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리&종교

초보농부의 귀농이야기^^

정정진 2009. 4. 18. 19:54

[초보농부 상운의 귀농이야기]  공식적으로 농부 되기

이수재(전북 장수 농부)


                                               [2009년 3월 16일 집 옆 탁자에서 초보농부 상운]
 

지난 해 1년간 실상사 지역의 현장 귀농 학교에서 농사일을 배울 때는 일주일에 며칠은 실상사 농장에서 일을 하고, 나머지 날들은 마을에서 빌린 땅(800평)에서 본인의 농사를 지었다. 800평 땅은 토지세를 주고 빌렸지만 임대차 계약은 하지 못했다. 땅 주인이 정식 임대차 계약을 원하지 않아서였다. 이는 아마도 그 땅을 자신의 이름으로 경작할 때 정부에서 나오는 보조금 지급 때문인 듯했다. 그런 이유로 농사를 짓고는 있었지만 나 자신이 행정적으로 농민의 신분은 아니었다. 이는 농업인임을 증명하는 농지원부 발급 신청을 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이후 장수로 본격적인 귀농을 하면서 농지원부 발급 신청을 하려고 알아보니, 장수군과 하늘소마을 영농 법인이 군소유의 땅에 대하여 임대차계약을 맺고 있고, 마을에 살고 있는 개개인은 하늘소마을 영농 법인과 임대차 계약을 맺어야 행정적 절차가 가능하다는 것이었다. 농지원부 발급 순서를 살펴보면 아래와 같다.


- 농촌에 농사지을 땅(논이나 밭)을 구입한다. (면적이 1000㎡ 이상 되어야 한다)

- 주민 등록 거주지를 농촌으로 옮긴다. (본인 단독 혹은 가족 전체)

- 면사무소 산업계에서 ‘농지원부 신청서’ 양식을 받는다.

- 농지원부 신청서에 경작하는 땅의 지번(본인 소유 혹은 임대차 계약서상)을 기재하고, 마을 이장의 도장을  받아 면사무소 산업계에 신청한다.


땅을 임대한 경우에는 임대차 계약서를 첨부한다. 경작하는 땅은 1000㎡ 이상이 되어야 한다. 그리고 실제 경작 여부를 확인하러 면사무소 담당 직원이 실사를 나올 수도 있다. 원칙적으로는 경작지에 작물이 심어져 있어야 하기 때문에 겨울철에는 농지원부 발급을 해주지 않는다고 하지만, 본인이 경작하는 것이 확실한 경우에는 동절기에도 발급이 가능하다.


농지원부발급 신청서를 작성하여 면사무소에 갔더니 담당 직원이 부재중이었다. 옆의 직원에게 서류를 담당 직원에게 전해 달라고 부탁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런데 잠시 후 연락이 와서는 실제로 농사를 짓느냐? 어떤 작물을 심었느냐? 등등 꼬치꼬치 물어 보았다. 11월에 이사를 온데다 나에게 배정된 땅에 농사를 짓기에는 계절이 맞지 않아 사실 그 당시에는 전혀 작물이 심어져 있지 않았다. 하지만 월동 작물인 마늘과 양파를 심었다고 부득이 하게 거짓말을 하였다.

 

며칠 후에 다시 전화가 와서 실사를 나가보니 하우스 한 동(80평)이 배정된 걸로 아는데 어떻게 1000㎡에 농사를 짓느냐? 그리고 겨울철에는 농지원부 발급이 곤란하다고 하였다. 그래서 농업인 의료보험 경감 혜택을 받으려면 농지원부 발급을 받아야 하고 확실히 농사를 지을 계획이니 사정을 봐달라고 간곡히 부탁을 하였다. 여러 차례 거절을 하다가 이번엔 서류상으로도 하자가 있으니 일단 면사무소를 방문하여 서류를 다시 작성해서 가져오라 하였다.

 

확실한 귀농을 하여 본격적으로 농민이 되었는데도 불구하고 농지원부 발급이 이렇게 어렵구나 생각하고 다음 날 다시 면사무소에 갔다. 사무소에 들어갔는데 풍물단원 중 가장 연세가 지긋하신 어르신이 마침 산업계에서 일을 보고 계시기에 인사를 드렸다. 나중에 알고 보니 이분이 면 생활개선 위원회 회장님이셨다. 산업계 농지원부 발급 담당자가 이것을 보더니 분위기가 사뭇 달라져 한결 친절하게 서류상 하자에 대하여 상세하게 일러주고, 이참에 학자금 지원도 받으라고 하는 것이 아닌가? 내가 생활개선 위원회 회장님과 아는 사이라서 한층 더 친절하게 대해주는구나. 풍물단에 들기를 참 잘했다고 내심 생각하였다. 예전에 귀정사에서 워크샵을 할 때 봉화의 장창호 선생께서 농촌생활에서의 관계의 중요성에 대하여 누차 강조하셨는데, 실제로 관계에 의하여 약간 어려운 일들도 부드럽게 진행될 수 있음을 절감하는 순간이었다.

 

농촌에서는 일의 내용보다는 인간이 중심이고 서로간의 관계에 의하여 일이 진행된다. 어떻게 보면 부당하고 불합리하다는 생각이 들 수도 있지만 다른 관점에서 보면 참으로 인간적이다. 하여튼 다행스럽게 농지원부 발급신청은 무사히 이루어 졌다.


농촌 지역으로 주민 등록 거주지를 옮기면 의료보험료 할인혜택(22%)이 있다.

이는 주민 등록 거주지를 옮김과 동시에 별도의 조치가 없어도 혜택을 받을 수 있지만, 농업인 추가 할인 혜택(30%)을 받기 위해서는 아래와 같은 절차가 더 필요하다.

- 면사무소에서 ‘건강 보험료 지원대상 농․어업인 확인서’ 양식을 받는다.

- 내용을 기재하고 마을 이장의 도장을 받아 면사무소에 제출한다.

- 면사무소는 이것을 Fax로 지역 의료보험 관리공단에 보낸다.

아내와 아들의 주민등록거주지를 장수로 이전하고 아내에게 전화를 하니 “어머! 서울특별시민에서 장수군민이 되었네” 라고 해서 함께 웃었다.


혹시 고등학교에 재학 중인 자녀가 있을 경우 학자금 지원을 받을 수 있다.

학자금 지원 신청서(마을 이장의 도장 날인 필요)와 의료 보험증을 면사무소에 제출하면 입학금 및 1년간의 수업료를 아무 조건 없이 지원해준다. 면사무소에서는 자녀의 학교로 연락하여 학생의 재학 여부를 확인한 후 수업료 전액을 학교로 송금한다. 등록금 중 수업료 이외(학교 운영 지원비, 급식비, 기숙사비 등등)의 부분은 본인이 부담해야 한다. 참고로 의료 보험증은 지역 의료보험공단에서 우편으로 본인에게 보내주지만, 직접 방문하여 보험증을 받을 수도 있다. Fax로 의료보험 관련 서류를 면사무소로 보내 주지는 않는다.


농사를 지으려면 종자, 비료나 퇴비가 필요한데, 농협을 통해 사면 할인 혜택이 있다.

일반적으로 구입 가격의 반 정도를 농협이 부담하는데 농협의 조합원에 한하여 할인 혜택이 주어진다. 조합원 가입을 위한 절차는 아래와 같다.

- 면에 있는 농협에 가서 조합원 가입서를 받는다.

- 면사무소에서 농지원부를 신청하여 발급 받는다.

- 조합원 가입서에 필요한 내용을 기재하고 마을 이장의 도장을 받는다.

- 가입서와 농지원부를 농협에 내고 1인 최소 구좌 금액(25만원)을 납부한다.

기존에 사용하던 농협 통장이 없는 경우에는 신규로 통장을 만들어야 한다. 농협에서 학자금 지원을 받기 위해서는 최소 구좌 금액이 50만원을 넘어야 한다기에 나의 경우에는 50만원을 납부하였다. 총 학자금 지원 금액 한도가 많지 않기 때문에 개인에게 지급되는 지원 금액이 그리 많지는 않다(1년 50만원 정도). 조합원 탈퇴 시에는 가입비 환급이 된다.


농사를 짓다 보면 이런 저런 안전사고를 당하는 경우가 있기 때문에, ‘농업인 안전 공제’ 보험에 가입하는데 국가에서 44%, 군에서 30%, 농협에서 15%, 본인부담 11% 이어서, 총 78,190원의 보험금 중 본인부담은 8,340원이다. 농협 조합원이 되면 이런 혜택도 있으니 반드시 가입을 하는 것이 좋다.


위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농지원부 신청, 의료 보험료 할인혜택 신청, 학자금 지원신청, 농협 조합 가입 등 대부분의 행정 서류에는 마을 이장의 도장 날인이 필요하다. 즉, 마을 이장이 서류상의 내용과 실제 사실과의 일치 여부를 확인해 주면 이를 근거로 하여 관공서에서 서류 처리를 하고 있기 때문에  마을 이장과의 관계가 불편하면 농촌 생활은 그 시작부터 참으로 어려워진다.


농지원부가 발급되면 공식적으로 농민의 신분이 된다. 농지원부 서류처리가 완료되던 날, ‘아! 이제부터 공식적 농민이구나’ 하는 생각에 참으로 감개무량하였다. 농촌에서 농사를 지으면서 농부로 산다는 것이 경제적, 사회 구조적으로 어려운 위치에 놓여 있긴 하지만, 자연과 더불어 몸과 마음이 조화를 이루는 삶을 살아가고 있기에 행복한 마음으로 자족하며 살아 갈 수 있다.


이렇게 초보 농부 상운은 공식적으로 대한민국 농민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