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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죽거든_ 향봉스님

정정진 2024. 7. 4. 20:57

내 죽거든

이웃들에게 친구들에게 알리지 말길

관이니 상여니 만들지 말길

그저 입은 옷 그대로 둘둘 말아서

타오르는 불더미 속에 던져버릴 것

한 줌 재도 챙기지 말고 버려버릴 것

 

내 죽거든

49재다 100재다 제발 없기를

쓰잘 데 없는 일로 힘겨워 말길

제삿날이니 생일이니 잊어버릴 것

죽은 자를 위한 그 무엇도 챙기지 말 것

죽은 자의 사진 한 장도 걸어두지 말 것

 

내 죽어

따스한 봄바람으로 돌아오리니

피고 지는 들꽃무리 속에 돌아오리니

아침에는 햇살처럼 저녁에는 달빛처럼

더러는 눈송이 되어 더러는 빗방울 되어

 

티베트의 '당시옹'이라는 지역에서 고산증세로 쓰러져 죽어가고 있었다. 허름한 게스트하우스 주인은 흔히 있는 일이라며 병원도 없고 택시도 없다는 것이었다. 가슴이 답답하고 머릿속이 터져버릴 것 같은 고통 속에서 안간힘을 다해 쓴 글이 바로 <내 죽거든>이다.

 

내가 정신을 차린 곳은 군부대의 의무실이었다. 티베트 지역에서는 경찰이 아닌 무장한 군인이 게스트하우스를 점검차 왔다가 실신해 있던 나를 의무실로 옮긴 것이다.

 

그곳에는 열악하긴 하나 산소통이 준비되어 있었다. 담당 장교가 내 소지품을 돌려주며, 종이에서 기어가고 있는 <내 죽거든>도 함께 주었던 것이다.

 

그날 밤 그들이 제공한 군용트럭을 타고 라싸로 오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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