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웨덴, 석유없이 살 수 있을까?
석유 가격의 고공 행진이 계속되고 있다. 2004년만 해도 배럴당 30달러 수준이던 유가는 2년만에 2배로 뛰더니,
2007년 하반기부터는 연일 최고가를 경신하고 있다. 유가 폭등으로 세계 경제가 몸살을 앓는 가운데,
일찍이 석유 독립을 선언하고, 체질 개선에 나선 나라가 있다.
기름 한 방울 나지 않는 북유럽의 자원 빈국 스웨덴. 2006년 스웨덴 정부는 2020년까지 난방에서는 0%,
산업과 운송에서는 각각 40~50%까지 석유 의존도를 낮추겠다는 혁신적인 계획을 발표했다.
과연 석유 독립의 꿈은 이루어질 것인가.
스웨덴 제2의 도시이자 산업 요충지인 예테보리. 스웨덴을 대표하는 기업과 공장들이 밀집한 이곳은 석유를 쓰지 않는 스웨덴의 대표
적인 탈석유 도시다. 자전거는 예테보리 시민들이 이용하는 주요 교통 수단 중 하나. 어딜 가나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을 쉽게 만날 수
있다. 주차하기가 불편해서 자전거를 탄다는 예테보리 시민들. 도대체 얼마나 주차하기가 어려운 걸까. W는 직접 예테보리 도심에
주차를 해 보기로 했다. 시내를 한참 헤매고 나서야 드디어 발견한 주차 표지판. 주차 허용 시간은 단 10분뿐이었다. 시내 어딜 가나
주차는 단 10분, 그것도 모두 유료 주차만 가능했다.
"도심에서 자가용을 이용하면 돈이 많이 들도록 정책을 만들었습니다. 우리는 시민들이 교통수단에 대한 새로운 개념을 익힐 수 있도
록 노력하고 있습니다."
예테보리 시 에너지 컨설턴트 여란 바롬비의 말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예테보리에서는 우리와는 전혀 다른 개념의 카풀제도가 큰 인기를 얻고 있다. 방향이 같은 사람끼리 타는 것이
아니라, 인터넷으로 필요한 시간대에 이용 가능한 차를 예약만 하면 렌터카보다 싼 가격에 사용할 수 있는 신개념 서비스다.
장성한 아이 다섯에 맞벌이하는 부인까지, 일곱 식구의 가장인 라거크 란츠도 카풀을 자주 이용한다. 대가족이지만 자가용이 한 대뿐
이기 때문이다. 인터넷 신청을 마친 후, 가까운 주차장을 찾은 그는 휴대전화를 꺼내 들더니 잠시 후 열쇠도 없이 차문을 열었다.
"어떻게 한 거죠?"
"제가 휴대전화로 카풀 회사의 중앙 컴퓨터에 문자 메시지를 보내면 원격 조정으로 차 문이 열려요. 그럼 차 안의 열쇠를 꺼내서 운전
을 하면 되죠."
"대개 서구에서는 성인 한 명당 차 한 대씩은 있지 않나요?"
"네, 하지만 앞으로는 그렇게 살 수 없다는 걸 모두가 잘 알지요. 삶의 방식을 바꿔야 해요. 저는 차가 없어도 괜찮습니다. 카풀 회사에
서 빌리기만 하면 여러 종류의 새 차를 타 볼 수 있잖아요. 아주 좋습니다."
시민들의 참여 덕분에 예테보리 시내 도로는 늘 한산한 편이다. 이는 2006년에 시작한 석유독립 정책에 따른 것이다.
석유 없이도 세상은 돌아간다
석유 독립 선언 2년, 과연 석유 없이 사는 것이 가능할까. W는 예테보리의 한 가정집을 방문해 보았다. 셀스트롬 부부의 집은 4층 단독
주택. 하지만 이 커다란 집에서 석유는 단 한 방울도 사용하지 않는다고 한다. 이 집의 난방 방식은 예테보리 시민의 90%가 사용하는
지역 난방 시스템. 그 연료는 바로 예테보리 시민이 버리는 생활 쓰레기다. 쓰레기 소각 과정에서 발생하는 폐열을 발전기로 모아 파이
프를 통해 가정에 공급하면, 따뜻한 물이 집 안을 순환하며 난방은 물론 온수까지 제공한다는 것. 전기도 대부분 원자력 발전과 수력
발전 등으로 공급되고, 심지어 자동차도 대체 연료 차량이라 석유는 전혀 필요하지 않았다.
"이 집에 만족하세요?"
"그럼요. 다시는 석유를 사용하는 방식으로 돌아가지 않을 겁니다. 절대로요."
시에서 제공하는 난방 시스템 대신 독자적인 자가 난방을 통해 석유 독립을 실천하는 가정도 있다. 닐스 씨 집의 난방 방식은 마당 깊
숙이 숨어 있는 땅속 지열을 이용하는 것이다. 지하에 설치된 파이프를 통해 지열을 모아 지상으로 전달하면, 난방 펌프를 이용해 여름
에는 차갑게 겨울에는 따뜻하게 변환되어 집 안 곳곳으로 공급된다. 사시사철 쾌적한 실내 온도를 유지할 수 있고, 무엇보다 비용 절감
효과가 큰 것이 지열 난방의 장점이다.
현재 예테보리에서 주로 사용하는 난방 에너지는 폐열과 바이오 연료로, 석유 의존도는 단 1% 수준, 이미 99% 에너지 자립에 성공한
상태다. 그렇다면 자동차의 경우는 어떨까. 스톡홀름에서 6시간 거리, 스웨덴 남부의 작은 도시 엔더스토프에선 세계적인 자동차 경주
대회 '월드 투어링 캉 챔피언쉽"이 한창이었다. 현재 판매되고 있는 자동차들이 참가해 스피드 경쟁을 벌이는데, 시보레, BMW, 혼다등
세계적인 명차 속에서 유독 언론의 집중 조명을 받는 자동차가 있었다. 일명 '그린카' 로 불리는 이 차는 휘발유 대신 에탄올을 사용한
다. 에탄올 차가 대회에 출전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린카의 성적은 총 26개 팀 중 10위. 첫 신고식치고는 성공적인 결과였다.
그린카를 만든 회사는 스웨덴의 대표적인 자동차 회사 볼보. 볼보는 1970년대부터 환경 친화적인 대체 연료 차량 개발을 시작했다.
전기와 석유를 병행하는 하이브리드 자동차를 시작으로 E85(에탄올 85% + 휘발유 15%), 식용류로 가는 차까지 연구 개발과 시행착오
끝에 플렉시퓨얼 자동차의 시판에 성공했다.
이 차는 에탄올을 비롯해 5가지 대체 연료를 사용할 수 있으며, 어떤 연료를 넣든 차 내부 센서가 연료의 종류를 자동으로 인식한다.
볼보 관계자는 "슈퍼마켓에서 식용류를 한 병 사서 넣으면 된다. 그러면 운전할 때 감자튀김 냄새가 난다." 며 너스레를 떨었다.
이 차는 최근 매출이 800% 나 증가할 만큼 인기가 좋다고 한다.
대체 연료 차량의 최대 장점은 유지비가 적게 든다는 것. 에탄올 값이 휘발유 값보다 훨씬 싼 데다 구입 시 140만원의 정부 보조금 혜택
과 함께 시내 주차 시설을 무료로 이용할 수 있는 편의까지 제공된다. 덕분에 대체 연료 자동차 시장은 빠른 속도로 성장하여 2년 전
5%이던 점유율이 2007년엔 상반기에만 20%에 육박했다. 이 중 가장 각광받고 있는 대체 연료는 바이오 가스다. 전량 수입에 의존하는
에탄올과 달리 바이오 가스는 다양한 방식으로 스웨덴 국내 생산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스웨덴에서 가장 보편적인 생산 방식은 폐수를
활용하는 것으로, 폐수 정화 과정에서 발생하는 메탄 성분을 농축해서 초당 4000대분의 가스를 생산하고 있다. 아직은 초기 단계지만
버스를 비롯한 관공서 차량에 바이오 가스를 연료로 사용하는 경우가 점점 늘어나고 있다.
스웨덴 남부 작은 도시 린셰핑에는 세계 최초의 바이오 기차가 달린다. 왕복 800km를 운행하는 이 기차는 54인승이라는 작은 규모를
제외하고는 일반 디젤 기차와 별 차이점을 발견할 수 없다. 승객의 만족도도 대단히 높은 편. 하지만 중요한 것은 이 바이오 기차가
인근 목장에서 가져온 소, 돼지의 축산 폐기물과 밀반입하다 압수된 양주를 발효시켜 만든 바이오 가스를 동력으로 사용한다는 사실
이다.
기적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는다
석유가 없어도 공장이 돌아가고 도시가 움직이며 차들이 거리를 주행하는 스웨덴. 이런 스웨덴의 변화는 국제 사회에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오고 있다. 스웨덴 에너지청 관계자는 스웨덴에서 석유는 더 이상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들에게는 얼마든지
다른 에너지원이 있다는 자신감이 넘쳤다.
"우리에게는 풍부한 태양 에너지, 울창한 숲, 농업 자원, 바람, 파도 등이 있습니다. 모두 이용 가능합니다. 문제는 이것들을 개발하는
데 드는 투자비용입니다. 하지만 장기적으로 보면 이 비용은 다 돌려받게 됩니다."
예테보리 시청에서 만난 에너지 컨설턴트의 말처럼 과거 76%에 달하던 스웨덴의 석유 의존도는 현재 30% 이하로 점차 줄어들고 있는
추세이다. 반면 친환경 대체 에너지의 비중은 갈수록 증가하고 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 물론 하루아침에 일어난 기적은 아니다. 두 차례 석유 파동을 겪은 1970년대 후반부터 석유를 대체할
에너지원을 꾸준히 개발해 온 지난 30년의 노력이 이루어 낸 쾌거다. 향후 15년 내 석유 의존도를 최고 0%까지 낮추는 것을 목표로
야심 차게 발족한 '석유독립위원회'는 일관되게 추진해 온 탈석유 에너지 정책을 강화하고 국민의 자발적 참여를 이끌어 내고 있다.
선진국에선 10여 년 전부터 '절약은 사회 구성원으로서 후세에 대한 도덕적 기부' 라는 의식을 생활화해 왔다. 스웨덴 거리에서 마주친
소년도 다음 세대를 생각해야 한다고 했다. 석유를 포기한 대신 무궁무진한 대체 에너지와 깨끗한 자연환경을 얻은 스웨덴. 불가능할
것 같던 에너지 독립의 꿈을 앞당기는 스웨덴의 선견지명을 이제는 우리가 배울 차례다.
P.S 비하인드 : 더 늦기 전에 에너지 독립을 시작해야 한다
2007년 7월 국제 에너지 기구는 석유 매장량이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며, 5년 내 석유 공급에 차질이 빚어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석유
대란의 정점은 2015년 이전이 되리라는 암담한 전망도 나와 있다. 이러한 전망에도 불구하고 한국은 세계 5위의 원유 수입국이며, 국내
총생산 대비 에너지 소비량은 세계 1위다. 게다가 배기량 2000cc 이상 대형차 점유율은 30% 선으로, 미국에 이어 세계 2위다. 경차
비중은 6.5%로 24~55%인 선진국에 비해 현저히 낮은 데다 연간 평균 주행 거리는 일본의 2배이며 미국보다도 많다. 유가가 배럴당
200달러까지 치솟으면 리터당 3000원을 훌쩍 넘게 되고, 우리 경제는 물가와 무역 수지 적자, 실질 임금 감소와 원자재 값 상승으로
인해 외환 위기 사태에 버금가는 곤경에 처하게 될 것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석유를 대체할 에너지 개발은 모든 나라의 주요 관심사다. 브라질은 공업용 알코올인 에탄올을 대체 연료로 상용
화한 바이오 에너지 강국으로, 2006년부터 더 이상 석유를 수입하지 않는다. 생산한 에탄올의 20%는 미국, 일본, 베네수엘라, 인도등에
수출하여 '제2의 사우디'라는 별칭까지 얻었다. 그러나 바이오 에너지 개발이 순탄한 것만은 아니다. 연간 1억 톤의 곡물로 에탄올 증류
공장을 가동한 탓에 곡물 가격 급등을 부채질했다는 눈총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인도네시아에서는 문제가 좀 더 심각하다. 최소 300만의 일자리 창출을 목표로 바이오 에너지 개발 대열에 뛰어든 인도네시아, 지구의
허파, 보르네오 섬 남단의 칼리만탄에는 열대 우림 대신 400만 헥타르의 팜 농장이 자리한다. 거목들을 잘라 내고 불을 지른 후 팜나무
를 심은 것인데, 피해를 보는 것은 다름 아닌 야생 동물이다. 삶의 터전을 잃은 야생 동물이 사라지고 있는 것이다. 또 단작과 대량 생산
형태의 작물 재배는 생태계의 종 다양성을 감소시키고 잦은 가뭄과 홍수를 일으킨다. 세계 이산화탄소 배출량의 20%가 산림 벌채에서
온다고 할 때, 기후 변화와 생태계 파괴는 피할 수 없는 현실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친환경 에너지를 개발한다는 명목으로 지구의 환경
을 더욱 악화시키고 있는 것이다.
- MBC <W> 제작팀 <세계를 보는 새로운 창 'W'>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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