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읽는 사람들을 보기가 힘든 세상이다. 그래서일까? 사람들의 생각이 얕아지고 철학이 없어진다고 학자들은 걱정한다. 모든 것을 손 안의 휴대폰에 의존한다. 스낵만 집어먹다 보면 영양가 있는 음식을 멀리하게 되는 것처럼 휴대폰 검색으로 날을 지새우는 우리는 이미 스낵컬처의 중독자인지도 모른다. 얼마 전 방송국에서 만난 후배작가와 이런 문제를 진지하게 고민했다.
"저도 요즘 확실히 전보다 책을 덜 읽어요. 시간 나면 휴대폰 보면서 노닥거리게 돼요."
나 역시 그렇다. 감기로 꼼짝없이 드러누워 있던 어제 하루 종일 휴대폰만 만지작거렸다. 이런 날은 절로 한숨이 푹 나온다.
하루 종일 휴대폰 사생팬으로 활동했지만 내 손에 쥔 것도 내 머릿속을 채운 것도 없다. 물론 뉴스 검색도 착실히 했다고 생각했지만 정작 하루 종일 들락날락했던 곳은 몇몇 커뮤니티와 강림하신 지름신을 맞은 인터넷 쇼핑몰이었다.
"아휴, 나도 요즘 그래서 불안하다니까."
"맞아요, 맞아! 불안해요, 선배"
우리는 서로 박수까지 하면서 동의했다.
책을 읽지 않으면 불안하다. 내 경우 확실히 그렇다. 정치라는 치열한 전쟁터에서 나는 언제나 책을 들고 다녔다. 책은 나의 무기였다. 은장도였다. 책을 읽고 있는 그 순간은 안전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하나라도 뭘 확실히 알게 됐다는 느낌이 나를 안심시켰다. 지식을 얻었고 그걸로 지혜로워졌다는 확신이 들어서였다. 책과 함께 하는 그 순간은 마치 단단한 요새 속에 있는 느낌이었다.
정치판이란 총알이 빗발치던 진쟁터를 떠난 뒤에도 나는 책을 함께 카페에 앉아 읽었다. 주로 읽었던 책들은 건강, 여행, 요리 분야의 책, 그리고 소설이었다. 진짜 끝없이 읽었다. 5분 단위로 움직이던 스케줄에서 어느 날 갑자기 백수가 되었지만 아무 문제가 없었다. 시간을 매우 유용하게 보낼 수 있는 책 읽는 습관이 내게 있었기 때문이다.
어려운 시간을 뒤로 하고 피가 되고 살이 되는 책을 다시 열독했다. 물론 인터넷과 휴대폰에는 수많은 지식과 정보가 넘쳐나고 있다. 하지만 책을 읽는 것과는 엄연히 다르다. '휴대폰과 함께'가 '책과 함께'를 결코 넘어 설 수 없는 것이다.
예를 들면 '휴대폰과 함께'는 수백 명이 빼곡히 들어찬 강의실에 있는 것과 같다. 모두가 익명성을 갖고 그저 스쳐가는 뜨내기 청중일 수 있다. 하지만 '책과 함께'는 마치 오랜 교류가 있는 스승한테 1:1 개인지도를 받고 있는 것과 같다. 더 많이 발전하라고 등을 토닥여주는 느낌이다. 행간을 읽어내는 호흡 속에서 성장하는 내 모습이 감지된다.
그런 점에서 인터넷에 범람하고 있는 지식은 뜨거운 지식이다. 마샬 맥루한이 살아 있다면 인터넷을 '뜨거운 미디어'라고 규정했을 것 같다. 하지만 책은 그의 정의대로 '멋진 미디어'이다. 가끔 최고의 칭찬이 "그 사람 참 쿨해" 일 때가 있듯이 책은 한마디로 나를 쿨한 존재로 만들어준다.
책을 읽지 않거나 책을 읽는 것이 매우 낯선 일이 된다면? 그건 삶에서 너무나 귀중한 기회를 놓치는 것이다. 전 세계를 여행할 수 있는 일종의 여권 없이 이 시대를 사는 것과 같다. 그렇게 인생의 영역이 좁아지는 것은 태어난 동네에서 그대로 숨을 거두는 것과 같다. 동시에 몰지성적인 삶을 살아가게 된다.
마트에서 파는 값싼 PB상품도 유용하지만 때로는 명품을 멋지게 알아보는 안목도 필요하다. 책을 읽고 나의 지식으로 체화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춘다면 인생은 재미있어지고 다양해진다. 총천연색으로 화려해진다. 진정 럭셔리한 인생이 펼쳐지는 셈이다.
나훈아의 <고향역>도 명곡이다. 동시에 파바로티가 부르는 <남몰래 흐르는 눈물>도 명곡이다. 때로는 지평을 넓혀 황병기의 <침향무>와 쇼스타코비치의 곡도 즐길 수 있는 삶이 훨씬 멋지지 않을까?
책을 통해서 얻는 지식과 정보는 그대로 피가 되고 살이 된다. 책 한 권을 쓰기 위해 지은이가 바치는 시간과 노력을 그대로 흡수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책을 통해 지식을 얻게 되면 무엇이 진실인지 기준이 모호한 '너절한 인터넷 지식'을 판별할 수 있는 능력도 갖게 된다.
나의 경쟁력은 100% 책에서 나왔다. 부모에게서 어떤 재산도 물려받은 것이 없지만 부족하거나 아쉽다고 생각해본 적 없다. 우리 부모님은 쉬운 책도 어려운 책도 빼곡한 책장을 거실에 놓아두셨기 때문이다. 그것으로 충분했다.
어릴 때부터 책에 코를 박고 시간 가는 줄 몰랐다. 모든 답을 책에서 구했고 만족스러운 답을 얻었다. 책을 통해 얻은 지식으로 그렇게 만들어진 능력으로 돈도 벌었고 직장도 가졌다. 나에게 물고기를 잡는 법을 가르쳐 준 것은 부모님이 마련해준 책이 가득한 책장이었다.
책은 내게 늘 정답을 가르쳐주었다. 길을 묻기 위해 우왕좌왕할 필요가 없었다. 내 인생에서 구글맵은 바로 책이었다. 당신도 늘 책을 가까이 하고 있다면 결코 길을 잃지 않으리라 확신한다.
산다는 것은 1%의 기적_ 전여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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