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안&성찰

<장기긴급상황>이 묘사하는 석유 없는 세상_ 이한중

정정진 2011. 6. 4. 17:24

세상은 다시 넓어진다

 

<장기긴급상황>이 묘사하는 석유 없는 세상

 

이한중

 

세상 참 좁아졌다는 소리를 많이 하고 듣는다. 비행기 두어번 타면 24시간 안에 못 갈 곳이 거의 없는 게 지금 세상이다. 인터넷에 접속만 하면 세계 곳곳의 소식이 실시간으로 펼쳐진다. 끼니나 간식거리도 먼 곳에서 실어오지 않은 것만으로 온전히 해결하기가 쉽지 않다. 석유 덕분에 편리해졌다 싶으면서도, 이렇게 살아도 되나 하는 생각이 자꾸 든다. 그런 생각으로 불편해지는 사람들이 읽어볼만한 책이 있다. 석유가 이제 고갈되기 시작했다는 얘기를 하는 책이다.

 

저널리스트 출신 소설가 제임스 컨스틀러는 미국 교외개발문제를 다룬 논픽션들로 주목받기도 하다가, 석유정점과 산업사회의 종말에 주목한 이 책, <장기긴급상황>으로 상당한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아는 이들은 안다고 해도, 구체적으로는 모를 수 있는 내용을 조목조목 술술 풀어가며 저자는 이야기꾼의 솜씨를 유감없이 보여준다. 여기서는 이 책의 주요부분을 스케치하는 식으로 소개하고자 한다.

 

화석연료시대 200년

 

화석연료는 지질사의 독특한 선물로서, 그 덕분에 인류는 지구상에서 거주 공간의 수용력을 인위적이고 일시적으로 늘릴 수 있었다. 화석연료, 즉 석탄, 석유, 천연가스가 일반화되기 전에는 지구 전체의 인구가 10억이 되지 않았다. 그리고 화석연료의 시대가 열린 지 2세기가 지났고 추출량이 역대 최대인 오늘날, 지구는 65억 인구를 부양하고 있다. 화석연료를 빼면, 인류의 문제는 분명히 드러난다. 화석연료의 노다지는 단 한번뿐인 사건이었으며, 우리가 그것을 누린 기간은 인류사에서 비정상적인 시기였다. 그것은 지금 선진국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단연코 정상적이다 여길 만큼 오래 지속되었다. 화석연료는 산업화된 나라에 사는 사람 1명에게 100명의 노예를 마음대로 계속 부리는 것과 맞먹는 능력을 제공했다.

 

이 놀라운 석유는, 무게와 부피에 비해 어마어마한 에너지를 내고, 운반과 저장하기도 좋고, 안전하며, 다양한 제품(플라스틱, 페인트, 의약품, 직물, 윤활유 등) 을 만들어낼 수 있으며, 값이 싸고 양도 많아서 인류에게 세상을 변모시킬 신적인 능력을 주었다. 지난 100여년 동안 사실상 거의 모든 것을 지배했다고 말해도 될 석유가 생산 정점에 도달한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이 정점은 이 세상에 묻혀있는 모든 석유의 절반을 뽑아낸 지점을 말하는데, 문제는 이 절반이 '제일 취하기 쉬운 절반, 가장 경제적으로 얻어낼 수 있었던 절반, 가장 질이 좋고 가장 값싸게 정유할 수 있었던 절반' 이라는 점이다. 남아있는 석유는 북극이나 바다 밑 깊숙한 곳처럼 쉽게 접근할 수 없는 데 있어서, 추출하는 데 필요한 에너지가 뽑아낼 에너지보다 더 클 수조차 있다. 또 상당량은 불순물이 많아 정유하기도 어렵다. 그렇다면 정점 이후부터는 석유를 원동력으로 계속해서 성장해야만 지탱되는 지금의 세계경제는 급격히 붕괴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석유생산 정점은 지나친 뒤 백미러로나 확인할 수 있는 것이라고 한다. 돌이킬 수 없이 생산량이 떨어진 뒤에야 정점을 지나왔음을 알 수 있다. 실체는 수년에 걸쳐 시장이 출렁이며 몹시 불안한 모습을 보이는 형태로 확인할 수 있다. 미국은 1859년부터 석유산업을 100년간 지배하다가 1970년에 정점을 지났고, 그것을 이듬해 생산량이 확연히 떨어지면서 알아차렸다. 1973년 석유수출기구가 석유 금수조치를 단행함으로써 비롯된 1차 오일쇼크에 미국이 속수무책 당할 수밖에 없었던 것도 잉여 생산능력이 없어 유가를 통제할 수 없었던

탓이다. 미국은 그럼에도 1950년대 이후 거대 프로젝트 - 교외개발과 전국적 고속도로망 건설을 계속 추진했고, 그 밑거름은 수입 석유였다. 세계의 석유정점은 학자에 따라 추정이 조금씩 다르지만, 대체로 2000년에서 2010년 사이에 있다고 하니 아직 확인될 시점은 아니다.

1973년, 이란 혁명정부의 금수조치로 시작된 2차 오일쇼크를 겪은 세계 석유시장은 소련의 과잉생산과, 알래스카 및 북해에서 발견되었던 유전의 막대한 공급량 덕분에 1986년부터 2001년까지 15년 과잉공급시대를 거쳤다(세지역 모두 이제 정점을 지났다.) 9.11이 있었던

2001년에 세계 석유생산이 정점에 도달했다는 주장이 있기도 한데, 흥미로운 것은 100년 동안 안정적이었던 유가가 석유파동때 요동치고 다시 안정되어 오다가 2001년부터 급상승 일변도라는 점이다.

 

석유정점과 지정학

 

세계 석유생산 정점을 맞은 65억 인구(2010년 기준 69억)의 미래는 어떠할 것인가. 세계 인구는 기원전 2000년경부터 눈에 띄는 오름세를 타다가 서기 1900년 이후로는 석유 분출하듯 치솟는다. 석유시대 100년 동안 단순히 땅을 파 먹고산 게 아니라, 땅속 아주 깊은 곳을 파내 먹고산 것이다. 정점 이후부터는 모든 시스템이 급격히 붕괴할 공산이 크고, 연료를 둘러싼 쟁탈전이 불가피해질 것이라고 한다. 미국이 중동에 공을 들이는 이유도 명확해 보인다. 남아있는 석유매장의 60퍼센트 이상이 중동에 묻혀있고, 미국은 현재 남은 매장량의 3퍼센트를 보유하고 있으면서 생산량의 25퍼센트를 소비하고 있기 때문이다.

 

석유중독 생활방식을 양보할 생각이 없는 미국인의 정서는 부시 정권에서 부통령을 지낸 딕 체니의 유명한 발언에서 단적으로 드러난다.

'미국인의 생활방식은 교섭의 여지가 없다.' 이러한 정서는 반전운동가들이라 해도 예외가 아닌 게 미국의 현실이다.

 

물론 이 전쟁은 석유 때문에 벌어진 일이었다. 이라크침공은, 산업세계에 필요한 석유의 막대한 부분이 나는 중동을 정치적으로 안정시키고자 했던 미국의 절박한 시도였다. 하지만 반전운동가들은 부시 지지자들과 전혀 다를 바 없이 자동차에 의존하는 교외 거주자들이다. 이는 적어도 뉴욕주 북부에 사는 내 또래의 중년 여피들에게서 관찰되는 바다. 그들 중 누구도 큰 자동차를 팔거나, 자동차 이용을 줄이거나, 도시 가까운 곳으로 이사를 가거나, 중동 석유의 넉넉한 공급에 덜 의존하는 생활방식을 시도하지 않는다. 내 이웃의 한 가정은 뜰에다 '전쟁은 답이 아니다' 라는 팻말을 세워놓고 차고 앞에 SUV 2대를 주차해놓고 있다. 교육받은 소수를 포함하여, 미국 대중은 자신들의 주거형태와 지금 우리가 해외에서 겪고 있는 문제가 무슨 관련이 있는지에 대해 괴기스러울 정도로 무지한 것 같다.

 

황량한 아라비아반도에 1932년 석유가 발견된 뒤로 이 지역이 개발되고, 현대 이스라엘이 건국되고, 현대 아랍 산유국들이 성립된 것은 모두 우연이 아닌 비극적인 역사였다. 내부 혁명이나 반란을 두려워하는 아랍지배자들이 핵을 보유한 강력한 이스라엘을 원한다는 역설은 한반도의 현실과 별로 달라 보이지 않는다.

 

반세기 동안 아랍과 이스라엘의 분쟁은 가면이었을 뿐, 그 뒤에는 서구가 소수의 아랍국가들 및 중동의 다른 회교국가들(이란, 이라크등)에 갈수록 석유를 의존하게 되었던 훨씬 중대한 모순이 있었다. 그 지역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건, 미국과 유럽은 별 개입도 없이 산업문명의 가장 불가결한 유일 자원을 놀랍도록 안정적으로 공급받을 수 있었다. 그것도 아주 유리한 가격에. 특히 미국이 1970년에 석유생산 정점을 지나 퍼내기만 하면 가격을 낮춰버릴 수 있는 세계의 결정적 산유국으로서의 지위를 잃은 다음에도 그럴 수 있었던 것이다.

 

소수의 산유국들, 특히 그중에서도 결정적 산유국으로서의 지위를 미국으로부터 이어받은 사우디아라비아의 사정이 궁금하지 않을 수 없는데, 역시 때는 얼마 남지 않은 듯하다. 사우디아라비아는 세계 석유매장량의 약 25퍼센트를 보유하고 있는데(중동 전체 매장량은 세계의 60퍼센트 이상으로 추정) 2001년과 2020년 사이 어느 때쯤 정점을 지날 것으로 예견되고 있다. 그러나 이 예측의 근거인 사우디 국영 석유회사 아람코의 보고서 자체가 대단히 의심스럽기 때문에(실제 통계치는 국가기밀이다) 정점은 더 빨리 다가올지도 모른다. 오로지 석유 덕분에 한동안 막대한 부를 누려온 사우디인들은 석유 없는 세상에 대한 불안을 더 예민하게 느끼고 있는지도 모른다.

 

많은 사우디인들은 석유를 재앙으로 여긴다. 그들은 반세기 남짓 석유노다지의 시대를 살았다. 그것은 그들의 삶을 철저히 다른 것으로 바꾸어놓았고, 그들의 전통문화를 파괴해버렸다. 지금 시대에 만들어진 사우디 속담 중에 이런 게 있다. '내 아버지는 낙타를 탔고, 나는 롤스로이스를 타고, 내 아들은 제트기를 타고, 아들의 아들은 낙타를 탈 것이다.' 이러한 체념이 나타내는 바는 의미심장하다. 석유 노다지의 시대가 끝나버리면 사우디인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 40세가 안된 세대들은 에어컨과 자동차와 쇼핑몰이 없는 삶이 있는 줄도 모른다. 상황이 아무리 유리하게 돌아간다 해도, 사우디의 석유매장량은 앞으로 50년 이상을 가지 못할 것이다. 그리고 전통적인 생활방식으로 돌아가지 않을 수 없는 때가 올 것이다(21세기가 끝나기 전일 것이다). 전망은 심각하다. 이 지역은 아무튼, 석유에서 비롯되는 보조금에 의탁해 살고 있는 현재 수준의 인구는 도저히 부양할 수 없게 될 것이다. 많은 사우디인들은 이런 점들이 도달할 논리적 귀결에 대해 생각해보고, 그들을 짓누르는 끔찍한 운명의 무게를 느낄 것이다.

 

석유를 두고 다시 세계대전이 벌어질 것인가. 분명한 것은 세계가 새로운 시기, 즉 석유 이후 세상이라는 미지의 영역으로 접어들고 있는 것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그리하여 모든 나라가 장기긴급상황의 문제들 - 산업성장의 끝과 생활수준 저하, 경제적 피폐, 식량생산 감소, 내부 정치투쟁에 시달릴 것이라고 한다. 반가운 것은 강대국들이 세력을 먼 곳까지 뻗는 게 가능하지 않는 때가 도래한다는 점이다. 승선인원 6000명 규모 핵항공모함으로 지구 반대편 바다를 휘젓고 다니며 무력시위를 하는 일 같은 게 사라질 수 있다는 얘기다. 핵무기 또한 화석연료경제와 결부되어 있는 다른 기술시스템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에 운용이 불가능해질지 모른다고 한다. 그리하여 결국 세계는 다시 '넓어질' 것이며, 일련의 경제관계로서의 '세계화'는 흐지부지해지고 말리라는 것이다.

 

대체 연료가 우릴 구해줄까

 

대체 연료에 대한 저자의 견해는 명쾌하다. 어떠한 대체물도 석유의 고갈을 메워주지는 못할 것이라는 입장인데, 대체 에너지원은 모두 화석연료경제에 어느 정도 의존하고 있다는, 상식적이고 기초적인 사실에 근거를 두고 있다. 이를테면 풍력발전기의 금속 터빈은 풍력에너지 기술로 만들어낼 수 없다. 하지만 사람들은 언제나 그래왔듯 인류의 '창의력'과 '시장경제'가 화석연료의 기막힌 대체물을 가져다줄 것이라고 믿고 있는데, 이야말로 저 유명한 '화물숭배'(마빈 해리스, <문화의 수수께끼>참조)와 다름없는 주술적 성향이라고 저자는 꼬집는다. 인류의 기술숭배는 석유라는 물질이 한번 쓰고 나면 영영 없어져버리는 특별하고 예외적인 선물이었음을 망각한 때문이다. '기술'의 상당수는 석유 없이는 무용지물인데도 말이다.

 

천연가스는 석유 다음으로 경이로운 연료로서, 각종 제조품(화학제품, 의약품, 플라스틱)의 원재료이자 질소비료 원료(95퍼센트)로서 미국 농업에서 불가결한 물질이다. 현재 미국에서는 빠르게 고갈되고 있어 캐나다와 멕시코에서 많이 수입하고 있는 실정인데, 두 나라 역시 넉넉한 형편이 아니며, 갈수록 극지, 심해에서 시추해야 함에 따라 조만간 비용을 감당하기 어려운 시점이 올 수 있다. 수소는 부시 대통령이 2003년 국정연설에서 수소자동차를 중심으로 한 '수소경제' 운운하며 떠오른 대체 연료인데, 한마디로 '공상'이라는 게 저자의 입장이다. 수소는 항상 다른 원소와 결합한 화합물의 형태로 존재하기 때문에 분리해내려면 에너지가 들고, 밀도가 매우 낮아서 저장, 수송을 위해서는 압축해야 하는데 그 비용도 엄청나기 때문이다. 산업혁명의 원동력이었던 석탄은 21세기 들어 석유가 고갈되면서 이전의 지위를 되찾을 가능성이 높아졌다. 문제는 상대적으로 매장량이 많아도 석탄은 중금속, 미세먼지, 이산화탄소를 다량 배출하고 막대한 고형폐기물을 남기는 오염원인데, 석유 이후 도래할 '내핍경제'에서 그것을 개선하려는 의지가 있겠느냐는 점이다. 또 석탄을 지금의 석유처럼 쓴다면 고갈 시기는 급속도로 다가올 것이다.

 

대체 연료로서 주목받는 수력, 태양광, 풍력, 합성섬유, TDP(열분해 공법), 바이오매스, 메탄 수화물, 영점에너지도 화석연료기술의 토대 없이는 이용하기 어렵고, 화석연료를 대체할 만큼 효율적으로 에너지를 만들어낼 수 없다. 원자력은 폐기물 처리문제 때문에 부담이 크지만, 석유문명과 그 대안 사이의 기간 동안에 중, 단기적으로 의존할 유일한 수단이 될지 모른다는 게 저자의 판단이다.

 

자연의 역습

 

우리는 지구 역사에서 기후변화는 주기적으로 있어온 일이라는 얘기를 종종 듣는다. 지난 1만년은 기후가 예외적으로 안정적이었던 것이라고 한다. 유럽의 경우 5세기 중반부터 19세기 중반까지 한랭기와 온난기와 소빙하기를 차례로 거치며 산업혁명에 이르렀다. 그런데 문제는 200년간의 화석연료의 시대가 온난기와 겹쳐져 온난화를 빠르게 진행시켰고, 그 다음 다가올 한랭기를 앞당길지 모른다는 가설이다

 

이 가설이 시사하는 한가지는, 지금의 지구온난화 사태가 실은 새로운 한랭기로 가는 전주곡일 뿐인지도 모른다는 점이다. 실제로 지금 우리는 강력한 원투펀치를 얻어맞을 수 있다. 급격한 온난화에 시달리다가, 그 분열이 야기하는 빙하기의 습격을 당할 수 있는 것이다. 거기다가 석유와 가스의 고갈로 인한 훅까지 얻어맞게 되면, 우리의 허약한 문명은 다음 빙하기가 시작되기 훨씬 전에 일찌감치 무릎을 꿇고 말 수도 있다.

 

위도에 비해 덜 추운 영국과 북유럽을 따뜻하게 해주는 멕시코만류의 흐름이 온난화로 인하여 북극 빙하가 녹은 물이 크게 유입되는 바람에 20퍼센트나 느려졌다고 하는데, 실제로 지난 1만년 동안의 온난기 직전 한랭기의 원인은 멕시코만류의 차단이었다는 설이 유력하다

 

화석연료시대 인간의 활동이 환경과 생태계에 끼친 영향을 몇가지만 살펴보자. 20세기 말 이른바 녹색혁명으로 세계곡물생산량은 250퍼센트 증가했는데, 이것은 전적으로 화석연료의 공로였다. 천연가스로 만든 비료, 석유로 만든 농약, 역시 화석연료를 동력으로 한 관개 덕분이었다. 이것은 토양 황폐화와 질병의 확산을 초래했다. 중국은 전체 경작지의 70퍼센트에서 막대한 관개 때문에 지하수가 빠르게 고갈되어 가고 있다. 지하 아주 깊숙이 묻혀있던 것들을 파내고 퍼내어 인류는 농사를 지었고, 그 덕에 인구는 폭발했다. 2004년 기준으로 감염자 수가 4000만명(그중 2500만명은 아이들이다)인 에이즈도, 1차대전보다 많은 목숨을 앗아간 1918년의 독감(스페인독감) 같은 대유행병도, 조류독감과 광우병도 화석연료를 동력으로 하는 대이동 및 대대적인 공장식 축산과 무관하지 않으며, 병원균의 내성은 항생제를 비웃듯 갈수록 강해져 간다.

 

환각의 경제

 

현대문명의 가장 의미심장한 특징은 현재를 위해 미래를 희생한다는 것, 그리고 그런 목적을 위해 과학의 모든 힘을 바쳐왔다는 것이다.

 

_ 윌리엄 제임스

 

자유시장적 세계화는 당장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미래를 희생시키는, 극소수의 이익을 위해 다수를 희생시키는 파괴적 관행이다. 세계화는 비용은 '사회화' 하면서 이익은 '사유화'하기 위한 허울이기도 했다. 그게 가능했던 것은 지난 20여년이 상대적으로 평화로웠고 석유가 안정적으로 공급된 덕분이다. 이 세계경제는 어떻게 지금의 모습에 이르게 되었을까?

산업 자본주의의 발달을 촉진한 금융의 역할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산업시대에 들어서서 교역이 확대됨에 따라 금과 같은 금속화폐 대신 지폐가 자리잡게 되었다. 그런데 금본위를 넘어 지폐가 신용을 '창출'하는 추상성을 갖게 만든 이가 있었으니, 다채로운 이력의 스코틀랜드인 도박사 존 로라고 했다.

 

로는 재능이 넘쳐 이룬 게 많았는데, 그중에서 돈과 그 용처에 대한 혁신적인 이론을 고안해낸 것으로 유명하다. 그는 돈은 신용과 다를 바가 없는 것이라 주장했고, 한 사회에 존재하는 신용의 양은 거래에 대한 '인식된' 필요에 의해서만 결정된다고 했다. 신용을 왕실의 지하금고에 들어있는 금과 분리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에 따르면 신용은 사람들사이에 합의만 되면 특수한 목적, 이를테면 상상 차원의 목적에 쓰기 위해서도 창출될 수 있는 것이었고, 그러한 과정을 관리할 제도를 마련해주면 되는 일이었다. 로는 본질적으로 돈을 쌓아두기만 하는 수동적인 금고와 돈을 '만들어내는' 능동적인 은행을 확연히 구분한 것이었다.

 

로의 조언으로 프랑스에는 1714년 방크제네랄이라는 은행이 설립되었고, 지폐를 발행할 수 있는 특권을 부여받았다. 대표경영자가 된 로는 나중에 이 은행을 국책은행 방크로얄로 전환했고, 식민지개발업체인 미시시피회사를 최초의 근대적 거대복합기업으로 키웠다. 승승장구하던 로가 국가재정을 총괄하는 자리에까지 오른 1720년, 미시시피회사 투자자들은 주가가 절정에 달했다고 보고 이익을 환수하기 위해 대대적으로 주식을 팔아 금을 확보하기 시작했다. 처분 수유가 워낙 급작스럽고 엄청나, 로는 국책은행 총재로서 금의 인출량을 제한했는데, 그 조처로 도리어 인출이 쇄도했고, 결국 정부는 금고 속에 있는 귀금속의 가치가 유통 중인 지폐총액의 절반도 안된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했다. 주식은 단숨에 휴지 조각이 되어버렸고, 로는 프랑스를 탈출해야 했다. 당시 막대한 투자금을 잃은 중산층의 분노는 군주제 몰락에 기여할 정도였고, 프랑스에선 지금도 은행 이름에 '방크'라는 말을 쓰지 않는다고 한다. 로는 결과적으로 실패했지만, 그 구상은 후대에 막대한 영향을 끼쳤다. '사회적 합의에 의해 뒷받침되는 중앙은행이 금융 신용을 발행하고, 그 신용으로 새로운 부를 창출한다는 그의 아이디어는 산업자본주의와, 궁극적으로 산업자본주의와 정부의 적극적인 역할을 결합한다는 케인스의 아이디어의 선구가 되었다.'

 

추상적인 금융이 금속화폐나 구체적인 상품 같은 '실재'의 세계를 뛰어넘어 엄연하게 자신의 영역을 갖는다는 아이디어는 산업혁명의 진전과 함께 정통성을 얻었다. 원재료와 가공품 등 상품이 늘어남에 따라 교환수단인 통화의 양도 늘어났다. 지폐 위주의 금융이 지하실에 보관해둔 금화자루와는 별개의 생명을 얻게 되었다. 제조업과 무역업의 역동적인 성장은 그 자체로 부의 원동력이 되었다. 이러한 금융은 현대적 기업의 탄생과 성장으로, 축적된 자본과 더불어 새로운 모든 관행들에 대한 신뢰를 지속시키는데, 그게 가능했던 것은 산업성장이 꾸준히 상승곡선을 그렸기 때문이다. 이것은 점점더 많은 에너지르 이용할 수 있었다는 뜻이고, 그만큼 더 많은 자원과 상품의 거래가 이루어졌다는 뜻이다.

 

미국에서는 양차대전 후 대대적인 교외개발 투자와 고속도로망 건설이 있었고, 수입이 점점 늘어나고 석유정점을 지나며 석유까지 대대적으로 수입하면서, 세계에는 달러가 풀려 쌓여갔다. 세계적으로 달러에 대한 신뢰가 약화되면서 달러를 금으로 회수하는 대량인출사태가 일어날 위험이 커졌다. 실제로 1971년 여름 영국이 미국 재무부에 30억달러어치 금괴를 공식 요구하는 일이 벌어지자, 동년 8월 닉슨 대통령은 달러를 '추상적인 가치개념에 불과한 것'으로 만들어버림으로써 금 교환창구를 폐쇄해버렸다. 세계의 주요 통화와 실제 상품 사이의 공식적인 연결고리가 끊어져버린 것이다. 20세기 말로 올수록 미국의 교외개발은 각종 사회경제적 문제(농지 파괴, 도시 쇠락, 우울증 만연, 학교 총기난사 사건, 비만증)를 드러냈다. 또 주택이 마지막 투기처가 되면서 부실한 담보대출이 대대적으로 이루어졌고, 그에 연동된 파생상품이 마구 생겨나는(컴퓨터의 발달이 한몫했다) 카지노경제가 판을 치게 되었다.

 

장기긴급상황을 산다는 것

 

여기가 본론이다. 이 부분은 주로 석유 이후 사회의 미래상을 다루고 있는데, 몇가지를 소개해본다. 요지는 다가올 시대의 생활이 갈수록 지역화되고 규모가 축소될 것이며, 농업 중심 사회가 되어 식량생산 이외의 모든 활동은 부차적이 된다는 것이다.

 

지금의 산업농 시스템하에서는 곡물 1칼로리를 생산하는 데 16칼로리가 '투입'되어야 하며, 육류 1칼로리를 생산하자면 70칼로리를 투입해야 한다. 100년 전, 즉 화석연료를 기반으로 하는 기술이 도입되기 직전만 하더라도 미국 인구의 30퍼센트 이상이 농업에 종사했다. 이제는 그 수치가 1.6퍼센트에 불과하다.

 

미국에서 인구의 과반수가 살고 있는 교외는 비극적인 운명을 맞이할 것이다. 교외의 삶이란 값싼 석유와 천연가스에 철저하게 의존한 것이기 때문이다. 미국은 1950년대에 대도시가 성장을 멈추고 성장의 중심이 교외로 이동했다. 뉴욕과 로스앤젤레스가 북미 양안의 경제수도로서 활력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예외고, 애틀랜타, 샬럿, 올랜도, 휴스턴, 댈러스, 피닉스, 라스베가스 같은 곳들은 광역도시권으로서의 교외가 성장한 것이다(원형은 로스앤젤레스다). 장기긴급상황에서는 이런 교외뿐 아니라 대도시 주민들도 엄청난 고난을 겪는다.

 

만일 시카고에서 2월에 지역 천연가스 공급이 36시간 동안 끊어진다면, 60층 주상복합건물의 수도관이 어떻게 되겠는가? 수도관이 다 터져 버려 주거가 불가능해질 것이다. 그러면 가스관에 다시 압력이 찰 때 건물 난방기의 점화용 불씨가 자동으로 점화되지 않는다면 어떻게 될까? 가스폭발의 완벽한 조건이다. 전기공급망이 갑자기 끊어져 한번에 몇시간 동안 차단된다면 초고층건물들이 즐비한 도시가 어떻게 될까? 엘리베이터에 갇힌 사람들은 어떻게 될까? 29층에 있는 사무실이나 집에 올라가야 하는 사람들은 어떻게 하나? 노인들은 어떻게 되나? 여름 폭염때는 어떻게 하나? 대도시에서 15년에 한번씩 전기공급이 끊어지는 것이야 그렇다 하자. 하지만 그런 일이 매년, 1년에 몇번씩, 한달에 한번씩 아니면 한주에 두번씩 일어난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장기긴급상황에서 교통문제는 어떻게 될까?

 

장기긴급상황에서 지금 방식의 자동차, 고속도로 시스템을 유지하는 데 문제가 되는 것들은 더 있다. 하나는 정치적인 문제다. 미국의 자동차시스템이 가능했던 것은, 햄버거 고기를 굽는 가장 가난한 사람부터 기업 최고경영자인 가장 부유한 사람에 이르기까지 누구나 그 시스템에 참여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러한 시스템을 운영하는데 드는 비용을 모두가 민주적으로 부담할 수 있었다. 그렇다면 자동차를 유지할 수 없을 만큼 경제적으로 쪼들리는 시민이 늘어나고, 엘리트만이 차를 몰 형편이 되는 상황이 벌어질 때, 못 누리는 사람이 자기가 낸 세금이 고속도로를 유지하는 데 쓰이는 걸 허용할까? 지금 미국전체 화물의 64퍼센트가 트럭으로 운송되고 있다. 트레일러트럭이 계속해서 오가는 도로에서 포장은 조금만 파손되어도 금세 망가지고 만다. 이 도로망은 부분적인 실패를 용인하지 않는다. 고속도로는 상태가 최적이거나 금세 망가지거나 둘 중 하나인 것이다.

 

장기긴급상황의 교육은?

 

우리시대 고등학교는 사실상 성인인 사람들을 위한 탁아소나 마찬가지다. 배우는 게 어쩌다 좀 있긴 해도, 배움의 상당부분은 가치가 의심스러운 것들이다. 지금 미국 학교교육이 실패란 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교외의 학교들은 물질적으로는 여건이 나은지 모르겠는데, 그것 역시 변하고 있다. 거대하고 너무 멀리 떨어져 있는 교외 학교들은 너무 삭막한 분위기여서, 근년 들어 수시로 총기난사사건이 일어나고 있다. 도심이든 교외든, 미국의 모든 학교는 여전히 1911년식 공장을 모델로 삼고 있다. 수천명이 모여 일과를 엄격히 통제받는 공장말이다. 그런 학교의 주된 목적은 보호감독이다. 학교는 아동과 청소년을 한곳에 잡아두고 하루의 상당부분을 거기서만 보내게 한다. 그리고 성인에 가까운 사람들을 한결같이 어린아이 취급한다. 그런 여건 속에서 성공하는 청소년도 꽤 있으나, 나머지 대다수에게 학교생활은 고역일 뿐이다.

 

학교에 갇혀서 그들은 괴로움을 겪을 뿐만 아니라, 손을 써서 일하는 기술을 배워 사회의 유익한 일원이 될 기회를 박탈당한다. 장기긴급상황의 처음에 심각한 석유시장 붕괴가 시작될 경우, 노란 스쿨버스를 선단처럼 거느린, 웬만한 감옥 수준으로 학생들을 감금하는 거대하고 집중화된 교외 학교들은 금세 구시대의 유물이 되고 말 것이다. 학교는 지역을 기반으로 학생 수도, 건물도 더 작게 재편되어야할 것이다. 그리고 아이들은 다니는 학교와 더 가까운 곳에 살아야 할 것이다.

 

장기긴급상황의 학교교육은 연수도 짧아져야 할 것이며, 아이들은 하루나 한해의 일부 동안 일을 해야 할지도 모른다. 운이 좋은 지역은 소규모 농업이 가능한 곳일 텐데, 산업농이 아닌 방식으로 좀더 탈집중화된 지역농업이 활성화되면 노동의 분화가 아주 다른 식으로 이루어져서 나이가 든 아이들은 좀더 많은 책임을 맡게 되어 더 빨리 어른이 될 것이다. 어린시절을 낭만화하는 것은 값싼 석유시대의 사치였던 것으로 밝혀지게 될지도 모른다. 그리고 기초적인 학교교육은 지금의 8학년 정도 이상을 의무화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아이들의 진로는 아마도 지금과 같은 일반적인 기준보다는, 각자의 사회경제적 환경에 따라 결정될 것이다. 직업훈련은 학교보다는 작업장 환경에서 이루어질 가능성이 많으며, 도제방식의 모습을 할 것이다. 장기긴급상황에서는 어린 시절을 왜소하게 만들어버리는 경향도 줄어들 것이다. 학교교육을 재편하려는 모종의 노력은 지금의 시스템이 전체적으로 어느 정도 붕괴한 뒤에, 지역 차원에서 자체적으로(홈스쿨링 그룹에서부터 시작될지도 모른다) 이루어질 가능성이 높다. 유능한 교사에 대한 수요는 그때에도 분명히 있을 것이며, 직업의 종류가 크게 줄어드는 세상에 교직은 지금보다 사회적 지위가 높은 인기 직종이 될 수 있다.

 

뒷산에 올라 대도시 시가지를 내려다보노라면 저런 데서 사람이 어떻게 사나, 온통 시멘트무더기 아스팔트바닥인데 하는 생각이 든다. 내핍이 필요한 시대가 머잖아 올 것이다. 시멘트 사이에서 풀무더기가 점점 더 눈에 띄게 될 것이다. 석탄 태우는 냄새가 독할진 몰라도 공기는 더 쾌청하고 별도 더 반짝일 것이다. 좀 추워도 정신은 맑아질 것이다. 생각해보면 <장기긴급상황>의 핵심 메시지는 일찍이 권정생 선생의 발언 속에 분명하게 요약되어 있었던 것이다.

 

승용차를 버려야 한다. 그리고 아파트에서 달아나야 한다. 30평짜리 아파트에서 달아나 이전에 우리고 버려두고 떠나왔던 시골로 다시 돌아가서 15평짜리 작은 집을 짓고 살아야 한다. 가까운 데는 걸어다니고 먼 곳에는 기차를 타거나 버스를 타고 다니며 살아야 한다. 승용차를 버리면 기름 걱정 안해도 되고 일부러 걷기운동 안해도 자연히 걸어 다니게 되고 살찔 걱정도 없다. 아이들은 시냇물이 흐르고 솔숲이 우거진 작은 시골학교에서 공부하면 된다. 거기서 중학교까지 공부하고 더 공부하고 싶은 학생은 마을에서 작은 도서관을 만들어 스스로 공부하면 된다. 지금 내가 타고 가는 승용차 기름이 아프가니스탄이나 이라크 사람들의 목숨과 연결되어 있을 수 있다고 느낀다면 평화의 길은 멀지 않을 것이다. 그러기 위해 가난한 삶을 우리 스스로 선택해야 한다. 승용차를 버리고 30평 아파트를 반으로 줄이는 길뿐이다. 그래야만 석유전쟁에 파병을 안해도 떳떳할 수 있다.

 

_ 권정생, <우리들의 하느님> 중에서.

 

* 이한중 : 번역가, 최근 번역한 책으로 조지 오웰의 <위건부두로 가는 길>, <나는 왜 쓰는가>가 있다. 이 글은 미국 작가 제임스 컨스틀러가 쓴 The Long Emergency(2005)의 번역을 최근 완료하고, 그 내용을 소개하기 위해 쓴 글이다. 이 책의 한국어판은 갈라파고스 출판사에서 곧 나올 예정이다.

 

_ 김종철, <녹색평론 116호, 2011년 1월~2월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