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7년 고종은 이상설을 대표로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열리는 만국평화회의에 밀사를 파견했다. 밀사단은 이상설과 이준, 이위종이었다. 소위 을사보호조약 혹은 을사늑약에 의해 대한제국 외교권은 일본에 넘어간 상태였다. 고종은 그 조약이 부당함을 세계만방에 알리고 독립을 호소하기 위해 이들 세 사람을 파견했다. 1907년 4월 20일 자 고종 서명이 날인된 신임장을 들고 이들은 기차로, 배로, 걸어서 도착한 지구 반대편 도시에서 을사조약이 부당함을 만방에 알렸다.
대표는 이상설이었다. 이상설은 영어와 프랑스어에 미숙했다. 그래서 함께 간 이위종이 실질적인 대표 역할을 했다. 외국 기자들과 만날 때 마이크를 잡은 사람은 이위종이었다. 본회의장에 입장이 불허되자 이들은 외국 기자들 앞에서 회견을 했다. 회견장에서 기자들을 상대한 사람은 이위종이다. 이위종은 아버지 이범진을 따라 미국과 러시아, 프랑스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사내다. 헤이그에 파견됐을 때 이위종은 스물세 살이었다. 기자들 앞에서 이위종은 준비한 연설문을 꺼내 읽었다. 다음은 그 일부다. 1907년 8월 22일 자 미국 <인디펜던트>지에 실린 연설문이다. 이 잡지는 이위종을 '왕자 이위종'으로 소개했다. 연설문 제목은 '한국을 위한 호소문'이다.
일본 정치가들은 늘 일본이 일본만이 아니라 모든 문명과 모든 국가의 상업적 이익을 위해 싸우고 있다고 주장했다. (중략) 하지만 놀랍고 슬프게도 일본은 '정의롭고 평등한 기회'를 보장한다는 구호와 달리 추하고 불의하며 비인도적이고 이기적인 야만스러운 행동을 보였고 지금도 그러하다.
헤이그 밀사는 바로 이 일본의 야만성을 고발하기 위해 네덜란드로 간 밀사들이었다. 그런데 이위종이 한 이 연설 첫머리는 우리 민족주의적 상식과 많이 다르다. 위 인용문 가운데 '중략'으로 가려진 부분을 열어보자.
잔인한 지난 정권의 학정과 부패에 질려 있던 우리 한국인은 일본인을 희망과 공감으로 맞이했다. 우리는 일본이 부패한 관리들에게 엄격한 잣대를 적용해 만민에게 정의를 구현하며 정부에 솔직한 충고를 해주리라고 믿었다. 우리는 일본이 그 기회를 활용해 한국인에게 필요한 개혁을 하리라고 믿었다.
황제 신임장을 소지한 외교관 이위종이 한 연설문이었다. 그 연설문에 등장한 '잔인한 정권'을 장악하고 지휘한 사람이 바로 황제 고종이다. 첫 글자부터 끝 인사까지 잔악한 일본 성토로 채워도 모자랄 터인데, 이위종은 '지난 정권의 학정'을 고발했다. 한 나라 황제가 자기 비자금으로 파견한 밀사 입에서, 그 황제가 다스린 나라가 엉망진창이었다는 말이 스스럼없이 튀어나왔다. 정말 고종은, 정말 그가 만든 대한제국은 민족 독립을 위해 투쟁한 선하고 가련한 황제였고 가여운 정권인가.
왜 우리는 이 대목을 모르고 있었던가.
이 문장은 고종이 자주 독립을 염원하는 개혁군주였다는 허황된 신화를 깨뜨릴 수 있는 사실, 팩트이기 때문이다. 헤이그 밀사들이 고종 정권을 맹비판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그 신화가 붕괴되기에, 고종 맹신자들은 이 문장을 아주 쉽게 삭제해버리고 선택적으로 인용해버린다.
초대형 버스를 몰고 고속도로를 역주행한 운전자가 있었다. 그런데 부산에서 서울까지 무사히 주행했다. 사고가 나지 않았다. 그 운전자를 모범운전자라고 할 수 있을까. 소속 회사로부터 징계를 당함은 물론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미수범으로 처벌받아야 할 운전자다. 그가 고종이다. 조선이라는 회사 간판을 대한제국으로 바꿔놓고서는 폭주를 거듭하다가 자발적으로 폐업한 사주다. 사람들은 그 '운전기술' 혹은 결과적인 모범 역주행자를 보고 고종을 개혁군주, 비운의 망국 군주라 부른다.
이제 고종 신화 표지를 찢는다. 고종은 만 가지 악의 근원이다. 그는 회사 돈으로 구입한 슈퍼카를 폐차 직전으로 만들어놓고 뒤늦게 여기저기 티를 내며 부품을 구하러 다닌 횡령 혐의자다.
매국노 고종_ 박종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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