끔찍한 식량재앙이 다가오고 있다.
화학농업은 도저히 지속불가능한 자살 농업
대안의 농업운동, 대안의 농민운동은 무엇보다도 기존의 농업 관행 자체에 대한 성찰에서부터
시작하지 않을 수 없다. 지금의 공업화된 농업이 과연 우리가 추구해야 할 농업인지 재검토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화학비료와 농약을 사용하는 화학농업은 엄밀하게 말해서 '석유농업'이다. 그것은 자원순환
농업이 아니라 자원약탈 농업이다. 물론 이 화학농업을 통해 지구의 식량생산은 급속하게 높아졌다.
1950년부터 1990년대 중반까지 전세계 곡물생산량은 2.5배나 증가했다. 에너지를 그렇게 투입했는데,
그 정도의 에너지가 다시 나오지 않는다면 그거야말로 이상한 일이다. 그러나 반세기가 지난 오늘날
화학농업의 결과는 끔찍한 파멸이라는 것이 확연하게 드러나기 시작하고 있다. 그것은 지구의 저금통을
까먹는, 미래를 야금야금 갉아먹는, 도저히 지속불가능한 자살 농업이다.
무엇보다도 화학비료는 농토를 완전히 병든 산성 토지로 만들어 놓았다. 이로 인해 병충해는 더욱
극성을 부리고 더많은 농약을 뿌려야 하는 악순환을 자초하고 있다. 게다가 농약은 벌레만 죽이는 게
아니라 사람도 죽이는 독약임이 명백해졌다. '녹색혁명' 또한 이제는 불가능한 환상임이 드러나고 있다.
이제 더이상 종자개량을 통한 농업생산량 증대는 기대하기 어렵게 되었다. 이른바 생명공학이 유전자조작을
통해 농업생산량을 높일 수 있다고 선전하고 있지만 이는 환상이자 더욱더 위험천만한 자연파괴 행위임이
확연해지고 있다. 오죽했으면 영국의 환경장관이 지금의 농업구조는 지속불가능하다고 선언했겠는가.
점점 표토유실과 사막화가 진행중이다.
오늘날 모든 나라에서 농지는 공장과 창고, 빌딩과 주택, 도로와 주차장, 그리고 초지 등의 용지로 빠르게
사라지고 있다. 전세계 경지면적은 1980년대를 기점으로 감소로 돌아섰다. 전세계 농민 가운데 5억명은 먹고살
경작지가 한평도 없다. 흙이 1cm 만들어지는 데 대략 200년이 걸린다고 한다. 그런데 매년 약 240억톤이 넘는
표토가 유실되고 있다. 표토가 유실된 농토는 곧바로 염분이 많은 불모의 땅으로 변하고 사막화가 진행된다.
거기다 중국과 인도를 필두로 전세계가 경제개발과 급속한 산업화 정책을 취하게 되면서 곡물소비 성향이
단순 곡물소비에서 곡물집약의 축산물과 물고기를 통한 단백질 섭취로 급속히 이동중이다. 이에 비해 전세계
인구는 유럽에세는 감소 추세라고 하지만 이미 65억을 넘어서고 있다. 세계 식량생산량은 1996년 이후에는
정체상태에 머물러 있다. 그럼에도 인구는 늘어나니 당연히 1인당 곡물생산량은 감소할 수밖에 없고 세계
곡물재고량도 감소하고 있다. 밀과 쌀 가격이 2배로 뛰었던 1970년대 초 이래 세계 곡물재고량은 60일분이 조금
넘는 최저치를 기록하고 있다.
화학농업의 근간인 석유값 천정부지 상승예승
화학농업의 근간인 석유는 2007년에서 2010년 무렵 생산의 정점에 도달할 것으로 석유가스정점연구회가 예측
하고 있다. 석유정점이 되면 석유와 천연가스 가격은 천정부지로 올라갈 것이고 지금의 값싼 비료와 농자재,
농기계는 더이상 유지가 불가능해진다. 게다가 20세기 후반기에 기후변화로 인한 가뭄, 사막화, 홍수 등 크고작은
자연재해와 이상사태는 10배나 늘어났고 그 빈도는 더욱 가파르게 상승하고 있다. 이산화탄소 농도는 산업화라는
리바이어던이 출몰한 이래 단 2백년 만에 2배나 높아졌다. 이제 다양한 생명체가 더불어 살아가던 지구라는 낙원은
불타는 지옥으로 변하고 있는 중이다. 북극의 빙하가 녹아내리면서 멕시코난류의 흐름이 3분의 1이나 줄어들었고
이로 인해 유럽에는 조만간 빙하기가 도래하리라는 불길한 예측마저 나오고 있다.
끔찍한 식량재앙, 에너지재앙 바로 타이타닉 침몰 5분 전 상황
한마디로 끔찍한 식량재앙, 식량전쟁이 바로 타이타닉 침몰 5분 전처럼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 물론 에너지 재앙,
에너지 전쟁과 앞서거니 뒷서거니 함께 연결되어 있다는 것은 불문가지이다. 문제는 이런 거대한 악몽의 쓰나미가
바로 코앞에 닥쳐오는데도 누구도 아무런 준비를 하고 있지 않다는 사실에 있다. 사람들은 '에이 설마' 하거나
'그때 되면 어떻게 되겠지' 하는 이른바 '설마'의 맹목에 중독되어 있다. 그렇게 안전하다고 정부와 전문가들이
보장하는 원자력발전소가 설마 사고야 나겠어 하고 잊고 지내는 것과 똑같다. 설마가 사람을 죽인다는 사실은
우리의 역사를 살펴보거나 체르노빌을 떠올리면 금방 알 수 있는데도 말이다.
전세계 기아현상은 식량생산이 아닌 불평등한 분배구조 때문
사실 현재의 곡물생산량은 지구상의 65억 인구를 충분히 먹여살리고도 남는다. 굳이 식량과발전연구소의 주장을
되살리지 않아도 이는 상식이다. 지금 세계 곡물생산량의 40%가 가축사료로 소비되고 있다. 특히 미국은 곡물생산량
의 80~90%를 가축사료용으로 소비한다. 우리는 선진국의 비만과 다이어트, 제3세계의 굶주림과 기아사망이 공존하는
기이한 문명병의 세계에 살고 있다. 이같은 부조리와 불합리는 물론 식량의 불평등한 분배에 그 까닭이 있다.
굶주리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배를 불리는 곡물교역량 80% 점유의 미국계 카길, 아처대니얼스미들랜드와 프랑스계
드레퓌스(12%), 아르헨티나계 벙기(7%), 스위스계 앙드레(5%) 등 5대 곡물메이저들, 몬산토와 같은 유전자조작
종자와 농약생산 다국적 기업들이 있는 한, 그리고 이들을 지원해 소농 중심의 지역 식량자립을 무너뜨리고 있는
국가가 있는 한 이같은 어처구니없는 불평등은 지속될 수밖에 없다. 현재의 굶주림은 분명히 식량생산의 문제가 아니라
불평등 체제의 문제이고 민주주의의 문제이다.
석유가 고갈되는 순간 식량생산량 거품 빠지듯 줄어
그러나 푸드퍼스트는 지금의 식량생산이 '현재의 햇빛에너지'만을 이용한 것이 아니라 석유라는 '과거와 미래의 햇빛
에너지'를 약탈해서 이룩한 생산량이라는 사실을 외면하고 있다. 이런 생산량은 석유가 고갈되는 그 순간 거품이 빠지듯
그만큼 줄어들 수밖에 없다. 지속가능한 식량생산량이란 엄밀하게 말해 '현재의 햇빛에너지'로 생산되는 생산량이다.
그러므로 현재의 인구는 지구생태계 차원에서 명백히 과잉인구이며 이는 어떤 형태로든 조절과정을 거쳐 줄어들 수밖에
없다는 것은 필연이다. 그것이 전염병이건 전쟁이건 급격한 기후변화로 인한 몰살이건, 그 중심에는 식량재앙이 자리잡고
있다. 우리는 다만 그렇게 되지 않도록 '현재의 햇빛에너지 자립체제'로 전환하기 위해 필사의 노력을 다할 뿐이다. 적어도
인류의 멸종까지는 가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 노력할 뿐인 것이다.
21세기 들어 곡물시장은 공급과잉에서 공급부족으로 바뀌기 시작
지난 50년 동안 세계 곡물시장은 늘 과잉생산과 과잉공급 상태였다. 물론 그때그때의 작황에 따라 일부 나라에서 대규모
수입을 하게 되면 곡물가격은 춤을 추었다. 1972년 구소련이 흉작으로 곡물을 수입하게 되자 국제 밀 가격과 쌀 가격이
단숨에 2배로 치솟았다. 한국이 1980년대초에 200만톤 규모의 쌀을 긴급 수입할 때도 곡물가격은 천정부지로 치솟았다.
1993년 일본이 쌀의 대흉작으로 말미암아 250만톤 규모(전세계 무역량의 약 20%)에 달하는 쌀을 대량 긴급 수입하기로
하자 세계 쌀시장은 순식간에 큰 혼란에 빠졌다.
중국 식량수출국에서 식량수입국으로 전락
그런데 21세기 들어 곡물시장은 공급과잉에서 공급부족으로 바뀌기 시작하고 있다. 2002년 9월 캐나다는 가뭄과 고온으로
수확량이 감소하자 다음해 수확기까지 밀을 수출하지 않겠다고 발표했다. 2개월 후 이번에는 호주가 생산량 부족으로
이전에 거래하던 나라에 한하여 밀을 공급하겠다고 발표했다. 2003년이 되자 유럽에 찌는 듯한 기상이변이 강타했고
유럽연합은 곡물의 전면 수출중단을 선언했다. 2004년 초 중국이 마침내 밀 800만톤을 수입해야 하는 식량수입국으로
전락했다. 이것은 21세기 식량시장에 지난 세기와는 전혀 다른 가장 큰 변수가 등장했음을 알리는, 그리고 세계 식량 사정이
이전과는 전혀 질이 다른 문제에 봉착했음을 나타내는 신호탄이었다. 그해 8월 중국은 베트남으로부터 쌀 50만톤을
수입하고자 했으나 거절당했다. 국제 쌀 교역량이 현재 약 2500만톤 규모인 것을 감안하면, 그리고 이 가운데 1600만톤을
태국, 베트남, 미국이 수출하고 있는 점을 감안하면, 중국의 식량수입국으로의 전락이 앞으로 국제 곡물시장에 상당한
혼란을 초래할 것임을 짐작하게 하나.
미국, 식량을 무기로 세계 지배 야욕
미국은 농산물 수출로 매년 100억 달러 이상의 흑자를 내고 있다. 또한 곡물자급륙 127%로 세계 곡물교역량의 35%를
미국이 차지하고 있다. 미국이 경쟁력을 갖춘 산업은 군수산업과 농업밖에 없다는 말이 나올 정도이다. 본디 미국은
수십년 동안 자국의 농업 보호를 이유로 농산물 수입을 철저히 제한해 왔다. 미국정부는 아직도 농장주들 순소득의 절반
이상을 직접지불금을 보전해주고 있다. 현재의 WTO 협상은 이런 미국의 이익을 철저히 대변하는 방향으로 진행되고
있음은 널리 알려져 있다. 이제 미국은 식량을 무기로 자국의 무역적자를 해소하고 세계를 지배하고자 한다.
돈을 주고도 식량을 살 수 없는 상황이 온다면
그럼에도 한국은 이런 재앙의 위기에 아무런 대책도 세우지 않고 있다. 우리의 식량자급률은 27% 수준이다. 쌀을 빼면
그나마 5% 수준에 지나지 않는다. 적색 경고등이 켜진 지 오래인데도 정부는 말할 것도 없고 우리사회 또한 늑대 나타
났다고 소리치는 양치기소년 쳐다보듯이 무심하게 흘려버리고 만다. 정부는 10년 후인 2015년에도 식량자급률을 그저
30% 수준으로 유지하겠다고 한다. 끔찍한 재앙이 다가오고 있는 것보다 더 끔찍한 것은 바로 이같은 맹목이 아닐 수
없다. 북한의 식량자급률은 75%로 나머지 25%를 사올 돈이 없어 수십 수백만으로 추정되는 사람들이 비참하게 굶어
죽었다. 돈을 주고도 식량을 살 수 없는 상황이 온다면, 그리고 돈을 주고도 에너지를 살 수 없는 상황이 온다면 한국의
식량사정은 과연 어찌될 것인지 그저 암담할 뿐이다.
* 박승옥 : 에너지 시민발전 대표
- 김종철 <녹색평론 87호, 2006년 3~4월> 중에서 -
'대안&성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작은 것이 아름다운 12가지 이유_ 황대권 (0) | 2009.07.11 |
---|---|
세계화로 나타나는 부작용들_ 헬레나 노르베리-호지 (0) | 2009.07.04 |
더 높이, 더 멀리, 더 빨리_ 법정스님 (0) | 2009.04.29 |
착한 도시가 필요한 이유_ 정혜진 (0) | 2009.04.11 |
지역적 협동심 (0) | 2009.04.0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