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안&성찰

우애의 경제를 위하여 5_ 김종철

정정진 2011. 9. 20. 21:33

노예의 돈에서 자유인의 돈으로

 

'사회적 은행'의 경우는 현재 통용되고 있는 국가화폐를 가지고, 그것을 선용하는 모범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지역화폐운동은 기왕의 국가화폐가 아니라, 아예 화폐 자체를 지역공동체 자신이 독자적으로 만들어 사용하자는 아이디어입니다. 말하자면 돈의 실질적인 주인이 되자는 거죠. 화폐발행권익이라는 게 있습니다. 화폐를 발행하는 주체가 화폐를 발행한다는 사실 자체로 인해 저절로 갖는 특권적인 이익을 말합니다. 이것을 '시뇨리지'라고 합니다. 지역화폐라는 것은, 간단히 말하면, 이 '시뇨리지'를 지역이나 공동체 자신이 차지하자는 것입니다.

 

지금 한국에서 우리가 보통 돈이라고 할 때는 대개 한국은행권을 말합니다. 그러면 '시뇨리지'는 한국은행이 갖고 있다고 할 수 있겠지요. 하지만 가만히 생각해보면 우리가 지금 사용하는 돈 중에서 한국은행권이 차지하는 비중은 극히 낮아요. 지금부터 20~30년 전에는 전체통화량 가운데 30~40퍼센트쯤 됐을 겁니다. 그러나 지금은 3~5퍼센트 정도일 거예요. 실제로 요즘 현금 가지고 다니면서 쓰는 사람 드물잖아요. 대게 일상생활에서 신용카드 쓰고, 송금할 때에도 현금이 필요한 게 아닙니다. 그냥 거의 전부가 전자부호로 결제를 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쓰는 이 전자부호로 표시된 돈은 결국 어디서 나온 겁니까? 은행에서 대출받은 돈입니다. 신용카드를 한번 생각해보세요. 내가 상점에서 물건을 사면서 카드를 내면 상점 쪽에서 전자기기를 통해 금융망에서 그 카드의 유효성을 확인합니다. 확인이 되면 결제가 됩니다. 결제가 되는 순간 그 이전까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던 돈이 발생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돈이라는 것은 은행이 고객에게 대부를 해주는 순간 창조됩니다. 내가 가진 예금계좌에 들어있는 돈에서 꺼내어 은행이 내게 돈을 주는 게 아닙니다. 결제하는 순간, 새로운 화폐가 창조되는 것입니다. 카드의 경우는 상점 쪽에서 수수료를 지불합니다만, 일반적으로 우리가 은행에서 대출을 받을 때는 대출받은 고객이 이자를 물게 돼있죠. 여하튼 은행은 수수료든 이자든 대출을 해준 대가를 챙깁니다. 그것이 '시뇨리지'입니다. 우리가 흔히 시중은행이라고 부르는 민간은행들이 매일매일 개인이나 기업에 대출을 해준 대가로 챙기는 이자는 전체적으로 엄청난 금액입니다.

 

게다가 근대적 은행제도에서는 은행이 자기가 갖고 있지도 않은 돈을 대출하는 게 관행입니다. 그것이 부분준비제도라고 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서, 은행이 100원을 가지고 있으면 1000원을 대출해줄 수 있는 제도입니다. 그 비율은 스위스에 있는 국제결제은행의 규정에 따라 변동될 수 있고, 각국의 사정에 따라 중앙은행이 정한 규칙에 따라 다양합니다. 심지어 은행이 한푼도 없어도 얼마든지 돈을 대출할 수 있는 나라도 있습니다. 그렇게 만들어진 돈이 지금 우리가 실제로 사용하는 돈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요컨대, 돈은 사람들이 은행에 빚지고 있는 부채입니다. 은행에서 대부받은 돈은 반드시 일정한 기간이 지난 후에 원금에 이자를 붙여서 돌려줘야 하죠. 은행은 자기가 갖고 있지도 않은 돈을 빌려주고 거기다가 이자까지 붙여서 먹습니다.

 

한국은행이 지폐와 동전을 발행함으로써 얻는 이익도 물론 '시뇨리지'이지만, 그것은 지금 전체통화량 가운데서 미미한 비중밖에 차지하지 않습니다. 한국은행은 어쨌든 국가의 공공기관이니까 공공성을 갖고 있다고 볼 수 있지만, 민간 상업은행은 오로지 자신의 사적 이익을 위하여 운영되는 영리기관입니다. 그러니까 오늘날 '시뇨리지'를 통한 막대한 이익을 민간은행들이 차지하고 있다는 게 문제입니다. 통화라는 것은 원래 국가면 국가, 지역이면 지역의 경제순환을 원활하게 하기 위한 수단입니다. 그러므로 그것은 전기나 수도나 철도처럼 국가가 국민의 안정된 생활을 위하여 최소한의 사용료를 받고 제공해야 할 공공재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날의 금융시스템은 그런 공공성에 대한 고려는 거의 없고, 민간금융업자와 자본가들의 사적 이익을 최우선시하는 구조 속에서 움직이고 있습니다. 그러니 언제나 서민들은 돈이 없고, 사회적 양극화가 심화되고, 부채 때문에 망하고 자살하는 개인과 중소기업이 속출하는 것입니다.

 

지금 미국경제가 전반적으로 매우 불안정하고, 연방정부든 지방정부든 극심한 적자에 허덕이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유일하게 흑자를 내는 주(州)가 하나 있는데, 노스다코타주입니다. 노스다코타는 재작년 이후 금융위기 상황에서도 전혀 흔들림 없이 튼튼한 재정을 유지하고, 실업률도 미국에서 최하위라고 합니다. 그렇게 된 결정적인 원인이 뭐냐 하면 노스다코타가 주립은행 시스템을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19세기 말에 가난한 농민들이 중심이 되어 만든 신용조합이 발전하여 주립은행이 되었는데, 노스다코타주의 모든 공공회계, 공적기관의 재무출납 등이 모두 이 주립은행을 통해서 이루어집니다. 그렇게 해서, 가령 노스다코타의 주정부 예산 전체가 노스다코타주립은행에 예치되면, 부분준비제도의 원리에 의해 그 예산액보다 훨씬 많은 대출금, 즉 새로운 통화를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다른 주에서는 민간 상업은행들이 차지하고 있는 '시뇨리지'를 노스다코타주에서는 노스다코타주립은행이라는 공공 금융기관이 차지하고 있는 셈이죠. 그 결과로 은행이 얻는 막대한 수익이 그대로 주의 다양한 공공사업에 필요한 자금으로 쓰일 수 있습니다. 그 돈으로 학교와 병원을 짓고, 아이들과 노인, 실업자를 돕는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도로와 다리를 만들고, 서민과 농민들을 지원할 수 있는 것입니다. 노스다코타의 경우는 은행이 공공기관으로 역할을 하면 그 공동체의 삶이 얼마나 안정되고 풍요로워질 수 있는가를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현재 미국에서는 캘리포니아주를 포함해서 여러 주에서 주립은행 신설운동이 시민운동 차원에서 활발하게 벌어지고 있다고 합니다. 노스다코타의 예가 큰 자극제가 된 거죠.

 

그런데 공공은행도 물론 중요하지만, 실은 가장 래디컬한 자주적 금융시스템이자 우리가 당장 실현할 수 있는 것은 지역화폐입니다. 지난 2월에 제가 잠시 일본에 다녀왔습니다. 지역화폐에 관한 최근의 자료들을 보다가 일본 나고야 근교에서 한 젊은이가 세계 최초의 쌀본위제 지역화폐를 발행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좀 자세히 알고 싶어서 급히 비행기를 타고 갔습니다. 30대 청년이더군요. 나고야대학을 다니다가 재미가 없어서 도중에 그만두고 몇년 동안 배낭 하나 메고 세계 각지를 돌아다니다가 돌아와서 지역화폐운동을 시작한 거예요. 이 젊은이는 지금은 일주일에 사나흘은 시내에서 일하고 나머지는 집에서 농사를 지으면서 살고 있어요. 일본사회의 희망은 유기농 농사에 있다고 믿고, 어떻게 하면 유기농을 확대하는 데 도움이 될까를 생각하다가 지역화폐운동을 시작했다고 합니다. 유기농 농사를 하는 근처의 몇몇 농민들과 협약을 맺었습니다. 작년 봄에 쌀농사가 시작될 때 지역화폐 1만장을 발행했어요. '오무스비'라고 이름을 지었는데, 우리말로 옮기면 '연대'라는 뜻도 되고, '주먹밥'이라는 뜻도 있어요. 아무튼 지폐 한장이 유기농 현미 반홉에 해당되도록 설계를 했습니다. 농민들이 농사지어서 가을에 그 지폐를 쌀로 바꿔주면 되잖아요. 농사를 시작할 때 농민들에게 지역화폐를 주고, 농민들은 이것을 가지고 농사철 동안 논밭 일을 도와주러 오는 사람들에게 답례로 주기도 하고, 농민들과 그 지폐를 가진 사람들은 미리 약정된 인근 협력 상점들에서 이 지역화폐를 사용했습니다. 협력점은 카페나 식당, 구멍가게, 마사지점, 미장원, 이발소 등등 소규모 상점들 중심으로 30개월쯤에서 시작했습니다. 상당수 사람들이 취지에 찬동해서 기꺼이 동참했습니다. 협력점 사람들은 장사에 별 도움이 되는 것 같진 않지만 아이디어가 재미있어서 받아들인 사람도 있었습니다. 그런 협력점으로 음식도 팔고, 차도 파는 가게에 제가 가보았습니다. 이 지역화폐를 들고 오는 사람은 많지는 않았지만, 자기들은 굉장히 재미있게 생각했고, 내년에도 계속 협력업체로서 참가할 생각이라고 하더군요.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 '오무스비'라는 지역화폐에는 쌀이 뒷받침이 돼있다는 사실이죠. 요즘은 미국달러이건 한국은행권이건 금은이 뒷받침되어 있지 않아요. 그냥 국가가 보증하는 신용화폐일 뿐이죠. 그러나 지금 나고야에서 한 일본 청년의 아이디어로 시작된 '오무스비'라는 지역화폐는 엄연히 쌀이라는 인간생활에 매우 긴요한 물건이 뒷받침을 하고 있습니다. 신용이라는 점에서 이보다 더 확실한 신용이 없죠. 저는 기존의 지역화폐운동 중에서도 이 쌀본위제 지역화폐가 매우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 화폐는 협소한 지역적 한계를 벗어나서 비교적 광범위하게 활용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게다가 지금 죽어가는 농사와 농민과 농촌을 되살릴 수 있는 강력한 수단이 될 수 있어요. 국가의 중앙은행이 발행하거나 기존의 민간은행이 발행한 화폐를 가지고 있지 않다고 해서 우리가 좌절할 필요가 없습니다. 뜻있는 시민단체가 농민들과 제휴를 해서 지역화폐를 만들어 널리 사용할 수 있는 조건과 분위기를 만들면 되는 거죠. 쌀이 뒷받침하고 있기 때문에 그냥 신용에 의존하는 지역화폐운동보다는 훨씬 쉽게 확산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나고야의 이 쌀본위제 화폐는 작년 10월에 농사철 마지막에 총 1만장 중에 7000장이 회수됐다고 합니다. 그래서 현미 쌀과 교환되었다고 합니다. 대단한 성공이죠. 이게 좀더 확산되면 사람들이 국가나 기존 금융시스템에 의지하지 않고, 얼마든지 자주적으로 이웃사람과 함께 살 수 있을 것입니다. 그 일본 청년과 헤어질 때 제가 그랬어요. 나도 한국에 돌아가면 쌀본위제 지역화폐라는 아이디어를 널리 알리고 실행해보겠다고, 그래서 동아시아 쌀본위제 통화네트워크를 함께 만들어보자고 했습니다. 여러분들도 관심을 가져주시면 좋겠습니다. 이런 운동이 확대되면 우리나라도 희망이 생길 것입니다.

 

제가 '사회적 은행'이라든지 지역화폐라든지, 기존의 금융제도를 벗어난 통화에 대해 관심을 갖고 공부를 하는 이유는 우리 각자가 주체적인 자유인으로 살아가야 한다는 점도 있지만, 이대로 기존의 통화제도가 우리 삶을 지배하도록 내버려둘 수는 없다는 생각 때문입니다. 이대로 가면 얼마 안 가서 세상은 반드시 망하게 돼있습니다. 왜냐하면 현재의 금융통화제도는 경제성장을 강요하는 시스템이기 때문입니다.

 

아까도 말했지만, 근대적 통화제도에서 화폐는 기본적으로 은행에서 대출받은 돈, 즉 부채입니다. 그런데 은행은 대출을 해줄 때 고객에게 이자까지는 주지 않습니다. 원금만 대부해주는 거죠. 모든 사람이 은행으로부터 원금만 대부받습니다. 은행에 상환할 때 필요한 이자는 은행에서 발행한 적이 한번도 없습니다. 그러면 사람들이 은행에 돈을 갚을 때 물어야 하는 이자는 어디서 나옵니까? 다른 사람들로부터 빼앗아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극심한 경쟁을 할 수밖에 없고, 사회 전체적으로는 그 이자를 마련하기 위해서 계속해서 경제규모를 확대할 수밖에 없습니다. 경제성장을 하지 않을 수가 없다는 뜻이죠. 오늘날 국가적으로 경제성장이 필요한 것은 사람들의 추상적인 탐욕 때문이 아닙니다. 개인이든 기업이든 은행에서 대출받은 원금에다가 이자를 갚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대로 그러한 경제성장이 계속된다면 조만간 세상은 끝장납니다. 그러므로 지금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어떻게 하면 경제성장을 멈추고, 지속가능한 생활방식을 만들어낼 것인가 하는 것입니다. 경제성장을 멈추려면 금융통화제도부터 고쳐야 합니다. 이 제도를 그냥 두고 아무리 성장 없는 경제에 대해서 말해봤자 헛일입니다.

 

그런데 기존의 금융통화제도를 국가적 차원에서 개혁한다는 게 가능한 일일까요? 이미 이 제도 때문에 막대한 이익을 보는 강력한 기득권 세력이 있고, 그들이 국가권력을 사실상 지배하고 있습니다. 세계경제도 마찬가지입니다. 달러 지배체제가 붕괴하면 붕괴했지, 달러체제로 엄청난 이익을 취하고 있는 기득권 세력이 통화제도의 발본적 개혁을 지지하거나 묵인할 리가 없습니다. 결국은 풀뿌리 차원에서 이러한 지배적인 금융통화제도에서 벗어나는 방법을 생각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그래서 자주적인 삶의 공간을 구축하는 길밖에는 없습니다. 그것이 지역화폐운동입니다. 자연환경을 살리는 것도, 농촌을 살리고 지역사회를 살리는 일도 결국은 지역화폐와 같은 자주적 협동운동에 달려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지역화폐운동이 필요한 것은 지구의 장래만이 아니라 우리들 각자가 자유인으로 살기 위해서입니다. 우리들끼리 협동하고 연대를 하면 만사가 해결됩니다. 기존의 금융지배자들이 던져주는 푼돈에 매여서 하루하루 노예처럼 살아갈 이유가 없습니다. 돈이라는 것이 과연 무엇인지 그 정체와 본질을 정확히 이해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그리하여 자본가와 은행업자들이 차지하고 있는 '시뇨리지'를 우리 자신이 차지하자는 것입니다. 그게 우리 자신이 자주적으로 살고, 우리가 속한 공동체를 살리는 결정적으로 중요한 방책입니다.

 

_ 김종철, <녹색평론 119호, 2011년 7월~8월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