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관계

내가 똑똑한 사람보다 태도가 좋은 사람을 뽑는 까닭_ 박소연

정정진 2024. 7. 20. 20:58

돌이켜 보면 내가 언론사에 있다가 증권업계로 옮긴 건 호기심이 들어서였다. 금융 기사를 쓰다 보니 증권사에서 일하면 더 재미있을 것 같아 보였다. 하지만 막상 증권사에 들어가자 경제 전반이나 주식에 대해 아는 게 많지 않다 보니 적응하기가 쉽지 않았다. 뭘 해도 주눅이 들고 자신이 없었고, 그저 모든 게 힘들게만 느껴졌다. 게다가 당시만 해도 증권사에서 일하는 여자가 드물었기에 사람들은 대부분 내가 얼마 못 버티고 나갈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던 어느 날 오랜만에 친구를 만났는데 그녀가 나에게 "일은 어때? 잘 되니?" 라고 물었다. 나는 가볍게 말했다.

"아휴, 모르겠어. 그냥 하고는 있는데 힘드네. 해 보다가 안 되면 때려치우고 임용고시나 준비하지 뭐. 내가 애들 가르치는 거 좋아했잖아. 선생님도 해 보고 싶었거든."

그런데 친구의 얼굴이 단박에 굳어 버리는 게 아닌가. 그녀는 마침 교사 일을 하고 있었다.

"너한테는 선생님이라는 직업이 언제든 마음만 먹으면 할 수 있는 쉬운 일처럼 보일지도 모르겠지만 나한테는 수많은 노력 끝에 어렵게 얻어 낸 귀중한 밥벌이야. 그리고 딴엔 학생들을 잘 가르치고 싶다는 사명감도 가지고 있는데 네가 너무 쉽게 이야기하니까 속상하다."

 

순간 아차 싶었다. 말이 헛나왔다고, 선생님이라는 직업을 폄하할 의도는 없었다고 사과했고 다행히 오해는 풀렸지만 친구의 말이 내내 잊히지 않았다. '하다 안 되면 선생님이나 하지'라는 생각을 한다는 건 어정쩡하게 양다리를 걸치는 태도이고, 어느 것도 제대로 하고 있지 않다는 얘기다. 그런 어정쩡한 태도는 내 친구와 교사들에게도 큰 실례지만 사실은 혼신의 힘을 다해 하루하루 열심히 일하고 있는 증권업계 사람들에게도 큰 실례를 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 사실을 깨닫자 나 자신이 너무 부끄럽게 느껴졌다. 모르면 어떻게든 악착같이 배우려고 애쓰고, 하나라도 더 알기 위해 노력했어야 했는데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그저 힘들다고만 생각했고 여차하면 직장을 그만둘 생각부터 했다. 그 일을 계기로 나는 나의 일을 다시 보게 되었다. 양다리를 걸치는 어정쩡한 태도를 버리고, 이걸로 꼭 밥벌이를 하겠다는 각오로 나 역시 혼신의 힘을 다해야겠다는 마음을 먹게 된 것이다. 그 뒤 나는 '죽이 되든 밥이 되든 한번 끝까지 가 보자'라는 마음으로 치열하게 일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일에 대한 태도를 바꾸고 나니 내가 얼마 못 버티고 나갈 거라고 수군대는 남자 선배들이 원망스럽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그들에게 내가 얼마나 잘 버티고 성장하는지 보여 주고 싶어졌다. 다행히 일은 배신하지 않았다. 죽어라 노력했더니 안 보이던 것들이 서서히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고, 투자할 때 내 의견을 먼저 찾아보는 투자자들도 생겨났다. 처음부터 두각을 나타낸 사람이 아니다 보니 그처럼 신뢰를 얻기까지 많은 시간이 걸렸지만 그만큼 나는 견고해져 갔다.

 

만약 그때 그 일이 없었다면 어떻게 됐을까? 아마도 나는 내 태도에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했을 것이다. 어쩌면 그다지 노력도 안 해 보고는 섣불리 증권업계가 나랑 안 맞다고 생각했거나, 여자가 살아남기 힘든 증권사 분위기를 탓하며 업계를 떠났을 수도 있다. 능력이 부족한 건 사실 큰 문제가 아니며, 얼마나 그 일에 치열하게 매달리고 끝까지 최선을 다하느냐가 결국 성패를 좌우한다는 것을 깨닫지 못했을 것이다.

 

그런데 요즘 회사에서 직원을 채용할 때 면접관으로 들어가 보면 화려한 스펙을 자랑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 바로 실전에 투입해도 무방할 정도로 능력이 출중한 사람이 가득하다. 내가 만약 지금 그들과 같이 지원했으면 나는 1차 서류에서 탈락하지 않았을까 싶을 정도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1차 서류 합격자를 선발하는 게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다. 뛰어난 능력과 화려한 스펙만 강조하는 이력서와 자기 소개서는 바로 탈락시키기 때문이다. 언젠가 처음으로 면접관이 된 후배가 나에게 이런 질문을 한 적이 있다.

 

"그럼 선배는 사람을 채용할 때 무엇을 가장 중요하게 보세요?"

"능력보다 태도가 좋은가를 더 눈여겨보는 편이야."

 

똑똑하지만 겸손하지 못한 사람은 남들보다 자신이 우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자신의 판단이 늘 옳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남들에게 그 무엇도 배우려 들지 않아 적응을 '잘' 못한다. 근거 없는 자신감으로 무작정 자신의 의견만 고집해 주위 사람들을 피곤하게 만들기도 한다. 그렇게 되면 주위에 사람이 모이지 않게 된다. 그와 함께 일하기를 꺼리게 되는 것이다.

 

반면 조금 덜 똑똑하더라도 겸손하고 성실하면 주변에 사람들이 모이게 되고, 서로 부족한 부분을 가르쳐 주고 채워 주려고 하기 때문에 눈덩이 굴리듯 그 능력치가 기하급수로 커지는 경우가 많다. 자신이 틀릴 수도 있다고 생각해 언제나 다른 사람들의 의견을 구하는데 적극적으로 나서고 그 안에서 최선의 선택을 하기 위해 애쓰기 때문이다. 실제로 태도가 좋은 직원이 3년 차, 5년 차가 되면서 괄목상대하는 모습을 많이 지켜봤다.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미국의 제임스 헤크먼도 '머리 좋고 공부 잘하는 사람'보다 '소프트 스킬', 즉 "인품이 좋은 사람이 성공 확률이 높다"고 말한 바 있다. 처음엔 똑똑한 사람이 잠시 잘나갈 수는 있지만 결국 인품이 좋은 사람이 성공하게 되어 있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공부한 것을 실전에 사용할 수 있는 기회의 크기는 그 사람이 지닌 네트워크의 크기에 비례하는데, 그것은 좋은 인품 없이는 결코 만들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게다가 세상의 트렌드가 워낙 빨리 변하다 보니 요즘은 한 사람의 천재에 의존하기보다는 여러 좋은 사람이 협업을 통해 만들어 내는 결과물이 훨씬 더 뛰어날 때가 많다. 나뿐만 아니라 수많은 기업들이 사람을 뽑을 때 똑똑한 사람보다 일에 대한 태도가 성실하고 좋은 사람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실제로 채용 포털 사람인이 기업 인사 담당자 390명을 대상으로 가장 뽑고 싶은 신입 사원 유형을 설문 조사한 결과, 태도가 좋고 예의가 바른 '바른 생활형'을 1위로 꼽았고, HR테크 기업 인크루트가 831개 기업 인사 담당자를 대상으로 '신입 사원에게 바라는 것'을 설문 조사한 결과 1위는 '배우려는 태도', 2위는 '대인관계및 커뮤니케이션 능력'으로 나타났다.

 

경력자의 경우 평판 조회를 해 보면 어떤 태도를 지닌 사람인지가 바로 드러난다. 전 직장에서 같이 일했던 동료나 선후배들의 평가는 생각보다 냉정하기 때문이다. 이력서와 자기 소개서가 아무리 훌륭해도 평판 조회에서 좋은 점수를 받지 못하면 그를 뽑을 수가 없다. 반대로 같이 일했던 사람들이 하나같이 '능력도 있고 좋은 친구다', '추천한다'라는 얘기를 해 주면 관심도 생겨난다. 

 

그러므로 이력서 한 줄을 더 채우는 데 급급하기보다 스스로 좋은 태도를 가지고 있는지, 당장의 결과에 집착해 사람을 놓치고 있는 건 아닌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네가 만나는 모든 이에게 열려있고 그들에게 배우려고 한다면, 지금의 너는 아무것도 아닐지라도 2~3년 후에는 너와 함께 일하고 싶은 이들이 생겨날 테고, 그들은 분명 너에게 새로운 부의 기회를 가져다줄 것이다.

 

딸아, 돈 공부 절대 미루지 마라_ 박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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