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답게 살아가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행복하게 살아가기 위해 가장 먼저 해야 할은 "농업"을 다시 살리는 일
평화롭게 행복하게 살아가기 위해서, 그리고 앞으로 우리가 살아갈 날들을 위해서 가장 먼저 해야 할 일들은 무엇일까요. 많은 것들이
있겠지만 그 무엇보다 중요한 것, 그것을 저는 지금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그것은 바로 다름 아닌 농업을 다시 살리자는 것입니다.
저는 우리 사회에서 농업을 다시 살리기 위한 노력은, 인간으로 태어났으니 인간답게 살아가자는 이야기와 같은 것이라고 봅니다. 농업
회생의 외침은 단순히 농촌의 문제, 농업의 문제, 쌀의 문제만을 뜻하지 않습니다. 바로 나 자신이 한 인간으로서 인간다워지는 것과 관
계되는 문제입니다. 즉 사람의 도리를 제대로 하자, 사람답게 되자는 절규요 몸부림인 것입니다.
농업 회생의 노력이 왜,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길인가 하는 것을 저는 이 글에서 생각해봤으면 합니다. 이야기를 풀어가기 위해서 큰 주
제를 '인간다운 삶을 위한 국민들의 각성과 역할'이라고 잡았습니다. 여기에서 초점을 좁히면 '도시인들의 각성과 역할'이라고 할 수 있
겠고, 더 초점을 좁히면 '서울, 경기 사람들의 각성과 역할'이라고 해도 괜찮겠지요.
월드컵기간 내내 온 국민을 환호하게 하는 원인이 무엇일까?
우리는 얼마 전에 월드컵을 치렀습니다. 처음에는 1승과 16강이 국민적 바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상을 뒤업고 4강까지 진출했습니다.
온 국민이 환호했습니다. 마치 월드컵에서 승리하는 것만이 희망의 전부인 것 같은 분위기가 전 국토를 휘감았습니다. 저는 월드컵기간
내내 온 국민을 환호하게 하는 원인이 도대체 무엇일까 하는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자세히 짚어보면 여러 가지 요인들이 작용을 했겠지만 제가 보기에는 크게 두 가지인 것 같습니다.
첫 번째는 경쟁에서 이긴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성취한다는 것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경쟁에서 이기고 성취하기만 하면 만사형통이라는 믿음을 갖고 있습니다. 승리하고 성취하기만 하면 모든 것이 해결된다는 바람과 믿음으로 세상을 살아가고 있는 것이지요. 월드컵이 그런 믿음과 바람을 집단적으로 충족시켜주었습니다. 그런데 정말로 이기고 성취하면 모든 것이 해결되는 것일까요? 사실은 전혀아니지요. 그것은 착각입니다. 사람들을 현혹하는 허구에 찬 환상일 뿐입니다. 누구나 알다시피 승리하고 성취해서 기쁜 사람은 항상 소수일 수밖에 없습니다. 소수가 승리와 성취로 인해 기뻐하는 동안 엄청난 상처와 좌절, 고통과 불행을 겪는 보다 많은 사람들이 있습니다승리하고 성취하면 모든 것이 해결된다는 생각은 승리하고 성취한 소수 사람들의 논리일 뿐입니다. '우리 모두' 에게 적용되는 것이 아니지요.
살면 살수록 왜 문제가 더욱 꼬이고 또 꼬이는 악순환을 거듭할까?
사실 양심적으로 볼 때 나의 성공, 나의 기쁨이 나 아닌 보다 많은 다른 사람의 아픔과 절망이 된다면 그것이 어떻게 인간적일 수 있겠습니까. 우리들은 그 동안 이기고 성취하기만 하면 된다는 잘못되고 왜곡된 사고방식으로 삶의 문제를 다루어왔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무수히 이기고 성공했지만 문제는 더욱 꼬이고 또 꼬이는 악순환을 거듭하고 있는 것입니다.
설령 현실 속에서 승부가 있을 수밖에 없다고 하더라도, 적어도 승리한 사람이 패자의 아픔과 절망을 자신의 아픔과 자신의 절망으로 끌어안을 줄 알아야 하는 것이지요. 그래야 건강하고 바람직한 승리와 성장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지 않겠어요? 그런데 현재 우리 사회에는인간적으로 성숙한 그런 관심과 배려를 찾아볼 수 없습니다. 단지 이기는 것에만 도취되어 있을 뿐, 그로 인해서 생기는 고통과 문제에대해선 전혀 관심을 보이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사회가 이루어낸 물질적 풍요나 기술적 편리가 구성원들에게 더 큰 자유와 행복으로 귀결되기는 커녕 오히려 구성원들을 더 큰 굴레와 고통으로 몰어넣게 되는 것입니다.
승자의 의무와 책임, 즉 패자의 아픔과 절망을 자신의 것으로 끌어안는 성숙된 인식과 실천이 없는 승리와 성공이란 결국 허구일 수밖에없는 것입니다. 우리가 살아온 그간의 세월이 그렇습니다. 더 많이 갖자, 더 편리하자, 경쟁에서 앞서 가자, 싸워서 이기자. 이 길만이 희망의 길이라는 사고를 갖고 줄기차게 변화와 발전을 추구해왔습니다. 그 결과 정말 희망을 찾았습니까? 우리가 더 행복해졌습니까?
기적이라고 불릴 만큼 엄청난 변화와 발전이 진행되었던 20세기 인류 역사의 내용을 차분하게 살펴보십시오. 끝없는 살상과 파괴의 연속이었음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살상과 파괴는 전쟁에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약육강식의 논리 속에서 너 죽고 나 살자는 식으로 세계가 움직이는 한 우리 모두의 노력이 살상과 파괴로 귀결됩니다.
첫 단추가 잘못 꿰어지면 계속 어긋날 수밖에 없다
변화와 발전을 통해 이루어진 결과로서의 오늘의 역사 현실, 지구촌의 현실은 어떻습니까? 여기저기서 위기라는 외침이 터져 나오고 있습니다. 자원의 고갈, 빈부 격차의 심화, 공동체의 해체, 생명의 위기 등등 온통 위기라고 난리들입니다. 농촌은 폐허가 되고 농민들은 망연자실 한숨만 쉽니다. 노동자들은 점차 비정규직으로 대체되고 언제 일터를 빼앗기고 길거리로 내몰릴지 모르는 상황에 처해 있습니다.청소년들은 가치관의 혼란과 불안한 미래 앞에서 방황하고 있습니다. 가진 자들이나 정책 당국자들이라고 해서 더 나을 것도 없습니다.위기라고 떠드는 것이 그들의 일상이 되어버렸습니다. 삶이 더욱 황폐화되었을 뿐입니다.
무엇이 문제일까요? 그 동안 우리가 죽기 살기로 추구해온 것들이 살상과 파괴의 악순환을 낳고 위기에 위기만을 초래하고 있다면, 이제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또 되풀이해서 더 많이 갖자, 싸워서 이기자는 식으로 살아갈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이제 그 동안 살아왔던삶의 방식에 대한 반성적 성찰과 새로운 모색이 절실합니다.
우리가 역사에 대한 반성적 성찰과 함께 생각해볼 것이 있습니다. '좀더 나은 세상, 좀더 평화롭고 행복한 삶'을 위해서 변화와 발전에 심혈을 기울였는데도, 살상과 파괴의 악순환을 낳고 위기에 위기를 낳게 된 근본 원인은 어디에 있는가에 대해 파악하는 것입니다.
그래야 해결책을 찾을 수 있을 테니까요. 원인을 찾아야 합니다. 그 근본원인을 제대로 알지 못하면 아무리 노력에 노력을 거듭해도 이미첫 단추가 잘못 끼워진 상태이기 때문에 계속 어긋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잘못 끼워진 첫 단추가 어떻게 생겼는지 어디에 있는지를 먼저 찾아야 합니다.
'너는 너, 나는 나' 라는 식의 이원적인 세계관이 문제의 원인
저는 그 원인을 잘못된 세계관, 즉 삶에 대한 왜곡된 이해에 있다고 봅니다. 경쟁에서 이기겠다고 아등바등하고 맹목적으로 승리에 도취하게 되는 것은 이원적인 세계관에서 비롯되고 있습니다. '너는 너, 나는 나' 라는 식으로 세상을 이해했기 때문입니다. '네가 없어도 나혼자 살 수 있다' 또는 '네가 없는 것이 나한테는 더 유익하다' 더 나아가서는 '내가 살기 위해서 너를 제거해야겠다'... 온통 이원적 세계관에서 비롯된 생존 경쟁과 약육강식의 극단적인 사고방식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맹목적이고 이기적인 욕망을 좇는 극단적인 경쟁 논리가 판을 치고 있습니다. 마치 너 죽고 나 살자는 길이 유일한 희망의 길인 것처럼 여기고 있는 듯합니다.
인생에 대한 새로운 눈뜸이 절실합니다. 이 세상에 너 없는 나, 농촌 없는 도시, 자연 없는 인간이란 있을 수 없습니다. 나만 사는 길, 인간만 살 수 있는 길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이 사실은 만고의 진리입니다. 그런데 우리 모두는 삶에 대한 좁고 왜곡된 안목으로 나만 사는길이 있다고 믿고 경쟁에서 이기기만 하면 된다는 착각에 빠져 있는 것입니다.
이 세상은 서로 의지하는 관계 속에 존재한다.
제가 보기엔 이와 같은 삶에 대한 잘못된 안목이 모든 문제의 첫번째 원인이라고 봅니다. 이 세상은 서로 의지하는 관계 속에 존재합니다. 나 아닌 것들에 의지하지 않는 한 절대 지금의 나는 존재할 수 없습니다. 어떻게 '너는 없어도 좋아'라고 생각할 수 있겠습니까?
어떻게'네가 죽어도 나만 살면 그만이다'라고 생각할 수 있느냐는 겁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 우리 사회는 '너 죽고 나 살자'는 식으로 살고 있습니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요? 바로 우리가 이 세계와 삶에 대해 잘못 알고 있다보니 그렇게 된 것입니다. 모든 것이 분리되어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철저히 경쟁과 대립의 방식으로 문제를 다루게됩니다. 그 결과 우리 사회는 누군가를 짓눌러야 살아남는 무자비한 사회가 되었습니다.
결국 아무리 노력을 해도 인간적인 삶이 불가능해져버리는 겁니다. 누군가의 비극을 먹고서야 나의 기쁨이 가능해지는 상황이 계속 되풀이되는 것입니다. 노력을 하면 할수록 끝없는 살상과 파괴를 낳고, 위기에 위기라는 불행한 결과를 낳게 되는 악순환이 연속되는 것이지요.
길은 단순 명료합니다. 원인을 정확하게 알면 해답은 당연히 따라 나옵니다. 그 원인은 우리 눈에 문제가 있는 겁니다. 우리가 잘못 알고있는 내용이란 바로 너와 나, 정신과 물질, 전체와 개인, 인간과 자연이 따로따로 있는 것처럼 여기는 것입니다. 너 따로 나 따로, 하늘과땅, 남자와 여자, 인간과 자연 등 모든 게 남남으로 분리되어 따로 존재한다고 생각하는 데 일차적인 원인이 있는 것입니다. 너 죽고 나 살자는 식의 비인간적인 사고방식은 바로 왜곡된 세계 인식에서 비롯되는 것입니다.
죽으나 사나 우리가 갈 길은 함께 사는 길밖에 없다.
나만 살면 된다는 사고와 삶의 방식을 가지고는 아무리 고상한 폼을 잡아도 인간다운 삶이 불가능합니다. 너 죽고 나 살자는 식의 삶을 통해서는 인간의 품위를 지킬 수가 없습니다. 문제를 제대로 짚어보면 삶에 대한 올바른 안목을 갖는 일이 문제를 풀어가는 출발점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잘못 끼워진 첫 단추를 풀어서 다시 잘 끼우는 일부터 해야 하는 것이지요.
삶에 대한 올바른 안목이라고 하는 것은 네가 없는 나, 자연 없는 인간은 존재할 수 없다는 진리를 깨닫는 것입니다. 죽으나 사나 우리가갈 길은 함께 사는 길밖에 다른 길이 없음을 깊이 통찰하는 것입니다. 정말 우리가 원하는 인간다운 삶을 살려면, 정말 행복한 사회를 만들고자 한다면, 함께 사는 길을 찾지 않으면 안 됩니다. 우리가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온갖 노력을 기울였듯이, 함께 사는 길을 찾는데 열정을 바쳐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지금 농업 회생 운동을 하는 것은 바로 이런 몸부림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첫 번째 일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함께 살려면 서로 돕는 길밖에 없다.
함께 살려면 서로 돕는 길밖에 없습니다. 우리네 전통적인 풍속에 품앗이와 이웃사촌이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품앗이는 서로 돕는 것이고 이웃사촌은 서로를 존중하고 배려하며 사는 것입니다. 우리의 아름다운 전통이 지금은 다 파괴되었지만, 우리가 희망을 찾으려면 이 길밖에 다른 길이 없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주마간산 격으로 대충 살아온 세월을 돌아보고 어떻게 해야 할 것인지를 짚어봤는데 결국 도달한 결론은 무엇입니까? 모든 국민이 생태적 세계관에 입각해 더불어 함께 사는 길, 무한히 서로 돕고 골고루 나누는 길밖에 그 어떤 길도 길이 될 수 없음을 확인했습니다.
농촌 없는 도시는 절대 있을 수 없다.
모든 국민, 특히 도시인들, 그 중에서도 서울, 경기의 수도권에 사는 사람들이 정말 정신 차리지 않으면 안 됩니다.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농촌의 가치, 농업의 가치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깨달아야 합니다. 농촌 없는 도시는 유지될 수 없습니다. 도시인들이 아무리 똑똑하고잘났다고 하더라도 도시인들만의 힘으로는 자기 삶을 지탱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자동차를 먹고 살겠습니까. 컴퓨터를 먹고 살겠습니까죽으나 사나 밥 먹어야 되고 된장 먹어야 되고 김치 먹어야 됩니다. 밥과 김치와 된장이 청와대에서 나옵니까. 현대자동차 공장에서 나옵니까. 국회에서 나옵니까. 대학교에서 나옵니까. 컴퓨터에서 나옵니까?
도시가 없어도 농촌은 존재할 수 있습니다. 도시인들이 없어도 농민들은 살아갈 수 있습니다. 반면 농촌, 농업, 농민이 없는 한 도시는 존재할 수 없습니다. 도시인들의 삶은 불가능합니다. 도시를 존립할 수 있게 하고 도시인들을 살아갈 수 있게 하는 그 원천적인 바탕이 농촌이고 농업이고 농민들입니다. 우리 삶을 가능하게 하고 우리 목숨을 지탱하게 하는 절대적 가치를 지는 존재들이 바로 농촌, 농업, 농민입니다.
그런데 지금 도시 사람들은 농촌과 농업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습니까? '농촌은 고생하는 곳, 농업은 돈 안 되는 사업, 농민은 무식한 사람'이라고 여기고 있습니다. 기껏해야 농촌 사람 불쌍하니까 도와줘야 한다는 알량한 인정이나 베풀려고 합니다. 정말 이래도 괜찮은 것일까요?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진실을 봅시다. 따지고 보면 농업과 농촌이 도시의 목숨입니다. 농업과 농민이 도시인들의 생명줄을 보호하고 있습니다. 이 말이 이해가안 된다면 한번 물어봅시다. 밥, 김치 안 먹고 살 수 있습니까? 된장, 시금치, 과일 안 먹고도 정치하고 사업하고 학문하는 등의 삶이 가능하겠습니까?
농촌, 농업, 농민은 국가와 사회의 근간
농촌, 농업, 농민은 국가와 사회의 근간입니다. 도시인들의 목숨줄을 지키는 하느님입니다. 이것은 엄연한 사실입니다. 이렇게 볼 때 농촌, 농업, 농민이 얼마나 귀하고 고마운 존재입니까? 귀함을 존중하고 고마움에 감사할 줄 아는 것이 사람의 도리입니다. 사람의 도리를다할 때 우리는 인간답다고 합니다. 사람의 도리를 다할 때 인간의 품위가 지켜지는 것입니다.
도시인들의 생명줄을 보호하고 있는 농촌과 농업을 살려내는 이 일이 과연 누구의 일이겠습니까? 이 일이 어찌 농민들만의 일이겠습니까? 농촌의 문제는 바로 우리 모두 국민의 일입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나서는 것만이 사람답게 사는 길이고, 살아갈 날들을 위한길입니다.
궁극적으로 제가 드리고 싶은 이야기는 '우리가 농촌과 농업과 농민들의 귀함, 고마움에 대해서 눈뜨자. 그리고 그 고마움에 대해서 사람의 도리를 다하자'는 것입니다. 우리가 사람의 도리를 제대로 하려고 들면 농촌, 농민 문제 바로 해결됩니다. 동시에 환경 문제도 저절로해결됩니다. 물론 대안적 삶도 가능합니다.
도시인들이 농촌의 문제를 발벗고 나서야
우리들이, 특히 도시인들이 사람으로서의 도리를 다하면 문제의 해결은 하루아침에 가능할 수도 있습니다. 모든 유권자들이 대통령후보들에게 '모든 정책의 우선을 우리 쌀 살리는 데 두시오! 모든 정책의 우선을 농업과 농촌을 살리는 데 두시오!' 라고 강력하게 주장해보십시오. 신문과 방송에서 대대적으로 외쳐보십시오. 대통령이, 국회의원이, 그 밖의 정치인들이 과연 나 몰라라 할 수 있을까요? 이제 도시인들이 할 역할만 남았습니다. 도시인들이 사람다워지기 위해 사람의 도리를 할 일만 남은 셈입니다.
물론 도시인들과 똑같은 측면에서 농민들의 책임도 큽니다. 농민들도 정신 차려야 합니다. 만약에 농민들이 정치 의식, 공동체 의식, 문제를 올바르게 다루어가고자 하는 운동 의식이 있다면 우리가 이 문제를 풀어가는 것 별로 어렵지 않습니다. 그런데 불행히 우리 농민들에게 그런 주체적인 문제 의식이 없습니다. 공동체 의식도 없습니다. 주장하고 실천할 만한 의식도 없습니다. 그저 자기 한 몸 살아가기에 급급한 실정인 겁니다. 농업이 죽든지 말든지 농촌이 무너지든지 말든지, 논 팔고 소 팔아서라도 교육시켜서 자식들을 전부 도시로 보내겠다고 안간힘을 씁니다. 그렇다고 하여 그 자식들이 도시로 나가서 행복해지는 것도 아닌데 말이지요. 이런 식으로 살다보니 농촌이더욱 피폐해지는 겁니다. 농촌에도 재투자가 되어야 하는데 전부 떠날 생각만 하고 있습니다. 우리들이 정신 차려야 할 일들이 너무 많습니다.
농민들도 좋은 사회 만들려는 공동체 의식을 갖고 노력해야 한다.
한 가지 더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농업, 농촌을 둘러싼 이런 구조적 모순이나 폐단들을 고쳐나가려면 그냥 농사만 열심히 지어 가지고는 절대 안 됩니다.
우리 농민들이 정말 함께 사는 길로 가기 위해 힘을 모아야만 합니다. 국민의 생명과 건강을 지키는 농부로 태어나야 합니다. 흙과 물을살리는 농촌, 농업이 되어야 합니다. 농업이 생명산업으로 자리잡을 수 있도록 생명살림의 농사를 지어야 합니다.
이에 더하여 농사를 가꾸면서 건강한 공동체 의식을 갖고 좋은 사회 만들려는 운동 정신을 함께 가꿔야만 제대로 된 농부가 될 수 있습니다. 그렇게 되었을 때 농업과 농촌이 살아날 수 있습니다. 도시인도 깊이 공감하고 더 빨리 변화하게 됩니다. 진정 이렇게 할 때 우리 모두가 사람다워지고 사람다운 삶이 가능한 나라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우리가 사람다워지기 위해서는, 사람답게 살아가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는, 다른 길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오직 이 길뿐입니다. 우리가 사람다워지기 위해서는 반드시 이 길을 가야 합니다. 열정적으로, 헌신적으로 그 길을 갈 때 우리의 미래는 희망적인 미래
가 될 것입니다.
* 도법스님 : 인드라망생명공동체 상임대표
- 윤구병, 도법스님외 <살아갈 날들을 위한 기도>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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