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경영

능력보다는 책임감이 우선이다_ 스티브 김

정정진 2016. 10. 22. 10:23


조직에서 꼭 필요한 존재


사람들은 사회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능력'이라고 이야기한다. 나는 그런 생각이 부분적으로만 옳다고 본다. 능력이라는 것은 노력으로 키울 수 있는 것이기도 하지만 상당 부분은 개인의 노력으로 어찌할 수 없는 면이 있기 때문이다. 똑같은 시간을 공부해도 타고난 머리가 좋은 사람이 더 좋은 성적을 올리기 마련이다. 요새는 능력도 환경에 좌우된다고들 말하지 않는가. 집안이 넉넉해서 어렸을 때부터 충분히 뒷받침을 받는 사람은 다양한 경험을 쌓을 수 있고, 그 결과 남다른 능력을 키울 수도 있다.


그렇지만 나는 능력 있는 사람이 최고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물론 능력 있는 사람이 꼭 필요한 자리가 있고, 머리 좋은 사람들이 잘 해낼 수 있는 분야가 있다. 예를 들어 새로운 제품을 개발하거나 새로운 패러다임을 열어가는 일에는 천재적이고 혁신적인 아이디어가 필요하다. 이런 분야들은 타고난 천재들이 유리할 것이다. 그렇지만 조직에서는 그런 천재들보다 평범한 인재들을 더 많이 필요로 한다.


나도 남들에 비해 머리가 빼어나게 좋거나 능력이 뛰어난 편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첫 번째 직장에서 상사였던 중국계 미국인 엔지니어 존 선은 어찌나 머리가 비상한지 그의 능력에 감탄하곤 했다. 그를 보고 있으면 저런 정도의 머리와 능력이 있어야 엔지니어로 성공할 수 있을 거란 생각이 절로 들었다.


그에 비하면 나는 평범한 엔지니어였다. 고객을 많이 만나고 시장에 대한 연구를 많이 하다 보니 제품에 대한 감각이 생겼고 그 결과 두 번의 창업을 성공으로 이끌긴 했지만, 엔지니어로서의 능력 자체는 뛰어난 편이 아니었다. 오히려 세일즈와 마케팅 같은 분야가 내 적성에는 더 맞는 것 같았다. 신제품에 대한 아이디어 역시 항상 호기심을 갖고 끊임없는 질문을 통해 얻게 된 것이었다. 반면 나는 능력이 뛰어난 사람들에 대한 열등감은 없었다. 그저 타고난 적성과 쓰임이 다르다고 생각했을 뿐이다.


그리고 직접 경영자의 입장에서 사람들을 뽑아 써보니 조직에서 필요로 하는 인재는 뛰어난 능력의 소유자가 아니라 책임감이 강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책임감이 강한 사람은 적극적으로 일을 풀어가는 사람이며, 깔끔하게 일을 처리하는 사람이다. 그래서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이기도 하다.


"네, 제가 하겠습니다"


파이버먹스 시절 나는 앞서 말한 존 선을 스카우트했다. 그의 비상한 머리를 높게 평가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렇게 머리가 좋은 사람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신제품 개발에 대한 아이디어나 사람을 관리하는 면에선 내 마음에 흡족하지 않았다. 마케팅 감각이 없었기 때문이다.


나는 15년의 경영자 생활을 하는 동안 수많은 인재들을 직접 뽑고 함께 일했으며 때로는 해고도 했다. 그 과정에서 오래도록 함께 일하고 싶은 사람의 특성에 대해 내 나름의 입장을 가지게 되었다.


한번은 분기 마감을 코앞에 두고 한 기업에서 문제가 생겼다. 한국의 모 은행이었는데 우리 회사에서 주문한 물건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며 바로 고쳐주지 않으면 발주를 취소하겠다는 것이었다. 그 은행의 주문은 이미 그 분기 예상 실적에 포함되어 있었다. 이 문제를 당장 해결하지 않으면 분기 예상 실적 자체가 펑크 날 판이었다.


그런데 문제가 터진 날이 하필이면 금요일 오후였다. 미국은 주말휴무에 충실한 문화인지라 나는 직원들을 주말에 일하게 하는 것이 힘들었다. 하지만 한국의 그 은행에서는 월요일부터 업무가 정상화되어야 하니 주말 안에 문제를 해결해줄 것을 강력히 요구해왔다. 회사의 미국인 직원 중에 주말을 앞두고 당장 짐을 꾸려 한국까지 출장을 가려고 할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더구나 제품의 문제로 생긴 일이니 상대편의 분위기도 좋을 턱이 없었다.


나는 우선 대책회의를 소집해서 직원들에게 상황을 설명하고 어떻게 하면 좋을지 물었다. 모두들 서로 눈치만 보았다. 그때 침묵을 깬 사람이 있었다.


"스티브, 제가 한국에 다녀오겠습니다."


모두의 시선이 한 곳으로 쏠렸다. 엔지니어인 크리스였다. 크리스는 선량하고 착했지만 그렇게 뛰어난 능력의 소유자는 아니었다. 프로젝트 팀 안에서도 업무의 중심이라기보다는 다른 사람들과 무난하게 협력하는 쪽이었다.


"당장 그쪽으로 가서 주말 안에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거잖아요? 그렇지 않으면 이번 분기의 예상 실적을 맞추지 못 한다면서요? 괜찮다면 제가 한국에 가겠습니다. 이번 고장은 저도 충분히 해결할 수 있는 문제라고 봅니다."


"크리스, 주말인데 괜찮겠어?"

"괜찮습니다. 지금은 응급 상황이잖아요. 그리고 팀의 핵심 엔지니어는 업무가 많아서 회사를 비울 수 있는 상황도 아닙니다. 당장 떠날 수 있는 비행기 표를 알아봐 주십시오. 전 곧바로 떠날 준비부터 하겠습니다."


황급히 서울행 비행기 표를 수소문했다. 크리스는 다행히 그날 밤 서울로 떠날 수 있었다. 서울에 도착한 크리스는 문제가 왜 발생했는지, 그리고 자신이 그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고 있는지를 전화로 상사에게 자세히 알려왔다.


나는 그 일을 통해 크리스를 다시 보게 되었다. 그는 지켜볼수록 신뢰할 만한 사람이었다. 회사에 어려운 업무가 있거나 일을 많이 해야 하는 상황이면 누구라도 조금씩 발을 빼곤 한다. 하지만 크리스는 그런 상황에서 항상 일을 마다하지 않았다. 또한 자신이 맡은 일이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를 꼬박꼬박 모두에게 알렸다. 내게는 머리 좋고 능력이 뛰어난 직원들보다 이런 크리스가 더욱 귀하게 느껴졌다.


차별화 전략의 제1순위, 책임감


이와 대조적인 경우도 있었다. CFO의 잘못된 채용으로 고생한 사례다. 자일랜이 나스닥에 나가기 직전 우리는 CFO를 새로 뽑았다. 스탠포드 대학을 나오고 다른 회사에서도 CFO로 일한 적이 있어 경력이 화려했다. 이사회에선 좋은 인물 같다며 채용을 결정했는데 나로선 왠지 그의 인상에 호감이 가지 않았다. 하지만 나스닥에 나가기 직전이라 다른 사람을 더 고르고 할 여유도 없었다. 결국 그를 채용했는데 그 결정이 그리 좋은 선택이 아니었음은 곧 밝혀졌다.


나스닥에서 CFO의 역할은 매우 중요하다. 모든 공개기업은 매 분기마다 전화로 '컨퍼런스 콜'이란 것을 거친다. 한 분기 동안의 실적을 발표하면서 질의응답을 하는 시간인데 애널리스트와 기관 투자자들이 줄잡아 50여 명은 몰린다. 기업에선 지난 분기 실적을 발표하고 이에 대한 자세한 부가설명과 질의응답이 이어진다. 이 컨퍼런스 콜은 해당 기업이 나스닥에서 좋은 평가를 받는 데 결정적인 영향을 끼치는 중요한 행사다. 미리 치밀하게 전략을 짜고, 각종 예리한 질문에도 조리 있게 대답해야 한다.


주가로 기업의 가치를 결정하는 나스닥에서 투자자와의 관계, 즉 투자자관리는 대단히 중요하다. 회사와 관련된 모든 중요한 사항들을 투자자와 소통해야 하는데 그는 전략적이지 못할 뿐더러 세밀한 부분에 약했다. 그러한 부족함을 내가 채워야 하니 엄청난 부담이었다.


나와 오래도록 함께 일해왔고, 내가 신뢰했던 직원들은 결국 크리스 같은 사람들이었다. 나는 능력이 남보다 뛰어나지는 않아도 책임감이 강한 사람, 다른 사람들과 소통을 잘하는 직원들에게 특별히 애정을 가지게 되었다.


책임감이 타고난 성품일 수도 있지만 노력을 통해서도 충분히 배양시킬 수 있다. 어려서부터 책임감 있게 행동하려는 노력을 한다면 책임감이 습관처럼 몸에 배이게 된다. 특히 늘 메모하고 기록하며 날마다 다시 정리하는 습관은 자신의 생활과 사고방식을 체계적으로 만드는 데 도움이 된다. 나는 회사를 경영하면서 스스로를 체계적으로 관리하는 사람이 조직에서도 책임감 있게 행동하는 것을 수없이 지켜봤다.


성공하려면 남들과 다른 자신만의 특성이 있어야 한다고들 한다. 이 때문에 남들과 차별화할 수 있는 특기와 개성을 기르기 위해 노력하는 젊은이들이 많다. 경쟁사회에서 차별화는 자신의 가치를 높이는 방편이 될 수 있다. 하지만 경영자의 압장에서 나는 차별화를 작은 곳에서부터 찾으라고 조언하고 싶다.


특히 단정한 외모와 언행은 자신만의 가치를 드러낼 수 있는 중요한 요소이다. 사람들은 누구나 첫인상과 말씨를 통해 상대방을 평가하게 된다. 그 사람이 아무리 지식이 풍부하고 전문적인 기술을 가졌다 해도 품행이 눈에 거슬리면 신뢰하기 힘들다. 나는 면접 때마다 지원자의 인상과 대화하는 자세를 유심히 본다. 상대방의 말을 경청하는 자세가 되어 있는지, 자신의 의견을 조리 있게 표현하는지를 보는데 인상과 말씨가 단정하고 밝은 사람에게 아무래도 신뢰가 더 생긴다. 그런 사람일수록 회사 일을 자기 일처럼 생각하고 책임감 있게 일을 처리하는 것을 수없이 보았기 때문이다.


책임감 있는 사람들은 직장에 취직을 하든 자영업을 운영하든 어디에서나 사랑받고 신뢰받는 사람이 될 수 있다. 바로 여기에 차별화의 포인트가 있는 것이다. 기업이나 사회에서 필요로 하는 인재는 어떤 사람일까, 전문성을 갖추고 책임감과 긍정적인 마인드, 창의적인 사고를 지닌 사람일 것이다. 그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을 하나만 꼽으라면 나는 책임감이라 말하고 싶다.


꿈, 희망, 미래_ 스티브 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