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부분 사람들은 불확실한 미래를 두려워하고, 하루가 다르게 급변하는 4차 산업 혁명 시대에 어떻게 대처하면 좋을지 걱정이 많다. 이러한 고민을 해결해줄 수 있는 건 단 하나, 바로 교육이다. 교육만이 미래의 변화에 능동적으로 헤쳐 나갈 수 있도록 해준다. 단, 지금의 우리나라 교육으로는 안 된다.
오늘날의 핀란드를 있게 한 근원적인 힘도 교육에서 나왔다. 핀란드는 1970년대 초부터 교육 개혁을 추진했다. 정권이 바뀌어도 개혁의 방향은 바뀌지 않았다. 그 결과 20년이 지난 1990년대부터 그 효과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핀란드 교육은 양보다 질을 중시한다. 정규교육 및 보충수업, 과외 수업 등 총학습량이 한국은 17.2시간인데 핀란드는 5시간에 불과하다. 핀란드는 학교 교육 시간이 우리나라의 3분의 1도 안 되지만 성적은 월등하다. OECD 국가들의 국제적 교육 수준을 나타내는 지표인 피사 테스트에서도 우수한 성적을 자랑한다. 제2 외국어도 여러 개를 구사하는 아이들이 많다. 누워서 영화를 보는 게 전부인 것 같은데 대부분 국민들이 영어도 유창하다. 핀란드 외교관들은 기본적으로 대여섯 개 외국어에 능통하다. 특허, 산업 디자인, R&D 성과 등 혁신 지수에서도 세계 최상위권이다.
오래전 핀란드의 교육을 주제로 한 다큐멘터리를 본 적이 있었다. 그 영상에서 핀란드 아이들은 과목의 경계가 사라진 교육을 받고 있었다. 미술과 과학을 접목한 수업이 이뤄지는 식이었다. 아이들은 놀이처럼 즐기며 그림을 그리지만 물감 등의 미술 도구를 활용해 화학작용이 일어나는 실험도 병행했다. 그야말로 학교 수업마저 개방과 공유가 이뤄지는 현장이었다. 핀란드 아이들은 아주 자연스럽게 자신이 원하는 방식으로 창의적으로 사고할 수 있는 교육을 받는다. 다양한 교과목을 자유롭게 결합하는 개방적인 수업 덕분에 자율적인 학습도 가능한 것이리라. 암기력이 아니라 통합적이고 실용적인 사고력을 키우는 교육이야말로 아이들을 글로벌 인재로 키우는 비결일 것이다.
결과에 대한 평가 방법도 다르다. 학생들 중 누가 높은 점수를 받았는지를 보는 상대평가를 통해 서로 경쟁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학생 한 사람 한 사람이 그전보다 얼마나 나아졌나로 평가한다. 체육 같은 경우에 학기말에 100미터 달리기로 전체 학생들 등수를 매기는 것이 아니라, 학기 초 기록보다 학기 말 기록이 얼마나 나아졌나를 보고 평가하는 것이다. 이러한 개인별 성취의 절대 평가는 아이들이 더욱 발전하고 싶게 만드는 원동력이 된다. 혼자서 좋은 성적을 받고자 노력하는 것이 아니라 모두가 머리를 맞대고 문제를 해결하고 함께 발전하려는 태도가 생기는 것도 놀라운 일이 아니다. 핀란드의 교육은 우리나라와 정반대의 지점에서 우리가 그토록 원하는 성과를 내고 있다.
반면에 우리나라의 학생들은 세계에서 가장 많은 학습량을 기록하고 있지만, 정작 학업에 대한 적성도와 흥미도는 세계 꼴찌 수준이다. 억지로 책상에 앉아 어떠한 흥미도 못 느끼고 시험문제 풀이만 반복하고 있는 것이다. 1등부터 꼴찌까지 성적으로 줄을 세우는 평가 방식은 아이들의 문제 해결 능력을 키우기는커녕 혼자서 점수 올리기에만 급급한 사람으로 만들고 있다.
이러한 제도에서는 어떤 아이가 어떤 분야에 강점이 있는지 발견하기는 불가능하다. 아이들이 자신의 가능성을 발견하지 못하는 어른으로 자라는 것은 개인의 노력 부족탓이 아니다. 유연한 사고방식을 가로막고 창의력과는 거리가 먼 교육으로 아이들을 아무 생각도 못하게 만드는 우리의 교육을 반성해야 한다.
한마디로 우리 교육은 1970~80년대 산업화 시대 인력을 키우는 수준에 머물러 있다. 만 여섯 살에 입학하여 초등학교 6년, 중학교 3년, 고등학교 3년을 다니는 학제도 한국 전쟁 중인 1951년에 정착한 이래 한 번도 바뀐 적이 없다. 세상은 산업화 시대를 지나 정보화 시대를 넘어 4차 산업 혁명 시대로 바뀌어가는데 교육 제도는 거의 70년 동안 바뀌지 않고 있는 것이다. 거의 유일하게 계속 바뀌고 있는 것은 대학교 입시 제도이다. 대학교 입시만 바꾼다고 해서 근본적으로 교육이 바뀌지 않는다. 입시 제도만 바꾼다고 주입식 교육이 창의적인 교육으로 바뀌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계속되는 혼선으로 사교육 지출만 매년 늘어나 서민 가계만 힘들게 될 뿐이다. 입시 개혁이 교육 개혁의 전부는 아니다.
진정한 교육 개혁에는 세 가지가 필요하다. 창의 교육, 적성 교육, 인성 교육이 가능한 혁신적인 교육 제도, 장기적인 관점에서 지속적이고 일관성 있는 정책 추진, 그리고 자기가 원하는 일을 하면서 먹고살 수 있는 일자리 개혁이 그것이다. 이 세 가지가 모두 갖추어져야 우리는 우리 아이들의 미래를 위해 책임을 다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근본적인 교육 개혁은 놔두고 입시 제도만 고치는 것에만 몰두하는 사람들에게 한 번 물어보고 싶다. 만약 리누스 토발즈가 우리나라에서 태어났다면 과연 스물한 살에 리눅스를 만들 수 있었을까?
안철수, 우리의 생각이 미래를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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