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환경을 만들어 주는 곳'과 문제가 생길 것에 대비해서 미리 '여러 규제를 만든 곳' 중 어디를 선택할 것인지 묻는다면 누구라도 전자라고 답할 것이다. 이 당연한 질문과 답은 안타깝게도 핀란드와 한국의 대비되는 상황에 대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자율과 창의력의 관계에 대한 좋은 예로 초창기 벤처기업의 일하는 방식을 들 수 있다. 거칠게 나누자면 수직적 조직과 수평적 조직으로 나눌 수 있다. 수직적 조직은 사장이 모든 일을 결정하고 직원들은 군말 없이 그 일을 수행한다. 결정과 실행 속도가 빠르고 특히 제조업의 경우에는 생산성을 높이고 결함을 줄이는 데 효과적이다. 그러나 그 기업의 창의력은 전적으로 사장 한 사람에게 의지하게 된다. 인간관계는 상대적인 것이어서 한쪽이 적극적이면 다른 쪽은 수동적이 된다. 한쪽에서 일방적으로 명령을 내리면 다른 쪽에서는 수동적으로 그 말을 따를 뿐 적극적이고 주체적으로 새로운 아이디어를 내지 않게 된다. 따라서 그 기업의 성장은 전적으로 사장 한 사람의 능력에 따라 좌우된다. 또한 현장에서 문제가 생길 때 담당자가 결정 권한이 없어 스스로 행동하지 않고 사장이나 부서장에게 물어보게 되니 대응이 느릴 수밖에 없다. 복잡한 현장 상황에서 멀리 떨어진 사람이 결정하게 되면 잘못된 판단으로 일을 더 그르칠 가능성도 많다.
이와 다른 방식은 수평적 조직이다. 함께 아이디어를 내고 함께 결정하는 것이다. 이 경우에 사장은 하는 역할만 다를 뿐, 모두 함께 일하는 동료라고 생각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다. 한 직원이 엉뚱한 아이디어를 내놓더라도 핀잔주지 않고 하고 싶은 말은 얼마든지 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야 한다. 이런 과정을 통해 직원들은 적극적이고 주체적으로 창의력을 발휘해서 새로운 아이디어를 내놓는다. 또한 현장에서 문제가 생겼을 때도 담당자가 권한을 가지고 빨리 대응해서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다. 이 경우 기업은 참여한 모두의 능력을 합한 만큼 성장할 수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이 사람들은 스스로 판단하고 행동할 수 있는 자율성이 주어져야 창의력을 발휘할 수 있다. 조직에서 높은 사람이, 또는 국가에서 정부가 모든 규칙을 만들고 모든 결정을 하는 상황에서는 창의력이 발휘될 여지가 없다. 국가주의적 사고방식으로는 노벨상을 받을 수도 없고, 벤처산업이 성공할 수도 없는 것이다.
정부가 할 일은 핀란드처럼 창업자들이 자유롭게 역량을 펼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데 집중하는 것이다. 창업자들이 자율성을 가지고 스스로 시도하고 부딪칠 수 있을 때만이 창의적인 벤처 기업들이 탄생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자율은 행복과 직결된다. 개인이 하고 싶은 일을 원하는 대로 할 수 있도록 하는 분위기가 '행복한 국민'을 만든다. 많은 사람들이 핀란드에 대해 가장 부러워하는 것은 세계 최고의 행복 국가라는 점일 것이다. 세계경제포럼은 행복 국가 핀란드에 대해 개인의 '자유'와 연결된 사회 안전망, 그리고 일과 삶의 좋은 균형이 그 비결이라고 언급한 적이 있다. 자율성을 주고 존중하는 태도를 보여준다면 일하면서 불행하다고 느낄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한마디로 행복은 '삶의 자율성'에서 비롯된다. 누군가의 지시에 의해서만 일하거나, 하고 싶은 일을 여러 규제에 묶여 제대로 시작도 못 하게 되면 행복과 멀어질 수밖에 없다. 우리 모두는 자신이 좋아하는 일과 잘하는 일, 하고 싶은 일을 고를 수 있어야 하며, 자신의 선택이 틀렸거나 실패한다 해도 인생의 패배자나 낙오자로 전락하지 않는다는 믿음이 있어야 한다. 미래의 삶을 설계하는 과정에서 두려움 없이 다양한 선택을 할 수 있도록 사회 안전망을 촘촘하고 튼튼하게 하는 것이 국민을 자유롭고 행복하게 하는 국가의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이러한 분위기가 형성되어 있지 않다. 나라는 성공했어도 국민은 행복하지 않다. 이미 번 아웃에 이르고 탈진한 상황에서는 아무런 의욕도 불러일으키지 못한다. 지금 우리는 선택의 기로에 서 있다. 성공하고도 불행한다면 그건 내가 원했던 게 아니었기 때문일 것이다. 자율성이 결여된 채 일을 해도 존중 받지 못하는 삶을 지속해야 한다면 어느 누가 행복하다 말할 수 있을까.
유엔이 발표한 '2019 세계행복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은 행복 순위에서 156개국 가운데 54위다. 9위인 기대 수명과 27위인 1인당 국민소득은 높은 높은 편이었지만, 사회적 자유 분야는 144위로 최하위권에 처져 있다. 너무 가슴 아픈 현실이다. '사회적 자유'는 "당신은 당신의 인생에서 무엇을 해야 할지 선택하는 자유 정도에 만족하느냐"는 질문에 대한 답변으로 평가된다. 144위라는 순위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자신의 인생에서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자유가 거의 없다고 느낀다는 것을 증명해주는 셈이다. 너도나도 의사나 변호사, 대기업 정규직과 공무원만 되려고 하는 사회라면 분명 정상은 아닐 것이다.
개인이 자유롭게 역량을 발휘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 국가의 역할이다. 국민 스스로가 삶의 주인공으로 살며 스스로 책임질 수 있도록 기반을 닦고 지원하는 것도 국가의 일이다. 이를 위해서 국민의 자율성과 선택을 존중해야 하며, 하고 싶은 일을 해도 먹고살 수 있도록 일자리 개혁을 이루어야 하며, 도전해서 실패하더라도 재기할 수 있는 사회적 안전망을 마련해야 한다. 완벽하지는 않더라도 이 세 가지를 갖춰나가는 모습을 보일 때만이 국민은 다시 정부를 신뢰하고 다시 우리의 미래에 대한 희망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안철수, 우리의 생각이 미래를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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