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차 미소공위가 결렬되자 미 군정은 김규식과 여운형을 중심으로 좌우합작을 추진했다. 좌우합작 문제가 대두되자 김구를 비롯한 임시정부 요인들은 중국의 국공합작과 연관시켜 생각한 탓인지 좌우합작에서 정치적 활로를 찾으려 했다. 이승만은 좌우합작의 말로는 공산화라고 결론짓고 좌우합작에 전혀 응하지 않은 채 남한에 임시정부(단독정부)수립론을 들고 나왔다. 김구는 국제정세의 흐름에 어두웠다. 그는 미국이 중대한 국제문제에 직면해 있으며, 한국 문제도 미국의 세계전략에 맞춰 풀어갈 것이라는 이승만의 주장을 납득하지 못했다. 김구는 거시적 안목이 부족했고, 미국의 세계전략에 따라 한국 문제가 영향받을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다. 게다가 김구는 임정의 권위를 업고 쿠데타를 통해 미 군정을 무너뜨리려고 여러 차례 시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