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을 행복하게 살리는 돈
(신나는조합 소정렬 상임이사)
* 가난한 사람들에게 무담보, 무보증으로 소액 신용 대출을 해 주는 것이 바로,
마이크로 크레디트다. 1976년 방글라데시의 경제학자 무하마드 유누스가 27달러로
시작한 그라민 은행의 마이크로 크레디트 프로그램은 가난한 사람들이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회복하며 스스로 운명을 개척하도록 했다. 우리나라에도 2000년 6월, 강명순
의원이 처음으로 그라민 은행의 지원을 받아 '신나는조합'을 설립했다. 소정렬 상임이사(53세)는
9년 동안 500여 명과 142개 사업장을 지원해 오고 있지만 수치로 환산할 수 없는 것이
더 많다고 말한다. "내게 정말 필요하고 소중하기 때문에 다른 사람에게 나눠 주는 게
진정한 사랑이거든요." 그의 말처럼 신나는조합은 단순히 돈을 대출해 주는 곳이 아니라
사랑과 관심을 대출해 주는 곳이다. 그렇다면 이제 "인간이 달까지 가는 세상에 어째서
가난은 사라지지 않는가?" 라고 유누스가 스스로, 그리고 우리 모두에게 던지는 반문에
답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요즘 신나는조합을 찾는 분들이 많겠어요
이달 20일이 신청 마감일이었는데, 문의 전화가 폭주해서 업무가 마비될 정도였어요.
우리가 가진 기금은 3억뿐인데, 신청하신 분들을 다 지원하려면 50억이 필요해요. 정말
마음이 아프죠. 너무나 절박하고 절실한 분들이 이 기금을 신청하시는데, 모두 대출을
못해 드리니까요.
줄 수 있는 사람이 한정돼 있으니 심사하는 것 자체가 굉장히 어렵겠어요.
어떻게 들릴지 모르지만 얼마나 가난한가를 봐요. 기금의 성격에 따라 대상자는 다르고요.
유기농 농축산 같은 농촌형 마이크로 크레디트 기금은 농촌에 사는 분들이 대상이죠.
휴면예금으로 조성된 소액서민금융재단의 기금은 서울을 비롯해 전국 중소도시에서 4인
가족을 기준으로 월 소득 150만원이 안 되는 분들을 대상으로 해요. 서류를 볼 때는 얼마나
사실적으로 적었느냐, 자활자립하려는 의지가 얼마나 있느냐를 살펴요. 서류 검증이 끝나면
그 분야 전문위원(자원봉사), 두레일꾼, 신나는조합 실무자가 함께 현장 실사를 가요. 거기서
합격한 분들은 면접 심사를 통해 선정한 후 1박 2일 교육을 받지요. 그 교육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이 돈이 얼마나 귀중하고, 많은 사람이 필요로 하는 돈인지, 그에 대한 책임 의식을 일깨워
주고 상환 계획을 수립하죠.
그라민 은행도 그렇지만 소액 대출의 상환율이 매우 높잖아요. 상환율이 높다는 건 단순히 돈이
아니라 믿음, 의지 같은 다른 가치를 존중해 주기 때문이겠죠?
제도권 은행에서 기회를 배제당한 사람들이에요. 그들의 자활자립하려는 의지, 인간으로서 존엄성
을 가지고 살아야겠다는 강한 신념에 우리가 대출해 주는 5백만원이 보태지면서 상승효과를 발휘
하는 거예요. 오늘날 같은 자본주의 시장 구조에서 사업 자금 5백만원, 천만원 대출해 준다고 살아
남을 수 있겠어요? 못 살아남아요. 턱없이 부족한 돈이잖아요. 그러니까 이 돈은 경제적인 수익을
개선해서 살아남을 수 있는 돈이 아니라, 심리 정서적으로 살아남을 수 있는 돈이에요. 이 작은 돈이
있음으로 해서 용기를 가지고 리어카도 끌 수 있고, 예전에는 서울역 앞에서 노숙자로 생활했지만
이제는 가정을 회복하기 위해서 노력하는 기폭제가 되는 거예요.
대출해 주는 돈의 액수는 사실 중요한 게 아닐 수도 있겠어요.
금액의 문제가 절대 아니에요. 그런데 많은 사람이 착각을 해요. 대출 받아 간 사람 중에 몇 명이
소득 개선을 했느냐, 경제적인 논리로만 물어보는데 그건 정말 답이 안 나와요. 5백만원을 빌려
주지만 한 사람이 자활자립하기까지는 5천만원도 들 수 있어요. 5년동안 그 사람을 계속 사후지원
해야 되니까요. 그리고 '해뜨는 바다'라고 거제에서 막노동꾼 아내들이 알로에 효소 음료를 만들어
파는 공동체 같은 경우에는 부업 수준으로 그것만으로는 생계를 해결하지 못해요. 하지만 그 일을
통해 행복하대요.
신나는조합에는 숨은 일꾼이 많다면서요?
두레일꾼은 신나는조합의 핵이에요. 익산에서 친환경 달걀을 생산하는 오금산 농장의 대표는
실패를 많이 하신 분이에요. 친구한테 사기당하고, 대인기피증까지 있었죠. 이런 분이 우리 기금을
받았어요. 신나는조합에서는 사후지원 과정에서 업종별 지역별로 교육을 계속 해요. 그 사람의
상황이 어떻게 돼 가는지 봐줘야 하니까요. 이게 은행하고 우리가 다른 점이에요. 이분은 처음엔
돈 몇 푼 빌려 주고 사람 오라 가라 한다며 불쾌해했는데, 활동을 하다 보니 이제 두레일꾼이 되셨
어요. 이분처럼 두레일꾼이 '나는 어려움을 이렇게 극복했다.' 하며 새로 기금을 받는 분들에게
힘이 돼 주고 사업 노하우를 전수하며 5년 동안 사후지원을 해 주시는 거예요. 두레일꾼말고도
자원봉사 하는 대학생도 있어요. 산학협력으로 고려대, 한신대 경영학과 학생들이 한 학기 동안
컨설팅 수업을 한 다음 감동해서 자원봉사를 계속해요. 학생들이 자신의 주변에 이렇게 어렵지만
성실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는 걸 보게 되요. 그 학생은 장기적으로 사회 양극화를 어떻게
극복해야 할까 계속 고민하는 좋은 이웃으로 남을 수 있다는 거죠. 그 사회적 가치가 얼마나 크겠어요.
눈물나게 감사한 순간도 많겠지요?
신나는조합에서 기금을 받은 적도 없고 자신도 굉장히 어려우면서 기금에 보태 달라고 돈을 가져오
시는 분들이 있어요. 쑥스러워하면서 내민 돈을 받을 때 눈물나지요. 또 기금을 받기로 확정된 분 중에
고마운 마음은 전하고 싶은데 자신은 가진 게 없다며 비누를 만들어 나눠 쓰라고 갖다 주셨을 때,
누군가 "여기가 내 삶의 희망이다."라고 하실 때도 가슴 찡하죠. 이렇게 감사한 순간도 많지만 가슴
아픈 일도 있어요. 신나는조합이 많은 일을 하고, 또 앞으로 하기 위해 꿈을 꾸는데, 젊은 사람들이
일하러 왔다가 너무 힘들고 지쳐서 돌아갈 때 제일 마음이 아파요. 이 영역은 우리나라에서 어느
누구도 가 보지 않은 길이에요. 우리가 개척 정신을 가지고 가는데 쉽지 않네요.
앞으로 정말 할 일이 많으니 힘내세요.
신나는조합이 대출하는 돈이 가장 잘 쓰인 경우는 그 돈을 받은 사람이 스스로 자립했다는 것인데,
그 자립 속에는 내가 다른 사람을 돌볼 수 있다는 의미도 포함돼요. 내가 얼마나 행복한 사람인지
깨닫고 내 이웃의 아픔을 내 아픔으로 느끼는 거예요. 그러면 사회양극화가 해소되고 같이 잘 살 수
있는 사회가 되겠죠. 그래요, 우리는 희망이 있습니다. ( 글_ 최기영 기자 | 사진_ 최연창 기자 )
- 좋은 생각 <2009년 3월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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