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경영

은행은 갚을 능력이 없는 사람에게도 대출해 준다_ EBS 자본주의

정정진 2017. 2. 6. 14:35


빚이 없으면 돈도 없다


돈은 '빚'이다. 은행이 돈을 만들어 내기 위해서는 '대출'이라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즉, 돈은 '빚'이라는 형태가 되어 많은 사람들에게 나누어진다. 누군가 빚을 지는 사람이 있어야 자본주의는 정상적으로 작동한다는 말과 같다. 그리고 그 '빚'에 대한 이자를 받아 은행은 수익을 챙긴다. '빚'이 없으면 은행도 없다.


"오늘날 돈은 금과 무관합니다. 은행은 통화 시스템을 부풀리는 역할을 합니다. 그게 은행이 하는 일입니다. 더 많은 대출을 해줘야 통화 시스템에 더 많은 돈이 생깁니다. 은행은 야바위 게임을 하고 있습니다."


엘렌 브라운 / 미국 공공은행연구소 대표


루스벨트 정권 당시 FRB(연방준비은행) 의장을 지냈던 매리너 애클스도 같은 내용의 이야기를 한 바 있다.


"우리의 통화 시스템에 빚이 없으면 돈도 없습니다."


어떻게 보면 돈에 대해, 그리고 빚에 대해서 너무도 순진하게 생각해 왔던 우리에게는 매우 충격적인 이야기가 아닐 수 없다. '빚 지지말고 성실하게 돈을 벌어라'는 이야기를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어왔지만, 정작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는 빚이 있어야만 굴러갈 수 있다는 사실은 때로 배신감까지 느끼게 한다. 악이라고 알아왔던 빚이 자본주의 입장에서는 선으로 돌변한 것이다. 그런데 자본주의에서 돈이 있는 사람들은 이 '빚'때문에 더 많은 돈을 벌고, 돈이 없는 사람들은 바로 이것 때문에 파멸에 이른다. 2008년 미국에서 발생한 '서브프라임 모기지론 사태' 역시 같은 맥락이다.


서브프라임 모기지론의 비밀


미국을 금융위기로 몰고 간 이 사태를 들여다보기 전에 우선 '서브프라임'이라는 단어가 무슨 뜻인지부터 알아보자. 미국에서는 개인에 대한 신용등급을 '프라임(우수)', '알트A(중간)', '서브프라임(저신용)' 순으로 나누고 있다. 즉, 서브프라임 모기지론이란 저신용자에 대한 주택 담보대출을 의미하는 것이다. 돈을 갚을 능력이 없는 사람들에게까지 돈을 빌려줬던 것이다. 미국 금융사학자인 존 스틸 고든의 이야기다.


"미국 은행 대부분은 예금액의 10배를 대출해 줍니다. 리먼브라더스는 은행도 아닌 투자은행이었지만 자기자본에 비해 40배의 차입금이 있었습니다. 10배가 아니라 40배입니다."


처음에는 상당히 성공적인 것처럼 보였다. 돈이 별로 없던 저신용자들이 고급 주택을 구매했다가 가격이 오르면 되팔아 큰돈을 쉽게 벌 수 있었기 때문이다. 특히 저신용자들에 대한 대출은 이자가 높기 때문에 은행 입장에서는 원금도 재빨리 회수하고 높은 이자도 받을 수 있는 일거양득의 효과를 누릴 수 있었다. 하지만 계속해서 오르던 부동산 가격이 어느 순간 그 거품이 터져버렸고, 금융위기의 원인이 되고 말았다. 미국 시카고대 경영대학원 라구람 라잔 교수의 이야기다.


"주택 담보 대출은 최고의 대출 형식이었어요. 주택 가격이 오르고 있기 때문에 돈을 빌린다는 느낌이 안 들어요. 합법적으로 내 자산인 것을 꺼내 쓰는 것 같죠. 집값이 계속 오르니까 그 오른 만큼의 돈을 빌리는 겁니다. 그런데 집값이 내려가기 시작하자 아무 보호장치가 없었어요. 이미 집을 담보로 대출을 했으니까요. 이미 집을 사고 차를 사고 그에 맞는 생활에 돈을 써 왔기에 소득은 늘지 않았는데도 잘산다는 착각을 하게 된 것입니다."


부동산 가격이 내려가자 사람들은 원금은 물론 더 이상 이자를 갚을 능력도 잃어버리게 됐다. 심지어 가지고 있는 집을 팔아도 빚을 갚을 수 없는 경우가 속출했다. 게다가 금융 기관들은 서브프라임 모기지론을 기초자산으로 한 파생상품까지 만들어 팔았기 때문에 문제는 더욱 심각했다. 에릭 매스킨 프린스턴대 사회과학과 교수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파생상품이란 금융 계약으로, 신용부도 스왑이 여기에 속하죠. 특정 투자의 위험을 여러 투자자들에게 분산시킬 수 있는 상품입니다."


미국 경제가 침체를 맞아 서브프라임 모기지론이 위험해지자 이것을 기초자산으로 한 파생상품들까지 하루아침에 휴지조각이 되어 갔다. '신용부도 스왑'은 모기지 채권이 부도가 날 경우 판매자가 이를 보상해 주도록 한 파생상품이었지만 이 또한 위험해지기 시작했다. 연쇄부도가 시작된 것이다. 이미 많은 미국의 투자은행들과 금융기관들이 수익을 위해 파생상품에 투자를 한 상태였고, 전 세계로 팔려 나가기까지 했다. 미국 시카고대 경영대학원 라구람 라잔 교수의 이야기다.


"많은 유럽의 기관들이 매우 해로운 모기지 담보부 증권을 미국 기관들에게서 샀습니다. 왜냐하면 트리플A 등급이었으니까요. 그들의 감시 기준으로 괜찮았던 겁니다. 이자율이 낮을 때도 기준 이상의 두둑한 수익금이 나오니 신이 났고, 널리 퍼졌죠. 그런데 전부 날아가 버렸어요. 트리플A 등급이라고 해서 샀을 뿐인데요. 그 분야에 있는 친구가 괜찮다고 해서 샀고요. 이렇게 위험성을 잘 모르고 충분한 설명을 듣지 않고 산 사람들이 많습니다."


당시 리먼브라더스홀딩스가 보유한 신용부도 스왑만도 8천억 달러에 이르고 있었다. 우리나라 돈으로 900조에 해당하는 돈이 위험에 처했으니 그 여파는 상상을 초월하는 것이었다. 결국 미국 5대 금용회사 중의 하나였던 리먼브라더스홀딩스는 파산에 이른다. 미국 금융사학자인 존 스틸 고든 교수의 이야기도 같은 맥락이다.


"1990년대 중반 주택 가격이 계속적으로 상승하는 주택 거품이 있었습니다. 많은 사람이 자신이 부자라고 생각했습니다. 왜냐하면 빠르게 가치가 상승하는 재산을 가지고 있으니까요. 그래서 두 번째 모기지를 통해 더 많은 돈을 빌리거나, 아니면 자산이 많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소비를 늘렸습니다. 그리고 전혀 저축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주택가치가 상승해서 순자산이 공짜로 늘어나니까요. 그리고는 모든 거품이 그렇듯이, 거품이 터졌습니다. 시장에 너무 많은 주택이 매물로 나왔습니다. 사람들은 점점 채무를 이행하지 않았고, 뭔가 이상하다는 게 감지됐죠. 주택 가격이 하락하기 시작했습니다. 주택 가격은 아직도 2007년 수준보다 낮습니다. 다른 경제에도 영향을 미쳤죠. 내려간 주택 가격 때문에 소비가 줄었습니다."


은행가를 위한 은행가에 의한 시스템


이 모든 것이 돈을 갚을 수 없는 저신용자에게 대출을 확대한 은행에 큰 책임이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주의 깊게 봐야 할 점은 이 모든 것이 은행의 단순한 실수가 아니라는 점이다. 인플레이션이 막바지에 이른 상태, 즉 돈이 넘쳐나는 상황에서 은행은 생존을 지속하기 위해 저신용자에게 눈길을 돌릴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보통의 기업에서도 상품이 계속해서 팔려야만 기업 활동이 유지된다. 은행의 상품이란 곧 대출을 의미한다. 계속해서 대출을 받는 사람들이 있어야만 은행이라는 기업도 운영이 되는 것이다. 그런데 돈이 많아지자 신용 상태가 좋은 사람들은 더 이상 은행에서 대출을 하지 않아도 됐다. 그러니 결국 은행은 돈이 없는 사람들에게 대출을 해주면서 계속해서 자신의 상품을 팔아야 했던 것이다.


그리고 이제 부동산 가격이 추락하니 빚을 갚지 못하는 사람들이 속출하게 되었다. 세계적인 금융위기라고 부르는 디플레이션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이다. 우리나라도 상황은 비슷하다. 우리의 아버지들은 집값이란 항상 오르기만 하는 것으로 알았다. 그것은 경제의 사계절 중 여름에 샀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는 부동산 가격이 계속해서 떨어지는 것을 두 눈으로 목격하고 있다.


이 모든 것은 단순한 '경기불황'이나 '경기침체'가 아닌 자본주의에 구조적으로 내재화되어 있는 문제라고 봐도 좋다. 우리는 미국 공공은행연구소 엘렌 브라운 대표의 말처럼 '민주적인 시스템이 아닌, 은행가를 위한, 은행가에 의한 민간은행 시스템'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는 운명에 처한 것이다. 왜 금융위기가 생겼고, 왜 좀처럼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으며, 왜 부동산 가격은 좀처럼 오르지 않는지, 왜 젊은 사람들이 취직을 못 하는지 모든 것의 원인은 자본주의 시스템안에서 찾을 수 있다. 갚아도 갚아도 없어지지 않는 빚, 우리는 결국 벗어날 수 없는 부채의 사슬에 묶여 있는 것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은행이 돈 갚을 능력이 없는 사람에게 돈을 빌려주는 것은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의 차원이 아니다. 그들이 동정심이 있어서, 또는 가혹한 현실에 처한 저신용자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을 주기 위해서도 아니다. 그 모든 것은 이미 자본주의 체제안에 내재된 법칙이며, 또한 약자를 공멸로 몰아가는 비정한 원리다.


'화폐전쟁'의 저자인 쑹훙밍은 그의 책에서 이렇게 말했다.


"금융재벌들은 경기가 과열되는 과정에서 심각한 거품 현상을 발견했다. 이러한 현상 또한 시중에 돈을 많이 풀어서 생기는 필연적 결과였다. 이 모든 과정은 금융재벌이 어항 속에 물고기를 키우는 것과 같았다. 금융재벌들은 마치 어항에 물을 붓듯 시중에 돈을 풀어 경제주체에게 대량으로 화폐를 주입했다. 돈을 풀면 각계각층에서 더 많은 돈을 벌 욕심으로 밤낮을 가리지 않고 일해서 부를 창출하는데, 어항 속의 물고기가 각종 양분을 열심히 흡수해 점점 살이 오르는 것과 같다. 금융재벌들이 수확의 시기가 왔음을 알고 어항의 물을 빼면, 물고기들은 잡혀 먹히는 순간을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자본주의의 이러한 원리로 인해 우리가 처하게 되는 현실은 무엇일까. 그것은 투쟁이다. 각박한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한 '무한 투쟁'이라는 삶의 방식이 우리를 지배하게 되는 것이다.


"은행은 당신을 각박한 세상으로 내보내 다른 모든 사람과 싸우라고 한다"


_ 베르나르 리에테르 '돈의 비밀' 중에서


EBS 다큐프라임 자본주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