짝사랑의 상처
벌교중학교 1학년 때였던가
나는 여학교 퀸으로 꼽히던 글 잘 쓰고 눈빛이 슬퍼 보이던
그 애를 짝사랑했는데
부끄럼을 많이 타서 편지로만 무지 몸살을 앓았는데
읍내를 꽉 잡고 누비던 어깨 큰 선배들이
그 애를 자기한테 인수인계하라고 해서
밤중에 공원으로 불려가 싸움이 붙어 엄청 깨져버려
지금도 머리에 짝사랑의 흉터가 챙피하게 남았는데
그때 선배들한테 목을 밟힌 채 내가 한 말은
그 여자애 마음을 가져와 보라고
어떻게 그녀의 마음을 힘으로 주고받냐고
어떻게 내 것도 아닌 사랑을 내 것인 양 인수인계하냐고
사랑의 방향은 오직 그녀 마음 안에 들어 있는 거라고.....
지금도 누군가 나에게 힘으로, 돈으로
내 마음을 바꾸라고 강제할 때면
나는 문득 25년 전의 그 사랑싸움이 생각나는 것이다
아, 그때 피투성이로 밟힌 채 쳐다보던 그 밤하늘엔
어찌나 별이 맑고 곱던지 풀벌레 소리는 왜 그리 서럽게 환하던지
그래서였던가 나는 정신을 잃는 순간까지 단호하게 말했었지
어떻게 사랑을 힘으로 주고받냐고
어떻게 내 것도 아닌 그녀 마음을 우리끼리 주고받냐고
어떻게 그녀 마음을 함부로 빼앗느냐고
그래, 지금도 난 그래,
어떻게 양심을 강제로 바꾸려하냐고
어떻게 민심을 힘으로 판단하냐고
어떻게 미래를 돈으로 가지려하냐고
우리가 소유하고 있지도 않은 것들을
어떻게 힘으로 빼앗아가겠다는 것인지
그때나 지금이나 나로서는 이상한 생각이다
사랑의 상처를 다시 내 온몸에 수놓을지라도
나로서는 정말 그 이상하고 이상한 생각에 굽힐 수 없는 것이다.
- 박노해, '사랑의 첫느낌, 그 설레임으로 살고 싶다'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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