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사람은 운명을 가지고 태어난다
만약 지금 현재를 불경기라고 가정하고 "당신의 회사는 어떻습니까?"라고 물어보면, 어떤 사람은 "굉장히 좋지 않은 상태입니다"라고 대답하거나, 어떤 사람은 "그저 그렇습니다"라고 대답할 것입니다. 혹은 "덕분에 잘나가고 있습니다"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을지 모릅니다. 이처럼 똑같은 불경기를 맞아도 사람에 따라 천차만별 전혀 다른 대답이 나옵니다.
이것은 우리들이 태어나면서 '운명'을 가지고 있음을 의미합니다. 어떤 인생을 보낼지 한 사람 한 사람의 운명이 이미 정해져 있다는 뜻입니다. 정해진 것은 개인의 운명만이 아닙니다. 광활한 우주, 지구, 일본, 더 나아가서는 지역에도 운명이 있습니다. 개인의 운명은 이러한 큰 운명의 파도 위에 올라타고 있는 것입니다.
즉, 지구 수준의 큰 운명의 물결이 있고, 거기에 일본이라는 국가의 운명, 나아가 지역의 운명이 겹쳐 있습니다. 이러한 커다란 파도 위에 개인의 운명이라는 배가 떠 있습니다. 그렇기에 개인의 운명의 오르내림은 큰 물결을 타고 크게 상승할 때도 있고, 크게 하강할 때도 있습니다. 또는 별다른 변화가 일어나지 않는 경우도 있습니다. 똑같은 불경기에서도 사람에 따라 다양한 형태의 결과를 만드는 것도 바로 그 때문입니다.
운명을 부정하지 마라
우선 우리들 인생에는 타고난 운명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납득해야 합니다. 지구 또는 국가에 이어 자신의 인생에도 운명이 있다는 사실을 이성으로 긍정해야 합니다.
그러나 근대 교육에서는 운명을 하나의 웃음거리로 간주하고 제대로 가르치지 않습니다. 근대 교육은 단지 '운명 같은 것은 있을 리가 없다. 어떤 사람이 병에 걸리고, 어떤 사람은 교통사고를 당하고, 어떤 회사는 경영이 파탄 나고, 어떤 회사는 경영이 크게 좋아지는 것들 모두는 우연일 뿐이다. 인생은 많은 우연한 사건들이 겹친 결과일 뿐, 운명이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운명의 존재는 근대 과학에서 증명할 수 없다. 이러한 미신에 현혹되어서는 안 된다'라고 가르칠 뿐입니다.
하지만 유사 이래 인류에게 운명은 한낱 웃음거리로 여겨질 만큼 간단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내 인생은 왜 이렇게 되어버린 것일까?', '왜 이렇게 힘든 일들이 연속으로 일어나는 것일까?', 또는 '왜 이렇게 좋은 일들만 계속해서 일어나는 것일까?' 하고 많은 사람들은 궁금해하며, 만약 운명이라는 것이 있다면 자신의 미래는 어떻게 되는 것일까 생각하고 연구해왔습니다.
그 결과, 동양에서는 점대를 흔들어 점을 치는 역학이 발전했습니다. 이는 중국에서 수천 년 동안이나 연구돼 위대한 학문의 형태로 자리 잡았습니다. 서양에서는 점성술이 태어났습니다. 이 또한 대단한 연구 축적을 이룬 학문입니다. 이러한 것들은 '사람이 가지고 태어나는 운명이라는 게 있는 것은 아닐까, 있다면 이를 예지하고 싶다'는 인간의 한결같은 소망의 발현이었습니다.
이렇게 인류는 오랜 시간 운명을 문제시했습니다. 그러나 근대 과학에서 운명의 존재는 아직 증명되지 않고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운명의 존재가 이성으로 긍정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운명을 부정해봤자 어떤 이로움도 없습니다. 오히려 운명을 긍정함으로써 인생을 이해하기 쉬워지며, 실수 없이 인생을 살아갈 기술을 얻을 수 있습니다.
저는 이공계 대학을 나왔습니다. 물리나 화학, 수학을 좋아하며, 논리에 어긋나는 것은 좀처럼 납득하지 못합니다. 아니었다면 지금의 교세라는 없었으리라 확신합니다. 저는 틀림없이 합리적이고 과학적인 것을 강하게 믿는 사람입니다.
이런 제가 운명을 부정해 어떤 이로움이 있겠냐고 생각해보면, 이로움이 없는 정도가 아니라 오히려 불행해진다고까지 생각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운명의 존재를 이성적으로 긍정할 필요가 있다고 저는 확신합니다.
결과가 나오기까지는 시간이 걸린다
우리는 인생을 구성하는 요소로서 '운명'을 생각해야 합니다. 운명은 인생을 꿰뚫는 세로축으로 존재하며, 인생은 운명이라는 세로축에 따라 흐르고 있다고 말입니다.
동시에 인생에는 또 하나의 요소가 존재하는데, 이것은 운명이라는 세로축에 대해 가로축을 구성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인과응보의 법칙'입니다. 인과응보의 법칙은 선을 행하면 좋은 결과가 생기고, 악을 행하면 나쁜 결과가 생긴다는 것을 말합니다. 선인은 선과를 만들고, 악인은 악과를 만든다는 법칙입니다.
선인, 악인의 인은 자신이 살면서 생각하고 행한 것을 말합니다. 자신이 마음먹고 실행한 것이 인, 즉 원인이 됩니다. 여기서 마음먹거나 생각한 것만으로 원인이 되는지 의문을 가질 분들도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단순히 마음먹은 게 무슨 문제냐고 가볍게 여기는 것입니다. 하지만 마음먹는다는 것은 결코 가벼운 게 아닙니다. 원한, 애달픔을 마음에 담는 것만으로도 원인을 만들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원인은 반드시 '결과'를 만듭니다. 원인이 원인인 채로 남아 있는 경우는 없습니다. 이를 석가모니는 "연에 의해 과가 생긴다"라고 이야기했습니다. 생각과 행동, 즉 사념과 행위는 업을 만듭니다. 그렇기에 선한 것을 생각하고 선한 것을 행하면, 좋은 결과가 생기는 것입니다. 반대로 악한 생각, 악한 행동이 악한 결과를 만듭니다. 이것이 인과응보의 법칙입니다.
그런데 인과응보의 법칙은 그대로의 결과를 만들어 내지 않는 것처럼 보일 때도 많습니다. 주위를 둘러보면 좋은 일을 해왔던 사람이 병에 걸려 고통 받거나, 악한 행동을 한 사람이 행복하게 살아가는 예는 얼마든지 있습니다. 이러니 아무도 인과응보의 법칙을 설명해도 우리 같은 범인은 좀처럼 믿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결국에는 세상은 인과응보의 법칙대로 되지 않는다고 무심코 생각해버리고 맙니다.
하지만 인과응보의 법칙은 결과가 나올 때까지 시간이 걸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원인에 대해 결과가 바로 나오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의 경우는 좀처럼 이른 시간에 결과가 나오지 않습니다. 그러나 20년, 30년이라는 긴 기간에서 본다면 반드시 인과응보의 법칙대로 결과가 나옵니다.
저는 1932년에 태어나 꽤나 긴 인생을 살아왔습니다. 이렇게나 오랜 시간을 살다보면 인생을 되돌아볼 수 있게 되는데, 악한 것을 행한 사람이 오래도록 번영한 경우는 본 적이 없습니다. 좋은 것을 행한 사람은 끝까지 부족한 상태로 있는 경우도 없습니다. 인생을 긴 시간으로 보면 인과응보의 법칙은 이치에 맞아떨어지는 것입니다.
인과응보의 법칙
저도 한때는 '인과응보의 법칙이 들어맞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이유는 왜일까?'하고 고민했던 적이 있습니다. 바로 그때 읽은 책이 <실버 버치의 영훈>입니다.
옛날 런던의 어느 마을에 친구 10여 명을 불러 주말마다 자택에서 교영회를 여는 의사가 있었습니다. 의사는 몸에 영귀를 불러들일 수 있는 영매였습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교영회 때마다 자신의 이름이 실버 버치라고 말하는 미국 인디언의 영혼이 나왔는데, 그 영혼의 말을 모아 출판한 책이 바로 <실버 버치의 영훈>입니다.
저는 선진국인 영국의 수도 런던에서, 게다가 지성인인 의사가 영매가 되어 교영회를 열었다는 사실에 흥미를 느껴 책을 찾아 읽게 되었는데, 몇 줄에 불과했지만 인과응보에 대해서 기술한 부분을 읽고 깜짝 놀라고 말았습니다. 실버 버치의 영혼은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인과응보를 의심하는 사람도 있으리라. 하지만 내가 살아 있던 시절부터 여러분이 살고 있는 현세를 보면 한 치의 차이도 없이 원인대로 결과가 나오고 있다."
저는 이 글을 읽고 굉장한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실버 버치가 있는 영의 세계에서 보면 인과응보의 법칙은 한 치의 차이도 없는 정확한 것이라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저는 실버 버치의 영혼만큼 긴 시간을 한 눈에 돌아볼 수는 없지만, 충분히 영혼의 말을 납득할 수 있었습니다.
인과응보의 법칙이 확실히 보이지 않는 이유는 결과가 나오기까지 시간이 걸리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운명이 서로 겹쳐 작용하는 경우도 있기 때문입니다. 앞서 말했듯이 지구 수준의 큰 운명의 물결이 있고, 국가와 지역의 운명이 있으며, 그 위에 개개인의 운명이 떠다니고 있습니다. 이러한 운명을 세로축이라 한다면 가로축에는 인과응보의 법칙이 있습니다. 이 두 가지의 요인에 의해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의 인생은 결정됩니다.
그런데 두 요소 중에서는 인과응보의 법칙이 조금 힘이 셉니다. 그래서 원래 정해져 있던 운명이 뒤바뀌는 것입니다. 인생이 반드시 가지고 태어난 운명대로 되지는 않는 이유가 이 때문입니다.
따라서 굉장히 나쁜 운명을 가지고 태어났더라도 선을 생각하고 행함으로써 인과응보의 법칙이 작용해 본래 받아야 할 역경이 줄어들기도 합니다. 또한 운명적으로는 굉장히 잘나가게 타고났으나, 악을 생각하고 행함으로써 상승해야 할 운명이 그렇게 되지 못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운명은 인과응보의 법칙에 의해 바뀌는 것입니다.
인과응보를 의심하지 마라
인생은 '운명'과 '인과응보'라는 두 가지의 법칙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이 외의 법칙은 없습니다. 그렇다면 인생에서 조우하는 현상에 우리는 어떻게 대응하면 좋을까요?
우리는 살아가면서 다양한 현상과 마주합니다. 어떤 때는 힘든 국면에 빠집니다. 어떤 때는 굉장히 행복한 국면을 맞습니다. 이렇게 매일매일 마주하는 현상은 타고난 운명과 인과응보의 법칙으로 엮여 있습니다.
그런데 불교를 공부하면 처음에 '제행무상'이라는 가르침을 배웁니다. '제행'이란 모든 현상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제행이 상하지 않다'는 뜻은 모든 현상은 안정되고 일정하지 않다는 의미입니다. 오늘 건강하더라도 내일은 병으로 쓰러질지도 모릅니다. 오늘은 경영이 잘되더라도 내일은 갑자기 힘들어질도 모릅니다. 우리 눈앞에 일어나는 현상은 항상 일정하지 않으며 불안정하다고 석가모니는 가르치고 있는 것입니다. 실제로 인생은 파란만장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생은 고행이라고 석가모니는 말합니다.
석가모니는 이 고통으로부터 중생을 구제하기 위해 출가의 길에 들어섰습니다. 운명과 인과응보의 법칙에 의해 나타나는 현상에 매일매일 어떻게 대응해나갈 것인가를 생각하는 것은 우리의 삶에 있어서도 대단히 중요한 일입니다.
그 대답은 실로 명확합니다. 선한 것과 만나더라도, 악한 것과 마주하더라도, 어떤 현상과 마주치더라도, 그 현상에 감사하며 최선을 다하는 것입니다.
물론 이는 대단히 어렵습니다. 예를 들어 "화재를 당하더라도 감사하세요"라고 말하기는 쉬워도 실제로 화재를 당한 사람에게 이는 지극히 어려운 일입니다. 어지간한 수행을 하지 않고서는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감사를 이성에 각인시켜라
하지만 수행의 유무에 관계없이 우선 '감사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이성에 각인시켜야 합니다. 지극히 어려운 업이라고 포기하면 감사 같은 건 가능할 리 없습니다. 고난이나 재난을 마주하면 "왜 내가 이런 일을 당하지 않으면 안 되는 거지?"라고 푸념하게 될 뿐입니다. 이런 생각을 무리해서라도 억누르고 감사한 마음으로 대처하는 것을 이성에 각인시키지 않으면 안 됩니다.
누구라도 좋은 일이 있으면 자연스럽게 감사한 마음이 생길 겁니다. 하지만 모든 것에 감사하는 마음을 이성에 새겨야 합니다. 사람은 좋은 일이 있으면 이것은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심지어 더 좋은 일이 일어나지 않을까 기대합니다. 그러나 이런 생각으로는 재난을 만났을 때 감사의 마음이 나올 리가 없습니다.
'재난이나 고난과 마주해도 한탄하지 말고, 타락하지 말고, 원망하지 말고, 푸념하지 말고, 언제나 긍정적으로 밝게 노력하라. 미래에 좋은 일이 있으려고 고난이 찾아온 것뿐이라고 견디며 주어진 고난에 감사하라. 반대로 좋은 일이 있어도 거만하지 말고, 뽐내지 말고, 겸허함을 잊지 말고, 자신에게 이런 좋은 기회가 주어져도 괜찮은지 자문하라. 분에 넘치는 것이라 생각하며 감사하라."
바로 이것이 멋진 인생을 살아가기 위한 절대 조건입니다. 반복해 강조하면, 어떤 일에 대해서도 감사한다는 것은 지극히 어려운 일입니다. 상당한 수행을 한 석가모니처럼 깨달음을 얻은 사람이 아니면 가능한 일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우리 같은 범인이 멋진 인생을 사는 것은 불가능한 것이 되고 맙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이성으로 대처해야 합니다. 좋은 일과 만나더라도 나쁜 일과 마주하더라도 어떤 일에도 감사하게 생각하는 것을 이성에 각인시키고 발휘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그렇게 하는 것이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성공을 지탱하는 것
마쓰시타 고노스케(마쓰시타 전기 창업자)씨는 집안이 기울어 국민학교를 그만두고 견습 사원으로 일을 하지 않으면 안 되었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굉장히 힘든 나날을 보내야만 했지만, 그는 역경 앞에서 비뚤어지거나 한탄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견습처의 주인을 적극적으로 섬기고, 주인과 손님을 조금이라도 기쁘게 해주고자 밝고 씩씩하게 노력했습니다. 이것이 마쓰시타의 신화를 만든 힘입니다.
주위를 둘러보면 마쓰시타 씨처럼 어린 시절부터 힘든 역경에 처한 소년들을 볼 수 있습니다. 그중에는 역경 앞에서 비뚤어지는 아이도 있고, 원한과 한탄을 하는 아이도 있습니다. 그러나 원한과 한탄과 애달픔 속에서 소년기를 보내면 대성하기 힘듭니다.
역경을 마주하더라도 그것을 성공을 위한 시련이라 받아들이며 오히려 행운이라고 생각하고 감사할지, 아니면 역경에 무릎 꿇고 원망과 한탄만 늘어놓을지, 눈앞의 현상에 어떻게 대처하는가에 따라 운명은 크게 뒤바뀝니다. 우리는 이를 깊이 명심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인생의 목적이란 무엇인가
오늘도 우리는 운명과 인과응보라는 두 가지 법칙에 따라 파란만장한 인생을 살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어떠한 목적을 가지고 인생을 살아가면 좋을까요? 인생의 진정한 목적이란 무엇일까요?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인생의 목적이란 '마음을 높이는 것'입니다. '마음을 순화하다', '마음을 정화하다', '인간성을 높이다', '인격을 높이다' 등으로 표현되는 모두가 인생의 목적입니다. 파란만장의 인생에서 다양한 현상에 대처하며 인간성을 높이고 자신의 영혼을 닦아나가는 것, 이것이야말로 인생의 목적인 것입니다.
보다 구체적으로 이야기하면 세상을 위해 사람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인간이 되지 않으면, 마음을 높이지 않으면, 세상을 위해 사람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게 가능할 리 없습니다. 따라서 세상을 위해 사람을 위해 최선을 다하려면 먼저 마음을 높여야만 합니다.
저는 지난 인생을 다음처럼 생각하고 살아왔습니다. 먼저 사회에 나오기 전의 준비 기간으로 약 20년간의 유예 기간이 있습니다. 다음으로 사회에 나와 약 40년간 힘껏 일하며 세상을 위해 사람을 위해 최선을 다합니다. 마지막으로 영혼의 새로운 여행인 죽음을 맞이할 준비 기간이 20년 있습니다. 인생을 80년이라고 생각하고, 이런 마음가짐으로 살아왔습니다.
그래서 저는 60세가 되던 해에 앞으로의 20년은 영혼의 새로운 여행을 준비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그만 일에 쫓겨 좀처럼 실행에 옮기지 못하다가 65세가 되던 해에 더 이상 지체해서는 안 될 것 같아 행동에 옮겨 불문에 귀의했습니다.
아름다운 마음을 가지는 것
저는 사회에 나온 뒤로 무척 열심히 일했습니다. 교세라를 만들고 KDDI를 설립하고, 그외에도 다양한 일들을 했습니다. 젊었을 적에 교세라를 창업하고, 이후에는 KDDI를 세상에 자랑할 만한 회사로 만들고자 필사적으로 일에 매진해 어느 정도 목적을 달성했습니다. 동시에 제 자신의 지명도도 올라가 사업가로서 높은 평가를 받으며, 세계 유수의 대학으로부터 명예박사 학위도 받았습니다.
하지만 앞으로 찾아올 죽음을 생각하면 과연 이것이 내 인생의 목적이었는지 새삼 고민하게 됩니다. 이런 것들은 그리 대단한 일이 아니며, 세상을 위해 주위의 사람들을 위해 어느 정도 좋은 일을 했는지가 인생의 가장 큰 훈장은 아닌가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세상을 위해 사람을 위해 공헌하려면 무엇일 필요할까요? 무엇보다 '아름다운 마음'이 필요합니다. 세상을 위해 사람을 위해 최선을 다하려면 아름다운 마음을 가지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입니다. 이것이야말로 인생을 통해 얻을 수 있는 훈장이며, 인생의 목적이라고 결론짓게 되었던 것입니다.
저는 죽음으로 육체는 썩어 없어져도 혼은 그대로 남는다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혼이 저세상으로 새로운 여정을 시작할 때, 현생에서의 다양한 경험을 통해 조금이나마 깨끗하게 혼과 마음을 닦았다면 인생의 목적을 이루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은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태어났을 때보다 죽음을 맞이할 때, 혼 또는 마음이 보다 나아지는 것, 이것이 인생에 있어서 가장 가치 있다고 말입니다.
어떻게 마음을 닦고 깨달음을 얻는가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마음을 닦는 것이 가능할까요? 예전부터 저는 경영에는 철학이 필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그래서 '인생, 일의 결과 = 생각*열의*능력'이라는 방정식을 만들고, 생각의 중요성을 주장함과 동시에 마음을 높이는 것이 경영을 키우는 방법이라 말해왔습니다.
한편 이런 가운데 저는 불교를 공부하며 '육바라밀'에 대해 알게 되었습니다. 육바라밀이란 깨달음을 얻기 위한 석가모니가 가르침으로, 인간의 마음을 정화시키고 순화시켜 깨달음을 얻을 수 있게 하는 여섯 가지 수행 방법을 말합니다. 그리고 주제넘은 말인지 모르겠지만, 저는 경영에 철학이 필요하다며 제가 그동안 말해왔던 내용과 석가모니의 가르침인 육바라밀이 결국에는 같은 것을 이야기하고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인생의 목적인 마음을 닦기 위해서 무엇을 하지 않으면 안 되는가를 설명하는 것이 완전히 같았기 때문입니다.
이타심을 가지고 번뇌를 다스려라
마음을 정화하고, 순화하여 마침내 깨달음의 경지에 다다르게 하는 육바라밀의 여섯 수행 중 가장 처음은 '보시'입니다. 보시는 베푸는 것, 즉 세상을 위해 사람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기업의 경영자라면 정당한 이익을 추구하고, 그 이익으로 직원들을 부양하고 사회에 공헌해야 합니다. 저 역시 항상 '이타심'을 마음에 새기며 다른 이를 이롭게 하는 것을 소중히 생각해왔습니다. 물론 일반적으로 경영 활동에서는 자신의 이익 추구가 선행됩니다. 자신의 이익이 우선이며, 나머지를 다른 이와 나눈다는 생각이 일반적입니다. 하지만 저는 그래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상대를 돕고 베푸는 것에 따라 자신의 사업도 성공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이타심을 생각하면 경영이 잘될 리가 없다고 비웃는 평론가도 있지만, 저는 이타심이 없으면 사업의 성공도 없다고 확신합니다. 예를 들어, 목욕탕에서 손바닥으로 욕조 안의 물을 다른 쪽으로 밀어내면 물은 반드시 이쪽으로 되돌아옵니다. 마찬가지로 상대를 위해 행동하면 반드시 내 쪽으로 되돌아오는 것이 있습니다.
'인정은 그 사람만을 위함이 아니다'라는 일본 속담처럼 다른 사람을 위해 최선을 다하면 자기 자신에게도 반드시 이익이 됩니다. 스님에게 돈을 기부하는 행위만이 보시가 아닙니다. 사람을 돕고 사람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것이 진정한 보시입니다. 따라서 사람을 위해 최선을 다한다는 마음을 항상 새기고 실행해야 합니다.
육바라밀 두 번째는 '지계'입니다. 계율을 지키는 것, 즉 번뇌를 다스리고 인간으로서 해서는 안 되는 것을 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인간은 어느 정도 성공하면 어떻게든 더 큰 성공을 추구하게 됩니다. 성공에 감사하고 만족할 줄 알아야 함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의 성공은 나의 힘 덕분이다. 나는 더 성공할 수 있을 것이다'라고 감사하기는커녕 부족함을 느낍니다. 오만함으로 더 큰 성공을 추구하고 맙니다. 이처럼 멈출 줄 모르고 만족할 줄 모르는 욕망을 탐욕이라 하는데, 탐욕을 포함한 다양한 번뇌를 다스리는 것이 바로 지계의 본래 뜻입니다.
누구에게도 지지 않을 노력을 하라
육바라밀의 세 번째는 '정진'입니다. 이는 누구에게도 지지 않게 노력하는 것을 말합니다. 지금까지 설명한 것처럼 우리는 '보시'를 통해 세상을 위해 사람을 위해 최선을 다해 혼을 닦아야 합니다. 그리고 '지계'를 통해 인간으로서 해서는 안 될 일을 하지 않으려 노력하며 마음을 닦아야 합니다. 그리고 누구에게도 지지 않을 노력을 통해 열심히 일을 함으로써 마음을 닦을 수 있습니다. 이 보시, 지계, 정진의 세 가지 수행 중에서도 특히 저는 '정진'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지금 이 순간에도 중소기업 경영자는 굉장한 노력을 경주하고 있을 겁니다. 아침 일찍부터 밤늦게까지 일하면서 잘도 몸이 버티고 있다고 생각할 만큼 말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노력은 마음을 닦고 인간을 만드는 데 있어서 가장 큰 효과를 가집니다.
진정으로 열심히 노력하는 중소기업 경영자 중에는 나쁜 사람이 있을 리가 없습니다. 어중간하게 적당히 경영하며 작은 성공을 부귀영화로 받아들이고 흥청망청하는 경영자는 변변치 못한 사람일 뿐입니다. 그러나 정말 열심히 고생하고 일하는 경영자는 자연스럽게 진정한 사람이 되어 갑니다. 노동이란 살아가는 방식, 즉 이익을 얻기 위해서만 중요한 게 아닙니다. 그 사람의 인간됨을 만들어가는 과정으로서 대단히 중요한 것입니다.
열심히 일하는 것이 마음을 닦는 법
하지만 20세기에 들어서며 러시아에서 공산혁명이 일어나며, 인간의 정신을 가볍게 여기는 유물론이 세계를 석권하였습니다. 특히 노동이란 급여를 받고 생활의 양식을 얻기 위한 수단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널리 퍼지게 되었습니다. 가능하면 적은 시간 일하고, 그럼에도 가능하면 많은 급여를 받고, 남은 시간은 오락과 여가, 취미에 쏟는 게 풍요로운 인생이라 여기게 된 것입니다.
실제로 그동안 우리는 노동을 경시하고, 많이 일하지 않는 게 좋다는 생각에 계속해서 노동시간을 단축해왔습니다. 그것이 올바른 길이라고 여겼습니다. 그러나 그 결과, 청소년 범죄가 늘고, 부모가 자식을 학대하는 사건이 발생하게 된 것입니다. 이는 열심히 일하지 않게 되면서 마음이 빈곤해져, 즉 마음이 닦이지 않고 덜 발달하면서 일어난 현상입니다.
물론 이성적인 교육을 충분히 받지 못한 것도 하나의 이유일 것입니다. 하지만 진정으로 필사적으로 일하며 살아남은 사람은 가르침이 없어도 잘 압니다. 일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배우기 때문입니다.
저는 여기서 니노미야 손토쿠(에도시대의 농정가)의 이야기를 하고 싶습니다. 니노미야 손토쿠는 보잘것없는 농민에 불과했습니다. 어릴 적에 부모를 여의고 친척 집에 맡겨진 손토쿠는 소작인의 신분으로 아침 일찍부터 밤늦게까지 힘들게 일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손토쿠는 그런 상황에서도 향학열에 불타 열심히 공부를 했습니다. 친척에게 등잔불 기름이 아깝다는 꾸짖음을 당하면서도 새벽에는 새벽별을 저녁에는 저녁 별을 의지해 공부했습니다.
이윽고 어른이 된 손토쿠는 황폐하고 가난한 일본의 농촌을 재건하기 시작했는데, 이런 노력이 평가를 받아 만년에 막부의 가신이 되어 궁중에까지 불려가기도 했습니다. 그때 한자리에 모인 무사와 재후들 중에서도 손토쿠의 행동거지와 말씨는 귀족으로 태어났다고 생각될 만큼 훌륭했다고 전해집니다.
가난한 농민으로 태어나 귀족 사회의 예법을 배운 적도 없는 손토쿠의 행동거지와 말씨가 여느 귀족 출신이라고 생각될 만큼 높아진 까닭은 무엇일까요? 저는 전답에 나와 아침부터 밤까지 가래와 괭이를 가지고 일한 게 바로 손토쿠의 마음을 닦았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열심히 일하는 것 이외에는 마음을 닦는 게 불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한 가지 능력에 탁월한 사람, 예를 들어 외골수로 일에 전념해 훌륭한 도목수로 알려진 이가 TV대담에서 이야기하는 것을 보았는데, 정말 훌륭한 인간성을 가진 사람임을 알 수 있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스포츠계에서도 한결같은 노력으로 정진한 선수를 보면 훌륭한 인간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처럼 일에 전념하는 것만으로도 사람은 훌륭한 인격을 형성할 수 있습니다.
고생을 통해 인간은 성장한다
옛날부터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고 말했습니다. 나이를 드신 분이라면 부모님에게서 귀에 딱지가 앉을 만큼 들었던 말일 겁니다. 저 역시 젊었을 때의 고생은 사서도 하라는 말은 진리라고 생각합니다. 인간을 만드는 데 이보다 좋은 방법은 없습니다.
오늘날 풍요로운 사회 속에서 우리는 아이들을 고생시키지 않고 사치스럽게 키우고 있습니다. 물론 풍요로움 속에서 일부러 아이를 고생시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입니다. 그러나 참된 인간을 만드는 데 있어 고생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을 이성에 새기지 않으면 안 됩니다.
저와 같은 연배의 사람들은 패전 후의 불타버린 들판 외에는 아무것도 가진 게 없었기에 생각할 것도 없이 고생을 해야만 했습니다. 전후의 무시무시한 현실에서 부모 형제가 힘을 합쳐 가난에서 살아남으려 필사적으로 노력하지 않으면 안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역경을 원망하지 않고, 사람을 샘하지 않고, 서로서로 도와가며 살았습니다. 돈이 없어 학교 소풍은커녕 수학여행도 가지 못할 때도 어머니의 "참고 견디렴"이란 말 한마디에 애써 눈물을 참았습니다.
저를 포함해 비슷한 연배의 분들은 이렇게 자랐지만, 동급생 중에 한 명도 어긋남 없이 모두 훌륭한 인생을 보내고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고생하지 않은 아이들은 조그마한 것에 화를 내고 폭력을 휘두릅니다. 이와 같이 고생은 인간을 만드는 데 대단히 중요한 것입니다.
육바라밀의 네 번째는 '인욕'입니다. 우리는 인생을 살아가며 다양한 현상과 만나게 됩니다. 그중에서도 수많은 고생과 고난을 겪습니다. 하지만 참고 견디고 인내할 때 우리는 마음을 높일 수 있습니다.
다섯 번째는 '선정'입니다. 우리는 항상 소란스러운 일상을 보내고 있는데, 고요함 속에서 일이 가능한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주변의 소란스러움에 자신의 마음도 언제나 소란스럽기만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적어도 하루에 한 번은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히고 조용히 좌선을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것이 선정의 중요성입니다.
보시, 지계, 정진, 인욕, 선정의 다섯 수행을 꾸준히 핳면, 마지막으로 여섯 번째 우주의 '지혜'에 다다르게 됩니다. 이것이 육바라밀의 수행법입니다. 이와 같이 수행해 마음을 높이고 지혜를 쌓는 것이 깨달음을 얻는 지름길입니다. 지금까지 말씀드렸던 다섯 가지를 마음에 새기면 반드시 참된 인간성을 다듬을 수 있을 것입니다.
인생의 목적을 이성에 새겨 넣어라
그렇다면 마음을 높여 인간성을 다듬으면 어떤 일들이 일어날까요?
우리는 경영을 통해 수행하는 사람들이라 말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필사적으로 경영을 하면, 그것이 수행이 되어 인간성을 높이고, 반드시 선한 것을 생각하고 행하게 됩니다. 그 결과 인과응보의 법칙에 의해 인생도 사업도 점점 좋은 방향으로 흘러가게 됩니다.
지금까지 많은 경영자들이 자신의 회사만 생각하고 자신의 이익만을 추구해왔습니다. 하지만 마음을 높이고 집착으로부터 멀어지는 게 가능해지면, 보다 높은 관점에서 세상만사를 바라볼 수 있게 됩니다. 깨달음의 경지까지 다다를 필요도 없습니다. 조금이라도 마음이 높아지고 인간성이 다듬어진다면, 그것만으로도 세상만사가 정말로 잘 보이게 됩니다.
예를 들어 같은 업계에 종사하는 사람끼리 맹렬한 점유율 경쟁을 하고 있다고 가정해봅시다. 이는 이매망량(온갖 잡귀)의 세계입니다. 자사의 제품 또는 서비스가 조금이라도 높은 점유율을 차지하기 위해 서로에게 힘든 싸움을 하는 것은 어리석은 짓일 뿐입니다. 그러나 마음이 조금이라도 높아지면, 욕심에 눈이 팔려 자신의 발밑도 제대로 볼 수 없게 된 모습이 보이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오히려 예전이라면 중도에 실패했을 것도 신기할 정도로 잘되게 됩니다.
따라서 먼저 무리하게 점유율을 올릴 일이 없어집니다. 타사가 욕심에 눈이 먼 것을 보고, 자사는 어떤 식으로 경영하면 좋은가를 생각하고 끊임없이 노력하게 돼 자연스럽게 자사 쪽으로 성과가 떨어집니다.
이렇게 마음이 높아지면 내 것만 추구하는 집착에서 멀어질 수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세상만사를 보는 눈이 뜨이고 정말 잘 보게 됩니다.
인생의 목적은 마음을 높이는 데 있습니다. 유명해지거나 부자가 되는 게 인생의 목적이 아닙니다. 마음을 높이면 세상만사가 잘 보이고, 어떤 삶을 사는 게 좋은지 알 수 있게 됩니다. 그 결과 더 유명해지기도 할 겁니다. 재산도 더 많이 모일 겁니다. 그래도 마음이 높아져 인간성이 다듬어졌기 때문에 거만해지거나 방자해지는 일도 없습니다. 그것으로 된 것입니다.
지금까지 제가 이야기한 내용들은 특별히 새로운 것들이 아닙니다. 여러분도 어디선가 들은 적이 있거나 어렴풋이 알고 있는 것들이라고 생각합니다. 또는 당연한 말이라고 생각하는 분들이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어렴풋이 알고 있다거나, 희미하게 기억하고 있는 것만으로는 안 됩니다. 당연하다 여기고 그대로 두면 안 됩니다. 인간은 자칫하면 타성에 빠지고 마는 동물이기 때문에, 이성에 새기고 수시로 되새겨 음미하는 게 대단히 중요합니다.
인생의 목적은 마음을 높이는 데 있습니다. 이 하나만이라도 확실히 이성에 새겨놓길 바라는 바입니다.
성공의 요체_ 이나모리 가즈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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