나기는 하지만, 그것은 일해서 만들어낸 돈이 아니다. 돈이 돈을 낳고, 그 돈이 또다시 돈을 낳으면서 자본주의 경제는 인플레이션으로의 정해진 길을 걷고, 그것이 최고점에 이르렀을 때 다시 디플레이션이라는 절망을 만나게 된다. 이것은 자본주의가 가지고 있는 부인할 수 없는 '숙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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