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고사는 문제와 인문학
우리, '재미를 위한 혁명'을 하자
미국의 여성운동가 엠마 골드만은 '내가 장단 맞춰 춤출 수 없는 혁명은 원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어떠한 명분과 목적을 내건 혁명이더라도 나 자신의 '자발성'에서 우러나오는 것만큼 중요한 것은 없다는 점을 강조한 말이리라. 이 말은 책읽기의 경우에도 그대로 적용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누가 시켜서 억지로 읽는 독서, 의무감 때문에 하는 책읽기는 발견하는 재미를 앗아갈 수밖에 없다. 그런 독서 행위가 나 자신의 삶과 내면을 바꾸기를 기대한다면 무척 난망한 노릇이다. 어쩌면 가장 이상적인 책읽기의 경지는 아무런 목적이 없는 독서행위 자체에 있다고 단언할 수밖에 없으리라.
또 책읽기를 통해서 나 자신의 삶과 우리들의 삶이 바뀐다는 생각에 너무 많은 의미를 부여할 필요 또한 없을는지 모른다. 사람은 바뀌기도 하지만, 어떤 면에서는 결코 바뀌지 않는 존재가 사람이라고 보아야 하지 않을까. 물론 바뀔 수 있다는 가능성을 갖는 것이 그래도 세상은 살만한 가치가 있다는 희망을 품게 한다. 그래서 나는 희망하는 것은 도박하는 것과 같다는 말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희망하는 것은 희망 고문 혹은 희망의 인질이라는 말에서 연상할 수 있듯이 매우 위험하지만, 산다는 것은 위험을 무릎쓰는 것이기 때문에, 희망하는 것은 결국 두려움의 반대가 될 수 있는 것이다. 희망은 행동을 요구하고, 행동은 희망 없이는 불가능하지 않던가.
그러나 우리가 잊어서 안되는 것은 나의 희망을 상대방에게 강요해서는 안된다는 점이다. 그것은 '유토피아를 꿈꾸는 사람은 그 유토피아의 독재자이다'(한나 아렌트)라는 말에 함축되어 있는 것처럼, 이성의 자기 배반 내지는 동일성의 폭력적 속성을 성찰하는 것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쉽게 말하자면, 계몽하지 않는 계몽 혹은 즐거운 계몽의 태도와 관점이 요구된다. 아는 것은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부단히 성찰하면서 실천하는 행동주의에서 검증될 수 있으리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책읽기와 글쓰기가 나와 우리들의 내면과 삶을 변화시킬 수 있는 작은 접점을 만들 수 있다면, 아마도 그런 경지에서 얻어질 수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D.H 로렌스의 시 <건전한 혁명>을 감상하면서 두서없는 이 글을 마친다. 우리가 책을 읽고 인문학적 가치를 옹호하는 것은 어쩌면 이 시의 표현처럼 '재미를 위한 혁명'의 필요성을 나날의 삶과 노동 속에서 깨우치고 싶어하는 마음 때문은 아닐까? 그런 마음이 아직 나와 우리의 마음에 있다면, 나와 우리들의 마음이 아직은 단단한 시멘트 같은 '관료화'에 빠진 것은 아니라는 위안을 해도 좋을지 모르겠다. 그래서 재미와 유머는 더욱 필요한 것 아니겠는가?
혁명을 하려면 재미로 하라
지나치게 심각하게는 하지 말라
너무 진지하게도 하지 말라
그저 재미로 하라
사람들이 미워서 혁명을 해서는 안된다
그저 그들의 눈에 침 한번 뱉기 위해서 하라
돈 때문에 혁명을 하지 말라
혁명을 하고 돈 따위는 던져버려라
평등을 위한 혁명은 하지 말라
혁명이 필요한 건 세상에 평등이 넘쳐나기 때문이다
사과 수레를 뒤집어 어느 쪽으로 사과가
굴러가는가를 보는 건 얼마나 재미있는가
노동자계급을 위한 혁명도 하지 말라
우리 모두가 자력으로 작은 귀족이 되는 그런 혁명을 하라
즐겁게 도망치는 당나귀들처럼 뒷발질이나 한번 하라
어쨌든 세계 노동자를 위한 혁명은 하지 말라
노동은 이제껏 우리가 너무 많이 해온 게 아닌가
노동을 폐지하자, 일하는 것에 종지부를 찍자!
일은 재미일 수 있다, 그리하여 사람들은 일을 즐길 수 있다
그러면 일은 노동이 아니다
노동을 그렇게 하자! 재미를 위한 혁명을 하자!
* 고영직 - 문학평론가. 경희대 실천인문학센터 교수
_ 김종철, <녹색평론 110호, 2010년 1월~2월>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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