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한 사람에게 돈을 직접 주었을 때와 자립해야 되겠다는 의지를 심어 주었을 때 중 어떤 때가 그들이 가난에서 벗어날 수 있는 확률이 더 높을까? 당연히 자립 의지를 심어 주는 쪽이라고 답변할 것이다. 자립 의지를 키워 성공의 가능성을 높여 주는 방법, 바로 문화 자본에 대한 이야기다.
문화 자본론으로 잘 알려진 프랑스 사회학자 피에르 부르디외의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피에르 부르디외는 작은 농촌 마을에서 태어났다. 풍족하지 못한 가정에서 성장해 지적인 가정 교육을 받지는 못했지만 명문 파리 고등사범학교에 진학했다.
그런데 아무리 열심히 공부해도 자신의 학점이 일정 수준 이상으로는 올라가지 못했다. 원인을 찾던 부르디외는 의외의 지점에서 답을 얻을 수 있었다. 파리의 상류층이 선대로부터 대대로 물려받은 어휘력 등의 문화적 소양과 자신과 같이 가난한 농촌 마을의 가정에서 부지불식간에 전수된 문화적 소양 사이에는 독서로는 극복할 수 없는 차이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다. 부르디외는 이로부터 불평등이 시작되고, 경제적 불평등을 넘어서는 문화적 불평등이 존재함을 발견해 이를 '문화 자본'이라는 이름으로 개념화했다.
나는 빈곤을 극복하고 계층을 한 단계씩 올라서기 위해 필요한 요소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이 문화 자본이라고 생각한다. <계층 이동의 사다리>라는 책에서도 같은 내용이 소개되어 있다. 저자인 루비 폐인은 하위 계층의 아이들에게 그들이 자라 온 가정에서는 얻을 수 없는 문화 자본을 학교 교육을 통해 지원하는 것이 격차를 줄이고 계층 간의 이동을 원활하게 하는 원동력이라고 설명한다.
이런 모습을 정책에 반영한 사례가 내가 서울시장 재직 시절에 추진한 '희망의 인문학 강좌'이다. 미국의 얼 쇼리스가 빈부 격차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인문학을 가르쳐야 한다는 신념으로 노숙인, 마약 중독자, 재소자, 전과자 등에게 인문학 교육 과정을 제공한 '클레멘트 코스'에서 착안했다.
'희망의 인문학 강좌'에 참여한 수강생들은 대개 노숙자였다. 강연은 서울시립대, 경희대 등 서울 시내 5개 대학에서 진행됐다. 나 역시 직접 강의에 참여했는데 강좌는 주로 인문학적 소양을 기를 수 있는 내용들로 채워졌다. 의외로 80%가 넘는 출석률을 보였으며, 3~4년 동안 많은 분들이 스스로 직업을 찾았고, 다양한 성공 사례에 대한 수기가 책으로 출간되기도 했다. 수료를 할 때는 학교 측의 배려로 대학 졸업식과 마찬가지로 학사모와 가운을 입혀 주고 졸업장도 수여했다. 돈을 준 것이 아니라 그들이 스스로 참가하고 노력해서 이뤄 냈다는 자부심과 경험을 심어 준 것이다. 정부 정책의 구상과 방향에 따라 현격한 결과의 차이를 만들어 내는 좋은 사례였다.
계층 이동의 사다리는 돈으로만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이른바 문화적 소양을 북돋우는 정책적 접근을 병행해야 계층 이동을 통한 격차 해소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다. 정신적, 문화적 지원을 어떻게 정책적으로 지원하는지에 따라 한 사람의 인생이 바뀔 수 있다.
미래_ 오세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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