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리&종교

더불어 사는 공생인으로 살아가기_ 최재천

정정진 2009. 10. 16. 18:31

 

더불어 사는 공생인으로 살아가기

 

 

오늘날 우리는 환경의 중요성이 굉장히 강조되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환경은 그냥 골칫거리 중 하나였죠.

'내가 환경까지 신경을 써야 돼?' 하는 생각을 하던 시절이었지만 이제는 정말 우리가 무슨 일을 하든 환경을 제일 먼저 고려하지

않으면 안 되는 그런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우리 인간이 어떤 마음가짐으로 21세기를 살아가야 우리의 집이라고 할 수 있는 환경을 보호하면서 질 높은 삶을 계속

유지할 수 있는가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남태평양 이스터섬은 거대하게 세워진 석상으로 유명하죠. 그러나 환경운동가들에게 이 섬은 환경재앙의 본보기로 더 유명합니다.

한때는 굉장히 찬란한 문명을 가졌던 민족이 환경을 파괴하는 바람에 지금은 그야말로 황폐한 환경과 문명의 흔적만이 남아 있기

때문이죠. 어쩌면 우리가 환경을 지키고 보호해 주지 않으면 우리의 미래 또한 그리될 수 있다는 것을 이스트섬의 거석들은 묵묵히

말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세계적인 석학인 캘리포니아 주립대학의 제레드 다이아몬드 교수님을 제가 참 존경하는데 생리학에서부터 조류학, 진화생물학,

생물지리학 등 여러 분야를 두루 섭렵하신 분으로 퓰리처상을 수상하신 분입니다. 그는 <문명의 붕괴>라는 저서를 통해 인간의

문명이 망하는 이유 중에 하나로 환경파괴를 꼽았습니다. "환경파괴는 문명이 파괴되는 가장 중요한 원인은 아닐지도 모른다.

그러나 망한 문명에 공통적으로 반드시 들어가는 이유가 바로 환경파괴다" 라고 하더군요.

 

많은 학자들이 "21세기의 패권은 중국이 가질 것이다"라고 이야기하지만 바로 이런 이유로 다이아몬드 교수는 꼭 그렇지 않을지도

모른다고 말합니다. 중국이 자국의 환경을 너무 많이 망가뜨리고 있기 때문에 앞일을 알 수 없다는 것이죠.

매년 각국의 지도자들이 스위스의 작은 마을 다보스에 모여서 빠지지 않고 논의하는 것도 바로 오늘날 지구의 변화에 대한 문제,

지구온난화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우리는 지금 환경파괴에 의한 엄청난 기후변화의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를 방문한 어느 우주 물리학자에게 한 학생이 "지구 환경이 날이 갈수록 파괴되고 있는데 이 문제에 대해 선생님은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을 했다고 합니다. 그랬더니 그분은 "우리 우주물리학자들이 우주를 개발하면 그리로 이사 가면 되니 그런 시시한

문제를 갖고 걱정하지 말자"고 했답니다. 정말 그럴까요?

 

실제로 우주가 개발되었다고 가정해 봅시다. 과연 누가 거기 가서 살겠다고 하겠습니까. 아시겠지만 미국에는 이미 엄청나게 비싼

우주여행 상품이 시판되고 있습니다. 어마어마하게 비싼 그 여행은 지금 신청해도 10년은 기다려야 갈 수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우주에 미지의 땅이 개발되면 그 비싼 우주여행을 다녀온 사람들이 그곳에 가서 살까요? 저는 그렇지 않다고 봅니다. 아마도 옛날

신대륙을 발견했을 때 그랬듯이 감옥에 있는 사람들, 못사는 사람들, 가지지 못한 자들이 맨 먼저 그리고 쫓겨 갈 것입니다.

 

아주 옛날에 사람들이 동굴에서 살던 시대에는 살다가 지저분해지면 모두 버리고 다른 동굴로 이사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었겠

죠. 새로운 동굴이 아주 많았으니까요.

그런나 지금 인간이 더 이상 이사 갈 곳은 없습니다. 우리가 살던 나라가 오염되었다고 살던 곳을 버리고 몽땅 다른 나라로 옮겨 갈 수

있습니까? 가능하지도 않지만 만약 그런 일이 생긴다면 바로 전쟁이 일어날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이제 더 이상 옮겨 갈 곳만 없는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이 다 없어져 갑니다. 저는 21세기에 가장 부족해질 자원이 식량, 물

에너지라고 생각합니다. 참 묘하게도 이들의 첫 글자를 따면 '거의 없는 Few'이란 뜻이 되죠. 과장이 아니라 머지않은 미래에 이 자원

들이 정말 거의 없어지는 그런 상황이 올 것입니다.

 

현실이 이러한데 언제 개발될지도 모르는 우주의 또 다른 행성을 기대하면서 우리가 살고 있는 터전을 계속 망가뜨려도 되는 것일까

요? 저는 절대 그렇지 않다고 봅니다. 지구라는 작은 행성에서 함께 사는 지혜를 나눠 실천하지 않으면 결코 해결되지 않을 일입니다.

인간은 스스로를 만물의 영장이라고 하면서 개미와 같은 작은 동물들을 미물이라고 하죠. 그런데 이 작은 미물인 개미가 뭉치면 엄청

나게 큰일을 합니다. 저는 감히 개미와 인간을 지구의 양대 지배자라고 표현합니다. 기계문명세계의 지배자는 분명 인간이지만 자연

생태계의 주인은 곤충이고, 그 곤충들 중에 가장 성공한 것이 개미이기 때문이지요. 개미는 남극, 북극, 만년설이 덮여 있는 산, 바다를

빼고는 지구 어느 곳에서나 살고 있는 생명체입니다.

 

세상에 개미가 얼마나 있을까를 연구한 학자가 있습니다. 전 세계의 모든 개미를 일일이 세어 본 절대적 수치는 아니지만 여기저기서

표본조사를 하고 수없이 곱하고 더하고 빼서 나온 숫자가 10의 16승이라고 합니다. 10에 공이 무려 16개가 붙어서 제대로 읽을 수조차

없는 숫자가 되고 맙니다.

 

전 세계 인구가 65억이라고 합니다. 만약 아주 거대한 시소가 있다고 했을 때 한쪽에는 65억의 인간이, 한쪽에는 10의 16승이나 되는

개미가 모두 올라탄다고 상상해 보십시오. 개미와 우리 인간은 함께 시소를 즐길 수 있습니다. 개미 전체의 무게와 인간 전체의 무게가

얼추 비슷합니다. 이처럼 엄청난 존재가 바로 개미입니다.

 

도대체 어떻게 개미가 이토록 생존에 성공할 수 있었을까요. 그건 바로 개미가 인간처럼 협동할 수 있는 존재라서 그렇습니다. 협동

만큼 막강한 힘을 보여 줄 수 있는 것은 없습니다.

하나만 예를 들겠습니다. 열대에 가면 수많은 나무들이 조금이라도 더 햇볕을 받으려고 서로 얽히고 설켜 빽빽하게 서 있습니다. 이

나무들 중에 개미가 집을 짓고 사는 아카시아나무가 있는데 자그마치 6천만 년 동안이나 개미와 공생을 해 왔습니다. 아카시아나무는

개미에게 필요한 집은 물론 동물성 단백질까지 제공하는 대신 개미는 반경 5미터 내에 있는 다른 식물을 모두 제거해 줍니다. 대단히

놀라운 일이죠. 이처럼 개미는 많은 동식물과 서로 밀접한 공생관계를 맺으며 오랜 세월을 살아왔습니다.

 

자연계에는 이렇게 서로 도우며 사는 이야기가 굉장히 많습니다. 만약 지구상의 모든 개미가 멸종한다면 그 장례식장에는 개미의 혜택

을 받으며 살아온 많은 동식물이 애통해하면서 구름같이 몰려들 겁니다. 반대로 우리 인간은 어떨까요? 통곡은커녕 그것들 잘 죽었다

고 노래를 할는지도 모릅니다.

 

서로 공생하던 종이 결과적으로도 더 오래 살아남아

 

진화생물학은 자연계에 적자생존의 원칙이 존재한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적자생존이란 어떤 형태로든 잘 살 수 있는, 적응을 잘하는

존재가 살아남는다는 것이지 꼭 남을 꺾어야만 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그동안 우리는 자연을 그저 경쟁 일변도로만 여겨 온 것 같습니다. 그야말로 너 죽고 나 살자는, 이에는 이, 눈에는 눈이라는 식이었죠.

자연을 연구하는 생태학자들도 십 몇 년 전까지는 이것만이 자연의 법칙인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이 세상을 둘러보니 살아남은 존재

들은 무조건 전면전을 벌이면서 상대를 꺾는 데만 주력한 생물이 아니라 자기 짝이 있는, 서로 공생하면서 사는 종이라는 사실을 발견

했습니다.

 

우리 인간은 자연계에서 뚝 떨어져 혼자 나와 있는 것처럼 생활하지만 어느 학자가 조사를 해 보니 우리 식탁에 올라오는 종이 약 5천

가지나 되더랍니다. 그런데 또 우리를 먹고 사는 종은 한 1천 가지가 있답니다. 호랑이가 잡아먹을 수도 있지만 모기, 빈대, 진드기

그런 것들을 다 따져서 그렇다는 것이죠. 그러니까 우리 인간이라는 종을 가운데 놓고 어떤 형태로든 6천 종이 서로 공생관계를 맺고

있는 것입니다.

 

인류는 오랜 진화과정을 거치면서 마침내 생각하는 사람, 현명한 인간이라는 뜻의 호모 사피엔스라는 학명이 붙었습니다. 저는 이게

지나친 자만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정말 현명한 인간이라면 우리의 집인 환경을 망가뜨리면서 살아오진 말았어야죠. 돌이키기

힘들 정도로 환경을 훼손시켜 놓고 현명하다고 자화자찬하고 있는 것이 지금 우리의 모습입니다.

 

물론 인간은 똑똑합니다. 굉장히 머리가 좋죠. 그런데 이대로 가면 제 꾀에 제가 넘어가는 헛똑똑이가 되고 말 것입니다. 우리가 정말

지구에서 오래토록 살아남으려면 현명한 인간이라는 오만함을 버리고 다른 동물과 다른 식물과 함께 사는 길을 모색하고 이를 적극적

으로 실천에 옮겨야 할 것입니다. 우리 모두가 현명한 인간이라는 자만에서 벗어나 더불어 사는 공생인으로 거듭나 환경의 위기를

극복하는 삶을 실천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 최재천 : 서울대 교수, 이화여대 자연과학부 교수

 

- 이어령, 고도원 외 <한국의 명강의>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