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종 2

러시아에 속은 고종_ 김용삼

최후의 파천 시도 고종 황제가 가장 신뢰하고 의지한 사람은 러시아의 니콜라이 2세였습니다. 고종이 그와 주고받은 친서는 30여 차례나 됩니다. 친서는 암호문으로 작성되었습니다. 1904년 5월 16일 주한 파블로프 공사가 본국 외무부에 보낸 보고서에는 "고종 황제가 소장하고 있는 러시아 외무부와의 연락용 암호 통신문이 덕수궁 화재로 소실되었다. 혹시라도 일본이 훔쳐 보관하고 있을 수도 있으니 미리 방비하라"는 내용이 있습니다. 1903년부터 러일전쟁의 전운이 감돌기 시작했습니다. 대한제국을 먹이로 둔 러시아와 일본 간의 전쟁이었습니다. 그 긴박한 시기에 고종은 막대한 예산을 투입하여 자신의 즉위 40주년을 성대하게 기념하기 위해 경운궁 내에 석조전을 건축하였습니다. 전쟁의 위기가 임박하자 고종은 이 나라..

인물&역사 2022.02.05

무당과 점술에 미친 고종과 민 황후_ 김용삼

민 왕후는 미신이라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는 독특한 여성이었다. 이런 여성이 왕비로 들어앉았으니 내전은 역술가, 박수, 무당들의 소굴이 되고 말았다. 태어날 때부터 병약했던 아들의 병을 고치기 위해 궁에서 푸닥거리가 그칠 날이 없었다. 귀한 아들을 세자로 삼기 위해 민 왕후는 청나라의 실력자 서태후와 리홍장에게 엄청난 뇌물을 갖다 바쳤다. 릴리어스 호턴은 민 왕후의 시의로 활동하며 왕실과 가까운 관계였다. 그녀는 조선에 선교사로 파송된 언더우드와 결혼했는데, 민 왕후는 통 크게 거액의 축의금을 보냈다. 자그만치 현금 100만 냥이었다. 당시 조선에서 재산이 2500~3000냥이면 부유한 축에 속할 때의 일이다. 민 왕후의 정체성은 공과 사, 국가와 집안이 분리되지 않은 상태였다. 왕실이 이처럼 비상식적으..

인물&역사 2021.05.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