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현 청주대 교수가 한국, 독일, 일본 3개국 국민의 과시 행위를 연구한 결과, 한국인은 85%가 "전반적으로 과시 성향이 강하다"고 응답한 반면, 일본인은 40%, 독일인은 한국인의 절반도 안 되는 34,5%에 불과했다. 독일인들은 사실 그 자체를 중요시한다. '있는 그대로'가 매우 중요시되는 나라다. 사실을 불필요하게 과정하거나 허세를 부리지 않는다. 독일인들은 재산이나 직업, 학벌, 집안 배경 등을 남에게 과시하려는 성향이 낮다. 외형적 치장보다는 내실을, 양보다는 질을 선호한다.
물론 근검, 절약의 나라 독일에도 프랑크푸르트의 명품 거리인 괴테스트라세와 쇼핑가 차일 거리를 비롯, 뮌헨, 뒤셀도르프, 베를린 등에는 명품 거리가 있다. 푸마, 휴고 보스, 보그너와 같은 독일 유명 패션 브랜드가 거리를 밝히고 있고 고객들도 꽤나 북적인다. 그러나 독일인들은 남에게 잘 보이거나 체면을 차리는 데 큰 돈을 쓰지 않는다. 길거리 여성들을 보면 대부분 유행이 지난 옷이나 가방 등을 그대로 착용하고 있다. 백화점이나 마트 매장에서는 유행을 잘 타지 않은 실용적인 옷들이 잘 팔린다고 한다.
이러한 성향은 명품 소비에서도 그대로 나타난다. 2016년 글로벌 부동산 컨설팅사 존스랑라살르가 분석한 세계 50대 도시의 '명품 쇼핑 매력 지수' 순위를 보면 런던, 홍콩, 파리, 도쿄, 뉴욕, 상하이, 싱가포르, 두바이, 베이징 등이 상위권을 휩쓸고 있고, 서울도 14위다. 이 50대 도시 중에 미국 11개 도시, 중국 12개 도시가 포함되어 있다. 그런데 독일 도시는 31위의 뮌헨이 유일하다. 경제력에 비해 명품 소비가 현저히 적다고 할 수 있다. TV에서도 소비 욕구를 자아낼 만한 사치스러운 장면이나 부유층의 무절제, 막장 드라마를 찾아보기 힘들다. 물론 독일도 요즘의 젊은 세대들은 개인주의화 경향이 커지면서 명품이나 고급차 선호 경향을 보인다. 그러나 이는 남에게 과시하려는 것보다는 편리함, 즐거움, 자신의 개성 등 실용성에 기인하는 면이 크다.
현 메르켈 총리는 '옷 못 입는 여성 정치인' 조사에서 항상 상위를 차지한다. 수수한 바지 차림에 철 지난 옷을 즐겨 입기 때문이다. 화려한 옷을 즐겨 입는 메이 영국 총리와 대조를 이룬다. 독일 국민들은 이러한 총리를 존경한다. 메르켈은 국정 수행능력 면에서 현재 세계 최고 지도자 반열에 올라 있다. 독일의 발명품이나 제품들 중에도 세계 최대 규모는 없다. 세계 최대 건물이나 기업도 없다. 유일하게 세계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것은 박람회장 정도다. 반면, 최초나 최고는 많다. 튼튼한 건물, 건전한 기업들도 수두룩하다. 겉보다는 내실을 더 중요시한 결과다.
독일의 경제력과 독일인들의 소득 수준에 비해 신용카드 사용액은 매우 적은 편이다. 그들에게 '신용카드는 빚'이다. 대신에 은행의 자기 구좌에 현금을 예치하고 그 범위 내에서 사용하는 직불(체크)카드를 선호한다. 독일의 신용카드 사용 비중은 선진국 가운데 가장 낮아 GDP 대비 0.1%에 불과하다. 그러니 개인 채무가 적고 항상 높은 신용도를 유지한다. 반면, 2003년도에 신용카드 대란을 겪은 한국은 신용카드 사용 비중이 38%에 이른다.
독일인들의 실용주의는 결혼식에서도 그대로 나타난다. 결혼비용 마련을 위해 부모가 동분서주할 필요가 없다. 부모들이 사위나 며느리의 가정, 학벌 등에 왈가왈부하는 일이 없고, 고가의 예물이 오가는 법도 없다. 소박한 결혼반지가 전부다. 모든 결혼식은 호화스런 호텔이 아니라 호적사무소나 등기소에서 거행된다. 그리고 나서 각자의 희망에 따라 교회나 성당에서 예식을 치르는 경우가 간혹 있는 정도다.
기본에 충실한 나라, 독일에서 배운다_ 양돈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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