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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본래 붓다_ 법정스님

정정진 2015. 8. 17. 11:37

 

 

말년에 스승은 부드러움이 넘치셨지만, 처음 뵈었을 때만 해도 퍼렇게 날이 선 칼 같아 가까이 가면 베일 것 같았어. 그리고 어쩌다 스님과 눈길이 마주치면 날카로운 검사처럼 "너 가짜지!" 하실 것 같아 웅크린 적이 적지 않았어. 그러나 스승을 날카롭게 뵌 건 순전히 내 탓이었어. 옹글지 못하게 살아왔기에, 그걸 들킬까 봐 그랬을 거야.

 

대나무 자라는데 마디와 마디 사이에서 새로운 세포가 만들어져 낱낱 마디 세포가 한꺼번에 자란대. 이를테면 죽순 마디가 50개라면 저마다 2 cm 씩 자라니까 한꺼번에 1미터나 자라는 것이지. 그러니까 죽순이 올라오고 나면 부쩍 자랄 수 있는 것 같아. 스승 삶에도 이처럼 마디가 적지 않으시련만, 아둔한 내 눈에는 누구나 다 보는 세 마디만 들어왔어.

 

해인사 선방에 있을 때, 한 도반이 조실로 계시는 금봉 스님에게 공부 점검을 받으러 가는데 같이 가자고 해서 따라 들어가셨어. 그 도반은 금봉 스님께 화두가 잘 들리지 않는데 어떻게 하면 화두를 잘 들 수 있겠느냐고 여쭸어.

 

"그래? 무슨 화두를 들고 있는가."

 

"부모미생전 본래 면목, '부모에게 몸 받아 태어나기 전에 본디 내가 누구였는가?' 화두를 들고 있습니다."

 

"본래 면목은 그만두고 지금 당장 그대 면목은 어떤 것인가?"

 

곁에서 듣고 있던 스승은 '앗!' 하며 더 물을 것 없이 방을 나오셨대.

 

스승은 이렇게 우리 멱살을 거머쥐셨어.

 

"불교는 과거나 미래에 있지 않습니다. 법은 과거나 미래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때 당장, 그 자리, 오늘 바로 이 자리입니다. 오늘 우리가 참선하고 기도하고, 염불하고 주력하는 것은 바로 지금 이 순간에 하는 겁니다. 사는 일도 마찬가지입니다. 내일은 없습니다. 어제도 없습니다. 늘 지금, 바로 이 자리입니다. 지금 이 자리를 떠나서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모든 것은 이미 그대로 옹글다. 더 보태고 얻어야 할 것 없이. 이미 다 갖춰져 있는데 달리 어디서 무엇을 찾을 것인가. 이제 이대로가 본디 갖춤인데, 어디서 무엇 찾아 갖추려는가. 붓다는 이미 옹글어 늘 이루어지는 사람이야. 그래서 '본래 붓다.'

 

우리가 흔히 하는 수행을 하는 건, 나중에 부처되고 성불하기 위함인데, 늘 지금 여기만 존재한다면, 참선하고 염불하고 기도하는 게 나중이 아닌, 지금 이 순간 해탈하고 성불하기 위함이라는 뜻으로 여겨진다. 그렇다면 수행에 대한 패러다임이 완전히 바뀌게 된다. 좋은 글이다.

 

 

법정스님을 그리다, 달 같은 해 / 기연택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