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라서 모든 삶은 그 자체가 모험을 의미한다. 그리고 삶을 사랑할수록 모험도 더 많아진다. 일생 동안 겪는 셀 수 없이 많은 모험 중에서 가장 큰 것은 성장을 위한 모험이다. 성장이란 어린아이가 어른의 세계로 발을 들여놓는 것이다. 그것은 한 걸음 살짝 내딛는 것이 아니라 두렵게도 단숨에 도약하는 것이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평생 동안 실제로 해보지 못하는 도약이다. 심지어 성공한 어른까지 포함한 대다수의 '어른들'은 겉으로는 어른처럼 보여도 심리적으로는 죽을 때까지 아이로 남아 있다.
이들은 부모에게서 자신을 분리하지 못하고 부모가 행사하는 권력에서 전혀 헤어나지 못한다. 개인적으로 이 성장을 아주 아프게 겪었기 때문에 나는 성장의 본질과 큰 도약에 따르는 모험의 거대함을 매우 잘 설명할 수 있을 것 같다. 다행스럽게도 나는 아주어린 나이인 열다섯 살 말에 성년기로 도약할 수 있었다. 이 도약은 의식적인 노력의 결과였다. 하지만 그때 내 행동이 성장을 실행하는 것이라는 건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단지 내가 아는 것은 미지의 세계로 뛰어들고 있다는 사실뿐이었다.
나는 열세 살에 집을 떠나 필립스 엑시터 아카데미에 들어갔다. 그곳은 전국 최고라는 평판이 난 남자 고등학교인데, 형도 거기를 다녔다. 나는 그 학교에 입학한 것이 얼마나 운 좋은 일인지 알고 있었다. 이 학교에 다닌다는 것은 성공을 향한 잘 짜인 틀 속으로 들어가는 것과 같아서 가장 좋은 아이비리그 대학에 입학할 수 있으며, 사회 최고 지도층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이 학교에 다니는 것 때문에 그러한 길로 가는 문이 활짝 열린 셈이다. 나는 '돈으로 살 수 있는 최고의 교육'을 시켜줄 수 있을 만큼 부유한 부모에게서 태어난 것을 참으로 다행이라고 느꼈다.
또 그렇게 분명 창창한 코스의 일부가 되었다는 데서 대단히 안심했다. 그러나 단 하나의 문제는 바로 이 학교에 다니기 시작하자마자 곧바로 비참할 정도로 불행해졌다는 것이다. 내가 왜 그렇게도 불행하게 느꼈는지는 그 당시 나 자신도 몰랐고, 지금까지도 풀기 어려운 수수께끼로 남아 있다. 나는 그저 그곳에 맞지 않았던 것 같다. 교수진, 학생들, 과목들, 건축물, 사교생활, 모든 환경이 맞지 않았던 것 같다.
내가 처한 상황에서 최선을 다하며 나의 불완전함을 고쳐 적응하려고 노력하는 것 외에는 달리 할 게 없어보였다. 그래서 내 앞에 놓여 있고 올바른 길임이 명백한 이 틀에 더욱 편안하게 나를 맞추었다. 그리고 2년 반 동안 노력했다. 그러나 매일 생활은 점점 더 무의미해지고 더 비참해졌다. 그 무렵에 나는 잠자는 일 외에 거의 한 게 없다. 잠잘 때에만 평안함을 느꼈다. 돌이켜보면 아마도 잠자는 가운데 무의식적으로 나는 도약을 준비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내가 성장을 향해 도약한 시기는 3학년 봄방학 때 집에 돌아와서다. 그때 나는 학교로 돌아가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아버지는 말했다.
"그럴 순 없다! 그건 돈으로 살 수 있는 최고의 교육이다. 도대체 지금 네가 뭘 내던지려고 하는지 알기나 하니?"
"저도 그곳이 좋은 학교인 줄은 알아요." 나는 대답했다. "그렇지만 돌아가지 않을 거예요."
"왜 적응하려고 노력해보지 않는 거냐. 한 번 더 노력해보거라." 부모님은 부탁했다.
나는 난감했지만 이렇게 대답했다.
"저도 잘 모르겠어요. 왜 그렇게 싫은지 알 수가 없어요. 그렇지만 그곳이 싫어요. 돌아가지 않겠어요."
"그러면 무얼 할 작정이니? 장래에 대해 확고한 것도 없어 보이는데, 무슨 계획이라도 갖고 있는 거냐?"
다시금 나는 비참함을 억누르며 대답했다.
"모르겠어요. 제가 아는 것은 다시는 그곳에 돌아가지 않겠다는 것뿐이에요."
부모님은 당연히 놀라셨고 결국은 나를 정신과 의사에게 데리고 갔다. 의사는 내가 우울증에 걸려 있으니 한 달 동안 입원하는 것이 좋겠다고 했다. 그러면서 내게 하루의 여유를 주면서 정신 병원에 입원하기를 원하는지 결정하도록 했다. 그날 밤 나느 정말 일생에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자살을 생각했다. 정신 병원에 입원하는 것이 아주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정신과 의사가 말한 대로 나는 우울증에 걸려 있었으니까.
형은 엑시터에 적응했는데 왜 나는 안 되는 걸까? 그토록 적응을 못하는 것은 전적으로 내 잘못이었다. 그래서 나 자신이 문제아이며 무능하고 가치가 없다고 생각했다. 심지어 나는 미쳤을지도 모른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아버지도 그렇게 말하지 않았던가. "너는 틀림없이 미쳤어. 그렇게 좋은 교육을 어쩌자고 내버린단 말이냐?" 학교로 돌아간다면 나의 장래는 안전하고 확실하고 적절하며 건설적이고 명백히 보증될 텐데. 그렇지만 그것은 내가 아니었다. 내 존재의 심연에서부터 나는 그것이 내 길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그러면 내 길은 무엇이란 말인가? 필립스 엑시터 아카데미로 돌아가지 않는다면 내 앞에 놓인 것이란 미지의 것, 결정되지 않은 것, 불안하고, 불확실하고, 성역화되지 않고, 예상할 수 없는 게 전부였다. 누구든지 그런 길을 택하는 사람은 미친 게 틀림없다. 나는 공포에 떨었다. 그러나 인생에서 가장 깊이 절망하던 바로 그때 무의식 속에서 내 목소리가 아닌 어떤 영적인 신의 계시 같은 소리가 울려왔다.
"인생에 있어서 유일하고 진정한 안전이란 생의 불안정을 맛보는 데 있는 것이다."
정신 나간 말이고 모든 거룩한 것과는 거리가 멀었지만 나는 내가 되기로 결심했다. 나는 푹 잤다. 그리고 아침에 정신과 의사를 만나 절대로 엑시터에 돌아가지 않을 것이고 입원할 준비가 되었다고 말했다. 나는 미지의 세계로 도약했던 것이다. 나는 내 운명을 손안에 쥐었던 것이다.
성장의 과정은 대체로 미지의 세계로 향하는 여러 번의 작은 도약들로 이루어지며 아주 점진적으로 일어난다. 그 예로 여덟 살 사내아이가 처음으로 자전거를 타고 혼자 시골 가게에 가는 모험을 할 때 또는 열다섯 살의 소년, 소녀가 첫 데이트를 하러 나가는 것 등을 들 수 있다. 이런 것들이 진정한 모험인지를 의심하는 사람은 여기에 따르는 불안도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아주 건강한 아이들을 살펴보아도, 새롭고 어른스러운 활동에 과감히 뛰어들고 싶어 하면서 동시에 멈칫거리고, 뒤로 물러나 움츠리고, 안전하고 익숙한 것에 집착하고, 의존하고, 어린애 같은 행동에 머물려는 것을 볼 수 있다. 다소 미묘한 정도지만 이와 똑같은 양면성을 성인에게서도 발견할 수 있다.
특히 나이든 사람들은 오래된 것과 잘 알고 익숙한 것에 집착하는 경향이 있다. 내게는 마흔 살이 되어서도 거의 매일 일상사를 다른 방법으로 처리하는 모험을 해볼 수 있는 기회, 즉 성장할 기회가 있었다. 나는 여전히 성장하고 있으나 내 욕심만큼 그리 빨리 자라지는 못한다. 우리가 선택하고자 하는 모든 조그마한 도약 중에는 커다란 것들도 있다. 예를 들면 내가 자라며 익힌 전체적 생활양식과 가치를 버리고 학교를 그만두었을 때처럼 말이다. 많은 사람들은 이런 거대한 도약을 절대로 택하지 않는다. 그래서 결국 실제로 전혀 성장하지 못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들은 외양과는 달리 심리적으로는 아직도 부모의 아이로 남아 물려받은 가치에 따라 살고, 주로 부모의 승낙과 반대에 따라 움직이고(부모가 오래전에 사망해 땅에 묻힌 경우에도), 감히 운명을 자기 손안에 쥐어보지 못한다. 이렇게 커다란 도약은 십대 청소년기에 가장 흔히 일어나지만, 어느 연령에서나 생길 수 있다.
아이가 셋 있는 서른다섯 살의 부인이 있었다. 독재적이고 남을 무시하며 융통성 없고 우월감에 젖은 사람과 결혼한 그 부인은 점점 고통스러워하며 남편과 결혼에 의존하는 자기 삶은 살아 있는 죽음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남편은 그들 관계의 본질을 변화시켜 보려는 부인의 모든 시도를 막았다. 하지만 부인은 남편의 반대와 이웃의 비난을 무릅쓰고 용감하게 이혼해 홀로 아이들과 지내는 막연한 미래를 택하는 모험을 감행했다. 이 모험 덕에 생애 처음으로 자신의 주인이 된 듯한 자유를 느낄 수 있었다.
심장 발작 이후 우울증에 걸린 쉰두 살의 사업가가 있었다. 그는 돈 버는 데 급급했고 더 높은 자리에 오르는 데만 관심을 두고 살아온 지난날을 돌이켜보았고, 마침내 그것이 의미 없다는 것을 발견했다. 오랜 생각 끝에 그는 지배적이고 끊임없이 비판적인 어머니로부터 인정받고 싶은 욕구 때문에 그렇게 산 것을 깨달았다. 다시 말해 어머니 눈에 성공한 자식이 되고자 사력을 다해 열심히 일한 것이다. 그는 사치스러운 생활을 포기하기 싫은 아내와 자녀들의 분노를 용감하게 무시했고 뿐만 아니라 평생 처음으로 어머니의 반대에 맞서고 뛰어넘어 시골로 이사했다. 그곳에서 조그마한 상점을 열고 옛 가구를 복원하는 일을 했다.
이러한 큰 변화, 이러한 독립과 자기 결심으로 뛰어드는 일은 어떤 연령에서든지 엄청나게 고통스럽고 대단한 용기를 요구한다. 그런데도 심리 치료의 결과 이런 일들은 흔히 일어나곤 한다. 성취에 따르는 위험 부담이 엄청나다고 느끼면 사람들은 가끔 심리 치료를 받고자 한다. 치료가 위험을 경감시켜주어서가 아니라 용기를 북돋우고 가르쳐주기 때문이다.
그런데 사랑에 수반된 자기 확장은 새로운 차원으로 자신을 확대한다는 사실 외에, 성장과 사랑은 무슨 관련이 있을까? 첫째로, 앞의 사례와 모든 주요 변화들은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행동이다. 바로 자신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그 이유 때문에, 내 욕구에 맞지 않는 학교와 사회적 환경에 비참히 남기를 원치 않았던 것이다. 또한 서른 다섯살의 부인도 자기 자신을 존중했기 때문에 자유를 속박하고 인간성을 짓밟는 그런 결혼 생활은 더 이상 참을 수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사업가 역시 자신을 아꼈기 때문에 어머니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미친 듯 일하던 것을 그만두었다. 둘째로, 사랑은 자신을 위해 그렇게 크고 의미 있는 변화를 일으키는 동기를 제공한다. 뿐만 아니라 변화를 위해 모험을 감행할 용기의 초석이 된다. 나의 경우, 확실히 부모님이 어릴 때 사랑해주고 소중히 여겨주었기 때문에 나는 충분히 나 자신에게 안정감을 가질 수 있었다. 그 안정감을 기반으로 부모의 기대에 항거했고 부모님이 가르쳐준 삶의 방식을 과감히 떨쳐버릴 수 있었던 것이다. 내 경우만 해도 그렇다. 이런 행동을 하는 나는 무능하고 쓸모없고 미쳤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지만, 그런 느낌을 참을 수 있었다.
그와 동시에 마음속 더 깊은 곳에서는 아무리 남과 다르다 해도 스스로를 좋은 사람이라고 느꼈기 때문이었다. 미친 짓처럼 보일지라도 다른 사람과는 달리 과감히 행동할 때 나는 어려서 부모가 수없이 들려준 사랑의 메시지에 반응하고 있었다. 그 메시지는 이러했다.
"너는 아름답고 사랑스러운 아이다. 너답게 사는 게 좋아. 네가 너다운 한 무엇을 하든지 우리는 너를 사랑한다."
나 자신을 사랑하는 마음에 반영된 부모님의 변함없는 그 사랑이 없었다면 미지의 것 대신에 익히 아는 것을 택했을 것이고 고유함의 말살이라는 지독한 대가를 지불하면서 부모가 더 좋아하는 삶의 방식을 계속 따랐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온전한 자아와 심리적 독립과 고유한 개성이라는 미지의 세계로 도약할 때만이 사람은 자유로이 정신적 성숙을 향해 더 숭고한 길을 따라 전진하여 가장 높은 차원에서 사랑을 보여줄 수 있다.
결혼하는 것이나 직업을 갖는 것이나 아이를 갖는 것이 부모나 다른 사람의 기대 또는 사회 전체를 만족시키기 위한 것이라면, 그것은 본질적으로 얄팍한 행동이 될 것이다. 부모의 기대에 맞게 사랑스러운 태도로 행동해서 아이를 사랑한다면 그 부모는 아이의 보다 미묘한 욕구에 둔감할 것이고 보다 섬세하게 때로 정말 중요한 방식으로 사랑을 표현할 수 없을 것이다. 가장 지고한 사랑은 전적으로 자유로운 선택이며, 이는 순응하는 행위가 아니다.
아직도 가야 할 길 / M. 스캇 펙
'교육&계발'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사람에게 신뢰를 얻어야 기회를 잡는다_ 마윈 (0) | 2016.02.07 |
---|---|
삼류 아이디어와 일류 실행력_ 마윈 (0) | 2016.02.07 |
'소리 내어' 생각하라 (0) | 2015.07.11 |
자신에게 어울리는 일_ 구본형 (0) | 2013.04.18 |
행복하게 일하는 연습_ 코이게 류노스케 (0) | 2012.08.0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