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경영

이공계 기피현상에 대하여_ 김태유 교수

정정진 2016. 4. 26. 11:46



이공계 기피현상에 대하여


상당히 오래전부터 우수인재들이 이공계를 선택하지 않고, 제조업도 우수인재를 구할 수 없어 문제라는 지적이 많았습니다. 또한 이공계에 진학한 우수인재들도 로스쿨, 의학전문대학원 등으로 빠져나가는 문제가 반복되고 있는데요, 이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실제로 IMF 외환위기 이후에 이공계를 지원하는 우수한 학생들의 수가 급격히 줄었습니다. 그런데 한국만 그런 것이 아니라 일본도 그랬고 미국도 그랬죠. 혹자는 이런 사실을 근거로 해서 일본과 미국도 그랬으니 우리도 그러는 게 당연한 것 아니냐고 하면서 해외에서 우수한 인재를 데려오면 된다고 하는데 말도 안 되는 소리입니다. 일본이나 미국은 1인당 국민소득이 5만 달러대입니다. 인도나 파키스탄등 제3국의 아주 우수한 인재들이 상대적으로 선진국보다 임금이 낮은 한국에 오겠습니까? 당연히 일본이나 미국으로 갑니다. 삶의 질까지 생각하면, 미국에 특히 많이 갈 수밖에 없습니다. 실리콘밸리에 가면 세계 최고의 공과대학 중 하나인 인도의 IIT 출신 CEO 가 엄청나게 많습니다.


이처럼 미국은 제조업이 공동화되어도 외국에서 우수한 인력들이 들어오지만, 우리는 한국의 우수 인재들이 이공계를 가지 않고, 제조업이 무너지더라도 외국에서 일류인재들이 전혀 들어오지 않는 상황이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이공계 기피현상이 표면적으로는 우리나 일본, 미국이 모두 동일하게 보이지만 우리에게 훨씬 심각할 수밖에 없다는 겁니다. 수능시험에서 자연계 지원율이 1997년도부터 현저하게 감소해왔고, 그나마 자연계에서 우수한 사람들은 다 의학계로 갑니다. 안정적인 미래에 치중하게 되면서 우수한 인력들이 이공계로부터 유출되고 있다는 게 우리나라 공과대학의 슬픈 현실이죠. 아니, 공대의 슬픈 현실인 것을 넘어 국가적으로 심각한 일입니다.


"비생산적인 서비스산업으로 이공계 고급 인재가 유출되는 것을 우려해야 한다"


흔히들 의료산업, 금융산업, 법률산업을 3대 서비스업이라 하는데, 공교롭게도 이 세 가지 산업이 현재 이공계 핵심인재를 빼가는 분야입니다. 이공계에서 제일 우수한 핵심인재가 그쪽으로 가버리는 거죠. 물론 아주 우수한 사람이 피부를 관리하는 장비를 만들고, 그 기계가 수십만 대 생산되어 시장에 깔리면서 엄청난 가치를 창출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우수한 사람이 피부과 전문병원에서 자기 손으로 직접 치료하고 있으면 그 환자 한 명씩밖에 못 보는 것 아닙니까? 이것은 단지 한 개인의 진로 문제가 아닙니다. 우리가 그 중요한 두뇌의 가치를 수십만 배 확장해서 사회 전체의 파이를 키우는 데 기여하도록 만들 것이냐, 아니면 그 두뇌가 혼자 병원에 앉아서 환자 한 명씩 치료하도록 할 것이냐의 문제, 즉 국가적 차원에서의 인적자원 활용 문제이기도 합니다.


또한 이공계 기피현상이 지속되면 제조업의 부실화를 초래하게 됩니다. 우리 산업은 여전히 선진국 대비 기술 격차가 엄청난데, 이를 만회하려는 기업의 연구개발 활동은 정작 인력 확보에서부터 큰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이렇게 기술인력 확보에 어려움을 겪는 회사들은 기술적인 측면에서 경쟁력을 상실할 수밖에 없습니다. 제조업이 축소되면 양질의 고용이 축소되고, 결국 서비스에 대한 소비도 줄어들게 되어 경제 전체가 위축될 것입니다. 예를 들어 우리나라에 자동차 생산공장과 음식점만 있다고 가정하면, 자동차 생산이 반으로 줄면 고용이 반으로 줄고, 고용이 반으로 줄면 음식점이 반으로 줄고, 그러면 우리 경제가 전부 반 토막이 나지요.


반대로 자동차 생산이 2배로 커져서 자동차 수출이 2배로 늘면 고용이 2배로 늘고, 그래서 서비스산업도 2배로 느는 거예요. 그 역은 성립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제조업이 굉장히 중요합니다. 실제로 디트로이트가 미국 자동차산업의 본거지였지만, 자동차산업의 쇠퇴와 함께 이 지역이 완전히 망했어요. 오하이오 주의 영스타운도 철강산업의 본거지이자 한때 미국 최고의 부자 도시였는데 철강산업의 쇠퇴와 함께 지역 인구가 절반으로 줄고 인구 중 4분의 1이 빈민층이 되었습니다. 무비판적으로 서비스업 육성을 내세우는 정부나 일부 사람들의 주장대로라면 그리스가 인구 대비 의사, 변호사 숫자가 타 유럽 국가에 비해 단연 높으니 그리스가 제일 선진국이 되어야 하는데 현재 어떻게 되어 있습니까?


이공계 기피현상이 장차 제조업 발전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러한 현상이 장기화할 것으로 보십니까?


앞서 언급한 이공계 기피현상과는 대조적으로 최근 현실사회에서는 이공계가 상당히 각광받고 있습니다. 2014년 국내 굴지의 모 대기업에서 80%를 이공계로 채용했다고 하죠. 대기업뿐만 아니라 중소기업에서도 지금 이공계 인력을 훨씬 더 많이 필요로 합니다. 지식기반사회로 가면서, 갈수록 고도의 기술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그런 면에서 이공계 기피현상은 IMF 외환위기 이후 좀 길어지기는 했으나, 일시적인 현상으로 볼 수도 있을 것입니다. 실제로 현재 4년제 대학의 전공별 취업률을 살펴보면 상위권은 다 이공계입니다. 그리고 국내 8대 대기업의 사장급 이상 CEO 중 절반 가까이가 이공계 출신일 정도로 이공계가 약진하고 있습니다. 이공계가 예뻐서 그런 게 아니라 이공계 출신 인력을 중용하면 기업의 성과가 좋아지기 때문에 이루어지는 합리적인 선택의 결과입니다.


이직률 측면에서도 공학 쪽 이직률이 높지 않습니다. 직종별 소득분포에서도 공학계가 제일 높습니다. 보통 의사들의 수입이 가장 높을 것으로 생각하는데, 앞으로는 의사들이 버는 돈의 상당 부분이 의료장비를 갖추고 유지하는 데 들어갈 것입니다. 요즘은 진단도 의사가 직접 하지 않는 경우가 점점 많아지고 있습니다. 옛날에 의사는 직접 환자를 보고 진찰해서 병을 진단했는데, 요즘은 그 역할이 전부 랩으로 넘어갔어요. 병원에서 혈액 채취에서 랩에 보내면 질병의 종류와 경과까지 100% 완벽하게 분석해내지 않습니까? 치료 영역에서도 이미 많은 로봇들이 수술에 투입되고 있는데, 앞으로 수술비용의 80%는 로봇회사가 벌게 될 거라는 분석도 있습니다. 이런 추세를 봤을 때 결국 21세기는 어쩔 수 없이 이공계가 주도하게 될 거라고 봅니다. 현재 미국 유망 직종 순위를 보면 대부분 공학입니다. 이공계 아닌 것은 13위의 재정학 하나 들어 있고, 나머지는 모두 공학입니다. 또 고소득 직업군을 보더라도 5위에 오른 경제학 하나만 빼고 나머지는 다 이공계가 차지하고 있을 정도입니다.


1차 산업혁명에서 영국이 성공하고, 2차 산업혁명에서는 미국이 성공했습니다. 3차 산업혁명에서 우리가 성공하려면 우리와 경쟁하게 될 선진국들보다 먼저, 더 빨리 우수한 인력들을 이공계로 보내야 합니다. 우리가 이공계를 육성해서 제조업에 집중하면 우리나라도 선진국이 되어서 세계 최고 국가가 될 수 있습니다. 제가 계속해서 가치창출산업, 특히 제조업의 성공 필요성을 역설하는 게 바로 이런 이유 때문입니다.


산학협력에 대하여


산학협력을 강조하는 목소리는 높은데도 실제로 구현하는 데는 적잖은 어려움이 있는 듯합니다. 새로운 기술적 아이디어가 산업계에서 결실을 맺기 위해서 필요한 조건이 무엇일까요?


가치창출이라는 동전의 앞면은 과학기술이고 뒷면은 기업입니다. 그러니까 과학기술, 공학이 기업활동과 결합해야 성공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영국이 세계적인 선진국이 된 가장 큰 계기는 제임스 와트의 증기기관 발명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사실 증기기관 기술은 프랑스의 드니 파팽이 먼저 개발했는데 프랑스 사회가 그것을 받아주지 않아서, 결국 그 기술이 영국에 가서 꽃을 피웠죠. 제임스 와트도 처음부터 성공을 거둔 것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사업을 하다가 크게 실패해서 망했었고, 한때는 자살까지 생각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때 매튜 볼튼이라는 걸출한 사업가가 제임스 와트의 증기기관을 살펴보고서는 성공하겠다는 확신이 들었던 겁니다. 증기기관을 이용하면 당시 수력으로 돌리던 섬유공장, 직조공장을 강물이 없는 지역에서도 운용할 수 있을 것으로 본 거죠. 그래서 합작회사를 만들기 위해 실사를 해보았더니, 제임스 와트가 증기기관 특허를 내놓고 시간이 많이 지나서 특허 만료가 고작 7년밖에 남지 않았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래서 매튜 볼튼이 의회에 청원해서 제임스 와트의 증기기관 특허만 20년을 연장해줬습니다. 사실 이것은 형평성을 중시하는 법률가들의 시각에서 보면, 말도 안 되는 일이었죠. 그런데 결과적으로 제임스 와트의 특허를 연장해주는 바람에 증기기관이 대규모로 실용화되었고, 영국에서 산업혁명이 일어나서 영국이 세계의 종주국이 되었죠.


"기술이 꽃피기 위해서는 공학자, 기업가, 정부가 힘을 합쳐야 한다"


이 일화가 산학 간의 관계에 대해 시사해주는 바가 큽니다. 하나의 기술 그 자체로 영국이 강국이 된 것이 아닙니다. 시대를 바꿀 수도 있는 그 기술의 가치를 알아보는 기업가가 있었고, 또 기술을 가진 이와 기업가를 법률과 제도로 뒷받침해준 의회와 정부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니까요. 우리의 산학관계도 이처럼 대학에서 기술을 개발하고, 그 기술의 가치를 알아보고 활용할 수 있도록 기업가들이 앞장서며, 또 이런 활동을 제도적으로 지원해주는 정부와 국회가 있어야 합니다.


축적의 시간 / 김태유 서울대학교 산업공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