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다면 이들 중에 누가 가장 사회에서 성공할 확률이 높을까? 그리고 반대로 누가 가장 실패할 확률이 높을까? 흥미롭게도 그 둘 다 '기버'였다. 기버는 성공의 사다리 바닥에 존재할 뿐만 아니라 성공의 사다리 최상층에도 군림하고 있었다.
벨기에 의대생에 대한 한 연구를 보자. 의대생 기버들의 성적을 보면 좀 독특한 패턴이 보인다. 1학년 때는 성적이 별로 좋지 않다가 2학년부터 탄력을 받기 시작하더니 해를 거듭할수록 좋아진다. 그리고 7년차 의사가 되면, 기버는 테이커와 매처를 압도하게 되는데 기버 지수와 성적의 상관관계는 '흡연과 폐암', '음주와 공격적인 행동'간의 상관관계보다도 더 클 정도라고 한다.
왜 의대생 기버들은 성적이 처음에는 좋지 않다가 시간이 갈수록 상승하는 것일까? 의사는 홀로 도서관에 처박혀 책만 본다고 될 수 없다. 의대수업은 학년이 높아질수록 개별 수업에서 팀별 발표, 회진, 인턴십, 환자 진료 등의 과정으로 바뀌는데 이것은 결국 팀워크와 서비스 정신을 필요로 한다. 그 과정에서 누가 동료들의 도움을 얻고 환자에게 사랑받으며 선배나 교수에게 신임을 얻게 될까? 바로 기버다.
기버의 성공 비결은 바로 거기에 있다. 어느 일을 하든지 현대 사회에서는 홀로 성공을 거둘 수 있는 확률이 줄어들고 있다. 어떤 조직이든 팀으로 일을 하고 사업을 하기 위해서는 믿을 수 있는 투자자와 파트너가 필요하다. 게다가 지금은 소셜 혁명 중이다. 누군가에게 도움을 주었을 때 되돌아오는 그 도움의 피드백 속도가 점점 더 빨라지고 있다. 즉, 이런 환경 속에 있기 때문에 잠깐 보면 피해만 입는 것처럼 보이는 기버들이 마지막에는 성공 사다리의 꼭대기에 당당히 서 있는 것이다.
물론 테이커와 매처도 성공을 한다. 하지만 기버의 성공은 이들의 성공과는 좀 다르다. 기버의 성공은 요란하다. 흡사 폭포가 쏟아져 물이 사방으로 무차별적으로 퍼지듯이 성공을 한다. 이들이 베풀었던 공로가 한 번 되돌아오기 시작하면 시너지가 생기면서 폭발적으로 성공의 길이 열리며, 무엇보다 그 성공이 기버 자신뿐만 아니라 주변에 있는 모든 사람에게 급격히 전파된다. 모두를 이롭게 하는 것이다.
하지만 처음에 언급했던 것처럼 기버라고 다 성공하는 것이 아니다. 성공의 사다리 밑바닥에도 기버가 있다. 그렇다면 어떤 기버가 실패를 하는 것일까? 실패한 기버들의 공통된 특징은 다른 사람들을 극단적으로 도와주거나 희생만하여 최종적으로 진이 빠지고 지친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 이기심을 너무 죄악시하고 자기 자신을 잘 챙기지 못하는 경향이 있다.
어떤 두 명의 심리학자는 캐나다에서 가장 권위 있는 봉사상인 '캐나다 봉사상'을 수상한 성공적인 기버들의 동기가 과연 무엇이었는지 알아보기 위해 매우 심도 있는 인터뷰를 했다. 특히 이들에게 자신의 이익과 타인의 이익이라는 2가지 핵심적 동기들이 얼마나 강하게 나타났는지를 살펴보았다.
역시 성공적인 기버들에게 타인의 이익은 매우 큰 동기 부여였다. 이들은 봉사와 기부에 대한 말을 비교집단보다 3배 이상 자주 했으며, 자기 인생의 목표와 타인의 이익을 연결시키는 말도 비교집단보다 2배나 많이 했다. 하지만 매우 놀라운 사실은 성공적인 기버들은 자신의 이익에도 상당한 동기 부여를 받았다는 점이다. 권력이나 성취와 관련된 목표가 비교집단보다 2배 가까이 높았으며, 인생 목표 목록을 만들 때에도 명성을 얻고 개인적인 성취를 이루는 것과 관련된 내용이 비교집단보다 20%나 더 많았다. 즉, 성공적인 기버들은 엄청난 야심가였던 것이다.
우리는 이기심과 이타심을 상호배타적인 관계인 자석의 양극단처럼 생각하는 경향이 강하다. 하지만 많은 연구를 통해 밝혀진 사실은 이기심과 이타심은 매우 독립적이기 때문에 우리는 이 둘을 모두 가질 수 있다는 것이다. 성공한 기버들은 강한 동기부여 요소인 이타심과 이기심을 자신 안에 적절히 융합시켜 일을 추진해 나간다. 특히 이들은 자신이 베푸는 행동이 어떠한 사회적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는지에 대해 잘 알고 있다. 자신의 희생이 큰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는 것을 확인하는 것은 스스로에게 최고의 보상이 되기 때문이다.
애덤 그랜트는 이런 인물들을 '이기적 이타주의자'라고 한다. 그런데 우리는 여기서 더 중요한 사실을 알리고자 한다. 기버, 테이커, 매처는 태어날 때부터 정해지지 않았으며, 상황에 따라 충분히 달라질 수 있다. 우리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이타적이다. 특히 위기 상황 속에서는 더욱 그렇다.
2008년, 드루어리의 연구팀이 지난 40년간 영국에서 발생한 11가지 비극적인 사건을 분석했다. 1983년 IRA(아일랜드 공화국군 무장단체)의 폭탄 테러로 런던 백화점 앞에서 6명이 사망한 사건, 1989년 힐즈버러 축구장에서 혼란에 빠진 초만원 관중에 의해 리버풀 팬 96명이 질식사한 사건이 포함된다.
연구팀은 인터뷰한 대부분에서 이기심에 똘똘 뭉쳐 자기만 살겠다고 벗어나는 사람들의 이야기보다 강렬한 유대감으로 서로를 도우려고 한 이야기들이 훨씬 많았다는 걸 알게 됐다. 드루어리는 만약 위기 상황에서 서로를 도와주지 않았다면 더 많은 사상자가 나왔을 것이라 분석했다. 우리는 서로를 생각하는 존재이다.
또 하나 자신의 이타주의적 성향을 발견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타인 또한 이타주의적이라는 믿음을 잃어서는 안 된다. 여러 연구에서 드러났듯이 우리는 본인은 고귀한 신념(자아실현, 의미, 이타성)에 영향을 받지만, 타인은 돈이나 이기심에 영향을 크게 받는다고 착각을 하는 경향이 강하다. 아니다. 타인도 자신과 똑같은 고귀한 신념에 의해 움직인다. 그런데 문제는 만약 타인에 대한 믿음이 없다면, 말과 행동을 통해 타인이 이타주의적인 행동을 하게 할 수 있음에도 그것을 차단하는 현상이 발생한다.
결국 우리 모두가 이기적 이타주의자가 될 수 있음을 믿을 때, 이는 자기실현적 예언이 되어 살맛나는 공동체가 될 수 있다. 바로 당신이 만들 수 있다.
일취월장_ 고영성&신영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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