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은 신용이다
그렇다면 돈의 양은 왜 많아져야만 할까? 그리고 돈의 양은 '어떻게 많아질 수 있는 것일까? 이 비밀을 풀기 위해서는 누구나 한번쯤은 해보았을 '예금과 대출'이라는 것에 대해 알아봐야 한다. 우리는 흔히 예금을 하면 우리의 돈을 은행에서 '보관'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대출을 받을 때 은행이 금고 속에 있던 돈, 즉 누군가가 은행에 예금한 돈을 나에게 '빌려준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 생각은 너무도 당연한 것처럼 여겨지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이는 우리가 은행에 대해서 너무도 모르기 때문에 하는 착각에 불과하다.
우리는 흔히 '돈은 조폐공사에서 찍어낸다'고 말하지만, 실제 우리가 실물로 만지는 돈은 전체 돈의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나머지는 우리가 만질 수 없는 돈, 즉 숫자로만 찍히는 가상의 돈이다. 전문가들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돈을 말할 때 대부분의 사람들은 5달러 지폐와 같은 돈을 머릿속에 떠올립니다. 지폐 또는 동전 같은 것만 상상하는 것이죠. 물론 그것도 돈의 일부입니다. 하지만 사실 대부분의 돈은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니얼 퍼거슨 / 하버드대 역사학 교수
"사람들은 정부 인쇄기를 보고 정부가 돈을 만든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게 돈을 만드는 방식이 아닙니다."
엘렌 브라운 / 미국 공공은행연구소 대표
돈은 이렇게 만들어진다
그렇다면 도대체 돈은 어떻게 만들어지는 것일까? 그 비밀은 은행이 예금을 받고 대출을 해주는 과정에 있다. 예를 들어 집에 있는 금고에 100원을 넣어둔다고 해보자. 그러면 아무리 많은 세월이 지나도 100원은 그냥 100원에 머물러 있을 뿐이다. 그런데 만약 그 돈을 은행에 예금한다고 해보자. 은행은 그 돈을 그냥 가만히 놔두지 않는다. 은행은 100원이 들어오면 그중 10원만 남기고 나머지 90원은 A라는 사람에게 대출해 준다. 이렇게 되면 나의 통장에 이미 100원이 찍혀 있을뿐더러 A라는 사람의 대출 통장에도 90원이 찍힌다. 이제 A도 90원을 쓸 수 있게 되니, 나와 A가 동시에 쓸 수 있는 돈이 갑자기 190원이 된다. 결과적으로 100원의 예금이 대출이라는 과정을 거치면서 90원이라는 새로운 돈이 만들어진 것이다. 이렇게 난데없이 생긴 90원을 '신용통화'라고 이야기 한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까? 그것은 바로 약속 때문이다. 은행이 100원의 예금을 받으면 10%만 남기고 다시 90원을 대출해도 된다고 정부가 허락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그리고 이러한 허락과 약속은 1963년 미국 연방준비은행인 FRB에서 만든 업무 메뉴얼인 '현대금융원리 : 은행 준비금과 수신 확대 지침서'에도 나와 있다. 이 규정에 따르면 은행은 10%의 돈을 '부분지급준비율'로 은행에 준비해 둬야 한다. 이는 '예금한 고객이 다시 돈을 찾아갈 것을 대비해 은행이 쌓아둬야 하는 돈의 비율'을 말한다. 이를 간단하게 '지급준비율'이라고 말한다. 실제의 돈보다 더 많은 돈이 시중에 있는 것은 이러한 '지급준비율' 때문이다. 미국 하버드 경제학과 제프리 마이론 교수의 이야기다.
"예금액 대부분은 은행에 존재하지 않습니다. 다 대출되었죠. 은행에 두는 지급준비율은 통상 10% 정도입니다. 당신이 1천 달러를 계좌에 넣는다면 100달러는 은행에 보관되고 900달러는 주택 대출, 자동차 대출, 기업 대출 등으로 대출되어 나갑니다."
우리가 은행에 예금한 돈은 결코 은행이 '보관'하고 있지 않다. 다만 나의 통장에 그 금액만큼의 숫자가 찍혀 있을 뿐이며, 나머지 90%의 돈은 다른 사람에게 대출이 되는 것이다. 반대로 내가 대출을 받는다고 해도 마찬가지다. 은행은 결코 다른 사람들에게 받은 돈의 일부를 나에게 빌려주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예금한 돈의 90%의 금액을 컴퓨터상에서 내 통장에 찍히게 함으로써 돈을 '창조'한다는 이야기다. 결국 은행이 하는 일은 돈을 보관하고 그것을 그대로 대출해서 어느 정도의 수익을 챙기는 일이 아니다. 은행이 하는 일의 본질은 '없던 돈을 만들어내는 일'이라고 할 수 있다.
지급준비율에 따라 돈이 늘어난다
그렇다면 과연 돈은 어느 정도까지나 불어날 수 있을까. 예를 들어 100억을 예금했다고 가정해 보자. 정부가 지급준비율을 10%라고 정해줬다면, 은행은 그중 100억의 10%인 10억을 놔두고 나머지 90억을 또 다른 B은행에 대출해 준다. B은행은 다시 10%인 9억을 놔두고 81억을 C은행에 대출할 수 있다. C은행은 다시 여기서 10%를 놔두고 D은행에게, D은행은 다시 E은행에게, E은행은 다시 F은행에 계속해서 대출할 수 있게 된다.
그 결과 애초에 있던 100억부터 합하면 100억+90억+81억+72억+65억+59+....,. 이렇게 총 1천억이라는 엄청난 돈이 새롭게 '창조'되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돈이란 우리가 서로 주고받는 그 무언가가 아닌, 은행이 창조해 낸 결과물이다. 이렇게 있지도 않은 돈을 만들어내고 의도적으로 늘리는 이런 과정을 우리는 '신용창조', '신용팽창' 등의 용어로 부른다.
사실 따지고 보면 새로운 돈이 생기는 과정은 무척 간단한 작업인 셈이다. 은행은 들어온 돈의 지급준비율만큼의 금액만 남겨두고 그저 대출자의 예금담보 계좌에 손으로 숫자를 '타이핑'만 하면 된다. 미국 하버드대 역사학과 니얼 퍼거슨 교수는 이렇게 표현한다.
"우리는 돈이 은행에 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현금인출기로 바로 찾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이론상 은행에 있는 것입니다. 돈은 거의 눈에 보이지 않고, 단지 컴퓨터 화면에 입력된 숫자로만 보입니다."
제프리 잉햄 영국 케임브리지대 사회학과 교수의 말을 들어보자.
"지불에 대한 약속입니다. 신용인 거죠. 모든 돈은 신용이에요."
우리나라의 통화량 증가 그래프와 물가 상승 그래프를 보면 두 곡선이 거의 일치하고 있다. 이것은 통화량과 물가가 어떤 상관관계를 맺고 있는지 아주 명확하게 보여주는 것이다. 이처럼 통화량이 증가해서 화폐가치가 떨어지고 물가가 오르는 경제현상을 우리는 통화팽창, 즉 인플레이션이라고 말한다.
결국 자본주의의 경제 체제는 '돈으로 굴러가는 사회'가 아니라 '돈을 창조하는 사회'라고 해야 보다 정확할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사회를 만들어가는 가장 핵심에 바로 '은행'이라는 존재가 있다. 은행이 있기 때문에 돈의 양이 늘어나고, 따라서 물가가 오른다. 우리는 흔히 물가가 오르는 것이 경제 활동이 어려워졌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또 실제 많은 기업들이 물가를 올리면서 '원자재 가격이 올라서 어쩔 수 없이 물가를 올릴 수밖에 없다'고 말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것은 지극히 표면적인 설명일 뿐이다. 원자재 가격이 오르는 것 역시 돈의 양이 늘어났기 때문이다. 물가가 오르는 근본적인 원인은 소비가 늘어나기 때문도 아니고, 기업들이 더 많은 이익을 취하기 때문도 아니다. 그것은 바로 은행 때문이며, 은행을 중심으로 움직이는 자본주의 시스템 때문이다.
EBS 다큐프레임 자본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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