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재채기하면 세계가 감기 걸린다
2008년 미국의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로 인한 금융위기는 전 세계로 퍼져나갔다. 이때 뉴스와 신문에서는 연일 미국의 FRB가 무엇을 했는지, 미국의 경제 상황이 어떤지, 그래서 우리나라의 전망은 어떤지 분석하는 기사를 쏟아냈다. 지금 전 세계는 아직도 불황의 터널에 있다. 우리나라도 상황은 역시 마찬가지다.
그런데 왜 이렇게 미국, 미국 하는 것일까? 미국이 무얼 하든 어찌됐든 내 지갑 속의 돈과 무슨 상관인가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럼 생각해 보자. 우리나라는 자원이 거의 없다. 석유도, 철광석도, 나무도 거의 다 수입한다. 이런 걸 사려면 달러가 필요하다. 국제 거래에 통용되는 결제 숫단을 기축통화라고 하는데, 달러가 바로 기축통화인 것이다. 그래서 세계의 수많은 돈 중에서 가장 의미 있는 돈은 달러이다. 존 스틸 고든 미국 금융사학자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2008년 미국의 금융 문제가 전 세계로 퍼져 나갔습니다. 그 이유는 미국이 크기 때문입니다. 세계 총생산량의 25%를 차지합니다. 인정하려 하지 않지만 명백한 사실입니다. '미국이 재채기하면 세계가 감기에 걸린다'는 말이 있습니다. 전 세계에서 미국 기업이 활동하기 때문입니다. 미국은 전 세계와 무역합니다. 단연 가장 큰 수입국이고 가장 큰 수출국입니다. 미국 경제가 남쪽으로 가면 세계 모든 경제가 남쪽으로 따라갑니다."
전 세계에는 200여 개에 이르는 국가가 있는데 미국이라는 단 한 개의 국가가 4분의 1에 해당하는 총생산량을 담당한다는 것은 정말로 '엄청나게 많은 양'이 아닐 수 없다. 그렇다면 우리나라 경제도 결국에는 미국이 움직이는 방향에 따라 큰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미국이 남쪽으로 가면 우리도 남쪽으로 가야 하는 것이다. 이는 우리나라의 사정만도 아니다. 일본도, 중국도, 프랑스도 모두 이 달러가 있어야 한다. 그래서 기축통화인 달러는 한마디로 '기준'이 되는 돈이다.
달러가 세계를 지배하게 된 이유
그러면 달러는 어떻게 세계의 기축통화가 되었을까? 처음 달러가 기축통화로 결정된 것은 1944년 7월이었다. 당시 미국을 중심으로 44개 연합국의 대표가 미국 뉴햄프셔주 브레튼우즈에 모여 외환금융시장을 안정시키고 무역을 활성화시킨다는 목적으로 '브레튼우즈 협정'을 맺었다. 35달러를 내면 금 1온스를 주겠다는 약속을 하면서 세계 각국의 통화를 달러에 고정시킨 것이다. 바로 이때가 미국의 달러가 전 세계의 기축통화가 된 시점이다.
그런데 결정적 전환점이 되는 사건이 발생한다. 베트남 전쟁이 시작되고 달러 가치가 하락하자, 각국에서 '우리가 가지고 있는 달러를 금으로 바꿔 달라'고 하는 요구가 많아진 것이다. 그러자 미국이 보유하고 있던 금의 양이 크게 떨어지기 시작했다. 미국은 돈을 더 찍어내고 싶었지만 금을 확보하기가 힘들었다. 미국이 달러를 금으로 바꿔주지 못하자 세계 여러 나라들이 달러의 가치를 의심하기 시작했고, 미국은 수세에 몰렸다. 그러자 1971년 미국의 닉슨 대통령은 일방적으로 "미국 달러를 보호해야 한다"며 '금태환제'를 철폐하겠다고 발표했다. 더 이상 달러와 금을 바꿔줄 수 없음을 선언한 것이다. 이 사건은 달러의 위상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달러에 씌어 있던 문구마저 달라졌다. 1971년 이전의 달러에 "TEN DOLLARS IN GOLD COIN'이라고 적혀 있던 것이 1971년 이후에는 그냥 'one dollar'로 바뀌었다. 이는 더 이상 달러가 금에 얽매이지 않는다는 상징적인 문구라고 할 수 있다. 1971년 이후의 달러는 금과는 전혀 무관하다. 그냥 종이돈일 뿐이다.
1971년은 달러가 금으로부터 자유로워진 역사적인 해라고 할 수 있다. 이때부터 미국이 원하기만 하면 얼마든지 돈을 만들 수 있게 됐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사실 이는 거의 '혁명'과도 같은 일이었다. 이 조치를 통해서 미국은 마음만 먹으면 무제한으로 돈을 찍어내고 원하는 대로 빚을 질 수 있게 되었다. 금의 보유량과 전혀 무관한 화폐 발행권을 가지게 된 것이다. 마침내 금융업자들의 오랜 숙원사업이 이루어진 것이다. 이것은 금으로부터 자유로운 진정한 명목화폐의 출현이었고 이는 '세계 역사상 가장 큰 경제적 사건'으로 기록되고 있다.
달러를 발행하는 곳은 정부기관이 아니다
그렇다면 세계 기축통화인 달러는 누가 발행할까? 미국 정부가 발행하는 것일까?
달러를 발행하는 곳은 미국 연방준비은행(Federal Reserve Bank) 흔히 줄여서 FRB라고 부르는 곳이다. 우리나라의 한국은행과 같은 중앙은행이다. 그런데 여기서 착각하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조금 다른 점이 있다. 한국은행은 정부기관이다. 그러면 FRB의 Federal은 말 그대로 '연방정부의'라는 뜻일까? 미국의 전화번호부를 찾아보면 금세 알 수 있다. 먼저 연방 란을 찾아보면 FRB는 보이지 않는다. 그런데 민간기업 란을 찾아보면 FRB가 보인다. FRB의 건물 간판에는 Federal Reserve Bank로 되어 있지만 공식 명칭은 the Federal Reserve System 이다. 12개의 지역 연방준비은행과 약 4천800개의 일반 은행이 회원으로 가입된 곳으로, 용어만 Federal이라고 사용했을 뿐 정부기관이 아닌 순수한 민간은행에 불과하다. 엘렌 브라운 미국공공은행연구소 대표의 이야기다.
"사실은 연방준비제도(Federal Reserve System)가 돈을 발행합니다. 다른 사람들처럼 정부도 돈을 빌려야 합니다. 연방준비제도 이사회는 상원의 인준을 거쳐 대통령에 의해 임명되지만, 사실은 민간은행의 연합입니다. 은행을 위해서 일합니다. 연방준비은행의 12개 지점에서 달러 지폐를 발행하는데, 달러 지폐를 보면 어떤 지점에서 발행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은행이 현금이 필요해 연방준비제도에 현금을 요청하면 정부기관인 연방인쇄국(조폐국)에 찾아갑니다. 그냥 인쇄하는 곳입니다."
FRB는 미국 정부를 고객으로 하는 몇몇 이익집단들이 단단히 결합된 모임체일 뿐이다. 정부 예산을 쓰지 않으며, 정부 차원의 감시도 없다. 그들은 금이 없어도 되고 별도의 은행 거래 창구도 필요 없다. 미국 정부가 요청하면 돈을 찍어내 미국 정부에 달러를 빌려주고 거기에 따라서 이익을 얻을 뿐이다. 그래서 어떤 이들은 불, 바퀴와 더불이 이 FRB를 '인류 최고의 발명품'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일반적인 상식으로는 도저히 이해가 불가능한 것이 존재하는 것이다.
그저 한 국가의 힘있는 몇몇 은행가들이 만들어낸 민간은행의 연합이 달러를 마음대로 찍을 수 있고, 그 달러가 전 세계를 쥐락펴락할 수 있다는 사실이 믿겨지는가? 대개 이러한 종류의 일들은 엄격한 감독과 감시 체계를 가진 정부기관에서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 상식일 것이다. 그러나 미국 정부는 여기에 대한 권리를 갖지 못한 채, 그들도 어쩔 수 없이 민간은행에서 돈을 빌려야 하는 처지에 있는 것이다. 한마디로 세계 경제를 쥐락펴락하는 것은 미국 정부가 아니라, 극소수의 금융자본가들인 것이다.
라이트 패트먼 미국 하원 금융통화위원장은 자신의 저서 '화폐 입문'에서 "연방준비은행은 완전히 돈벌이 기계다"라고 말했다. 과연 이러한 기관이 약자를 배려하고, 우리가 어려움에 처했을 때 우리를 도와줄 것이라고 믿을 수 있을까?
금융자본의 탐욕
FRB는 서브프라임 모기지론 사태를 오히려 더욱 부추겼다는 의혹마저 받고 있다. 1990년대까지만 해도 미국의 부동산 경기는 과도한 열기가 있는 '버블' 상태로는 진입하지 않았다는 것이 대체적인 평가다. 사람들이 부동산을 투기의 대상으로 보지 않았다는 이야기다. 그런데 FRB는 2000년 6.5%였던 금리를 수차례 낮추면서 결국 1.75%까지 낮춘다. 금리가 낮으니 사람들은 쉽게 빚을 내서 투자해 보려는 과도한 희망을 가지게 됐고, 이것이 결국 빚을 내서 집을 사는 과도한 투기 열풍의 진원지가 되었다는 이야기다. 빚이 많아져야 수익이 많아진다는 은행의 원칙에서 본다면 이같은 FRB의 금리인하 정책은 곧 서민들에게 고통을 안기고 자신들의 수익을 늘리기 위한 방법의 하나였다고 볼 수 있다.
과거에도 FRB에 대한 의혹은 있었다. 1914년부터 1919년까지 FRB는 돈을 마구 찍어내 소규모 시중은행에 거의 100% 대출을 해줬다. 지급준비금은 거의 남기지 않았다. 국민들은 이곳 소규모 시중은행에서도 마음껏 돈을 빌려 쓸 수 있었다. 그런데 1920년 FRB는 갑자기 그간 뿌린 돈을 마구잡이로 거둬들이기 시작했다. 금융 시장에는 대혼란이 시작됐고, 빚더미에 오른 국민들은 파산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게 끝이 아니었다. FRB는 다시 1921년부터 1929년까지 통화 공급을 늘렸고 국민들은 다시 엄청난 돈을 빌리게 된다. 하지만 이러한 대출에는 함정이 있었다. 90%의 대출금은 언제든 회수될 수 있었다. 24시간 이내에 반드시 대출금을 갚아야 한다는 무시무시한 덫이 있었던 것이다. 1929년 금융 자본가들은 또다시 그동안 빌려준 대출금을 무지막지하게 거둬들어기 시작했다. 대출을 받아 주식 투자를 했던 은행과 개인들은 줄도산을 했다.
하지만 이미 록펠러, 모건, 버나드 버럭 등의 여러 큰손들은 주식을 대량으로 매각하고 주식 시장을 빠져나가고 난 후였다. 이 사태로 인해 1만 6천여 개가 넘는 금융회사들이 문을 닫았다. 금융 자본가들은 거의 헐값이나 다름없는 가격으로 은행들을 집어 삼켰고 주식으로 막대한 부를 챙겼다. 이는 미국 역사상 가장 엄청난 '사기 사건'으로 평가받고 있다. 그들 마음대로 통화량을 늘리고 줄이면서 FRB는 소규모 금융회사와 국민들을 희생양으로 삼을 수 있었던 것이다. 이를 통해서 FRB는 수천 개의 금융회사들에 대해 독점적인 지위를 획득할 수 있었고 지금도 그들에게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전 세계는 미국의 금융에 운명을 맡기고 있다. 이는 당신도 예외가 아니다. 그러니 돈의 큰 그림을 보려면 미국의 금융정책을 알아야 한다. 미국 금융사학자인 존 스틸 고든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미국에 대한 의존도를 줄이자는 주장이 많이 있었습니다. 예를 들면 새로운 기축통화를 찾는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기축통화로 쓸 만큼 경제 규모가 큰 나라가 없습니다. 마음에 들든지, 들지 않든지 간에 당분간 세계는 미국에 고정된 것입니다."
우리가 큰 그림 안에서 돈의 흐름을 보지 못한다면 결국 제자리에서 벗어날 수 없다. 가난을 벗어날 수 없다. 우리의 지갑 속 돈이 사라지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시작부터 잘못된 통화정책과 탐욕스러운 금융자본에 그 첫 번째 책임이 있다. 그렇지만 빚으로 만든 돈을 흥청망청 써버린 우리의 잘못도 크다. 분명한 건 돈이 돌아가는 원리를 모르면 희생자가 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다.
자본주의 구조 안에서 돈은 빚이다. 이자가 존재하지 않는 시스템 안에서 우리는 돈의 노예가 될 수밖에 없을지도 모른다. 누군가가 파산을 해야 누군가가 돈을 벌 수 있는 시스템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더욱더 우리는 나무가 아닌 숲을 보는 안목을 가져야 한다. 미국 사회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그래서 우리나라의 금융 정책은 어떻게 바뀔지 생각할 수 있어야 한다. 자본주의 시스템 때문에 피해를 입었다고 구조적인 것만 탓해 봐야 우리에게 남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아무런 도움을 받을 수 없다.
또 지금은 디플레이션의 시대다. 경기불황은 오랫동안 지속될 것이고 회복될 기미는 쉽사리 보이지 않을 것이다. 돈을 빌려가라고, 흥청망청 써도 괜찮다고 아무리 유혹하더라도 스스로 중심을 잡아야 한다. 나와 내 가족을 위해서 말이다.
차세대 기축통화는 '위안화'?
미국에 이어 차세대 기축통화가 될 가능성이 가장 높은 화폐는 중국의 위안화이다. 특히 중국은 그간 꾸준히 위안화의 국제화 전략을 통해 이러한 가능성을 타진해 왔다. 중국의 경제 규모가 커지고 있고, 기축통화가 되면 여러 장점들이 있기 때문에 이를 지속적으로 추진해 왔던 것이다.
전문가들이 말하는 기축통화의 조건은 세 가지다. 첫째, 해당 국가의 경제 규모가 세계 경제에서 상당한 비중을 차지해야 한다. 둘째, 국제 거래에서 거부감 없이 많이 사용되어야 한다. 셋째, 안전성이 있어야 한다.
그런 점에서 달러를 이을 유일한 화폐는 위안화라는 것이 현 시점에서는 공통적인 의견이다. 하지만 그 시점은 전문가들마다 다르다. 어떤 이들은 최소 30년 이상 있어야 한다고 말하고, 또 어떤 전문가들은 10년 만에 위안화가 기축통화로 성장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나는 어떤 꼭두각시가 권력을 획득하는지 신경쓰지 않는다. 영국의 통화를 지배하는 자가 대영제국을 지배하는 것이고, 나는 영국의 통화를 지배한다" _ 네이선 로스차일드 / 로스차일드 금융 설립자
EBS 다큐프레임 자본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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