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경영

물가는 절대 내려가지 않는다_ EBS 다큐프레임 자본주의

정정진 2017. 1. 25. 20:20


물가는 왜 오르기만 할까


자본주의 사회에서 우리들은 끊임없이 소비활동을 한다. 자급자족도 아니고 물물교환도 아닌 이상 우리는 필요한 물건을 돈을 주고 산다. 어제도, 오늘도, 그리고 내일도 소비를 하지 않으면 우리의 삶 자체가 영위될 수 없다. 그런데 이 소비활동이 타격을 입을 때가 있으니, 그것은 바로 물가가 상승할 때이다. 들어오는 수입은 일정한데 그에 반해 물가가 오르면 그만큼 일상에서의 괴로움을 감수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푸념처럼 '도대체 물가는 왜 오르기만 하고 내려가지는 않는 거야?'라고 말하기도 한다. 또 누군가는 반대로 '물가가 내려가면 좀 더 여유로운 생활을 할 수 있을 텐데'라는 기대를 품기도 한다.


이런 생각의 배경에는 '물가는 유동적이다'라는 전제가 깔려 있다. 즉, 물가는 오를 수도 있지만 내릴 수도 있다고 여기는 것이다. 우리가 자본주의에 대해 크게 착각하는 것 중 하나가 바로 이것이다. 자본주의 세상의 현실에서는 절대로 물가가 내려갈 수 없다. 자장면의 예를 들어보자. 지금으로부터 50년 전 자장면 한 그릇의 가격은 15원이었다. 그런데 요즘에는 보통 4천~5천 원은 내야 한 그릇을 먹을 수 있다. 50년 동안 무려 300배 이상 올랐다는 이야기다. 그러는 동안 자장면의 가격은 단 한 번도 내려간 적이 없다.


간혹 '소비자 물가 안정' 또는 '소비자 물가 하락'이라는 신문기사가 게재되기도 한다. 이런 기사를 보면 우리는 올랐던 물가가 내려가고 안정세를 취한다는 느낌을 받는다. 하지만 이런 것들은 돈의 흐름이 막혔을 때에나 생기는 일시적이고 지엽적인 것에 불과하다. 소비(수요)가 둔화되면 일시적으로 물가가 정체되거나 하락할 수 있지만, 이는 또 다른 면에서 부작용을 발생시킨다.


가장 대표적으로 고용이 불안정해짐으로써 서민들은 더 큰 피해를 입게 된다. 소비가 활성화되지 않으니 기업들은 더 많은 제품을 생산할 필요가 없어지고, 그에 따라 현재 일하고 있는 사람들은 계속 고용할 필요가 없어진다. 결국 소비가 둔화되면 근로자들은 일자리를 잃게 되는 것이다. 그러니 소비 둔화에 따른 물가 안정은 당장 내 주머니에서 나가는 돈을 줄일 수는 있지만, 아예 일자리를 잃을 수 있다는 더 큰 위험성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교과서에 나온 수요와 공급의 법칙


그렇다면 왜 자본주의에서는 물가가 끊임없이 상승하는 것일까?

우리는 학창 시절 물가가 결정되는 원리를 배운 적이 있다. 그것은 바로 '수요와 공급에 관한 법칙'이다. 가격이 오르면 소비자는 수요를 줄이지만 가격이 낮아지면 소비자는 수요를 늘리기 때문에 수요곡선은 오른쪽 방향으로 하향하는 모양새를 띤다. 생산자는 가격이 오르면 생산량을 늘리고 가격이 내리면 생산량을 줄이기 때문에 공급 곡선은 오른쪽 방향으로 상향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 두 곡선이 만나는 지점에서 가격이 결정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수요가 많고 공급이 적으면 가격은 비싸지고 수요가 적고 공급이 많으면 가격은 싸진다.


하지만 뭔가 이상하다. 자장면 값이 계속해서 오르기만 한다는 것은 결국 50년 전부터 공급이 지속적으로 부족해 왔다든가, 아니면 반대로 수요(소비)가 계속해서 늘어났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가. 하지만 우리 사회의 공급이 정말 부족할까. 팔리지도 않는 물건들이 창고에 쌓여 있는 경우도 수없이 많지 않은가. 쉽게 이해가 되지 않는다. 그렇다면 반대로 공급에 비해서 수요가 계속해서 늘어난 것일까. 우리의 일상에 비춰보면 이것도 이해가 쉽지만은 않다. 수요가 많다는 것은 국민들이 돈이 많아서 계속해서 뭔가를 사들인다는 말인데, 우리의 경제생활이 그만큼 나아졌다는 의미일까. 월급이 다소 오른다고 해도 물가 또한 오르기 때문에 크게 생활이 나아지거나 많은 소비를 하기에는 무리가 있지 않은가 말이다.


결국 우리는 물가가 오르는 이러한 현상을 결코 '수요와 공급의 법칙'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다는 결론에 다다른다. 그렇다면 또 다른 법칙이 있다는 말일까? 물가가 계속해서 오르는 비밀은 바로 '돈의 양'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돈의 양이 많아지면 돈의 가치가 하락하게 되고, 결과적으로 물가가 오르게 된다.


돈의 양이 많아지면 물가가 오른다


무엇이든 양이 많아지면 그 가치가 하락하게 마련이다. 10명에게 10개의 빵이 주어졌다고 하면 빵은 매우 가치가 높다고 할 수 있다. 한 명이 단 한 개의 빵밖에 먹을 수 없으니 그 빵은 아주 소중하게 여겨지고, 따라서 '가치가 높다'고 표현할 수 있다. 그런데 10명에게 1천 개의 빵이 주어지면 어떨까. 아무래도 심리적으로 '나에게는 빵이 많이 있어'라는 생각을 하게 되고, 결과적으로 빵 한 개를 과거처럼 소중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즉, 빵의 양이 많아지면서 빵의 가치가 하락하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돈의 양이 많아지면 돈의 가치가 하락한다. 돈의 가치가 하락하니까 결과적으로 물건 값이 오른다는 결론에 이른다. 그러다 보니 빵의 공급량이 줄어들지 않아도 과거에는 1천 원을 주고 사던 빵을 이제는 5천 원을 주고 사야 한다.


'물가가 오른다'는 말은 같은 돈으로 살 수 있는 물건의 양이 줄어든다는 것을 의미한다. 예를 들면 2000년에 3천 원으로 고등어 한 마리를 살 수 있었다면, 2010년에는 3천 원으로 달랑 고등어 꼬리밖에 사지 못하는 것이다. 이는 곧 돈의 가치가 떨어졌다는 것을 뜻한다. 결국 '물가가 오른다'는 말의 진짜 의미는 '물건의 가격이 비싸졌다'는 말이 아니라 '돈의 가치가 하락했다'는 것이다.


금값을 보면 물가 상승을  좀 더 확실하게 알 수 있다. 1970년 1천 달러를 가지고 있으면 금 28온스를 살 수 있었다. 하지만 2012년 2월 현재 금 시세는 1온스당 1천 738달러. 1천 달러를 가지고 있어봐야 1온스도 되지 않는 0.58온스의 금을 살 수 있을 뿐이다. 가격이 무려 48배 이상 올랐다는 이야기다. 하지만 이는 돈의 가치가 48배나 떨어졌다는 말과 동일하다. 이 모든 것이 다 통화량의 증대가 만들어낸 현실인 것이다.


그렇다면 이렇게 생각할 수 있다. 물가를 잡기 위해서는 '돈의 양'을 조절하면 된다고. 돈이 많아지지 않으면 정상적인 '수요와 공급의 법칙'이 작동할 것이고, 그러면 물가는 오를 때도 있지만 내릴 때도 있을 것이 아닌가. 하지만 안타깝게도 자본주의는 이 '돈의 양'을 조절할 수 있는 힘이 없다. 아니, 보다 정확하게는 '돈의 양'이 끊임없이 많아져야만 한다. 그것이 바로 자본주의 사회이다. 돈의 양이 많아지지 않으면 우리가 살아가는 자본주의 사회는 제대로 굴러갈 수 없다. 그것은 마치 '직장인이 월급을 받지 않으면 생계에 위협을 받는다'와 같은 너무나 당연한 말이다. 따라서 '물가를 조절하기 위해서 돈의 양을 줄이라'는 말은 곧 직장인들에게 '월급을 주지 않을 테니 우리 회사를 위해 열심히 일하라'는 말과 비슷하다. 안타깝지만 자본주의 사회에서 물가가 내려갈 것이라고 기대하는 것은 '순진한 생각'에 불과하다.


정부가 '물가안정대책'을 내놓는 이유


자본주의 하에서 물가는 지속적으로 오른다고 했다. 그런데 한 가지 궁금한 점은 정부가 지속적으로 '물가안정대책'이라는 것을 내놓는다는 점이다. 정부의 이러한 대책은 과연 자본주의의 물가 상승을 막을 수 있는 것일까?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물가 상승의 속도를 '억제'할 수는 있지만, 근본적으로 물가 자체를 낮추거나 고정시킬 수는 없다.


우리는 신문에서 가끔 이런 글을 볼 수 있다.

'정부는 올해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1.7%에 머물며 안정세를 보일 것으로 전망했다.'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물가가 안정되고 있나 보다'라고 생각하겠지만 여전히 1.7% 정도의 물가가 올랐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즉, 소비자물가가 안 올랐다는 이야기가 아니라 '1.7%만 올랐다'는 말에 불과하다. 물가 상승의 속도가 아주 빠르지 않고 다만 안정적으로 오르고 있는 것일 뿐이다. 결국 물가는 계속해서 오른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사실 정부는 공공요금 억제나 세제상의 특혜, 유통구조의 개선을 통해 물가안정대책을 추구하고 있긴 하다. 그러나 그 자체가 자본주의의 시장원리에 부합하지 않기 때문에 광범위하게 적용할 수 없다는 한계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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