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서 말했듯이 1인 가구의 증가는 어쩔 수 없는 시대의 흐름이다. 게다가 노년층 1인 가구 또한 늘어나고 있다. 그래프는 연소득 1200만 원 이상인 남녀를 대상으로 1인 가구의 삶에 대한 만족도를 조사한 것으로 그 결과는 연령대 별로 표시되어 있다. 젊은 층의 남성들은 그나마 50% 이상이 혼자 사는 것에 만족한다고 답했지만 30대 후반부터는 만족도는 급격히 떨어진다. 그런데 재밌게도 여성의 경우는 웬만해선 이 만족도가 떨어지지 않는다. 아무리 나이가 들어도 연소득 1200만 원만 넘으면 혼자 사는 삶이 만족스럽다니, 대체 여성들은 어떤 종류의 인간이란 말인가.
이와 비슷한 다른 연구는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대체로 비슷한 결과를 보여 주며 심지어 여성의 그래프가 우상향되는 결과도 많다. 즉, 1인 가구 여성의 삶의 만족도가 나이 들수록 높아진다는 뜻이다. 특히 우리와 가까운 일본에서 이런 현상이 두드러진다. 일본의 경우, 1980년대부터 이와 비슷한 연구를 지속해 왔다. 내가 아는 한 일본의 학자가 80년대부터 2000년대까지 혼자 사는 일본인의 삶과 행복에 대해 여러 연구가 정리된 서적을 소개해 준 적이 있었다. 지금 떠올려도 뒷골이 당길 정도로 그 내용은 가히 충격적이었다.
50대 부부 중에 아내가 먼저 사망하여 남편이 홀로 남은 경우, 남성은 3년 이상 생을 버티는 경우가 드물었다. 대체로 슬픔과 비통함, 외로움, 쓸쓸함을 견디지 못하고 일찍 삶을 마감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만큼 아내를 사랑했을 수도 있고, 사람에 따라서는 아니었을 수도 있다. 어쨌든 홀로 남은 나이 든 남성의 삶이란 고통 그 자체였다.
반대의 경우는 어떨까? 50대 이상의 부부 중 남편이 먼저 죽었다면? 남은 아내 역시 슬픔을 버티지 못하고 지옥 같은 삶을 살아갈까? 과장을 보태지 않고 원문 그대로 써 보겠다. '여성은 대략 몇 달간의 애도 기간이 끝나면 건강이 좋아지고, 맥박이 정상으로 돌아오며, 다른 모든 신체지수 역시 긍정적으로 변화된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1년 후에는 친구가 더 많아지고 이전보다 행복한 삶을 꾸려 간다는 것이다. 그 책의 제목을 본 순간, 남성이자 학자인 나는 눈물과 웃음이 동시에 나는 신기한 경험을 하게 되었다. 처참하도록 '웃픈' 이 책의 제목은 <여성의 활로, 남성의 말로>였다.
어찔할 정도로 충격을 받은 건 나뿐이 아닐 것이다. 이 책을 읽는 남성 독자들이여. 심장이 덜컥 내려앉는 기분이 들지 않는가. 일단 살아 있는 동안 아내에게 최선을 다해 잘해 주자. 그리고 진정된 마음으로 이 연구에 숨어 있는 진짜 속뜻을 곰곰히 생각해 봐야 한다.
남녀의 생물학적 차이를 논하는 연구가 절대 아니다. 여성 중에도 고독을 힘들어하는 사람도 있고, 남성 역시 늘그막까지 혼자 사는 것을 즐기는 사람도 많다. 도대체 왜 그들은 관계성이 줄어들수록 행복감을 느끼게 되었을까? 퍼마 공식의 Relationship에서 학자들이 놓친 것은 무엇일까? 비대면의 시대를 사는 당신, 혼밥을 즐기고 명절에 넷플릭스를 정주행하며, 코로나를 핑계로 귀찮은 모임을 웃으며 취소했던 당신이라면 어쩌면 이 놀라운 심리학적 비밀을 눈치챘을지도 모른다. 좋은 관계를 많이 맺는 것은 중요하다. 그러나 그만큼 나쁜 관계에서 해방되는 것도 중요하다는 것. 그 저명한 하버드 연구진들이 간과해 버린 행복의 열쇠가 바로 이것이었다.
우리를 둘러싼 관계의 종류는 다양하고 복잡하다. 기쁨과 에너지를 주는 관계도 있지만, 긴장과 박탈감만 안겨 주는 부정적인 관계도 있다. 때로는 동일한 인물이 긍정적인 감정과 부정적인 감정을 동시에 안겨 주기도 한다. 남성에 비해 인간관계를 중요하게 여겨 온 여성들의 경우, 관계의 수를 줄이는 것만으로도 적잖은 해방감을 느낄 수 있었던 것이다. 1인 가구 여성의 활로는 너무도 당연한 결과였다.
다시 생각해 보자. 지금까지 나의 행복을 방해하는 걸림돌은 무엇이었을까? 나의 노력 부족? 잘못된 국가 정책? 아니면 내가 컨트롤할 수 없는 돌발 상황? 부수적인 가지들을 쳐내고 본질을 깊숙이 바라보면 명쾌한 답이 나올 것이다. 불행의 원인은 나를 힘들게 하는 나쁜 관계를 끊어 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제 심리학자들은 관계의 '수'가 아닌 '질'을 논한다. 인간에게 필요한 것은 많은 관계가 아닌 '좋은 관계'라는 것이 학계의 일반적인 정설이 되었다. 그러나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는 나쁜 관계에 얽힌 스트레스와 부조리, 지속적인 상처 속에 노출되어 있다. 어쩔 수 없이 관성대로 유지하고 있는 이 관계들은 나의 행복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전 세계가 거리두기를 권하고 있다. 이번 기회에 용기를 내어 나의 행복을 방해하는 관계부터 제거해 보자. 아마 여생의 삶의 질이 달라질 것이다.
적정한 삶_ 김경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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