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이야기

지식으로 수읽기 해라_ 조훈현

정정진 2016. 4. 26. 12:07


TV에서 무지개 색에 관한 흥미로운 방송을 본 적이 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무지개 하면 자동적으로 '일곱 빛깔'을 떠올린다. 하지만 세상에 무지개를 일곱 가지 색으로 분류하는 나라는 몇 개 되지 않는다고 한다. 미국은 일곱 개라고 가르치지만 여섯 개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고 유럽 국가들은 대부분 여섯 개라고 생각한다. 또 고대 마야족은 무지개의 색을 다섯 가지로 구분했다는 기록이 있다. 그러고 보면 한국에서도 나이 많은 어르신들은 무지개를 '오색무지개'라고 불렀던 기억이 난다. 재미 있는 건 무지개를 다섯 가지나 여섯 가지로 배운 사람들에게 실제로 무지개의 색을 구별해보라고 하면 정말 5~6개만 구별한다는 것이다.


이들에게는 빨강과 노랑 사이의 주황색이나 남색과 보라색의 차이가 거의 인식이 되지 않는다. 무지개를 세 가지 색으로 여겨온 아프리카의 어느 부족은 실제로 세 가지 색 외에는 구분하지 못한다.


나는 이 사례가 '아는 만큼 보인다'는 격언의 좋은 예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사실 무지개는 컴퓨터로 색을 검출하면 수만 가지 색이 나온다고 한다. 이 모든 색을 인간의 시각으로 구별할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일곱 가지보다는 훨씬 많은 색을 구별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무지개는 일곱 가지 색'이라고 학교에서 교육받는 순간부터 우리는 더 많은 색을 보려는 노력을 멈춘다. 다 안다고 생각하기에 더 이상 고민하지 않는 것이다.


아마 우리의 수읽기가 꼬이는 이유도 여기에 있을 것이다. 다 안다고 생각했는데 내가 모르는 다른 수가 있었던 것이다. 바둑 대국에서도 이런 일은 흔히 일어난다. 아는 것이 부족해서 수읽기를 제대로 하지 못하는 것이다. 수읽기는 많이 알면 알수록 유리하다. 수읽기는 직관과 경험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지식이 많아야 한다. 끊임없는 공부와 연구로 지식을 많이 쌓아두어야 다양한 각도에서 판을 읽고 더 멀리 예측할 수 있다.


따라서 더 발전하는 길은 공부밖에 없다. 프로기사에게 공부가 바둑교본을 읽고 기보를 분석하고 사활문제를 열심히 푸는 것이라면, 세상 사람들에게 공부는 자기 분야에 대한 치열한 연구를 하는 동시에 세상에 대해 많은 관심과 열정을 가지는 것이다.


바둑이 인생과 닮은꼴이라고 하지만 사실 바둑 자체는 세상사로부터 단절되어 있다. 바둑을 잘하기 위해 사회적 상식을 길러야 한다거나 역사나 문화적 배경지식이 많아야 하는 건 아니다. 사실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전혀 몰라도 바둑을 잘할 수 있다. 세고에 선생님은 평생 쌀 한 가마니 값이 얼마인지, 버스 노선이 뭔지 모르고 사셨다. 나만 해도 지금은 뉴스도 보고 드라마도 보지만 전성기 때는 정치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경제가 뭔지 전혀 몰랐다. 그렇게 모든 걸 차단하고 바둑만 보면서 살아도 시간이 부족했다. 우리 바둑인들은 세상살이에 신경쓸 시간이 있으면 사활문제나 하나 더 푸는 게 낫다고 말한다. 프로 기사들은 바둑판 앞에서는 천재로 불리지만 현실에서는 오히려 바보에 가까운 셈이다.


하지만 실제의 인생은 다르다. 대부분의 직업은 삶과 밀접히 연결되어 있다. 작가는 시대의 요구를 잘 읽어야 좋은 소설을 쓸 수 있고, 작곡가는 대중의 취향을 잘 파악해야 인기곡을 만들 수 있다. 의사도 의료적인 지식을 아무리 많이 안다 해도 환자들과의 소통이 서투르면 외면당한다. IT 분야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아마도 새로운 기술에서부터 현재 가장 인기 있는 음악과 영화에 이르기까지 다방면에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이다.


그러니 우리가 인생의 수읽기를 잘하려면 자기 분야에 대한 꾸준한 공부와 함께 세상에 대해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신문도 열심히 읽어야 하고 영화와 드라마도 봐야 한다. 알고 싶은 것만 알고, 보고 싶은 것만 봐서는 안 된다. 적어도 어디서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무엇 때문에 그런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대략적인 정보를 알고 있어야 한다. 지금 당장은 내가 하는 일과 아무 상관이 없어 보여도 이러한 정보가 모여서 내 안에 쌓이면 결정적인 순간에 정확한 예측을 할 수 있게 도와주기 때문이다.


요즘 세간에 인문학 바람도 비슷할 것이라 생각한다. 뭐든 가볍고 짜릿한 것만 좋아하는 시대에 인문학 열풍이 분다는 건 무슨 의미일까. 아마도 그것은 인문학이 인간과 세상을 깊이 이해하게 해주는 통로가 되기 때문일 것이다. 인류가 걸어온 모든 길을 역사, 철학, 과학, 예술 등의 학문을 통해 되돌아보면서 세상에 대한 사유의 지평을 넓히고자 하는 요구일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인문학 강좌를 듣고 나면 마음이 치유되는 기분이라고 한다. 작은 문제에 연연하여 불안해했던 마음이 사라지고 여유 있고 넓은 시각이 자리 잡는 것이다. 인문학적 지식을 쌓으면 직장에서 일을 처리하는 방식, 동교들과 소통하는 방식, 그리고 모든 일을 바라보고 해석하는 방식이 달라지게 될 것이다. 이로 인해 더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떠오를 수 있으며 더 정확하게 미래를 예측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불안해하는 이유는 그만큼 모르는 게 많이 때문이다. 많이 아는 사람은 강하다. 많이 알면 실수가 줄어들고 더 멀리 볼 수 있다. 따라서 최선의 수읽기는 열심히 공부하여 지식과 실력을 쌓는 것이다.


조훈현, 고수의 생각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