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천천히 고종을 읽는 이유 2

국왕과 왕비가 직접 관직 팔아먹어_ 김용삼

'일성록'에 따르면 1875년 조선 조정의 1년 세입은 고작 52만 냥에 불과했다. 이 와중에 네 차례 청나라 칙사가 조선을 다녀가면서 80만 냥을 임시 지출했다. 재정이 바닥난 조선 정부는 시중 상인들에게 공물 비용을 지급하지 못한 금액이 무려 50만 냥에 달했다. 재정난을 타개하기 위해 고종은 외국으로부터 차관 도입, 매관매직, 동전 발행 등 세 가지 방법으로 대응했다. 불행하게도 세 가지 방법 모두 최악의 결과만 가져왔다. 중병 앓는 환자에게 근원적 치료가 불가능하니 일시적인 고통을 줄이기 위해 모르핀을 주사하는 것이나 다름없는 방법이었기 때문이다. 조선 조정은 1882년 청으로부터 50만 냥의 차관을 최초로 도입했다. 그러나 차관 도입은 결코 공짜가 아니었다. 차관의 도입 대가로 고종은 청 조정에..

인물&역사 2021.06.07

무당과 점술에 미친 고종과 민 황후_ 김용삼

민 왕후는 미신이라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는 독특한 여성이었다. 이런 여성이 왕비로 들어앉았으니 내전은 역술가, 박수, 무당들의 소굴이 되고 말았다. 태어날 때부터 병약했던 아들의 병을 고치기 위해 궁에서 푸닥거리가 그칠 날이 없었다. 귀한 아들을 세자로 삼기 위해 민 왕후는 청나라의 실력자 서태후와 리홍장에게 엄청난 뇌물을 갖다 바쳤다. 릴리어스 호턴은 민 왕후의 시의로 활동하며 왕실과 가까운 관계였다. 그녀는 조선에 선교사로 파송된 언더우드와 결혼했는데, 민 왕후는 통 크게 거액의 축의금을 보냈다. 자그만치 현금 100만 냥이었다. 당시 조선에서 재산이 2500~3000냥이면 부유한 축에 속할 때의 일이다. 민 왕후의 정체성은 공과 사, 국가와 집안이 분리되지 않은 상태였다. 왕실이 이처럼 비상식적으..

인물&역사 2021.05.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