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안&성찰

부처님이 제시한 좋은 사회를 이루는 길_ 법륜스님

정정진 2009. 7. 25. 08:18

 

계율을 어긴 스님과 이를 비난하는 스님

 

 <좋은 공동체를 이루는 법>

 

 

청정하다는 것은 욕심과 탐욕을 버려야 한다는 얘기입니다. 화합해야 한다는 것은 옳다고 하는 자기 주장을

버려야 하는 것이고요. 그러면 어떻게 해야 화합이 됩니까? "화합하라! 화합하라!" 해서 화합이 되는 게 아니죠.

대중이 함께 공동체를 이루고 살면서 화합을 하려면 다음 여섯 가지를 잘 지켜야 합니다.

 

첫째로, 계율을 함께 지키라는 것입니다. 아랫사람만 계율을 지키고 윗사람은 안 지킨다든지, 여자만 지키고

남자는 안 지킨다든지, 가난한 사람은 지키고 부자는 안 지킨다든지 하면 분열이 생깁니다. 같은 계율을 같이

지켜야 하는 거죠. 요즘 말로 하면 법은 만인 앞에 평등하다는 거겠죠. 그래야 분쟁이 없어요. 그런데 오늘 우리

사회는 그렇지가 못해요. 법을 만드는 사람들로부터 법을 지키질 않지요. 국회의원들이 스스로 선거법을 만들어놓고

선거법을 지키지 않습니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선거법 다 지키면 선거에서 진다"는 겁니다. 법을 만든 사람부터

법을 지키지 않으면서 아랫사람보고 법을 지키라고 하니까 불만이 생기는 게 당연합니다. 그래서 유전무죄, 무전유죄

라는 말까지 나오는 거지요. 이렇게 될 때 사회는 분쟁에 휩쓸리게 됩니다.

 

둘째로, 의견을 함께 조율하라는 것입니다. 아무리 좋은 일이라도 누군가 일방적으로 정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이런 계율이 생긴 것은 사람마다 의견이 다를 수 있기 때문이에요. 내가 생각하기에는 이렇게 하면 될 것 같은데

다른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 수 있죠. 오늘 우리 식으로 말하면 민주적으로 의견을 모아가는 것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결과만 소중하게 생각하지 말고 그 과정도 소중하게 생각하라, 민주적인 절차를 거치라는 겁니다. 이것이

지켜지지 않을 때에도 분쟁이 일어납니다.

 

셋째로, 공양 받은 것을 똑같이 나누라는 것입니다. 스님들이 밖에 나가서 공양을 받아오는데 어떤 사람은 많이 받아오고

어떤 사람은 적게 받아올 수 있겠죠. 그럴 때 그것을 똑같이 나누어서 먹으라는 겁니다. 공양물이 서로 다를 때에도

분쟁이 일어날 수 있어요. 요즘 말로 하면 경제적인 평등을 말하는 겁니다. 분배가 제대로 이루어져야 하는 거죠.

 

정토회에서도 모두 똑같이 새벽에 일어나 수행하고 봉사하는데, 내가 주로 여러분 앞에서 법문도 하고 상담 일도 하다

보니까 돈이나 선물 같은 것을 가져와도 사무국에 주기보다는 저한테 줄 때가 많아요. 그럴 때 내가 받은 것이니까

내 것이라고 한다면, 누구든지 자기가 얼굴 내세우는 일을 하려고 하지 보이지 않는 곳에서 청소하고 빨래하는 일을 하려고

하겠어요? 우리 몸도 그래요. 서로 얼굴을 보고 누구라고 구별하기는 하지만 얼굴만 갖고 살 수는 없잖아요. 보이지 않는

많은 부분, 발도 있고 손도 있어야 사람이 살 수 있지요. 음식을 먹으면 그 영양분이 모든 부분에 골고루 가야지, 남에게

얼굴 보이고 공양을 받았으니까 얼굴에만 가고 보이지 않는 발한테는 가지 않는다면 몸이 금방 무너지고 말겠죠. 그런 것처럼

음식도 같이 먹고 물건도 같이 쓰고 생활도 같이 할 때 내부가 화합이 되는 겁니다. 그러지 않고 서로간에 차이가 나기 시작하면

갈등이 생기게 마련입니다.

 

오늘날 우리 승단에서도 이런 예를 볼 수 있어요. 사찰 중에는 관광지로 지정이 되어 수입이 많은 곳도 있고, 영험 도량이라고

소문이 나서 기도비가 많이 들어오는 곳도 있어요. 그런데 어떤 지역은 사람들 교화를 위해 꼭 짓긴 했는데 수입이 별로 없는

절도 있어요. 스님들이 해당 절에서 자기가 맡은 직분만 다하고 여러 수입은 전체 불교 발전을 위해 쓰거나 관계된 사람들의

복지에 균등하게 쓴다면 굳이 서로 유명한 절의 주지를 맡으려고 하지 않겠지요. 그런데 그것이 일부 사유화되니까 분쟁의

소지가 있는 겁니다.

 

우리 사회도 마찬가지예요. 첨단 사업 같은 것은 수출이 잘되어 큰돈을 벌지만, 전통적인 사업들은 갈수록 손실만 늘어나죠.

그렇게 되면서 빈부 격차도 커집니다. 전체적으로는 경제가 성장한다고 하지만, 다수 대중의 입장에서 보면 수입이 점점 줄고

있는 겁니다. 이럴 때 우리가 자기가 벌어들인 것을 자기 것이라고만 생각하지 말고 분배를 통해서 가진 것들을 조율해 나아간다면,

이른바 사회 안전망을 잘 구축해 놓는다면, 국민적 화합이 이루어지게 될 것입니다.

 

넷째로, 한 장소에 같이 모여 살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일반인들한테는 조금 이상하게 들릴 것입니다. 그러나 승가 공동체에서는

스님들이 개인 생활을 하지 말고 공동 생활을 하라고 말합니다. 공동 생활에서는 먹고 입고 사는 생활이 공개되어 있어서 서로간에

투명하지요. 대통령이든 장관이든 국회의원이든 그들이 뭘 먹고 뭘 입고 어떻게 생활하는가가 사회에 다 밝혀져 있다면 이 또한

국민적 화합에 큰 역할을 할 거예요. 비록 그들이 직책을 수행하기 위해서 좋은 집을 쓸 때도 있고 좋은 차를 탈 때도 있겠지만

개인적인 생활에서는 나와 다를 게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는 투명한 사회라면 왜 화합이 이뤄지지 않겠어요?

"같이 모여 살아라" 는 말은 모든 것을 서로가 알 수 있는 공동체 사회를 이루고 살라는 말입니다.

 

다섯째로, 서로 자비롭게 말하라는 것입니다. 민주적으로 의견을 조율하고 경제적으로 균등하게 산다 할지라도 말을 잘못해서

시비가 생길 수 있습니다. 남에게 늘 밥도 사주고 봉사도 하고 보시도 잘하는데 꼭 말 한마디 잘못해서 지은 복을 다 까먹어버리는

사람이 있어요. 거짓말뿐만 아니라 진실을 말할 때도 욕설을 섞어서 퉁명스럽게 한다거나 뭘 해놓고 자기 자랑을 너무 많이

한다면 순식간에 공덕이 사라져버리고 맙니다. 말을 잘못해서, 말버릇 때문에 얼마나 자주 오해가 생깁니까? 그런데 수행을 해서

다른 사람이 설령 말을 잘못하더라도 바르게 듣는 귀가 열리면 이것을 뛰어넘을 수가 있습니다. 상대방 말버릇이 좀 나빠도

나한테서 듣는 귀가 열리면 그것은 괜찮아요. 그런데 이렇게 듣는 귀가 열리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에 말하는 사람이 우선

말을 잘해야 합니다.

 

여섯째로, 남의 뜻을 존중하라는 것입니다. 사람은 다 뜻이 다릅니다. 상대편 얘기를 듣다 보면 '이건 틀렸다!'하는 생각이 들 때가

많지요. 그러면 우리는 들으려고 하지 않습니다. 남의 뜻을 존중하라는 것은 상대편의 말이 맞아서 그러라는 얘기가 아닙니다.

그 사람 입장에서 보면 그런 생각을 할 수도 있겠다고 이해를 하라는 거죠. 자기 마음에 안 드는 말을 누가 한다고 해서

"야!! 그걸 말이라고 해!!!" 한다면 상대방 감정이 얼마나 상하겠어요? 그 대신 "아~ 그럴 수도 있겠다. 너는 그렇게 생각해?" 하고

상대방 입장에서 듣고 이해해 준다면 서로 화합이 잘되겠지요. 상대방 의견이 틀렸다고 생각된다면 "그래. 네 생각은 그렇구나~..

그렇지만 내가 보기에는 이런 것 같은데.." 하면서 풀어가면 돼요.

 

부처님께서 이 여섯 가지를 잘 살펴서 지켜간다면 공동체 안에 분쟁은 사라지고 화합이 이루어질 거라고 말씀하셨어요. 그러니

우리가 각기 가정 안에서, 단체 안에서, 또 나라 안에서 이 여섯 가지를 잘 살피고 실천하는 생활을 통해 어디서나 화합을 이뤄냈으면

좋겠습니다.

 

 

* 법륜스님 : 정토회 지도법사. 평화재단 이사장

 

- 법륜스님의 <붓다, 나를 흔들다>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