힐링&수행

한국 간화선에 대한 고언

정정진 2009. 2. 13. 23:30
한국 간화선에 대한 고언
 
첫째, 한국 간화선은 힌두화 되어가고 있다. 발제자는 감히 한국 간화선의 가장 큰
문제점을 한국 간화선은 성, 불성, 여래장, 심지어 참나, 대아, 주인공, 내부처, 본래
면목이라는 언어를 사용하여 아뜨만(자아=진아)이라는 대상을 세우고 그것과 하나
되는 수행으로 전락해가고 있는 것이라고 말하고 싶다. 이것은 한국불교 전반에서
가장 심각한 타락이라 본다. 수행자가 수행의 본질을 오염시키는 것은 그 어떤 타락
보다 심각한 것이다. 일례로 '진아여여'나 '나는 누구인가'등 라마나가 주장한 힌두의
수행법을 '이뭐꼬' 화두와 같은 것으로 이해하여 이런 책들을 최고의 수행지침서로
이미 제방에서 읽고 있으며 강원에서 까지 읽고 간화선을 이런 식으로 이해한다는 것
은 문제중의 문제라고 본다. 그리고 힌두적 발상과 서양의 상업주의가 결탁된 아바타
수행에 스님들과 불자들이 뛰어드는 현상은 어떻게 이해해야할 것인가.
 
둘째, 한국 불교의 수행에는 힘의 논리가 팽배해 있다. 화두를 힘으로 밀어붙여 타파
해야 할 그 무엇으로 간주하여서 온 몸과 마음을 몰아 세워가고 있다. 힘으로 밀어붙여
화두가 핵폭발하는 것처럼 어느 순간에 펑하고 터지면 그 즉시에 도인이 되고 부처가
되어 만중생의 존경과 귀의와 찬탄과 예경을 받게 되는 것으로 돈오돈수를 생각하고
있는 것 같다. 그러다 보니 한국 수행자들은 너무 긴장해 있고 날카롭다. 도대체 한국
수행자들에게서 편안함이나 고요함이나 자비심을 찾기가 힘들다고 불평하는 사람들이
많다. 절집안이 맹수집단이라는 말이 공공연히 나돌고 있다. 생기지도 않는 의심을
힘으로 밀어부쳐 일으켜서 이를 타파하려는 발상을 하고 있는 수행이 얼마나 힘들고
스트레스 받겠는가 발제자의 경우를 돌이켜보면 이해가 간다.
 
이렇게 힘으로 밀어붙이려는 강한 의도를 일으키는 이면에는 본자청정, 주인공, 본래
면목, 참나, 대아, 진아, 여래장, 불성, 진여, 내부처라는 그 어떤 존재론적인 무엇을
상정하여 그것을 추구하고 그것과 하나가 되려는 발상을 깔고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면 점점 극단적인 신비주의로 빠져들게 되고 그래서 '이뭣고'를 라마나의 '나는 누구
인가'로 파악하는 어처구니없는 발상을 일으키는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렇게
힘으로 밀어붙이는 게 업이 되면 매사에 그런 힘을 쓸려는 강력한 의도에 지배되어
면밀히 살피고 사유하는 기능이 개발되지 못해서 경계에 속게 될 것이다. 아니, 건전한
상식이나 경우를 무시하고 세상사 모두를 힘으로 밀어붙여 해결하려들게 될 것이다.
이런 배경 때문에 조계종의 여러 문제는 생겨나는 것이 아닌가 발제자는 반성해 본다.
 
셋째, 한국 간화선은 화두만 타파하면 다 된다는 단세포적인 사고에 깊이 물들어있다.
그러다보니 합리성을 놓치고 있다. 물심의 현상(법)에 대한 분석적인 사유가 결여되면
자칫 허공에 구름 잡는 주장을 대승불교나 간화선 아니면 돈오라는 이름으로 하게 된
다. 그래서 최고의 지혜나 직관을 보여 주어야할 우리 불교가 오히려 궁극에 가서는
의지해야 할 판단기준이 없어져 더욱 더 세속의 논리나 세속적 가치판단을 중시하는
듯한 어처구니 없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 아닌가
 
- 각묵스님 '선우도량의 선우논강1' 에서 -