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틀거리더라도 나의 걸음으로
진우 최근에 청춘콘서트를 비롯한 청춘을 대상으로 하는 힐링모임이 많았죠. 몇 년 전 청춘에 관련된 책들이 한참 히트를 쳤던 게 시발점이었어요. 제가 봤을 때 그런 청춘모임들의 한계점은 이미 잘되어 있는 분들이 얘기를 한다는 거예요. 흔히 말하는 멘토인데, 굉장히 통찰력이 있고 세대를 뛰어넘어 요즘 청춘의 고민들을 잘 이해하시죠. 하지만 그분들은 지금 우리들과는 다른 세상을 사신 분들이에요. 그분들이 하는 말들이 틀린 말이라는 게 아니라 그건 그분들의 철학이었다는 것이죠. 그게 다른 사람에게도 똑같이 적용될 수는 없는 것입니다. 제일 좋은 것은 그 얘기를 듣고 '아, 저 사람들은 저렇게 살았구나. 그럼 나는 이렇게 살아야지' 라고 할 수 있다면 좋겠는데 누군가에게 가르침을 받으면 그게 쉽지 않죠. 만약에 그분들이 아침 일곱시에 일어났다고 말을 하면 왠지 나도 아침 일곱시에 일어나야 할 것 같잖아요.
재훈 멘토가 범람하는 시대죠. 멘토들이 정말 각 분야에 한 명 이상은 다 있어요. 어느 순간부터 이렇게 멘토가 많아졌더라고요. 그러나 저는 멘토가 좀 위험한 것 같습니다. 사실 내가 존경하는 누군가가 한마디 위로의 말을 해주면 그 말 한마디가 내 정서에 미치는 영향이란 정말 어마어마합니다. 그런데 그 영향이라는 것이 정서적인 목발이 될 수 있다는 거죠. 자기 스스로 서지 못하고 자꾸 멘토의 말을 찾아가는 거예요.
뭔가 인생을 살아갈 때 어려움에 부딪히면 스스로 해결책을 찾는 게 아니고 멘토라면 어떻게 했을까, 내 멘토가 이 어려움에 맞는 적절한 멘트를 한 게 뭐가 있던가 하면서 책장을 넘겨보고 어느 한 문구를 보며 힘을 냅니다. 또 그 힘으로 나아가다가 또 멈춰서 멘토를 찾고, 이게 반복되는 거죠. 보는 시각의 차이일 수 있겠지만 저는 이게 위험해 보여요.
어쩌면 멘토를 찾지 못하는 그 시기까지는 정서적으로 계속 절름발이의 삶을 사는 거죠. 멘토들이 많아진다는 것은 자기 자신으로만 살아갈 수 없는 사람들이 많다는 얘기예요. 저는 이렇게 비유하고 싶습니다. 바다에서 오십 년 살아온 늙은 어부가 사막에서 괴로워하는 젊은 친구한테 조언이야 해줄 수 있겠죠. 바다나 사막이나 거시적인 관점에서 삶이라는 건 마찬가지니까. 하지만 바다에서 이겨내는 방법과 사막에서 이겨내는 방법은 그 디테일이 다르다는 거예요. 근데 우리는 그 디테일의 차이를 너무 가볍게 생각해요. 너무 통합해서 다 멘토라고 뭉뚱그려버리는데, 이게 범위가 커져버리면 개개인의 개별성이 무시되지 않을까요?
진우 강신주 철학박사가 책의 서문에 그런 말을 썼어요. 우리가 위대한 철학자나 사상가들의 이야기를 듣는 것은 마치 자기 삶을 제대로 살고 있는 친구와 대화를 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러니 그 사람은 자기 삶을 이렇게 맞이하면서 살았구나, 그럼 나는 내 삶을 어떻게 맞서서 살아볼까 생각해야 한다는 거죠. 절대 그들의 생각을 똑같이 따라하거나 외우려고 하지 말라고 했었죠. 저는 그 부분에서 큰 울림이 있었던 것 같아요.
지금 저희가 얘기하는 것은 모든 멘토가 다 필요 없다거나 예전의 사상가들이나 철학자들이 모두 의미가 없다는 게 아니라, 그걸 어떻게 받아들일까 하는 문제인 거예요. 나의 멘토들의 삶과 언어를 무비판적으로 그대로 받아들인다는 것은 굉장히 위험할 수 있다는 거죠.
나답게 사는 건 가능합니까_ 임재훈 전진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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