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에서 창의를 키우기 위해서는 자유를 주고 긍정 유인을 던져 주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사실 더 중요한 것은 바로 이것 '낯설게 하기'입니다. 낯설게 해야 창의가 발생한다는 저의 주장이 낯설 수도 있을 텐데요. 이 그림을 보면서 시작하겠습니다.
지우개가 달린 연필입니다. 학창 시절 누구나 가지고 다니던 물품이지요. 참 편한 물건입니다. 뭔가를 필기하다 실수하면 뒤에 달린 지우개로 쓱 지워 버리면 되니까요.
이 물건을 왜 소개시켜 드리냐고요? 이유는 간단합니다. 연필이 발명된 것은 1564년이고요. 지우개가 발명된 것은 1770년입니다. 그런데 이 지우개를 연필 뒤에 달기 시작한 것은 언제일까요? 바로 1858년입니다. 지우개가 발명되고 나서도 그 지우개를 연필에 다는 데 무려 86년이 걸렸다는 것입니다. 그게 어리석은 우리의 모습입니다. 뭐 이거는 일도 아닙니다. 옆의 그림을 보시죠.
아주 평범한 캐리어입니다. 캐러이에 바퀴가 달려 있죠. 그래서 우리는 이 캐리어로 쉽게 짐을 옮길 수 있습니다. 가방에 바퀴가 달려 있다. 참 당연한 일 같지만 절대 당연한 일이 아니었습니다. 바퀴가 발명된 것은 5000년 전일 테고, 가방이 발명된 것도 수천 년 전의 일일 겁니다. 그런데 이 가방에 바퀴를 단 것은 1970년입니다. 그래서 고전 영화를 보면 가는 허리에 힘이라고는 하나도 없을 듯한 오드리 햅번 같은 여자 주인공이 무거운 가방을 낑낑대면서 들고 다니는 것입니다. 어이없지요. 수천 년 동안 가방에 바퀴를 달겠다는 그 간단한 생각을 못했다니, 인간의 창의력이란 그렇게 형편없나 봅니다.
왜 그랬을까요? 바로 '낯설게 하기'를 못했기 때문입니다. 낯설게 하기의 반대말은 '일상적 사고하기'일 것입니다. 일상적으로 연필은 연필, 지우개는 지우개, 바퀴는 바퀴, 가방은 가방 이렇게 생각해 왔기에 어떤 사람도 지우개와 연필을, 가방과 바퀴를 연결시키지 못했던 거지요. 그게 바로 창의입니다. 왜 잡스가 창의적인 사람입니까? 모든 사람이 컴퓨터는 컴퓨터, 전화기는 전화기, MP3는 MP3라고 생각할 때, 컴퓨터와 전화기와 MP3를 한꺼번에 묶었죠! 그것이 바로 스마트폰 아니겠습니까? 모든 사람이 화려한 디자인인을 생각할 때, 애플의 수석 디자이너인 조나단 아이브와 잡스는 이렇게 말합니다. "최고의 디자인은 디자인이 사라져서 보이지 않는 것"이라고요. 그러한 창의적인 철학이 오늘날 누구도 따라 하기 힘든 독보적인 애플의 디자인을 만든 것 아니겠습니까?
어떻게 하면 이 '낯설게 하기'를 할 수 있을까요? 첫 번째 방법은 간단히 말해 여행하는 겁니다. 여행 간다는 말의 동의어가 바로 '낯설게 하기'아니겠습니까? 단체로 철저한 계획에 의해 움직이는 여행이 아니라 혼자만의 계획 없는 배낭여행이라면 더 좋겠죠. 그랜드 투어라는 말을 들어 보셨나요? 거대한, 혹은, 대단한 여행이라고 번역될 텐데, 여행사 광고가 아니라 18세기 영국에서 청년이 된 귀족 자제를 부모가 프랑스와 이탈리아로 여행을 보내던 관행을 일컫는 말입니다. 르네상스 시대부터 등장한 믿음, 즉, '더 멀리 갈수록 더 많이 보고 알게 된다'를 실천했던 것이지요. 당시 귀족 자제의 부모가 가장 고민하던 것 중 하나는 이 여행을 같이해 줄 동행 교사를 구하는 것이었습니다. 동행 교사 중 우리가 알고 있는 유명한 사람이 바로 국부론의 저자인 아담 스미스입니다. 18세기 이후 영국에서 수많은 발명품과 획기적인 제도가 출현하여 해가지지 않는 강국이 된 배경에는 바로 이러한 그랜드 여행에서 느꼈던 낯섦이 그 배경이 아니었을까요?
여행도 좋지만 좀 고리타분한 이야기일 수도 있는데 이 '낯설게 하기'에 가장 좋은 방법은 바로 독서입니다. 여행이 우리를 직접적으로 낯설게 한다면 독서는 우리를 간접적으로 낯설게 합니다. 원래 '낯설게 하기'라는 말 자체가 문학에서 나온 말입니다. 지각의 자동화를 피하기 위한 예술 기법으로 등장한 것인데 소련 문학이론가 빅토르 시클롭스키에 의해 개념화된 용어입니다. 지각의 자동화를 깨뜨린다는 말은 이런 뜻입니다.
막대사탕을 먹는 아이가 있다고 해 봅시다. 그러면 우리는 그걸 보고 이렇게 말하겠죠. "사탕을 입으로 먹었다." 지각이 이렇게 바로 자동화가 된다는 이야기입니다. 한마디로 그냥 평범한 일상적 사고를 한다는 것이지요.
그런데 이런 지각의 자동화는 기억으로 남지 않고 문학적 감동도 주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이것을 이렇게 표현해 보는 거죠. '쓰디쓴 사탕을 몸 안에 녹여 버렸다.' 이것이 지각의 자동화 깨뜨리기입니다. 그 순간 사탕을 먹은 행위는 단지 사탕을 먹은 행위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뛰어넘는 어떤 특정한 행위로 기억되는 것이지요.
독서는 지각의 자동화를 막는 지름길입니다. 내가 일상적으로 생각하고 내 몸에 굳어져 버린 것, 저는 이것을 선입견과 편견이라 표현하고 싶습니다. 그건 그랬으니까 당연히 이래야 한다는 사고방식. 그것이 바로 지각의 자동화, 또 다르게 말하면 선입견과 편견에서 나온 관습이겠지요. 이것을 깨뜨릴 수 있다는 것입니다.
노벨상 수상자 중 22%는 유태인입니다. 유태인 인구는 1,400만 명밖에 되지 않습니다. 이 유태인들을 이렇게 만든 것은 무엇일까요? 여러 요인이 있겠지만 저는 단연코 독서를 꼽고 싶습니다. 유태인 평균 독서량 68권, 한국인 연평균 독서량 9.1권. 이 차이 아닐까요? 북유럽 강국 스웨덴은 인구 980만 명 가운데 300만 명 이상이 하나의 독서 클럽에 가입해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우리에게도 소개된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은 100만 부 이상 팔렸습니다. 스웨덴 인구가 한국의 1/5임을 감안했을 때 우리나라로 치면 500만 부가 팔린 것이지요. 바로 이것이 스웨덴의 저력 아니겠습니까?
이들 국가들이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도태될 거라고 쉽게 말할 수 있을까요? 고위 임원 교육과정에서 소포클레스의 '안티고네'를 읽고 기업의 변화방향을 제시하라는 문제를 내는 마크 저커버그는 그리스 라틴 고전을 원전으로 읽는 것이 취미라고 합니다. 스티브 잡스는 어린 시절 담임으로부터 "뛰어난 독서가지만 독서를 하느라 너무 많은 시간을 허비한다"는 평을 들었다고 합니다.
이 외에도 수없이 많은 사례가 있겠지요, 자, 결론입니다. 4차 산업혁명은 정말 세상의 모든 것을 다 바꾸어 나갈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4차 산업혁명이 바꿀 수 없는 진실 하나는 독서하는 자가 여전히 승리한다는 진실일 겁니다.
한 권으로 정리하는 4차산업혁명_ 최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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