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자질이 남보다 못하기 때문에 만약 충분히 노력을 기울여서 공부를 하지 않았다면 아무런 보람도 거두지 못했을 것이다. 학문을 한다는 것은 밭에 곡식을 심는 것과 같아서 척박한 밭에는 좋은 벼를 심어도 잘 자라지 않고, 기름진 땅에는 잡초가 자라기 쉽다. 만약 기름진 땅이라고 해서 그 땅만 믿고 곡식을 잘 재배하고 김매어서 가꾸는 노력을 들이지 않는다면, 비록 좋은 밭이라도 잡초만 무성해질 것이니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조선 시대 오현 중의 한 분인 정여창 선생의 말씀이다. 나는 '학문'을 한다는 것과, '독서'를 한다는 것의 차이를 잘 모른다. 그저 내 생각의 일반은, 학문이란 세상이 정한 제도를 따라 계단 오르듯이 올라가서 얻어낸 어떤 외형적인 '결과물'이고, 독서란 일정한 규칙이나 법도없이 자유자재로, 어떤 존재가 가고자 하는 내면의 방향을 따라가는 '과정 속의 기쁨' 정도로 이해하고 있다. 그러니 학문이 곧 독서라고 생각지 않으며, 반대로 독서를 많이 한다고 해서 학문을 한다거나 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나이 50을 넘은 지금까지 나는 학문을 해보겠다거나, 하고 싶은 마음을 가져본 적이 없다. 그렇다고 학문을 한 사람들을 다르게 생각지도 않았다. 나는 그저 '독서'하는 존재로 살아왔다. 그런 내가 어쩌자고 미국에 있는 웨슬리신학대학 목회학 박사 과정에 발을 들여놓을 마음을 먹었던가? 내게 처음 이 과정을 소개한 친구는 말했다. 모름지기 목회학 박사란, '학문'이 아니라 '목사로 살아온 삶의 정리'이며, 그동안 채집한 수만 권의 책 속에 들어 있는 정보와 지식의 '휴지화'를 위한 것이라고.
이제 나는 6학기 중 3학기를 위해 월요일 아침 워싱턴으로 떠난다. 본시 이 과정은 어디서나 '집중 교육'으로 진행된다. 나처럼 국내에 머물다가 방학 동안에 미국으로 향하는 사람이나, 아예 보따리를 싸서 미국으로 건너간 사람이나 이 과정은 똑같다. 이번 학기는 6/6학기에 제출할 논문의 제목과 내용, 참고도서 같은 것들을 심사받는 중요한 학기다. 만약 이 과정을 통과하지 못하면 다음 학기를 할 수 없다. 내가 준비한 논문의 제목은 '엠마오 가는 길이 한국 교회에 미친 영향에 대한 연구'이다. 엠마오 공동체의 몇몇 후배들이 논문으로 '엠마오 공동체'에 대해서 썼지만, 엠마오 훈련을 분석하고 제시한 논문은 없었다. 서울 엠마오 가는 길 1기를 통하여 은혜를 받고, 동부 엠마오 가는 길이 생기기까지 생성된 은혜의 사건들이 교회와 개인, 사회에 어떤 영향을 미쳤고, 어떻게 미칠지를 분석하고 제시하게 될 것이다.
위로 들어온 온갖 정보와 지식, 머리를 통해 작동했던 이성적인 것들이 '학문'이라면 '학문'이라 하겠다. 그러나 나이가 들면 '위'가 아니라 '아래'에서 모든 게 성취되어야 한다. 나는 그 과정을 '학문에서 항문으로'라고 말하고 싶다. '학문'은 이성이고 '항문'은 감성이다. 이성은 생존의 군량미지만 감성은 삶의 신무기이다. 나이가 들면 군량미는 중요하지 않다. 생존의 시간이 별로 없기 때문이다. 그때는 '신무기' 감성이 분발해야 한다. 그래야 자신의 삶이 완성되기 때문이다. 조선조의 정여창 선생이 '학문은 농사'라고 했지만, 나는 말한다. '학문은 항문'이고 또는 '이성은 감성'이다.
'항문'이라는 감성의 신무기를 구하려고 나는 내일 아침, 스무 날 일정으로 워싱턴을 다녀온다.
내 생각에 답한다_ 허태수
'독서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인생 무너지는 건 독서의 빈곤때문_ 김형석 (0) | 2016.12.30 |
---|---|
지식으로 수읽기 해라_ 조훈현 (0) | 2016.04.26 |
독서는 삶의 특권이다_ 김병완 (0) | 2015.09.30 |
40대, 진정 공부를 즐길 수 있는 시기_ 김병완 (0) | 2015.09.29 |
40대여, 다시 한 번 공부에 미쳐라_ 김병완 (0) | 2015.09.2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